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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51화 (251/347)

< 제79화. 건드리 면 안 되는 남자 (4) >

제79호[. 건드리면 안 되는 남자 (4)

수송분과만 적혀 있는 게 아니었다.

2분대 병사들이 저지른 실수들도 뒷장에 빼곡하게 적혀 있었 다.

이강진은 한정렬 한 명만 묻어 버릴 생각이 없었다.

그와 손을 잡았던 정일송까지 같이 묻어 버릴 의도였다.

때마침 정일송이 행정반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렬아, PX 가려고 하는데 뭐 먹고 싶은 거 있……. 뭐야, 이강 진. 넌 무슨 일로 왔냐?"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는 정일송.

그러나 이강진은 끝까지 미소를 유지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정일송 병장님, 이것 좀 확인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건 또 뭐야."

"보시면 알 겁니다."

이들에게 굳이 친절한 설명 따위를 해 줄 이유가 없었다.

뒤늦게 내용물을 확인한 정일송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떨었다.

"자, 잠깐만! 이건 뭔가 잘못됐어! 우리 애들이 이렇게나 실수 를 많이 저질렀다고?"

"원래대로라면 그냥 넘어갈 사소한 실수들입니다. 하지만 한 정렬 병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소한 거라도 실수는 실수니까 처벌은 무조건 받아야 한다. 설령 대기 기간인 신병이 라고 해도. 기억나십니까, 한정렬 병장님?"

기억이 안 난다고 해도 의미가 없었다.

이미 그가 저지른 전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신병들한테 경고 카드를 뿌려 댔는데, 자신의 분과는 안 된다 고 하면 그게 말이 되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딱 그 꼴밖에 안 된다.

이래서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

말조심을 해야 했건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강진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2분대는 특히 영순이의 잘못이 컸습니다. 걔가 가지고 있는 보급품들을 살펴보니까 자기 것이 아닌 다른 병사들의 보급품 들이 다수였습니다. 영순이한테 가서 추궁해 보니까 건조대에 서 몰래 하나씩 훔친 보급품들이라고 자백했습니다. 정일송 병 장님도 아주 잘 알고 계시겠지만, 보급품 도난 관련 항목은 경 고 카드 일곱 장입 니다."

오불이 때문에 묻힐 뻔했던 이영순의 도둑질이 밝혀진 건 우 연이었다.

기운상이 건조대에서 이 영순과 마주쳤는데, 이 영순의 손에 들 려 있던 팬티에 다른 병사의 이름이 적혀 있던 걸 얼핏 봤다고 했다.

그 증언을 바탕으로 끈질기게 추격한 결과.

이영순이 그간 다른 병사들의 보급품을 조금씩 몰래 훔쳐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이영순 그 새끼! 이틀 전부터 자꾸 날 피한다 싶더 라!"

이영순 때문에 수송분과보다 2분대가 더 많은 경고 카드를 받아야 했다.

이쯤에서 이강진은 이들에게 체크메이트를 선언하기로 했다.

"경고 카드는 오늘 내로 분대장들이 합산해서 두 분과에게 줄 겁니다. 이게 다 한정렬 병장님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런 방식으로 경고 카드 싸움을 하시겠다면, 전 말리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1분대를 포함해서 여섯 개의 분과가 수송, 2분대를 어떻게 하면 잡아먹을까 하고 잔뜩 벼르고 있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전 정치 니 파벌이 니 하는 거, 굉장히 싫어합니다. 하지만 두 분이 계속 무의미한 싸움을 이어 가시겠다면 이 런 대 치 구도는 계속 이어질 겁니다. 두 분은 어차피 전역하시면 끝 이지만, 남은 후임들은 두 분 때문에 한동안 계속 고통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이거다.

"어떻게 하면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 잘 생각해 주시기 바 랍니다."

이강진은 이들의 마지막 양심을 믿어 보기로 했다.

두 사람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후임들을 생각해야 한다.

이강진이 할 말은 이것으로 끝났다.

이제 한정렬과 정일송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기다리기만 하 면 된다.

* * *

자정을 기점으로 달력이 넘어가게 되었다.

경고 카드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 수송과 2분대는 예정대로 각 각 분리수거장, 식청을 맡게 되었다.

