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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79화 (279/347)

< 제89화. 실제 상황 (1) >

제89화 실제 상황 (1)

부대에서 온 갑작스러운 호출.

휴가 복귀 명령에 이강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

반면 아무것도 모르는 라인혁은 이강진이 왜 저런 반응을 보 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야, 강진아, 왜 그래?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리라도 들었 냐?"

"거의 그 정도급이라고 봐도 될 거 같아. 형, 티비 설치되어 있 지? 리모컨 어디 있어?"

"여기 있는데……."

리모컨을 낚아채다시피 한 이강진은 곧장 티비를 틀었다. 그러곤 채널을 돌려 뉴스를 확인했다.

-가수 김 모 씨의 마약 혐의를 두고 검찰이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이거 말고!"

다른 뉴스 채널로 화면을 돌렸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부동산 가격의 변동이 심해져…….

이강진이 원하는 뉴스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채널을 돌려 봤지만, 갑자기 부대에서 상황이 걸릴 만큼 급한 뉴스 특보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쉬쉬하고 있는 건가? 언론 매체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아니면 기사로 내보내기 위해 자료를 정리 중일 수도 있다. 한숨을 내쉬면서 리모컨을 내려놓은 이강진.

그의 수상한 행동에 라인혁은 다시금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인마."

"휴가자들 지금 다 부대로 복귀하래."

"엥? 진짜?"

"……어."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회귀 이전에도 휴가를 나갔다가 갑자 기 복귀 명령을 받았던 적은 없었다.

'생각해 보니까 실제 상황이 걸린 적이 말년에 한 번 있긴 했었지.'

회귀하기 이전에는 그때 휴가를 나가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 런 일을 겪어 보지 못했었다.

해프닝으로 끝나긴 할 테지만, 그래도 휴가 도중에 다시 부대 로 복귀해야 하는 입장이 되니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라인혁은 그런 이강진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걱정하지 마라. 진짜로 전쟁 터지거나 그러진 않을 테니까. 나 이등병 때였나? 실제 상황 걸려서 자다가 막 사이렌 울리고 그랬었는데. 그때도 그냥 아무 일 없이 무난하게 넘어갔어.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그래도 휴가 나갔다가 강제로 복귀한 적은 없었지?"

"뭐…… 그렇지."

위로해 주려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부대로 복귀하라고 하니까 안 할 수도 없고.

이강진은 어쩔 수 없이 라인헉에게 양해를 구해야만 했다.

"미안해, 형. 오늘 밥 같이 못 먹겠네."

"밥이 문제냐. 아무튼 조심해서 잘 들어가."

라인혁이 지금 해 줄 수 있는 건 이강진의 축 처진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뿐이었다.

* * *

시외버스 터미 널에서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이강진은 일 순간 충동에 휩싸였다.

'소주라도 한 병 마시고 들어갈까?'

갑자기 술이 땡겼다.

낮술 하다가 연락받았다고 대충 핑계를 대면 그만이지 않은 가.

'아니, 됐다.'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병나발을 분다고 해도 복귀 명령이 해제되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한편, 시외버스 터미널 내에 배치되어 있는 대형 티비에서 드 디어 북한의 수상한 움직임의 정체가 드러났다.

북한에서 갑자기 동해 쪽에 방사포를 세 발 발사했다는 소식 이 긴급 속보로 전해지고 있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된 지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미사일 발사도 큰 문제지만, 전방에서 현재 북한 측의 포문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소식 또한 심각했다.

'난리 났네, 난리 났어.'

이강진의 표정이 잔뜩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유일하게 웃는 이들이 있었다.

오른쪽에 서 있던 두 명의 군복을 입은 남자들이 갑자기 키득 거리기 시작했다.

"와, 씨발. 어떻게 우리 전역하자마자 바로 저런 일이 터지냐?"

"그러게. 전역일이 내일이었다면 개끔찍했겠다."

"후임 놈들은 지금쯤 좆뺑이 치고 있겠네, 크크큭!"

저들처럼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 이강진은 그런 신세가 아니었다.

