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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67화 (267/347)

< 제85화. 뒤바뀐 입장 (1) >

제85화 뒤바뀐 입장 (1)

정재원이 대대장을 상대로 한창 타로점을 봐 주고 있을 무렵.

이강진은 홀로 택시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처음에는 빗줄기가 그리 강하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굵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폭우 수준이었다.

'여름도 아니고, 비가 왜 이리 많이 온데 :

택시에서 내린 이강진은 서일주의 우산을 들고 곧장 전철역 으로 향했다.

개찰구를 통과해 시외버스 터미 널로 향하는 전철에 오르기 위해 줄을 섰다.

도중에 이강진의 시선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바로 전광판이 었다.

[소중한 내 피부를 지켜줄 파트너, 엘리오진.]

상품에 흥미가 생긴 건 아니었다.

이강진은 상품보다 홍보 모델로 나온 여인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지윤 씨, 이번에 광고 찍었구나.'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수줍게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은 여 신이라는 두 글자가 잘 어울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지나가던 사람들 몇몇도 이강진처럼 한지윤의 광고판에 시선을 빼앗겼다.

"한지윤 아니야?"

"이번에 엘리오진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다고 하더 니, 진짜네."

"와, 예쁜 거 봐."

한지윤의 아름다움 때문에 오히 려 홍보 상품이 눈에 잘 안 들어 왔다.

그래도 시선을 끈다는 효과 하나만큼은 탁월했다.

'집에 가는 길에 하나 사갈까.'

요즘은 군인들도 피부 관리하는 시대다. 오히려 군인들이 더 열심히 관리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1중대는 그 현상이 심했다.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성태강이었다.

성태강 덕분에 한때 피부 관리 열풍이 분 적이 있었다. 지금 은 어느 정도 사그라든 편이지만, 그래도 계속 맛을 들인 군인 들은 아직도 열심히 피부 관리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강진은 굳이 따지자면 안 하는 편이었다.

이유는 '귀찮아서'였다.

'지윤 씨가 광고하는 제품이 니까 무조건 사야겠네.'

오랜만에 피부 관리의 세계에 빠져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 * *

청주로 내려온 이강진은 하루 만에 다시 서울로 상경할 준비 를서둘러야 했다.

김원홍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자기가 청주로 내려가도 된다고 했으나, 이강진은 괜찮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이강진이야 휴가 나온 군인 신분이어서 어딜 돌아다녀도 상 관은 없지만, 김원홍이 청주로 내려오려면 가게를 하루 쉬어야 한다. 그것 때문에 일부러 이강진이 올라가겠다고 먼저 말을 한 것이다.

이번에도 운전대는 나두석이 잡게 되었다. 이강진이 없는 사 이에도 하도 서울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이제는 서울 가는 길 이 익숙했다.

"오늘은 차 많이 안 막힐 겁니다, 형 님. 평소에 이 시간대에 가 면 고속도로에 사고라도 나지 않는 이상 길이 항상 뻥 뚫려 있 더라고요. 그래서 서울 올라갈 일 있으면, 가급적이면 이때에만 올라갑니다."

"알아 둬야겠네."

굳이 사업상의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강진은 자주 서울을 찾아야 했다.

한지윤 때문이 었다.

이강진이 그녀와 친한 관계라는 건 나두석도 잘 알고 있다.

"형님, 그러고 보니까 이번에 지윤 씨, 광고하나 찍으셨던데. 보셨습니까?"

"지하철 광고 말하는 거지? 그건 봤어."

"아니요. 제가 말씀드린 건 TV 광고입 니다."

"그건 못 봤는데."

집으로 오자마자 정신없이 일하느라 TV 볼 시간이 없었다.

"어제 와이프하고 TV 보는데 지윤 씨가 맡은 광고가 짧게 지 나가더라고요. 진짜 대박이었습니다. 실검에 지윤 씨 이름도 뜨 고 난리 났던데요?"

그 정도면 광고주가 상당히 좋아할 것이다.

