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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46화 (246/347)

< 제78화. SSS급 신병 (1) >

제78화. SSS급 신병 (1)

여름이 다 가고, 금세 날씨가 추워졌다.

아침 점호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복귀한 백우호는 추위에 몸 서리를 쳤다.

"어후…… 우리나라 4계절이 맞긴 하냐? 내가 보기엔 여름하고 겨울, 2계절만 있는 거 같은데."

조은석이 그의 말을 받아 줬다.

"4계절 맞습니다. 여름, 덜 추운 겨울, 겨울, 덜 더운 여름. 이 렇게 말입니다, 하하하!"

군대에선 봄과 가을의 주기가 너무 짧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덥거나 춥거나. 군대 날씨는 둘 중 하나밖에 없다.

저번 달까지만 하더라도 에어컨을 틀고 지냈던 병사들. 그러 나 지금은 에어컨이 아니라 난로를 틀어야 할 판이었다.

하나 아침에만 겨울 날씨지, 해가 중천에 뜨기 시작하면 다시 여름이 복귀한다.

겨울과 여름을 하루에 전부 만끽할 수 있는 신기한 시기다.

이강진은 분대원들에게 어제 분대장 회의 때 행보관이 했던 말을 들려줬다.

"밤에는 추우니까 깔깔이 입고 자라. 아니면 침낭 꺼내도 되 고. 그러고 보니까 우리가 침낭 세탁을 했던가?"

대답은 기운상의 몫이었다.

"죄송합니다. 아직 안 했습니다."

"그럼 오늘 개인 정비 시간에 운상이, 네가 애들 데리고 침낭세탁해라. 세탁기는 미리 예약 걸어 둬. 다른 분과도 우리처럼 침낭 세탁 려고 할지도 모르니까."

"예, 알겠습니다."

여름 내내 묵혀 뒀다가 세탁도 안 하고 침낭을 꺼내면 케케묵 은 냄새가 난다. 그러면 잠의 요정도 냄새 때문에 오지 못한다.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서라면 몸이 부지런해야 한다. 한 번 귀 찮아지면 겨울 내내 따스하고 쾌적한 겨울 잠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식사 집합하기 전에 침낭들 다 한 곳에 모아 둬라."

"이강진 병장님, 서일주 병장님 건 어떻게 합니까?"

서일주는 휴가를 나간 상태였기 때문에 누가 대신 서일주의 침낭을 챙겨 줘야만 했다.

"같이 세탁 돌려야지. 어차피 나갈 사람이라곤 해도, 나가는 길 편하게 해 줘야 나중에 말년 꼬장 안 부릴 테니까."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아니, 말년 병장의 코털을 건드리면 안 된다. 그러면 꼬장이란 꼬장은 다 부리고 갈 것이다.

회귀하기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이강진.

그때는 서일주의 기분을 제대로 맞춰 주지 못한 탓에 말년 꼬장을 그가 전역할 때까지 전부 받아 줘야만 했다.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서일주 병장 전역하면, 저 자리는 이제 새로 올 신병이 채우 겠지.'

이번에 올 신병이 아마 이강진이 받게 될 마지막 신병일 것이다.

'이제 한 명만 받으면 된다!'

이강진은 벌써부터 '그'가 기다려졌다.

* * *

분리수거장 주변에 뻗힌 넝쿨들을 제거하기 위해 1중대 병사 들이 나섰다.

이것이 오늘의 메인 작업이다.

"가시 조심해라. 코팅된 목장갑 가진 사람들이 줄기 먼저 제거하고, 나머지는 낫으로 쳐 내."

"예, 알겠습니다."

작업의 신, 행보관의 말을 얌전히 따르는 것이 상책이다. 괜 히 고집 부려봤자 득 될 게 없기 때문이다.

이강진이 먼저 앞장서서 넝쿨을 제거했다. 넝쿨을 들어 올린 순간, 안에서 잠자고 있던 각종 날벌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어휴……!"

손사래를 치는 이강진.

심지어 하나같이 덩치도 컸다.

그중에는 팅커벨도 보였다.

"우왓!"

"팅커벨이다! 조심해!"

기겁을 하는 병사들. 군 생활을 할수록 벌레에 대한 혐오감만 더 커져 갔다.

그렇게 때 아닌 벌레들과의 사투를 벌이다 보니, 어느새 벌써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빡센 작업을 하면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는 장점이 있다.

