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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70화 (270/347)

< 제86화. 맞선임을 보내다 (1) >

제86화. 맞선임을 보내다 (1)

오랜만에 다시 군복을 입게 된 서일주는 현재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2시…… 슬슬 출발하면 되겠네."

서일주는 멀리서 와야 하는 이강진과 다르게 집이 비교적 가 까이에 있는 편이었다. 전철을 타고 1시간 정도만 달리면 부대 인근 시내에 도착할 수 있다.

"강진이 녀석, 오늘 복귀할 거면 부대 들어갈 때 만나서 같이 갈 것이지, 왜 따로 들어가자고 그러지?"

심지어 일찍 들어가겠다고 했다.

"부대에서 갑자기 강진이 찾기라도 한 건가."

아직 분대장을 뗀 건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었다.

"나도 가 봐야겠네."

오늘이 마지막 부대 복귀다. 이제 들어갔다가 내일 나오면, 앞 으로 1075대대에 발을 붙일 일은 없을 것이다.

전역 하루 전.

뒤숭숭한 기분을 안고 서일주는 전투화를 신었다.

* * *

부대로 돌아오자마자 이강진은 분대원들을 소집했다.

"오늘 서일주 병장님 마지막 날인 거, 다들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이니까 전역 파티 성대하게 해 줘야지. 은석아, 가서 PX 문 열어 줄래?"

"예, 알겠습니다."

"우호야, 넌 오늘 당직사관님한테 가서 식당에 내려가서 전역 파티 할 수 있는지 물어봐 줘. 취사병들한테도 양해 구하고."

"오케이, 나한테 맡겨 둬."

서일주의 전역은 다른 선임들에 비해 특별하다.

왜냐하면 이강진이 보내야 하는 마지막 분과 선임이기 때문 이다.

각자에게 임무를 하달한 이강진은 후임들을 재촉했다.

"자, 모두 움직이자, 무브, 무브!"

군대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그리고 마지막 추억.

무슨 일을 하든 첫 시작과 마지막은 항상 기억에 남는다.

입대와 전역.

마지막 단추를 채우는 일이 괴롭지 않도록 1분대는 오늘 하 루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조은석과 함께 PX로 향한 이강진과 곽분섭.

PX병과 알고 지내면, PX가 열리지 않는 시간대에도 마음껏 PX 를 이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잠금장치를 푼 조은석이 두 선임을 PX 안으로 안내했다.

"불 바로 켜겠습니다."

PX 내부에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동시에 이강진은 곽분섭에게 말했다.

"분섭아, 바구니 챙겨라. 그리고 거기 있는 것들 보이지."

"어느 거 말씀하시는 겁니까?"

"바나나맛 과자하고 초코링 과자. 그리고 위에 감자칩. 저거 챙겨. 아이스크림은 피그바로 고르고."

맞선임과 맞후임 관계였기에 이강진은 서일주가 무엇을 좋아 하는지, 그의 취향이 뭔지를 다 꿰차고 있었다.

이강진도 바구니를 들고 서일주가 좋아할 만한 냉동식품들을 빠르게 추스르기 시작했다.

"은석아, 슈X치킨 없어?"

"거기 없습니까?"

"어, 다 나간 거 같은데?"

"알겠습니다. 바로 꺼내오겠습니다."

물건이 없다 싶으면 조은석에게 말하면 된다. 그러면 그가 알 아서 다 챙겨 줄 것이다.

평소 서일주가 즐겨먹던 것들을 싸그리 다 챙기는 데 성공한 1 분대원들.

이강진은 아이스크림만 따로 챙겨서 검은 봉지에 담았다.

아이스크림은 취사반에 있는 냉동고에 따로 보관해 두기로 했다.

"너희 둘은 막사로 올라가라. 나는 식당 들렀다가 갈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둘을 먼저 막사로 돌려보낸 뒤에 이강진은 혼자서 병사 식당 으로 향했다.

도중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던 1중대 취사병, 홍서 용 상병과 마주쳤다.

"충성!"

"충성. 서용아, 냉동고에 자리 있지? 아이스크림 미리 넣어 두 려고 하는데."