요즘 대세 여배우로 불리고 있으니, 더 많은 광고 제안들이 올 터.

"형님, 우리도 지윤 씨한테 미리 밑밥 깔아 두는 건 어떻습니까?"

"무슨 밑밥?"

"광고 모델 말입니다. 바라 코리아 전속 홍보 모델, 한지윤. 좋지 않습니까?"

"음……."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하나 지금 당장 이야기를 주고받을 필요는 없었다.

"2호점, 3호점 이 자리를 잡은 뒤에 생각해 보자."

미리 김칫국을 마셔 봤자 소용없다.

정식으로 계약서 들고 가서 이야기를 해야지, 밑밥만 깔아 두면 괜히 기대감만 키우는 꼴밖에 안 된다.

이강진은 한지윤을 상대로 그런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톨게이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는 뚫려 있었지만, 서울은 어느 시간대에 가도 차들이 항상 많다.

겨우 목적지에 도착한 두 남자.

오랜만에 찾아간 김원홍의 작은 카페는 이강진이 지난 휴가 때 봤던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원홍 씨! 저 왔습니다."

"대표님 오셨군요!"

김원홍은 이강진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자자! 여기 앉으세요."

김원홍의 안내를 받으며 자리를 이동했다.

손님은 여전히 없었다.

이강진은 가게 내부를 둘러보면서 김원홍에게 물었다.

"가게는 언제 빼기로 했나요?"

"이 번 달 말입니다."

"섭섭하시 겠군요."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끝이 있으면 새로운 시 작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잖아요?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준비하 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카페를 접은 뒤에 김원홍은 당분간 집에서 커피 연구를 하면 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그리고 내년 초.

서울에 새로 생길 바라식당 분점 옆에 김원홍의 카페를 오픈 하기로 결정했다.

바라식당에 와서 밥을 먹고, 배가 적당히 불렀다 싶을 때 김 원홍의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이강진은 이런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었다.

"카페 이름은 정했나요?"

"예, '티날레'라고 정할까 합니다."

이강진의 예상대로였다.

회귀하기 이전에도 김원홍은 자신의 커피 브랜드를 '티날레'라 고 지었다.

"에일 밀크티는 명칭 수정 없이 그대로 가실 거죠?"

"네, 대신, 맛은 이 대표님이 피드백 주신 대로 만들어 보려고 김원홍은 자신만의 고집이 강한 편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이 있다 싶으면 그것을 바로 받아들일 줄 아 는 태도를 지녔다.

"앞으로도 계속 맛보면서 원홍 씨한테 적극적으로 의견 들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목표는 이강진이 기억하는 에일 밀크티를 그대로 구현해 내 는 것.

만약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바라 코리아는 대한민국 카페 업계 1인자의 위치를 굳힐 수 있게 될 것이다.

구체적인 카페 사업 계획은 이미 이강진이 휴가를 나오기 전 에 다 마무리가 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번 만남에선 특별히 일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 않았다.

다시 청주로 내려온 이강진은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두석과 함께 바라 식당으로 향했다.

나온 김에 저녁이나 먹고 들어가자는 말이 나와서였다.

점원은 그들을 보자마자 예약석으로 안내했다.

원래 서빙 담당 직원이 여러 명 배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호만이 직접 음식을 들고 나왔다.

"주문하신 파전, 된장찌개, 게장 세트 나왔습니다."

"왜 형이 직접 서빙하는 거야?"

"너한테 줄 게 있어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는 오호만.

"자, 이거 받아라."

작은 봉투 하나를 이강진에게 건넸다.

이강진은 농담조로 물었다.

"뇌물은 아니지?"

"나보다 훨씬 더 잘 버는 동생한데 푼돈 줘서 뭐 하냐. 저번에 전화로 말했던 그거야."

"아!"

이강진이 부대에 있을 때, 오호만한테서 전화가 온 적이 있었조만간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너한테 직접 청첩장 주고 싶어서 너 휴가 나올 때까지 잔뜩 벼르고 있었지, 하하하!"

