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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88화 (288/347)

< 제92화. 협력 (1) >

제92화. 협력 (1)

드디어 이강진이 그토록 기다리던 휴가일이 찾아왔다.

같은 날에 휴가를 출발하는 사람은 같은 분과의 후임, 성태강 말고는 없었다.

휴가를 떠나는 당일 아침.

이강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성태강에게 물었다.

"오늘 너, 휴가 나간다는 거 팬들이 모르지?"

"예, 철저하게 비밀로 해 뒀습니다."

"그래, 잘했다."

아직도 성태강과 같이 나갔던 첫 휴가가 트라우마로 자리 잡혀 있었다.

그 수많은 소녀 팬들의 장벽을 뚫고 간신히 성태강의 매니저 차에 올라탔었던 경험을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성태강이 말한 대로 위병소는 평소처럼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다른 점은 하나 있다.

연예인들이 타고 다닐 법한 검정색 밴 한 대가 위병소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바로 옆에서 KGE2I 매니저인 죄창우가 담배를 피우면서 스마 트폰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창우 형!"

성태강의 부름에 최창우가 곧장 고개를 돌렸다.

"태강아! 강진 씨도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세요, 창우 씨."

이강진과 같이 휴가를 나올 거란 연락은 미리 성태강에게 받아 알고 있었다.

성태강과 휴가를 나오면 택시를 타고 시내까지 나갈 필요가 없다. 항상 최창우가 이런 식으로 바래다주기 때문이다.

이 점은 참 좋다.

가끔씩 어떻게 성태강의 휴가를 알아낸 팬들이 위병소로 몰 려올 때를 제외하면, 오히려 성태강과 같이 휴가를 출발하면 편 한 점이 많다.

오늘처럼 말이다.

차에 오른 이강진과 성태강.

바닥과 의자에 물건들이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었다.

반짝이는 의상도 보였다.

최창우가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이강진에게 양해를 부탁했다.

"어제 새벽까지 애들 행사 뛰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부산 행사여서 서올 올라오니까 새벽 3시더라고요. 청소할 시간도 없이 바로 뻗어 버렸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아 주세요."

"불편이라니요. 아닙니다. 차 얻어 타고 가는 입장인데, 오히 려 감사할 따름이죠."

불만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차를 타고 가면서 이강진은 최근 KGE 활동에 관한 것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는 리더인 성태강 없이도 멤버들끼리 잘 뭉친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럴 때마다 성태강은 눈시울을 붉혔다.

맏형으로서 동생들에게 많이 미안할 것이다. 이강진도 그 마 음은 얼추 알 것 같았다.

지금 성태강이 남은 멤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네가 몸 건강히 무사히 전역하는 게 멤버들에게는 최고의 선 물일 거야."

"예, 알고 있습니다."

상병쯤 되면 이제 웬만한 건 다 알 때다.

힘 있게 고개를 끄덕이는 성태강.

이강진은 그런 그의 등을 토닥여 줬다.

* * *

시내에서 내린 이강진은 전철을 타고 서울로 향했다.

평소 같았으면 시외버스터미 널에서 내렸겠지만, 오늘은 다른 약속이 있어서 그보다 더 나중에 전철에서 내려야만 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서울 공기를 마시며 약속 장소인 신림역 3번 출구로 향했다.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부쩍 붐비고 있었다.

'뭔 행사라도 하나?'

심지어 사람들은 뭔가에 쫓기듯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향 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거진 다 비슷했다.

'이상하네.'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따라갈 순 없었다.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과의 약속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강진!"

큰 목소리로 이강진의 이름을 부르는 한 남자. 이용진이 그를 반겼다.

"뭐야! 이제 견장 없네?"

"얼마 전에 후임한테 분대장 인수인계해줬어."

한때는 외출, 외박, 휴가를 나갈 때 초록 견장을 달고 나가는 것이 멋의 상징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나 지금은 달랐다.

멋의 상징이 아니라 족쇄였다.

이제는 그 족쇄를 풀어 버렸으니, 어깨가 얼마나 가벼운지 날 아갈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이용진은 그런 이강진을 보면서 짙은 미소를 지었다.

