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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01화 (301/347)

< 제97화. 최종 관문 (2) >

제97화. 최종 관문 (2)

혹한기까지 이제 1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유격과 더불어 1 년마다 찾아오는 훈련 중 대규모에 속하다 보 니 병사와 간부 들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준비하기 힘든 훈련인데,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소 식이 전해졌다.

혹한기 훈련 도중에 눈이 올지도 모른다는 일기예보가 있었 이것 때문에 혹한기 훈련 준비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원래 훈련을 받을 때보다 훈련 준비를 할 때가 더 힘들다.

눈이 온다는 소식 때문에 훈련 준비 난이도가 배로 상승했다.

심지어 혹한기 훈련에 눈만 오는 게 아니었다.

오전 집합. 드물게도 중대장이 직접 병사들 앞에 등장했다.

"전체 주목한다, 주목!"

"주목!"

중대장이 이렇게 오전 집합에 참가할 때마다 병사들은 바짝 긴장하곤 한다.

뭔가 중요한 사항이 생겼을 때에 늘 나오는 패턴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혹한기 훈련 때 사단장님이 오실 수도 있으니 그렇게 알아 둬라."

병사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연대장이 온다고 해도 난리가 나는데 사단장이라니!

눈에 이은 사단장 방문 소식에 병사들은 몰래 한숨을 삼켰다.

올해 들어서 유독 1075대대는 사단장을 많이 만나는 것 같았사단장이 온다는데, 중대장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훈련 준비, 확실하게 하도록 해라. 특히 행군할 때 괜히 '가라 군장' 싸매다가 사단장님 앞에서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 녀석 은 즉시 영창 보낼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해 두는 게 좋을 거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방금 중대장이 한 말은 말년 병장들을 겨냥한 경고였다.

특히 혹한기가 끝나고 전역할 병장들이 요주 인물들이다.

집합이 끝나자마자 백우호는 짧은 머리를 벅벅 긁적이면서 난 감함을 드러냈다.

"아이, 썅 박스까지 다 준비해 뒀는데, 망했네."

백우호는 처음부터 가라군장을 준비해 둘 생각이었다.

말년에 혹한기 뛰는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완전군장까지 둘 러멜 생각을 하니까 그 억울함이 한계치를 훌쩍 뛰어넘을 것 같 았다.

가라군장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백우호는 그렇게 스스로와 타협을 했지만, 중대장의 경고가 그 타협을 무산시켜 버렸다.

이강진도 아깝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지, 뭐. 영창 갈 바에야 그냥 이번 한 번만 눈 딱 감 고 고생하는 게 낫지."

사실 이강진도 이 번만큼은 가라군장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나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완전군장을 택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놈의 군대는 마지막까지 날 엿 먹이는구나!'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는 곳이 바로 이곳, 군대다.

* * *

사단장이 올 거라는 소식에 훈련 준비는 더욱 빡세졌다.

행보관의 판단에 따라 병사들이 각기 어느 작업에 배치될지 정해졌다.

대충 다 정해졌다 싶을 무렵.

"말년 셋!"

"병장 이강진."

"병장 백우호."

"병장 김철."

갑자기 행보관에게 지명을 당한 말년 3인방. 동시에 불안감이 몰려왔다.

행보관이 말년 병장에게 그동안 고생했으니 너희는 훈련 준비 할 필요 없고 생활관에서 푹 쉬고 있으라고 말할 리가 없다.

뭔가 따로 일거리를 주기 위해서 불렀을 터.

"철이는 오늘 병기계 업무 좀 도와라. 구현이가 휴가 가서 지 금 사람 숫자 부족하니까 어디 짱박힐 생각 말고."

"예, 알고 있습니다."

김철은 행보관이 이런 말을 할 줄 알았던 모양인지 곧장 대답 했다.

남은 건 이강진과 백우호. 둘뿐이었다.

"1 분대 말년들은 나하고 같이 시내 좀 다녀와야겠다. 보니까 사야 할 물건이 산더미더라. 나 혼자 짐 다 옮길 순 없으니까, 젊 은 너희가 와서 짐꾼 역할이나 해라."

군대는 보여 주기식이다.

사단장이 오는데, 다 떨어진 갑바천 같은 걸 보여 줄 수 없지 않겠나.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거, 행보과는 낡고 해진 것들을 다 버 리고 새로운 것들로 싸그리 다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 일에 이강진과 백우호도 동참하게 되었다.

PX에 가서 짱박힐 계획을 짜고 있던 두 사람은 행보관 몰래 한숨을 삼켜야만 했다.

아까 중대장이 와서 했던 말도 그렇고.

오늘은 영 안 풀리는 날이다.

오랜만에 행보관의 차에 탄 이강진, 백우호 콤비.

이렇게 타니 백우호는 옛 생각이 절로 났다.

"우리 자대 전입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행보관님 차 타고 목 욕탕 갔던 거 기억하지?"

"뭉로"

그때 이강진은 한지윤을 처음 봤다.

