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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77화 (277/347)

< 제88화. 움직이는 마음 (2) >

제88화. 움직이는 마음 (2)

실로 오랜만에 주연이 아닌 단역으로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한지윤.

배우로 막 데뷔했을 당시에는 단역 출연이 당연했으나, 이제 는 반대가 되고 말았다. 단역 출연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시기가 오게 된 것이다.

데뷔하자마자 꽃길만 걷기 시작한 그녀.

혼자서 조용히 대본 리딩을 하고 있던 찰나에, 누군가가 그녀 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지윤 씨!"

"어머, 선배님!"

이번에 출연하는 드라마, '내 운명, 당신 운명'의 주연을 맡은 배우 경 력 7년 차 여성, 송희은.

그녀가 먼저 한지윤에게 아는 척을 했다.

"죄송해요, 선배님. 제가 먼저 인사드렸어야 했는데……."오늘 촬영에 송희은의 분량은 없었다. 그녀가 굳이 이곳에을 이유가 없었기에 대본 리딩에만 매진했었던 것이다.

"사과 안 해도 돼. 그보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

"괜찮은 거 같아요."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지?"

"네."

한지윤의 출연 분량은 많지 않았다. 오늘 촬영이 끝나면, 한 지윤이 이곳 현장에 올 일은 뒷풀이 때 아니면 없을 것이다.

송희은이 한지윤의 뒤로 돌아가더니, 그녀의 가녀린 어깨 위 에 손을 올렸다.

그러면서 갑자기 안마를 시작했다.

"서, 선배님……?"

"내가 요즘 안마 배우고 있거든. 한번 받아 보고 괜찮다 싶으면 말 좀해 줘."

"네…… 알았어요."

하늘 같은 선배에게 손 안마를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송희은이 갑자기 나지막이 말했다.

"나, 이번 드라마 끝나고 다음에 김 감독님하고 한 작품 하기 로 했거든."

"김 감독님이라면 어느 분 말씀하시는 건가요?"

"김수원 감독님. 어떤 분인지 너도 알고 있지?"

한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작업한 적은 없지만, 건너 건너 말은 많이 들었다.

"그 감독님이 나한테 몰래 이런 부탁을 하시더라고. 너 캐스팅하고 싶은데, 좀 도와 달라고."

"저를요?"

"응. 너, 드라마 PD님들하고 영화감독님들 사이에서 인기 많잖아. 이 언니한테 솔직히 말해 봐. 캐스팅 제의, 수도 없이 받고 있지?"

침묵은 동의의 한 수단이다.

송희은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아마 조만간 김 감독님한테서 연락이 올 거야. 근데 내가 이 런 말 했다고 부담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신이 좋아하는, 혹은 하고 싶은 작품을 직접 보고 고르는 건 배우로서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니까."

이래서 한지윤은 송희은이라는 선배를 좋아한다.

후배라고 막 대하는 법 없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그리고 자신 과 같은 배우로서 동등하게 대해 준다.

"고마워요, 선배님."

"천만에. 촬영 슬슬 시작할 거 같으니까 난 가 볼게."

"네. 안마해 주신 보답으로 나중에 제가 밥이라도 대접할게 요."

"기대할게, 호호호!"

자리를 뜨는 송희은.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지윤의 새로운 매니저, 이홍연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희은 씨가 뭐라고 했어?"

"조만간 캐스팅 연락이 올 거라고 미리 귀띔해 주셨어요."

"그거 반드시 받으래?"

"아니요. 그냥 단순히 알려만 주시고, 선택은 제 몫으로 남겨 두겠다고 하셨어요."

"그래? 나는 또 이상한 영업 하시는 줄 알고 긴장하면서 대기 하고 있었잖아. 여차하면 내가 끼어들어서 대화 막으려고 했었 는데."

한편으로는 한지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워낙 여기저기서 한지윤을 데려오고 싶어 하다 보니 이런 의 심을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희은 선배는 그런 분 아니에요."

한지윤이 신인이었을 때부터 좋은 조언들을 많이 해 준 고마운 선배다. 그녀에 관한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조연줄이 한지윤을 찾았다.