"네가 전역할 때가 다 되긴 했나 보구나. 어때, 전역하고 나면 우리 프로그램에 얼굴 한번 비치는 거. 와서 시청률 좀 올려 주 고 가."

"됐어. 난 방송 체질 아니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강진과 같이 작업했던 스태프들은 카 메라 앞에서 보여 준 그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엄지를 여러 차례 추켜올렸었다.

이용진도 마찬가지였다.

"너, 긴장 안 하고 말 잘하더만. 일반인한테 카메라 앞에서 말 해 보라고 하면, 보통은 너처럼 능수능란하게 말 못 해. 내가 딱 보니까 넌 방송인 체질이야."

그냥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것이 많이 익숙해져서 그런 것 뿐이었다.

이용진은 이강진을 어떻게든 방송인의 길로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강진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해야 할 일도 많은데, 방송 쪽에 시간 투자할 여력 없어. 형 도 알잖아, 내년에 바라 식당 2호점, 3호점 오픈하는 거."

"그리고 원홍 씨랑 같이 티날레라는 카페도 오픈할 거라며?"

"잘 아네."

이강진이 바쁘다는 건 그의 지인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이용진도 알고는 있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강진에게 방송 쪽으로 넘어 오라고 설득하는 건, 그만큼 이강진이 계속 탐이 났기 때문이었 다.

하나 이강진은 그 부분에 대해선 완강하게 거절 의사를 드러 냈다.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사업부터 안정화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이강진은 대역을 세우기로 했다.

"우리 바라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서 부주방장으로 일한 다고 했던 사람, 형도 기억하지?"

"어, 오호만 씨였나?"

"그 형한테 얼마 전에 방송 출연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었거든. 오케이 했어."

"오, 진짜?"

말머리를 자연스럽게 오호만 쪽으로 돌렸다.

안 그래도 이용진이 일하고 있는 팀이 조만간 새로운 콘셉트 의 요리 예능 방송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스타들이 나와서 직접 식당을 운영한다는 그런 콘셉트로 꾸 며질 예정이다.

때마침 스타들에게 요리를 알려 줄 스승 역할을 할 사람이 절 실히 필요한 시점이었다.

"말도 잘하고. 카메라 앞에서도 긴장 안 할 형이니까 괜찮을 거야."

"나와 주신다면야 난 무조건 땡큐지! 안 그래도 방송 출연해줄 셰프님 찾아다니는 게 하늘에 별 따기처럼 느껴졌는데. 늘 고 맙다, 강진아."

"천만에."

이용진은 프로그램 퀄리티를 높일 수 있게 되어서 좋고.

이강진은 오호만을 통해 바라 식당을 홍보할 수 있어서 좋다. 서로에게 득이 되는 거래라고 생각했다.

"아, 그렇지. 잊고 있었네."

가방 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는 이용진.

"내가 특별히 너한테만 알려 주는 건데, 우리 프로그램 출연 할 분들 명단이야."

"캐스팅 끝났어?"

"어제 저녁에 최종 확정됐다. 원래 이런 건 보여 주면 안 되는 건데, 너한테만 특별히 미리 보여 주는 거야. 다른 곳에 가서 막 소문내고 다니면 안 된다?"

"당연하지."

말은 그렇게 해도 이용진은 이강진이 어디 가서 나불대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안다.

명단을 쭉 훑던 이강진의 소감은 한마디로도 충분했다.

"돈 많이 썼네."

"그렇지? 우리 PD님이 이번에 국장님한테 지원사격 제대로 받고 있거든. 제작비 걱정은 없을 거 같다."

하나같이 다 S급들 연예인들뿐이었다.

출연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연예인들은 총 여섯 명.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연예인이 한 명 있었다.

[한지윤]

'지윤 씨도 출연하기로 했구나.' 명단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이강진을 보면서 이용진이 슬쩍 물었다.

"누가 제일 신경 쓰이냐?"

이강진은 곧장 대답했다.

"지윤 씨."