이강진은 행보관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과 함께 잘라 낸 넝쿨을 근처에 버 리고자 수풀로 향했다.

있는 힘을 다해 넝쿨 더미를 던졌다.

이것으로 끝.

"밥 먹으러 가자."

"예!"

고된 작업이 끝났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병사들의 목소리에 생기가 넘쳤다.

오늘의 메뉴는 짜장면.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식의 등장에 병사들은 벌써부터 군침을 흘렸다.

그러나 이강진은 마냥 기쁘지만 않았다.

휴가를 자주 나가다 보니 다른 병사들에 비해서 유독 바깥 음 식을 많이 먹었던 이강진. 중식도 지겹도록 먹었다.

밖에서 먹었던 짜장면과 부대 안에서 먹는 짜장면 맛이 같을 수가 없다.

비교할 필요도 없이 전자가 훨씬 맛있다.

아직도 짜장면 맛이 혀에 남아 있는 이강진은 면 반, 한숨 반을 삼켰다.

그래도 땀을 잔뜩 흘리고 와서 그런지 식판은 싹 다 비웠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강진아."

맞은편에 앉은 백우호가 그를 다시 앉혔다.

백우호는 오늘 당직 근무를 서게 된 탓에 다른 병사들보다 늦 게 식당을 찾게 되었다.

"왜? 나한테 볼일 있어?"

"어, 많지. 아까 본부 쪽에서 연락 왔는데, 올해 체육대회 일정 정해졌다고 하더라. 3주 뒤라고 하던데. 넌 축구 나갈 거지?"

한때 이강진은 고필중과 함께 1중대 투톱이라 불렸다.

고필중은 전역했고. 이제 이강진만 남았다.

그러나 이강진은 부정적인 말을 들려줬다.

"나, 이번에 출전 못 한다."

"엥? 그럼 어디 나가게. 농구? 아니면 족구?"

"체육대회 자체를 못 나가."

순간 백우호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못 나가!"

중대한 이유가 있었다.

"그때 휴가 나가거든."

1 년 전의 이강진은 어떻게든 체육대회에 나가려고 발악을 했었다. 포상 휴가를 따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강진은 달랐다.

가지고 있는 휴가들도 못 쓸 판국인 데, 굳이 체육대회에 나가 봤자 무슨 의미가 있으랴.

지금은 휴가를 따낼 때가 아니라 휴가를 펑펑 써야 할 시기

"골치 아프네. 너 없으면 힘든데."

죽구뿐만 아니라 계주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보였던 이강진. 비록 단 한 명의 힘이지만, 그 한 명의 힘이 팀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하나 이강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태강이 있잖아? 태강이가 내 빈자리를 잘 메꿔 줄 거야."

"태강이가? 작년에 보니까 잘 못하던 거 같던데."

"그때는 태강이가 짬이 안 되니까 그런 거고. 선임들 눈치 보 느라 제대로 활약을 못해서 그렇지, 알고 보면 태강이도 잘해. 축구면 축구, 계주면 계주. 네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크게 활 약해 줄 거야."

"하긴 이제 상병 달았으니까 선임들 눈치를 심하게 보진 않겠 지."

기운상에 이어서 두 번째로 상병을 달게 된 성태강.

그라면 올해 체육대회에서 하드 캐리를 해 줄 거라고 이강진 은 굳게 믿고 있었다.

'이전에도 그랬고.'

이번 체육대회를 진두지휘하게 된 백우호는 결국 이강진의 의 견에 따르기로 했다.

머릿속으로 어느 종목에 누구를 배치할지 고심하던 백우호는 갑자기 이강진이 부러워졌다.

"나도 그냥 너처럼 아무 생각 없이 휴가 나가면 좋겠는데."

"내가 왜 아무 생각이 없어."

그는 백우호보다도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 전체를 크게 뒤흔들 만큼 큰 그림.

이강진은 지금 그것을 구상 중이다.

* * *

점심시간 동안 이강진은 잠을 청했다.

12시 55분.

곽분섭이 잠든 이강진을 조심스럽게 깨웠다.

"이강진 병장님, 근무 나갈 시간입 니다."

"……어, 알았어."

간신히 일어난 이강진은 반쯤 감긴 눈으로 단독 군장을 챙겼이강진, 곽분섭이 탄약고 근무 교대를 준비하는 동안, 다른 병사들은 오후 집합을 위해 사열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근무 끝나고 돌아오면, 간부들 눈에 띄지 않게 잘 도망 다녀 야겠네.'