뉴스를 보던 이강진은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저들을 보 고 있자니 괜히 속이 쓰렸기 때문이다.

마침 버스에 오를 시간이 되었다.

시외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들 중에서 이강진처럼 군복을 입은 남자가 자그마치 다섯이나 있었다.

이들은 서로의 신세가 어떤지 눈빛만 마주쳐도 바로 알아차 릴 수 있었다.

당신도? 나도!

참 암울한 신세다.

부대로 돌아오니 난리도 아니었다.

가장 먼저 이강진의 시야에 들어온 건 병사들의 초췌한 몰골 이었다.

백우호가 긴 한숨을 내쉬면서 이강진의 복귀를 반겼다.

"어서 와라, 강진아. 너도 진짜 운 지지리도 없다. 하필 휴가 나갔을 때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까."

"그러게 말이다. 내 평생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회귀 이전에 겪었던 군 생활까지 통틀어서 강제 휴가 복귀는 첫 체험이었다.

그리 달갑지 않았다.

"상황이 어떤데?"

"말도 마라. 새벽에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일어나서 계속 대기 중이야. 오대기는 한 다섯 번 출동했나, 그럴걸."

"이번 주 오대기가 누구였는데?"

"……나."

어쩐지 다른 병사들에 비해 백우호가 유독 피곤해 보이더 니, 다 이런 속사정이 있었다.

대화 도중에 하품을 늘어지게 하던 백우호는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 씨! 몰라! 너도 왔으니까 난 이제 잠이나 자야겠다. 운상아, 오대기 비상 걸리 면 나 깨워라."

"예, 알겠습니다."

굳이 피곤한 사람을 데리고 계속 이것저것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나머지는 기운상에게 직접 듣기로 했다.

"뉴스에 나온 것 말고 다른 건 워 없었어?"

"아직까진 없는 거 같습니다. 추가로 미사일을 더 발사할 수 도 있다는 말이 들리긴 했는데, 여태 잠잠합니다."

"그럼 다행이네. 너도 피곤해 보이는데, 눈 좀 붙여 둬. 나머지 는 내가 알아서 할 테 니까."

이강진이 생활관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피곤함에 찌든 후임들에게 쉴 것을 권유하던 이강진은 자신 도 모르게 달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달력을 보자마자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원래는 다음 주에 복귀했어야 했는데

북한의 도발이 이강진의 휴가 계획을 다 망쳐 버렸다.

* * *

휴가를 나갔다가 다시 강제로 복귀하게 된 사람은 이강진만 이 아니었다.

휴가 출발일이 같았던 김철도 이강진과 같은 신세였다.

부소대장이 위로랍시고 준 커피캔을 가지고 야외 휴게실로 향 한 이강진.

때마침 무거운 발걸음으로 막사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김철 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철아!"

"하아, 강진아. 넌 먼저 와 있었구나."

"오기 싫었는데, 억지로 왔지."

그건 눈앞에 있는 김철도 같은 마음이었다.

"집에서 출발하는데 우리 부모님이 엄청 난리셔서 시간이 좀 걸렸어."

"무슨 난리?"

"지금 부대 들어가면 전쟁 난다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 사지 로 보낼 수 없다고 하시면서 나 부대 못 들어가게 막으시더라 고."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 입장에선 덜컥 겁을 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중한 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신경을 안 쓸 수가 있을까.

이강진도 불안해하는 어머 니를 겨우 진정시키고 부대로 왔다.

이들이 현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는 하나밖에 없 다.

몸 건강히, 무사히 전역하는 것.

때마침 밖으로 나온 행보관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이강진 과 김철 쪽으로 다가왔다.

"철이 복귀했냐."

"충성 예, 이제 막 복귀했습니다. 행정반으로 가서 복귀 신고 하려고 했었는데, 중간에 강진이 만나서 잠깐 이야기 좀 하다가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오히려 휴가 즐겁게 잘 보내고 있는 너희들 강제 로 부른 내가 미안하지."

