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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56화 (256/347)

< 제81화. 탈영병 (2) >

제81화. 탈영병 (2)

진봉산 입구에 모인 1중대 병사들.

각자 조를 짠 뒤에 산으로 올라갈 준비를 서둘렀다.

야간 산행인 만큼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사고에 유의하도록 해라. 그리고 산길이 험준하 니 항상 손전등으로 앞 잘 살펴보고 가고. 알겠나!"

"에,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투입!"

"투입!"

간부들과 함께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병사들.

이강진이 이끄는 1분대도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선두에 선 백우호가 손전등으로 이곳저곳을 비추면서 사방을 살폈다.

"우와…… 이건 뭐,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네."

뒤따라오던 곽분섭이 개인적인 욕심을 드러냈다.

"귀신보다 탈영병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희, 단체 로 포상 휴가 받지 않습니까?"

"그렇지."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까지 된 문제를 해결한 셈이니, 포상 휴가는 무조건 줄 것이리란 믿음이 있었다.

반년 전의 이강진이었더라면 어떻게든 탈영병을 찾아내서 포 상 휴가를 받아 낼 궁리를 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우리든 다른 부대든 빨리 잡 아줬으면 좋겠는데.'

그냥 사건이 조속히 해결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이강진의 바람과 다르게 3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현재 시간, 저녁 11시.

-치익!

엑스반도에 꽂혀 있는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기를 무등호, 무등호라 알리고 현 시간부로 전 병력, 임시 본부 앞으로 집합할 수 있도록.

-양호.

-수신 양호.

이강진도 무전기를 들어 올리며 답했다.

"양호."

바로 곁에서 3시간 넘게 야간 산행을 하던 백우호가 이강진 에게 물었다.

"복귀하래?"

"어, 전체 주목! 수색 작전 잠시 중단하고 임시 본부로 복귀할 거다. 집합하도록 해."

"에, 알겠습니다!"

흩어져서 탈영병의 흔적을 찾고 있던 병사들이 이강진이 있 는 쪽으로 모여들었다.

올라오는 것도 큰일이지만, 내려가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큰 일이다.

게다가 환경이 어두우니 좀 더 조심해서 내려갈 필요가 있었 다.

이강진이 백우호를 불렀다.

"우호야, 우리가 앞으로 가자. 운상이하고 태강이는 맨 뒤에 서 우리 따라와라. 나머지는 중간에서 걷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일부러 짬 좀 되는 병사들을 앞, 뒤로 배치했다.

대형을 다시 짜는 와중에 서일주가 불쑥 입을 열었다.

"강진아, 나는?"

짬으로 따지면 서일주가 가장 높다.

이강진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분이시지 않습니까. 굳이 자처 해서 고생 안 하셔도 됩니다."

나름 말년에 대한 배려였다.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괜히 내려가다가 발이라도 헛디 디면 큰일이다.

낮이었다면 금방 내려갔을 길이지만, 밤이 되니 시간이 두 배, 세 배 이상 걸렸다.

그래도 1분대가 가장 먼저 본부에 집합했다.

1분대를 시작으로 다른 분과들도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중대장은 병사들을 쭉 훑었다.

"다 모였나?"

각 분과 분대장들이 중대장에게 이상 없음을 보고했다.

중대장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탈영병 찾으러 갔다가 조난자라도 발생하면 큰일이니까. 어딜 가든 항상 자기 분대원들 챙기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현 시간부로 2교대로 나눠서 수색 작전을 실시하겠다. 1조, 2조 편성 인원은 CP 텐트 앞에 걸어 뒀으니 가서 자기 조 확인해라. 1조는 30분 쉬었다가 다시 수색 작전에 투입될 거 다. 2조는 부대로 돌아가서 취침하고 오전 7시에 1조와 교대한다. 알겠나."

"예!"

아무리 탈영병 수색이 급하다고 해도 병사들을 24시간 내내 굴릴 순 없다.