"지윤 씨, 촬영 시작할 거니까 준비해 주세요."

"네!"

대본을 내려놓은 뒤에 한지윤은 미 리 세 팅된 스튜디오로 향했다.

한지윤이 연기하는 작중의 캐릭터, 최예리가 휴가를 나온 군 인 남자 친구를 카페에서 만나는 장면을 촬영할 예정이었다.

상대 배우는 긴장한 모양인지 계속해서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복장을 확인했다.

"모자 방향이 이게 맞나……."

미필이었기에 군복을 어떻게 입어야 현역처럼 보일 수 있을 지 잘 모르는 듯했다.

한지윤이 그를 불렀다.

"지석아, 이쪽 봐 봐."

예전에 송희은이 그랬듯, 한지윤도 선배로서 곤란해하는 후배에게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밀어 주기로 했다.

"마크가 보이게끔 써야 해. 이게 정면이야."

"아, 그렇군요!"

"그리고 군번줄은 겉으로 보이지 않게 앞가리개로 가리고. 전 투복 상의 안쪽에 보면 팔랑거리는 천 하나 있지? 그걸 앞으로 펼치면 돼."

"이게 이런 용도였군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근데 선배님은 어떻게 이런 걸 다 아시나요?"

보통 여자들은 잘 모르는 것들이다.

군대를 다녀온 적이 없으니까.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 면 알기 힘든 점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 는 한지윤의 의외의 면모에 상대 배우는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옅은 미소를 띠던 한지윤은 이렇게 답했다.

"친한 지인이 알려 줬어."

그 지인의 정체는 이들 앞에선 비밀이다.

"카메라 롤! 레디, 액션!"

테이블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면서 남자 친구를 기다리는 여 인의 모습을 연기하는 한지윤.

제작진의 신호에 맞춰서 남자 친구 역을 맡게 된 윤지석이 군 복을 입고 그녀의 앞에 섰다.

"예리야!"

"어 머, 오빠!"

한지윤은 그를 보면서 활짝 웃었다.

병장 마크를 달고 있는 윤지석은 우쭐해하는 모습으로 말했다.

"이 오빠, 드디어 병장 달았다?"

"병장? 그게 뭐야?"

"병사들 중에서 가장 높은 계급. 이제 이 오빠 전역하기까지 얼마 안 남았어."

"진짜? 언제 전역해? 나, 오빠하고 같이 바다 보러 가고 싶은데연기를 하면서 문득 이강진의 모습이 윤지석에게 덧씌워졌다.

'그러고 보니 강진 씨도 전역이 얼마 안 남았지.' 연예계에 데뷔하기 전부터 이강진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이강진은 다른 지인들에 비해 특별한 존재로 느껴 졌다.

한지윤이 힘들어할 때라든지, 혹은 고민이 많을 때, 이강진은 늘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줬다.

그리고 때로는 좋은 해결책도 들려줬다.

시간이 갈수록 한지윤은 이강진에 대해 특정 지을 수 없는 감 정을 느끼곤 했다.

그 감정이 지금, 드라마 촬영으로 인해 다시 한번 스멀스멀 기 어 올라왔다.

"컷!"

PD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한지윤의 연기를 칭찬했다.

"지윤 씨, 오늘 컨디션 좋은가 봐요. 연기인지 아니면 진짜로 군인인 남자 친구를 두고 있는 여인인지 헷갈릴 정도였어요."

"그, 그래요? 감사합니다, PD님."

"오늘 이 기세 끝까지 가지고 가 봅시다! 파이 팅!"

과도한 PD의 응원에 한지윤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사실 한지윤은 오늘 힘내야겠다는 것보다 다른 생각이 먼저 앞섰다.

'강진 씨는 지금쯤 청주로 내려가고 있겠지?'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이강진은 청주로 내려가기 전에 나두석, 오호만과 함께 강남 역 근처에서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자리에 앉은 이강진은 뻘쭘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혼자만 군복 입고 있으니까 뭔가 굉장히 싫은 기분이 드는데."