정말로 이강진이 말한 대로 된 것이다.

하지만 이강진은 한 단계 더 나아간 결과물을 기대했다.

그 결과물이 머지않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강진."

한정렬이 1생활관을 찾았다.

정확히는 이강진에게 볼일이 있어 보였다.

"병장 이강진."

"이야기 좀 하자."

"예, 알겠습니다."

올 것이 왔다.

이강진의 맞은편에서 TV를 보고 있던 백우호가 우려 섞인 목 소리를 냈다.

"조심해라, 강진아. 한정렬 병장이 뭔 짓 할지 모르니까."

"괜찮아. 위험한 건 아닐 테니까."

한정렬이 무슨 볼일 때문에 자신을 찾아왔는지. 이강진은 이 미 예상하고 있었다.

흡연실로 향한 두 사람.

담배를 꺼낸 한정렬이 이강진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한 대 피울래?"

"전 비흡연자입니다."

회귀 이전에는 술꾼에 골초였지만, 회귀하고 난 이후에 이강 진은 술과 담배를 최대한 멀리하고 있었다.

담배는 아예 끊어 버렸다.

가끔 담배가 생각날 때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정신력으로 버 텨 내다 보니 이제는 완전한 비흡연자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입에 담배를 물게 된 한정렬.

대신 불은 이강진이 직접 붙여 줬다.

"고맙다."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다 듣게 될 줄이야.

'군 생활 오래 하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평생 고맙다는 말이라곤 한마디도 안 할 거 같은 사람이 이런 말을 다 하고 말이다.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내면서 한동안 말을 아끼던 한정렬.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신병들에 관한 일은 미안하게 됐다. 내가 경고 카드 때문에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 보다."

결국 한정렬이 먼저 백기를 들고 말았다.

예정된 결과였다. 애초에 싸울 수 있는 전력이 아니다. 이강 진이 마음만 먹으면 한정렬이 전역할 때까지 수송분과를 계속 꼴찌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만큼 전력 차가 너무 크다.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하다. 그렇게 판단한 한정렬은 이강 진에게 항복 선언을 하기로 했다.

이강진은 한정렬의 결심을 존중하기로 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솔직히 아직 대기 기간도 안 끝난 신병 들을 데리고 이렇게 분과들끼리 싸우는 건 많이 추하다고 생각 합니다. 이런 일은 저하고 한정렬 병장님 선에서 딱 끊어 버리 는 게 좋습니다."

"알고 있어. 그래서 너한테 이렇게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온 거 야."

그래도 한정렬은 최칠완급 쓰레기는 아니었다.

한정렬은 그동안 이강진에게 품어 왔던 속내를 솔직하게 드 러 냈다.

"너, 휴가 많은 거 보고 질투도 나고. 그래서 어떻게든 한 방 먹이고 싶어서 그랬는데, 일이 어쩌다가 이렇게 크게 번졌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테니까 이제 그만하자. 미안하다."

"알겠습니다. 다른 분대장들한테는 제가 잘 말해 두겠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부탁 좀 할게."

"예."

감정싸움이 길어져 봤자 이강진만 손해다.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다.

이강진과 한정렬이 펼친 싸움의 결과.

승자는 이강진이 되었다.

이 때문에 한동안 1중대에는 이런 말이 돌았다.

절대로 이강진에게 먼저 싸움을 걸어선 안 된다고.

* * *

중간에 수송, 2분대와 크나큰 마찰이 있었지만, 그것도 원만 하게 해결되었다.

이제 이강진은 바로 이틀 뒤에 있을 휴가만 준비하면 된다.

하나 그전에 먼저 진행해야 할 일이 있었다.

토요일 저 녁 당시.

당직 근무를 서 던 백우호가 1생활관을 찾았다.

"강진아, 전화 왔다."

"누구한테?"

"몰라. 어떤 여자한테서 왔는데?"

'여자'라는 단어에 분대원들이 이강진을 향해 부러움이 가득 담긴 시선을 던졌다.

"이강진 병장님, 혹시 여자 친구이십니까?"

"언제 여친 만드셨습니까?"

"이야! 역시 이강진 병장님이십니다!"