오전에 빡세게 일했으니, 오후는 좀 쉬고 싶은 기분이었다.

백우호의 인솔을 받으며 곽분섭과 함께 탄약고 초소를 오르 는 이강진.

오늘따라 유독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초소에 들어가자마자 이강진은 곧장 개인화기를 내려놓았다.

"오전에 너무 열심히 작업했나 보다. 자도, 자도 피로가 안 풀 리네."

"이제 병장이신데 일, 이등병 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시는 거 같습니다."

"그러게. 이제는 설렁설렁 해도 괜찮은데."

가끔 이강진은 자신이 병장이라는 걸 까먹을 때가 있었다.

회귀 이전에는 병장을 달자마자 어디 가서 짱 박힐 생각부터 했었는데.

'사람이 마음가짐이 달려져서 그런 건가.'

재입대를 할 때, 이강진은 눈에 띄지 말고 중간만 가자는 생 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 결심은 입대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무 너지고 말았다.

아는 게 있다 보니 답답한 상황이 오면 입과 몸이 근질거렸다. 그 근질거림을 이기지 못하고 직접 앞으로 나선 것이 오늘 날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앞으로는 요령도 좀 부리고 그래야겠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적당히만 하면 된다.

그게 올바른 군 생활이다.

'우리 막내가 내무생활은 몰라도 훈련은 참 열심히 했었는데.'

지금쯤 막내는 뭐 하고 있을지.

선임이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쯤 자대로 전입 오게 될지 궁금해졌다.

* * *

신병 교육대의 아침이 밝았다.

기상나팔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깬 훈련병, 허인강은 이제는 익숙해진 신병 교육대 아침 점호를 받은 후에 마지막 아침 식사 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5주간의 훈련 일정을 모두 마친 훈련병들 사이에선 자대 이 야기가 한창 돌고 있었다.

"인강아, 내가 들어 보니까 7849대대가 좋다고 하더라."

"그래?"

"어, 원래 전방 부대가 훈련은 빡센 대신에 내무생활은 편하 대. 반대로 후방 부대는 훈련이 편한 대신에 내무생활이 빡세다 고 하고. 기왕 힘들 거면 차라리 훈련이 빡센 편이 더 낫지 않겠 냐? 내무생활은 군 생활 내내인데, 훈련은 훈련 기간에만 딱 고 생하면 되니까."

"음…… 그렇긴 하지."

허인강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자대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아본 모양인지, 동기인 노재원은 허인강이 몰랐던 사실을 주저리주저리 털어놓았다.

"그리고 1075대대는 웬만하면 피하래."

"왜?"

"우리 형이 거기 부대 출신이잖아. 훈련이 힘들거나 내무생활 이 안 좋은 건 아닌데, 희한하게 거기는 사단장, 연대장이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곳이라고 하더라. 그것 때문에 군 생활 하는데 스트레스 엄청 받았대. 그래서 1075대대는 가급적 가지 말라고 하더라."

좋은 충고다.

하지만…….

"우리가 안 가고 싶다고 우리 마음대로 정해지는 건 아니잖 아."

허인강의 일침에 노재원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맞는 말이지."

군대에서 자신의 의사가 비중 있게 받아들여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이들의 운명은 컴퓨터 랜덤 프로그램에 의해 정해질 것이다.

훈련병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 기도뿐이다.

* * *

퇴소식을 마친 훈련병들에게 조교들이 쪽지를 하나씩 배분했다.

"쪽지에 본인이 갈 자대가 적혀 있으니까 잘 기억하고 있어 라. 조금 있다가 밖으로 집합할 때 자대별로 정렬할 테니까. 알겠나."

"예!"

"그럼, 호명하는 사람부터 앞으로 나오도록."

조교들이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쪽지를 전달했다.

드디어 허인강과 노재원의 차례가 되었다.

쪽지를 열기 전에 노재원이 두 눈을 꼭 감고 빌었다.

"천지신명이시여! 비나이다, 비나이다! 제발 1075대대만큼은 피하게 해 주십시오……!"

두 사람이 동시에 쪽지를 열었다.

그 와중에 노재원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이, 인강아, 나, 어디냐? 어디 됐어?"

"나하고 같은 곳이네."

허인강은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

"1075."

최악의 결과가 나와 버 렸다.

< 제78화. SSS급 신병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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