쉬면서 작업을 해야 그만큼 효율이 오르는 법이다. 이강진은 자신이 속한 조를 확인했다.

*1 조군."

1분대에선 이강진, 기운상, 곽분섭 그리고 허인강. 이렇게 넷 이 1조로 편성되었다.

나머지 인원들은 2조다.

백우호가 이강진의 어깨를 토닥였다.

"고생해라, 강진아."

"그래, 푹 자고 와 내가 보니까 탈영병 아저씨 찾는 거, 내일도 계속할 거 같다."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밤이라서 그 런지 수색 작전이 상당히 더뎠다.

사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손전등 켜고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내고 다니는데, 탈영병이 눈치 못 챌 리가 있겠나.'

이건 무의미한 술래잡기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 하는 것이 군 인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 * *

두 번째 수색 작전이 개시되었다.

쉬는 시간 동안 이강진은 후임들과 함께 컵라면과 음료로 배 를 든든하게 채워 뒀다.

배고픔이 사리진 건 좋으나.

'배부르니까 졸리네.'

허기의 요정 대신 졸음의 요정이 이들을 찾아왔다.

아까 왔던 길을 그대로 올라가는 이강진과 병사들. 비록 야간 때문에 시야가 많이 한정적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 올라왔던 길 이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중간 정도 올라왔을 때였다.

왼쪽 수풀 속에서 바스락바스락 하는 소리가 강하게 들려오 기 시작했다.

이강진이 별 말 안 해도 병사들은 알아서 움츠러들었다. 그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01, 이강진 병장님! 저기에…… 뭔가가 있는 거 같습니다……!"

"나도 알고 있어."

탈영병 일까?

아니면…….

'다른 것일지도 모르지.'

수풀 너머에서 풍겨오는 고약한 냄새가 이강진의 미간을 일 그러지게 만들었다.

산짐승의 냄새다.

마침내 녀석이 정체를 드러냈다.

병사들은 헛숨을 삼켰다.

어둠을 뜷?등장한 거대한 생 명체.

그 정체는 바로…….

"메, 멧돼지!"

"씨 발, 좆됐네!"

설마 이곳에서 멧돼지와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난생 처음 야생 멧돼지를 보게 된 허인강은 놀라움에 입을 다 물지 못했다.

말로만 멧돼지니 뭐니 하고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단 한 번 도 없었다.

멧돼지를 처음 접한 소감은 짧고 강렬했다.

괴물.

이 한마디로 멧돼지의 모든 걸 표현할 수 있었다.

산에서 멧돼지와 마주쳤을 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이강 진은 알고 있었다.

"당황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괜히 녀석을 자극하지 마!"

멧돼지에게 뒷모습을 보이고 달아나면, 오히려 그 모습을 보 고 달려드는 경우가 있다.

산짐승들은 먼저 자극시키지만 않으면 된다.

침착함 그리고 냉정함.

이것이 키포인트다.

분대원들은 이강진의 충고에 따르기로 했다. 사실 이 방법 말 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푸르릉!

거친 콧김을 뿜어내는 멧돼지. 녀석은 이강진과 병사들을 빤 히 응시했다.

지금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은 공포가 병사들을 덮쳤다.

하나 이 공포는 오래 가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흥미가 사라진 모양인지 멧돼지는 몸을 돌렸다. 머지않아 녀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숨이 턱 막혔던 위기의 순간이 지나갔다.

다리에 힘이 풀린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강진도 몸을 휘청일 정도였다.

'죽다가 살아난 기분이네.'

마음을 추스른 뒤에 분대원들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 다친 사람 있어?"

"사, 상병 기운상, 전 괜찮습니다."

"일병 곽분섭, 저도 멀쩡합니다."

"이, 이 병 허인강…… 그게……."

기운상, 곽분섭과 다르게 허인강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왜, 어디 다쳤어?"

이강진이 허인강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때 허인강은 몸서리를 치면서 이강진과 멀어지려고 했다.