"오늘 서일주 병장님 전역 파티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저 한테 맡기시면 제가 넣고 오겠습니다."

"어, 내일 전역이라는 거, 너도 이미 알지?"

"백우호 병장이 아까 와서 저한테 말해 주고 갔습니다. 벌써 서일주 병장님도 전역하시다니…… 시간 참 빠른 거 같습니다."

원래 남의 시간은 빠르게 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강진도 자신이 전역할 때까지 남아 있을 거 같았던 서일주 가 바로 내일 전역한다고 하니까 아직도 믿기질 않았다.

"서일주 병장님이 전역하시면, 이제 이강진 병장님이 중대 왕 고 되시는 거 아닙니까?"

"아직 수송에 한 명 더 남았어. 근데 뭐, 사실상 왕고나 다름 없지."

간부를 제외하고 병사들 중에선 그 누구도 이강진에게 터치 할 수 없다.

이등병 시절 때를 생각한다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다.

"이강진 병장님은 언제 전역하십니까?"

"내년 1월 1일."

"서일주 병장님처럼 가능하시다면 이강진 병장님도 전역하실 때 식당으로 내려와서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잘 챙겨 드 리겠습니다."

1중대 후임들 중에서 이강진의 도움을 안 받아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홍서용도 이강진의 도움을 크게 한 번 받았었다.

이강진이 전역하기 전에 어떻게든 보답을 하고 싶었다.

"나중에 운상이하고 한 번 잘 상의해 봐. 전역 파티라는 게 원래 전역자가 직접 주최하는 건 아니잖아. 후임들이 챙겨 주는 거 지."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되면 기운상 상병하고 이야기 좀 나 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기대할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날이 어서 오기를 이강진은 간절히 바라기로 했다.

* * *

부대로 돌아오자마자 서일주는 귀를 의심할 만한 이야기를 들 었다.

"강진이가 벌써 왔습니까?"

금일 당직사관인 1부소대장이 그렇다고 답했다.

"너 오기 한참 전에 들어왔을 거다."

"부대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글쎄다."

부소대장은 일부러 말을 두루뭉술하게 끝냈다. 전역 파티 때 문에 이강진이 휴가 복귀를 일찍 했다는 말을 먼저 했다간 이들 의 서프라이즈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었다.

1분대와 부소대장 그리고 1중대원들은 서일주에게 전역 파티 를 안 해 주는 척 몰래 카메라를 하기로 했었다.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서일주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1생활관으로 복귀 했다.

생활관에는 백우호만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일주 형, 왔어?"

말년 휴가를 나가기 전부터 백우호는 서일주와 형, 동생이라 부르면서 서로 말을 놓기로 했다.

"어, 근데 다른 애들은 어디 갔냐? 왜 너 혼자야?"

"작업 때문에 바쁜 거 같더라고."

"아, 그래?"

서일주는 내일 있을 전역일만 기다리면서 편하게 쉬면 되지 만, 다른 병사들은 평소처럼 열심히 작업에 임해야만 했다.

"우호야, 나 내일 전역하잖아."

"어."

"뭐 없어?"

내심 전역 파티를 기대해 보는 서일주.

그러나 백우호는 모르는 척 연기를 보였다.

"선물이라도 줄까?"

"선물이 아니라…… 어휴, 됐다."

본인의 입으로 직접 전역 파티 좀 해 달라고 하는 것만큼 창 피한 일도 없을 것이다.

서일주는 결국 말하기를 포기했다.

잔뜩 삐친 그의 모습에 백우호는 피식 웃었다.

* * *

식사 집합이 진행된 동안에도 1분대는 서일주 앞에서 전역 파 티에 대한 걸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개인 정비 시간에 서일주한테 전역 파티를 할 거니 까 밥 조금만 먹으라고 귀띔이라도 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 런 말조차 일절 없었다.

서일주는 후임들의 이런 반응을 보면서 점점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이 녀석들, 내가 평소에 잘 못해줬다고 이런 식으로 나한테 복수하려는 건가?'

이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당직 완장을 찬 부소대장이 당직병에게 물었다.

