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2화. 협력 (3) >
제92화. 협 력 (3)
이용진, 그리고 갑자기 합류하게 된 지왕과 함께 회의실에 들어선 이들.
본격적인 미팅이 시작되기에 앞서, 지왕이 이강진에게 묻고 싶었던 것을 슬쩍 꺼냈다.
"태강이 형 잘 지내고 있나요?"
KGE로 데뷔해서 같이 울고 웃으며 동고동락했던 친한 형이 군대라는 낯선 곳으로 끌려가게 되었으니, 걱정이 많을 것이다.
이강진은 그의 걱정을 덜어 주기로 했다.
"네, 아주 잘 지내는 중입니다. 태강이는 자대에 입대한 첫날 부터 문제없이 잘 적응했어요."
"태강이 형은 노력파니까요. 주어진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하 려고 노력하는 버릇이 있어서 배울 점이 많은 형이에요. 예능에 처음으로 나가게 되었을 때에도 출연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프 로그램의 이전 회차를 싹 다 모니터링해 왔더라고요. 그때 진짜 대단한 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죠."
노력하는 톱스타. 이것만큼 성태강에게 어울리는 타이틀 또 한 없을 것이다.
"태강이 형한테 면회 한번 갈까 생각했는데, 자꾸 오지 말라 고 하더라고요. 왜인지 모르겠어요."
면회 정도는 갈 수 있지 않을까?
왜 오지 말라는지 지왕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강진은 얼추 알 거 같았다.
"지왕 씨가 움직이면, 기자나 팬들이 면회 가는지 알게 될 테 니까요. 그러면 사람들이 분명 부대로 몰려들 겁니다. 예전에 태 강이 휴가 출발하는 날짜가 외부에 한번 퍼진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팬들이 엄청 몰려왔는데…… 장난 아니었습니다."
성태강은 1075대대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동 료 연예인들이 면회 온다는 것도 거절하고 있었다.
면회를 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일까, 지왕의 얼굴 표정에서 아쉬움이 가득 느껴졌다.
이 러나저 러나 결국 답은 하나뿐이다.
전역.
그것은 모든 군인들의 목표이기도 했다.
"태강이 형이 어서 빨리 전역하기만을 기다려야겠네요."
그렇다고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성태강의 군 문제가 해결되면, 다음은 지왕의 군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중간에 오호만이 지왕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왕 씨는 입대 언제 하시나요?"
마침 이강진이 궁금해하던 거였다.
지왕은 멋쩍은 듯 웃었다.
"사실 전…… 면제예요."
나두석에 이어 신의 아들이 또 등장했다.
미팅을 마친 후에 이강진은 예정대로 오호만의 차를 타고 부대로 향했다.
이동하면서 오호만은 지왕에게 들었던 말을 다시 언급했다.
"잘생긴 데다 인기도 많고, 돈도 잘 벌고, 심지어 군대까지 면 제라니… … 세상은 참 불공평한 거 같다. 그치?"
이강진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다른 건 그렇다 치 더라도, 군대 면제는 솔직히 말해서 아주 많 이 부러웠다.
면제받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닌데, 이강진의 주변에 신의 아 들만 두 명이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이강진도 면제를 받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니, 다시 과거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혜택인데, 이 이상 욕심은 부리지 말자.'
자신의 처지를 남과 비교하면 불행해지기만 할 뿐이다.
불행은 늘 상대적인 것. 누군가와 비교할 필요는 없다. 인생 은 자신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법이니까.
1075대대 병사들이 휴가나 외박, 외출을 나오면 항상 들르는 시내에 도착했다.
시간을 확인한 오호만이 왼쪽에 있는 치킨집을 가리켰다.
"맨손으로 찾아가긴 좀 그러니까 애들 먹으라고 닭이라도 사 갈까? 시간 괜찮아?"
"복귀하려면 아직 3시간이나 남았으니까, 충분할 거 같은데?"
"그럼 들렀다가 가자."
오랜만에 부대로 가는데, 아무것도 없이 몸만 불쑥 찾아가면 좀 그렇지 않은가.
오호만과 함께 치킨집으로 들어가 부대원들 전원이 먹을 만 한 양의 치킨을 주문했다.