한 명은 신의 아들(면제), 한 명은 군필자.

유일하게 이강진만 현역이었다.

심지어 가게 내에서도 군복을 입은 이는 이강진 말고 찾아볼 수 없었다.

군대를 갔다 온 남자들은 이강진을 측은지심으로 보곤 했다.

키득키득 웃던 오호만이 그런 이강진을 위로했다.

"신분은 군인이어도 우리들 중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이 너잖 아."

돈 많은 건 확실히 자랑거리다.

하지만 군대에선 돈이 의미가 없다. 돈으로 휴가를 살 수도 없 는 노릇이고 말이다.

"그냥 빨리 전역이나 했으면 좋겠어."

몇 달 안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이 더 시간이 안 가는 것 처럼 느껴졌다.

가끔 '국방부 시계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긴 한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들이 각자 주문한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

숟가락을 들고 식사를 하려던 순간.

"아, 잊을 뻔했네요."

나두석이 들고 온 가방을 찾았다.

지퍼를 열고 가방 안쪽으로 손을 뻗고서 뭔가를 찾아 헤맸다.

"여기 있었네요. 형님, 받으세요."

이강진이 휴가를 나올 때마다 사용하는 스마트폰이었다.

"형님 드리려고 일부러 챙겨 왔습니다."

센스 있는 나두석의 마음 씀씀이 덕분에 이강진은 휴가를 나 오자마자 바로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충전까지 다 되어 있었다.

전원을 켜는 와중에 나두석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형님. 아까 가게에서 형님 만나자마자 바로 드 렸어야 했는데."

"괜찮아. 챙겨 온 것만 해도 어디야. 고맙다."

스마트폰에 불이 들어왔다.

동시에 문자가 왔다는 알림이 떴다.

이강진은 부대에 가 있는 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메시지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나 보낸 이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대충 넘길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지윤 씨한테서 왔네?'

35분 전에 보낸 문자였다.

내용은 심플했다.

[강진 씨, 휴가 나오셨나요? 문자 확인하시 면 저한테 연락 부탁드릴게요.]

사업과 더불어서 이강진이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한지윤에 관련된 일이다.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이강진은 둘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잠깐만 전화 한 통화만 하고 올게. 먼저 먹고 있어."

중요한 이야기가 오고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자리 를 뜬것이다.

나오자마자 한지윤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꽤 길게 이어졌다.

잠시 후.

-여보세요.

한지윤의 것이 아닌 낯선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혹시 한지윤 씨 좀 바꿔 주실 수 있나요?"

-혹시 누구신가요?

"이강진이라고 합니다."

사무적이었던 여성의 목소리 톤이 갑자기 밝아졌다.

-어머,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롭게 지윤이 매니저가 된 이홍연이라고 해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호호호!

"매니저셨군요. 반갑습니다."

-잠시만요. 방금 막 지윤이 촬영 끝나서…… 지금 바꿔 드릴게 요.

스마트폰 너머로 한지윤을 부르는 이홍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전 매니저에 비해서 뭔가 경쾌하고 발랄한 그런 느낌이었 다.

짧은 기다림 끝에 드디어 한지윤과 연결되었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지윤 씨. 연락 기다리겠다는 문자 보고 전화 드 렸습니다. 무슨 급한 일이 라도 있으신가요?"

혹여나 그녀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나 걱정되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별일 아니었다.

-그냥…… 강진 씨 목소리가 듣고 싶어져서요.

순간 이강진은 뭐라고 반응하면 좋을지 깊은 고민에 싸였다. 방금 들은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간접 고백?

'아니, 그건 너무 갔어.'

고개를 강하게 가로저었다.

일단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아 보였다.

목소리만 듣는 것보다 얼굴까지 보는 게 더 좋을 테니 말이

"지윤 씨, 촬영 언제 끝나나요? 제가 지윤 씨 보러 가겠습니다."

-이미 청주로 내려가신 거 아닌가요?

"아니요. 아직 서울에 있습니다. 일이 좀 남았었거든요."

가게 공사 현황을 보러 온 게 의도치 않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

< 제88화. 움직이는 마음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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