행보관은 병사들의 입장을 잘 헤아려 주는 사람이었다. 그렇 다 보니 이들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도 대충 알고 있었다.

"상황 걸린 거 해제되면 너희들 곧장 다시 휴가 나갈 수 있도 록 조치를 취해 줄 테니까, 힘들더라도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라."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하나 궁금한 게 있었다.

"병장 이강진, 질문 있습니다."

"해 봐라."

"행군 때문에 상황 해제되어도 바로 휴가 못 나가지 않습니 까?"

"아, 그거? 그러고 보니 너흰 복귀하느라 못 들었겠구나."

행보관이 이들에게 직접 희소식을 들려줬다.

"그거, 비상 걸린 거 때문에 짬처리 하기로 했다."

갑자기 부대로 복귀하게 된 건 최악의 경우였지만, 행군이 짬 처리 된 건 다행이었다.

가뜩이나 억울한 와중에 행군까지 받게 된다면 그 억울함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들한테 쉽게 전쟁 안 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 고 안부 전화 한 통씩 넣어 드리고."

"예, 알겠습니다."

할 말을 모두 마친 행보관은 김철과 함께 행정반으로 향했다.

이강진은 남은 커피를 마저 다 마시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진혜야……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마. 오빠 별일 없으니까……."어디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3분대에 속해 있는 서광수 상병이 여자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금세 눈시울이 붉어진 서광수. 그는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고 있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서광수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으 로 공중전화 박스에서 나왔다.

저렇게까지 심각한 모습을 보이는 후임을 못 본 척할 순 없었다.

"야, 서광수."

"사, 상병 서광수! 이강진 병장님, 휴가 중이셨던 거 아니었습 니까?"

"복귀하라고 해서 왔다. 그나저나 표정이 왜 그러냐? 어디 큰 일 터진 사람처럼. 설마 진짜로 전쟁 날까 봐 그러는 건 아니겠 지?"

말을 아끼는 것만 봐도 이강진의 추즉이 맞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불안해하는 게 당연하다.

하나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이강진이 회귀 트럭에 치이기 전까진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건 확실하다.

물론 이강진이 예상치 못한 미래의 일들이 간혹 발생하긴 하 지만, 스케일이 큰 사건은 벌어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강진이 안심할 수 있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전쟁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일어나진 않아. 그러니까 걱정 안해도 돼."

"정말입니까?"

"그래, 내가 장담할게. 대신……."

이것보다 더 걱정되는 게 있었다.

'조만간 상급 부대에서 검열이 시도 때도 없이 오겠지.' 다른 것보다 이게 가장 큰 걱정거리다.

* * *

상황이 걸린 것 때문에 퇴근도 못 하고 영내에서 24시간 대기 하게 된 중대장은 저녁점호 때 급하게 병사들을 소집했다.

"다들 주목!"

개인 정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전투복을 입은 채 저녁점호를 받아야만 했다.

이유는 중대장이 영내 대기 신세가 된 것과 같았다.

중대장은 병사들에게 추가로 중대한 사항을 전달했다.

"연대장님께서 예고 없이 불시에 순찰을 나오실 수 있다고 한다."

병사들 입장에선 북한 도발보다 이게 더 안 좋은 소식이었다.

"너희들이 평상시에 탄약고 근무 설 때 총 내려놓거나 더 나 아가 방탄모까지 벗은 채로 근무 선다는 건 나도 다 알고 있다. 하나 이것만은 명심해라. 총을 내려놓든 방탄모를 벗든 다 좋다. 하지만 대대장님이나 연대장님, 사단장님한테만큼은 걸리지 않 게 해라."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곳이 군대다.

반대로 들키면 끝장인 곳도 군대다.

"평소에 잘해도 단 한 번의 실수로 훅 갈 수 있다는 걸 명심해라. 알겠나!"

"예!"

"그리고 이강진, 김철, 백우호."

갑자기 세 동기를 호명하는 중대장.

"집합 끝나고 행정반으로 따라오도록."

"……?"

무슨 일로 이들을 부르는 걸까?

이강진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 제89화. 실제 상황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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