덕분에 가게 사장은 아주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가게 일찍 문 닫아도 되겠구만! 허허허!"
"대신 잘 좀 튀겨 주세요, 사장님."
"걱정 말어! 우리가 근처 치킨집 가게 중에서 넘버원이 니까!"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가게 사장.
이곳 치킨 맛은 오호만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강진아, 행보관님 이 매번 전역자들한테 치 킨 사 주고 그러셨 잖아. 주문하던 가게가 여기야. 몰랐지?"
"알아. 당직 서면서 몇 번 먹어 봤으니까. 심지어 내가 주문한 적도 있는걸."
"그래……? 쳇."
아는 척을 하려고 했었으나, 이강진에겐 씨알도 안 먹혔다.
태왕치 킨.
1075대대 1중대 병사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법한 가 게다.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그동안 이강진은 부대에 전 화를 해 보기로 했다.
행보관에게 연락해서 치킨 들고 가겠다고 미리 보고를 해두는 게 좋을 거 같아서였다.
외부 음식 반입은 안 된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행보관이라면 쉬쉬하고 잘 넘어갈 것이다.
"호만이 형, 스마트폰 좀 빌려줄 수 있어?"
오늘이 부대 복귀하는 날이어서 스마트폰을 따로 챙겨 오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빌려 부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귀에 익은 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통신보안. 상병 성태강입니다.
비록 이강진과 휴가 출발일은 같았지만, 복귀일은 하루 ?빨랐 던 성태강.
그가 오늘의 당직 병이었다.
"어, 태강아, 난데."
오늘 당직을 맡은 성태강에게 대신 말을 전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행보관의 확인을 맡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져와도 괜찮다고 합니다. 근데 양이 많습니까?
"어. 한 5~6명 정도 내려보내 줬으면 좋겠는데. 부대 도착하기 10분 전에 연락 줄 테니까 맞춰서 보내 줘."
-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강진 병장님.
갑자기 성태강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스파링 한 권 사 오시면 안 되겠습니 까?
"벌써 다음 달 거 나왔대?"
-예, 그렇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스파링 발매일은 꿰차고 있는 병사들.
이강진은 웃음을 흘렸다.
"하하, 그래, 알았다. 사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있어."
-감사합니다!
스파링은 군인들에게 있어서 생명수(?)와 같은 존재였다.
통화를 마친 이강진은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태강이도 군인 다 됐네.'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아니면 정치계 유망주의 아들이든. 입대하면 다 똑같은 군인이 된다.
"형, 나, 잠깐서점좀 들렀다가 올게."
"스파링 사러 가냐?"
"어."
척하면 척이다.
가게를 나선 이강진은 매번 신세를 지던 서점으로 향했다. 이렇게 스파링을 사러 가는 길이면 항상 그 남자가 떠오른다.
'가서 또 라원이 만나는 건 아니겠지?'
스파링을 두고 매번 이강진과 경쟁을 펼쳤던 원라원.
요즘은 서로 휴가일이 겹치지 않아서 연락을 도통 못 하고 있었다.
어쩌면 서점에 가서 만날 수도 있다. 이들은 스파링이라는 운명의 끈…… 아니, 운명의 잡지로 이어져 있으니까.
서점에 들어선 이강진은 곧장 스파링이 진열되어 있는 잡지 코너로 향했다.
성태강이 말했던 대로 다음 달 호가 벌써 깔려 있었다.
'라원이가 안 보이네.'
잡지를 들고 계산대로 간 이강진.
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점원에게 이런 질문을 꺼냈다.
"혹시 저 말고 이 잡지를 사 간 군인이 있나요?"
"오늘 한 명 있었어요. 10분 전에 한 권 사 가셨는데, 손님하고 계급이 같은 분이었어요."
"그렇군요."
그 사람이 원라원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오늘은 그냥 엇갈렸겠거 니 하고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어차피 전역한 후에 또다시 만날 테니까, 아쉬워할 필요는 없부대에 도착하자마자 이강진은 미리 나와 있는 병사들을 불 렀 다.
"양 많으니까, 와서 가져가라."
"예!"
이들의 얼굴은 여느 때와 다르게 상당히 밝았다.