"인원 체크 다 했나?"

"예, 이상 없습니다."

"그래? 그럼 1분대부터 식사하러 내려가라. 그리고 서일주."

갑자기 서일주의 이름을 호명하는 부소대장.

"병장 서일주."

"넌 잠깐 나 좀 보자."

"저 말씀이십니까?"

"그래, 너 내일 전역하잖아? 형이랑 같이 이야기나 좀 하다가 같이 밥 먹으러 내려가자."

서일주는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그사이에 1분대원들이 먼저 병사 식당으로 내려갔다.

미련 없이 걸음을 옮기는 후임들을 보면서 서일주는 미간을 찡그렸다.

등을 홱 돌리고서 부소대장과 함께 흡연실로 향했다.

한 눈에 봐도 기분이 별로인 것 같은 서일주의 표정은 부소대장을 의아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넌 내일 전역하는 녀석이 표정이 그게 뭐냐?"

"제가 군 생활을 잘못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후임 놈들이 저 일부러 괴롭히려고 그러는 건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왜, 뭔 일 있었어?"

한숨을 푹 내쉬는 서일주.

이내 그는 아쉬운 속내를 몰래 털어놓았다.

"저, 오늘 지나면 이제 부대에서 완전히 떠나는 거 아닙니까. 근데 애들은 제가 떠나는 게 오히려 속 시원한 일인가 봅니다. 전역했던 형들은 파티까지 해 주면서 꼬박꼬박 다 챙겨 줬는데, 전 그런 것도 없습니다."

아쉬울 만하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잠시 후에 큰 기쁨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부소대장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가 괜히 서일주만 따로 불러낸 게 아니다.

1분대원들이 병사 식당에서 서일주의 서프라이즈 전역 파티를 준비할 때까지 서일주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

이게 부소대장의 임무다.

하나 서일주가 이 내막을 알 리가 없었다. 섭섭해하는 게 당 연하다.

안 그래도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서일주로부터 30분가량의 시간을 빼앗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오히려 잘됐다.

'아쉬운 소리 들어주면서 시간 벌면 되겠네.'

금세 담배 한 대를 다 피운 서일주에게 부소대장이 하나를 더 내밀었다.

"피울래?"

"예, 오늘따라 담배 맛이 참 술 맛 같습니다."

"너무 많이 마시지…… 아니, 피우진 마라. 그러다가 취할라."

취하고 싶은 기분은 잠시 뒤로 미뤄 두는 게 좋다.

아직 서일주는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예정된 시간보다 10분 정도 오버하게 된 부소대장은 이쯤이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서일주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멀리서 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본 곽분섭이 빠르게 식당 안으 로 들어섰다.

"두 분 오십니 다!"

"오케이, 마무리하고 다들 준비해라!"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다들 테이블 아래, 혹은 벽 옆에 찰싹 붙어 몸을 숨겼다.

잠시 후 한 남자가 식당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누가 불을 꺼놨……"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사방에서 1분대원들이 튀어나오면서 미리 챙겨 둔 생 일 파티용 폭죽을 터트렸다.

"전역 축하합니다, 서일주 병장님!"

"일주 형, 축하해!"

분대원들은 남자의 정체를 뒤늦게 알아차렸다.

".…중대장님!"

"이게 대체 뭔가?"

중대장의 머리와 어깨에 폭죽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 다.

그의 뒤론 부소대장과 서일주가 벙찐 표정으로 중대장과 당 황해하는 1분대원들을 바라봤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서일주는 갑자기 폭소를 터뜨리기 시 작했다.

"하하하하하! 야, 이 녀석들아! 서프라이즈를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중대장님한테 하면 어쩌자는 거냐!"

"아…… 거의 다 성공한 거였는데."

"마지막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분해하는 1분대원들을 보면서 중대장은 머쓱한 표정으로 말 했다.

"내가 뭔가 크게 잘못한 거 같군, 크흠! 미안하다."

기껏 준비했던 서프라이즈가 예상치 못한 중대장의 등장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래도 서일주가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이강진과 1분대 원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 제86화. 맞선임을 보내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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