"괘, 괜찮습니다! 멀쩡합니다! 하하하!"

누가 봐도 멀쩡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해 보였다.

뭔가를 감추려고 필사적이었다. 이강진은 정색하면서 허인강을 압박했다.

"뭔지 말해. 분대장이 분대원 상태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 이젠 너도 알 거잖아."

결국 허인강은 방금 생겨 버린 자신의 흑역사를 실시간으로 공개해야만 했다.

"아까 멧돼지 때문에…… 찔끔했습니다."

"……작은 거?"

"예…… 그렇습니다……."

사람이 너무 큰 공포와 맞닥뜨리게 되면 가끔 지릴 때도 있는 법이다.

이강진은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이 안하다."

괜히 말해 보라고 했다.

* * *

이강진의 예상대로 수색 작전은 해가 떠오르는 아침까지 쭉 이어졌다.

쉽게 끝날 거 같지 않아 보였다.

오전 7시가 되었을 때, 2조 인원들이 신형 마을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이강진이 백우호에게 수고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래도 낮이 밤보다는 움직이기 쉬울 거다."

"그렇긴 한데……. 근데 인강이, 표정이 왜 저러냐? 무슨 일 있었 어?"

안색이 굉장히 안 좋아 보였다.

그러나 이강진은 적당히 둘러댔다.

"잠도 못 자고 고생해서 그런 거야. 신경 쓰지 마."

"하긴 그럴 수 있지."

더 이상 허인강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새벽에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부상자 없이 무사히 수 색 작전을 끝낼 수 있었다.

'탈영병까지 잡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건 2라운드로 미뤄야만 했다.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허인강은 전투복을 들고 세탁실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이강진 병장님, 저…… 잠깐 세탁기 좀 돌리고 오겠습니다."

"그, 그래. 알았어."

어색함이 묻어 나왔다.

허인강의 축 처진 뒷모습을 보니, 이강진은 괜히 미안함을 느꼈다.

'그냥 모른 척할 걸 그랬네.'

뒤늦게 후회를 해 봤자 무슨 소용이랴.

허인강이 슬픔과 수치심에 젖은 빨래를 하는 동안, 다른 병사 들은 씻고 잠을 청할 준비를 서둘렀다.

1분대 1조 멤버들 모두가 침대에 눕고 나서야 이강진도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취침 소등하겠습니다."

딸깍!

불이 꺼졌다. 그럼에도 내무반은 여전히 환했다.

대낮이라서 어쩔 수가 없었다.

잠도 쉽게 오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보면서 이강진은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 탈영병이 어디서 잡혔던 걸까?'

회귀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단서가 보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탈영한 이유가 뭐지?'

그 이유를 알면 좋을 텐데.

예전 일이 다시 되풀이 되어 벌어지니까 문득 그게 궁금해졌기억이 날듯말 듯했다.

'생각해 보자, 생각………'

최대한 머리를 굴려 보려고 했으나, 그러기에는 피로가 너무 많이 쌓여 있었다.

어느새 이강진의 눈이 감기고 말았다.

생각은 나중에.

지금은 잠이 먼저다.

* * *

밤새도록 추격대를 따돌리느라 몸이 녹초가 되어 버린 탈영 병, 권영직.

너무 지친 나머지 어느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잠에 취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꿈속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들.

-권영직 상병이랑 근무 서라고? 에이, 썅. 재수 옴 붙었네.

-저 새끼 얼굴 좀 안 봤으면 좋겠는데.

-야야, 권영직 왔다.

-뭔 낯으로 여길 왔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그 목소리들은 권영직을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던 권영직은 눈을 뜨자마자 거친 호흡을 내쉬었다.

"? …헉, 헉!"

온몸이 땀투성이었다.

손과 발이 부르르 떨렸다.

시야조차 흐릿했다.

억지로 손에 힘을 주면서 주먹을 말아 쥐었다.

"……개새끼들……!"

< 제81화. 탈영병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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