"지윤 씨 캐스팅하느라 엄청 힘들었어. 요즘 영화며 드라마며 엄청 바쁘게 활동하시잖아. 근데 과연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와 줄까 하고 걱정했었는데, 다행히도 이야기가 잘 풀렸지 뭐냐, 하 하하!"

의외로 한지윤은 예능도 잘 소화해 낸다.

실제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마다 자신의 역할과 몫, 그 리고 비중까지 확실하게 챙기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 줬다.

요즘은 한동안 예능 프로그램은 나오지 않았던 한지윤. 그녀로선 오랜만에 예능에 도전하는 거였다.

'지윤 씨가 만들어 주는 요리라…… 어떤 맛일까?'

무슨 맛을 지니고 있든 상관없다.

이강진은 꼭 그 요리를 맛보고 싶었다.

* * *

이용진과 미팅을 마친 뒤에 이강진은 청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도착하고 보니 저녁 먹을 때가 다 되었다.

이강진은 바로 옷을 갈아입고 바라 식당으로 향했다.

'가기 전에 인혁이 형한테 연락이나 한번 해 볼까?'

지난번에 휴가를 나왔을 때, 이강진은 라인혁과함께 저녁 식 사를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갑자기 부대에서 강제 복귀 명령이 떨어지는 바람에 이강진은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취소해야만 했다.

그게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라인혁은 이강진의 전화를 바로 받았다.

시간 되면 와서 밥이나 같이 먹자고 제안을 했다. 라인혁은 바로 알았다고 대답했다.

30분 후.

바라 식당에 먼저 도착해서 라인혁을 기다리고 있던 이강진 은 번쩍 손을 들었다.

"형, 여기!"

라인혁이 겉옷을 벗으면서 이강진에게 다가왔다.

"미안하다, 강진아. 생각보다차가 많이 막히더라. 지방이라고 얕보면 안 되겠어."

"여기도 출퇴근 시간은 항상 막혀. 그래서 나도 일부러 그 시 간대 피해서 차 끌고 다니고 있지."

"나도 앞으로 그래야겠다. 그보다음식은 시켰어?"

"아직."

라인혁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바라 코리아에서 매장 관리 일을 하고 있는 라인혁.

사실 그는 바라 식당에서 파는 웬만한 음식들은 거의 다 먹어 봤다.

그럼에도 그는 또다시 이곳에 왔다.

먹어도 먹어도, 바라 식당의 음식은 항상 맛있다.

"어디 보자. 이번에는…… 부대찌개 먹어 볼까?"

"좋지. 형진아! 여기 부대찌개 2인으로!"

서빙 직원이 이강진의 주문에 목소리를 높이며 '네!'라고 대답 했다.

어느새 이강진은 바라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형, 오빠, 동생 등 친근한 호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다 아는 사람들이다 보니 주문하는 것도 편했다.

라인헉은 지난번, 이강진이 강제 휴가 복귀하던 날을 떠올리 면서 물었다.

"부대 분위기는 어땠어?"

"처음에만 바짝 얼어붙었지, 나중에 가선 그냥 평상시 모습대로였어. 새벽에 갑자기 사단장 와서 부대가 뒤집어지긴 했지만."

"사단장이? 새벽에?"

"어."

"와, 씨발……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네."

전역한 지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인혁은 마치 자신의 일 인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강진이 넌 군 생활이 뭐 그리도 파란만장하냐? 자서전 하나 써도 되겠다, 야."

사실 자서전이 아니라 판타지 소설을 써야 한다.

회귀한 시점부터 이미 현실과 동떨어진 일이 벌어진 셈이었으니까.

그래서 이강진은 자신의 군 생활 이야기가 판타지 쪽이 더 어 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테이블 위에 음식들이 세팅되었다.

서빙 직원이 라인혁에게 툭 던지듯 물었다.

"오늘은 술 안 하시 나요?"

"차 끌고 오긴 했는데그냥 대리 맡길까? 강진이, 넌 어때? 한잔할래?"

이강진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좀지."

술만큼 회포를 풀기 좋은 음료도 드물 것이다.

< 제92화. 협 력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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