치킨을 먹을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1 중대에서 내려보낸 일, 이등병들을 보면서 오호만은 본의 아니게 씁쓸함을 느꼈다.
"후임급들 중에서 내가 아는 애들은 한 명도 없네."
"다들 상병장으로 진급했거나 아니면 전역했거나, 둘 중에 하나니까. 일단 같이 올라가자, 형."
"그래."
대대 연병장을 가로질러 1중대 사열대로 향하는 이들.
몇몇 병사들은 사열대로 나와 이강진과 오호만이 오기만을 목 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호만이 형!"
"와, 형! 이게 얼마 만이야?"
"살 좀 붙은 거 같은데? 결혼해서 그런가?"
이제야 오호만이 아는 얼굴들이 등장했다.
각 생활관별로 치킨을 나눠 준 뒤, 오호만은 이강진과 함께 행 보관이 기다리고 있는 행정반으로 향했다.
오호만은 행보관을 보자마자 뜬금없이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충! 성!"
"전역한 녀석이 왜 나한테 거수경례를 하냐. 일단 와서 이거 나 마셔라."
마실 것을 내오는 행보관.
오호만은 향을 맡자마자 이게 뭔지 바로 알아맞혔다.
"칡차군요."
"역시 요리사는 다르긴 다르구나. 얼마 전에 뒷산에 올라갔다 가 큼지막한 칡 하나 캐 왔지. 아주 달고 맛있더라. 네 입맛에도 맞을 거다."
"하하하, 잘 마시겠습니다!"
행보관이 끓여 주는 칡차를 마시는 건 전역 이후 처음이었다.
오호만이 행보관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강진은 성태강을 따로 불렀다.
"자, 이거."
성태강이 부탁했던 스파링 잡지였다.
그의 얼굴이 화색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이강진 병장님!"
"그리고 오늘, 지왕 씨 만나고 왔다."
놀란 토끼눈이 된 성태강.
그의 말이 빨라졌다.
"정말입니까? 어쩌다가 지왕이를 만난 겁니까?"
그간의 일을 쭉 풀어서 설명하기에는 너무 오래 걸릴 거 같았최대한 짧게 죽약해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주 간단하게 만설명해줬다.
"지왕 씨가 너 잘 지내냐고 많이 걱정하더라. 나중에 전화라 도한 통해 줘."
"알겠습니다. 소식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강진 병장님."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당직 힘내고."
"예!"
막내 멤버의 근황을 들고 복귀한 이강진.
마치 자신이 파랑새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강진은 오호만을 배웅해 주기 위해 다시 위병소를 찾았다.
차에 시동을 건 오호만이 창문을 내리면서 이강진에게 큰 목 소리로 물었다.
"다음 휴가는 언제냐?"
"3주 뒤!"
"그게 말년 휴가였나?"
"아니, 말년 휴가 전에 나가는 거야."
"나오면 술이나 한잔하자, 인혁이하고 셋이서 같이. 콜?"
"콜! 조심해서 들어가, 형."
"오냐!"
오호만을 먼저 보낸 뒤에 이강진은 다시 1중대 막사로 향했 다.
생활관에는 아직도 치킨 냄새가 한가득이었다.
"어휴, 냄새. 환기 좀 해라, 이 녀석들아."
"네, 알겠습니다!"
후임들은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이강진의 말은 잘 따랐다.
창문을 열자 겨울의 냉기가 생활관 안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추워도 어쩔 수 없다. 환기는 꼭 필요하니까.
군복을 벗고 활동복으로 환복한 이 강진은 그대로 매트리스 위 에 누웠다.
오래간만에 조용히 티비나 볼까 하는 생각에서 리모컨을 찾 으려 했다.
그 순간, 최영고가 이강진에게 다가왔다.
"저기…… 이강진 병장님, 혹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상담드릴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기운상은 어디 가고 이강진에게 상담을 요청해 오는지 의아 했다.
그래도 후임을 못 본 척할 순 없었기에 이강진은 알았다고 답 했다.
최영고가 꺼낸 첫마디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사실 저…… 이번에 부사관 지원할까 생각 중입니다."
< 제92화. 협력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