'군 생활은 이강진답게!'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강진은 이들에게 오해 받을 말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다.

"여자 친구 없으니까 그만 좀 호들갑 떨어. 아무튼 전화받고 올 테니까 W 돌리지 말고 그대로 있어라. 오늘 데일리러브 컴 백 무대 봐야 하니까."

이강진도 군인이다. 대세 걸그룹이 컴백한다는데, 그 무대는 무조건 봐야 한다.

행정반에 도착하자마자 이강진은 곧장 수화기를 들었다.

"이강진입니다. 누구십니까?"

-아, 저예요.

어디서 들어 봤나 싶더니, 한지윤의 매니저였다.

-잠시만요. 지윤아! 강진 씨 전화 받았어.

-곧 갈게요, 언니!

이내 한지윤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안녕하세요, 강진 씨. 죄송해요. 전화 걸었는데, 갑자기 PD님 이 부르셔서요. 그것 때문에 잠깐 이야기하다가 왔어요.

"괜찮습니다. 지윤 씨 바쁜 거야 세상 모두가 다 알고 있으니 까요."

영화 크랭크업 이후 한지윤은 곧바로 드라마 촬영에 투입되 었다.

일정이 워낙 바쁜 탓에 한지윤은 요즘 들어 종교 행사에 거의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한지윤을 보기 위해 군종병이 되었건만. 이제 그녀의 얼굴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의욕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강진은 슬슬 군종병 후임을 정해 둘까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 그 일은 잠시 미뤄 둬야 했다.

-저, 이번 주 종교 행사에 나갈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미 리 말씀드리려고요. 혹시 휴가 나가시나요?

"종교 행사 끝나고 나갈 계획 이었습니다. 잘됐네요."

타이밍이 좋았다.

내일은 무슨 낙으로 교회를 나가나 고민었는데, 그 고민이 전 화 한 통으로 단번에 해결되었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백우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이강진에게 다가왔다.

"야, 누구였냐? 진짜 여자 친구 아니야?"

통화 내용을 제대로 못 들은 모양인지 백우호는 이강진이 한 지윤과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남의 사생활이 뭐가 그리 궁금하다고. 근무나 똑바로 서."

"매정한 녀석. 좋겠다, 여자랑 통화도 해 보고."

"좋지."

상대가 한지윤이어서 그럴까.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 * *

아침 식사를 끝내자마자 이강진은 곧장 교회로 내려갈 준비 를 서둘렀다.

휴가 때에만 꺼내 입던 A급 전투복으로 환복한 이강진.

기운상이 의아한 듯 물었다.

"이강진 병장님, 갑자기 A급 전투복은 왜 꺼내십니까? 휴가는 모레 나가시는 거 아닙니까?"

"휴가만큼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래."

오늘은 특별하다.

병장으로 진급한 이강진의 모습을 한지윤에게 처음으로 보여 주는 날이기 때문이다.

전투화에 광까지 낸 이강진은 행정반에 먼저 들렀다.

"통신반장님, 교회 내려가 보겠습니다."

"교회 가는 거였냐? 난 또. 휴가 나가는 줄 알았네."

"하하, 아닙니다."

휴가 때보다 더 복장에 힘을 줬으니 이렇게 오해를 받기에 충 분했다.

당찬 걸음으로 교회를 향해 나아가는 이강진.

매번 가던 종교 행사인데 오늘따라 유독 긴장이 많이 됐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이강진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복 장을 체크했다.

'가 볼까.'

문을 열자마자 짐을 옮기는 성가대 사람들의 모습이 가장 먼 저 보였다.

"안녕하세요."

"어머, 강진 씨 오셨군요."

"안녕하세요!"

"오늘 지윤 씨도 오셨어요. 혹시 아세요?"

이강진은 일부러 놀라는 척했다.

"그런가요? 지윤 씨 지금 어디 있나요?"

알고 있다고 하면,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게 들 통 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이런 걸로 이상한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큰일이다.

성가대로 활동하는 여성이 교회 후문 쪽을 가리켰다.

"저쪽 문으로 나가면 바로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군부대에서 맞이하는 한지윤과의 만남.

이강진은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 제79화. 건드리 면 안 되는 남자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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