"청첩장 잘 나왔네. 근데 결혼식을 청주에서 하게?"

의외였다.

오호만과 그의 아내 될 여인, 둘 다 서울 줄신이다.

고향이 서울인데 굳이 청주에서 할 필요가 있을까.

"청주가 내 마음의 고향이나 다름없으니까 여기서 하려고. 그 리고 결혼한 형님들한테 이야기 들어 보니까, 직장 근처에서 식 장 잡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

결혼식을 앞두고 오호만은 여 러 사람들한테 조언을 구하러 다 녔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청주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주례는 누구한테 맡기려고? 요즘은 주례 없는 결혼식도 유 행이라고 하던데."

이강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두석이 불쑥 대화에 참가했다.

"제가주례 없이 결혼식 치렀습니다, 형님."

"생각해 보니까 너도 유부남이었구나."

워낙 동생처럼 느껴져서 그런지 가끔 나두석이 애까지 있는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깜빡할 때가 있었다.

셋 중에선 가장 나이가 어리지만, 부부 생활 경력으로 따지면 나두석이 큰형 님이다.

오호만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주례는 아는 분한테 부탁했어."

보통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 은사님에게 많이 부탁 하곤 한다.

그러나 오호만은 그쪽과 전혀 연이 없는 사람에게 주례를 부탁했다.

"우리 스승님한테 해 달라고 했지."

"민수 아저씨한테?"

"어."

이건 예상 못 했다.

"아저씨는? 한다고 했어?"

"처음엔 말 꺼낼 때마다 계속 거절하셨어. 난 죽어도 못 하겠 다고. 그런 거 해 본 적도 없고, 말도 조리 있게 못 한다고. 그래 서 내가 몇 날 며칠 동안 설득했지. 어차피 대본은 식장 측에서 줄 테니까 스승님은 그거 보고 읽기만 하시면 된다고 하면서 계 속 부탁했어. 결국 하시기로 했지."

"민수 아저씨가 주례라니……."

매번 후줄근한 차림만봐 와서 그럴까. 이강진은 상상이 잘 안 됐다.

애초에 양복을 입은 황민수의 모습 자체를 거의 본 적이 없었 다.

하나 오호만은 어떻게든 황민수에게 주례를 맡기고 싶었다.

"내게 제2의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신 스승님이시니까. 물론 강진이, 너도 마찬가지고."

이강진과황민수를 만난 것이 오호만에게 있어선 축복받은 일 이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인해 보잘 것 없었던 오호만의 인생길에 꽂 이 피기 시작했다.

이제는 행복이라는 이름의 이 꽂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아가고 싶었다.

"강진아, 청첩장 줬으니까 꼭 와라. 너 때문에 일부러 네가 휴가 나오는 날짜에 식장 예약했으니까."

"그렇게까지 말하면 무조건 가야지."

이번 휴가의 메인 이벤트가 결정되었다.

휴가 복귀일까지 이틀이 남은 상황에서 이강진은 설마 결혼 식에 참가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결혼하는 사람이 자신의 선임이라고 하니 감회가 새 로웠 다.

군인 머리에 양복을 갖춰 입으니 영 안 어울렸다.

그래도 이것 때문에 가발까지 쓰는 건 좀 오버라는 생각이 들 었다.

"그냥 가자."

1층으로 내려간 이강진은 어머니를 찾았다.

"엄마, 준비 다 끝났어요?"

"잠깐만 기다리렴. 한 10분 정도?"

"알았어요. 아직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천천히 하세요."

그동안 이강진은 행복이와 놀아주기로 했다.

자기도 데려가 달라는 것처럼 앞발로 이강진의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애교를 부리는 행복이의 모습이 한없이 귀여워 보였다.

"미안하지만 넌 못 데려가, 행복아. 얌전히 집 잘 지키고 있어."

행복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때 주머니 속에 넣어 둔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이름을 확인한 순간, 이강진은 오랜만에 접하는 선임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인혁이 형이잖아?"

< 제85화. 뒤바뀐 입장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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