당시의 순간이 이강진의 머릿속에 아직도 맴돌았다.

운명적인 첫 만남.

처음에는 회귀했더 니 입대 전날이어서 절망했지만, 그래도 입 대를 결심한 덕분에 한지윤과 지금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강진이 마음만 먹으면 군대를 한참 뒤로 미룰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맞을 매인 이상, 차라리 미리 갔다 오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곧장 입대를 결심했다.

그 결심이 이강진에게 커다란 복을 가져다줬다.

'지윤 씨뿐만 아니라 호만이 형, 인혁이 형도 만났고.'

얼마 전에는 원라원의 아버지, 원도문도 만났다.

군대가 가져다준 인연의 끈이 이강진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계속 군대에 남아 있고 싶진 않았다.

행보관이 두 사람에게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너희는 부사관 지원 안 하냐? 한다면 내가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데."

둘은 고민조차 하지 않은 채 바로 답했다.

"죄송합니다!"

"전 군대 체질이 아닌 거 같습니다!"

부사관은 애초에 생각조차 안 했다.

계속해서 이들을 꼬셔 보려고 했던 행보관이었지만, 의사가 너무 확고한 탓에 더 이상은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전역 하나만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그것을 걷어차 버 린다는 건 이강진의 입장에선 말이 안 된다.

무조건 전역한다.

지구가 멸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전역하고 사회에서 멸망의 순 간을 맞이할 것이다.

그 정도로 전역을 향한 이강진의 갈망은 뜨거웠다.

* * *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은 곧장 철물점으로 향했다.

철물점 주인은 행보관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로 그를 반겼다.

"또 왔구먼 요즘 많이 바쁜가 봐?"

"혹한기가 코앞이라 그려."

혹한기라는 말을 듣자마자 철물점 주인은 곧장 행보관을 안 내했다. 무슨 물건을 찾으러 왔는지 바로 알아들은 덕분이었다.

그동안 이강진은 백우호와 함께 입구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이들의 시선은 티비로 향했다.

강렬한 비트와 함께 형형색색의 자막들이 두 사람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지상 최대의 힙합 오디션! '체크 인 아웃!' 대한민국 대세 래 퍼가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아!allenge!]

체크 인 아웃. 이강진도 잘 아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향후 대한민국 힙합 오디션의 대표 격이 될 프로그램이다.

본선에서 얼굴을 조금만 비쳐도 금방 유명세를 탈 정도로 굉 장히 핫한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치열한 경쟁을 펼칠 지원자들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이어졌다.

힙합이라고 하면 백우호를 빼놓을 수가 없다.

"너, 오디션에 지원한다고 하지 않았어?"

"어, 안 그래도 저기에 지원할 생각이야."

"체크 인 아웃?"

"응, 되든 안 되든 일단 한번 부딪쳐 보려고."

도전이 있어야 성공도 있는 법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을 해야 성공을 거머 쥘 자격을 가지게 된다.

백우호는 최근에 그것을 깨달았다.

"사실 고민을 많이 하긴 했는데, 그냥 한번 질러 보려고. 까짓 것 좆같은 군대도 갔다가 곧 전역할 텐데, 설마 거기 오디션 프 로그램이 군대보다 더할까. 군대 한번 겪어 보니까웬만한 건 다 해낼 수 있을 거 같더라."

군대가 지닌 극소수의 장점 중 하나.

바로 자신감을 심어 준다는 것이다.

여태껏 자신감 없이 살아오던 사람도 군대를 경험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이강진도 한때는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백우호가 지금 어떤 기분일지 그도 어느 정도 공감했다.

"그래, 그런 마음가짐이면 돼."

군대에서 얻은 자신감은 백우호에게 당분간 크나큰 용기를 줄 것이다.

행보관이 두 사람을 부르기 전에 이강진은 백우호에게 기운을 불어넣어 줬다.

"가서 군필자의 힘을 보여 줘."

"물론이지! 내가 다 씹어 먹어 버릴게!"

백우호의 눈빛에 의욕이라는 불꽂이 활활 타올랐다.

혹한기가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커다란 훈련을 앞두고 보내는 마지막 주말.

병사들은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았다.

바로 다음 주, 4박 5일 동안 이 추운 날씨 속에서 바들바들 떨어야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토요일 저녁.

허인강이 1생활관 문 근처에 접혀 있는 박스들을 발견했다.

"곽분섭 일병님, 이 박스들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아, 그거? 이강진 병장님하고 백우호 병장님이 가라군장 만 들려고 하다가 사단장님 오실 거 같다고 해서 그냥 포기하고 버 리시려는 것들일걸. 백우호 병장님, 맞지 말입니다?"

누워서 티비에 나오는 걸 그룹 공연을 보고 있던 백우호가고 개를 끄덕였다.

"엉. 딱 안성맞춤인 박스들로만 구해 온 건데, 씨발 써먹지도 못하고 버리게 생겼지, 에잉."

허인강이 박스들을 가리켰다.

"저, 분리수거장 가려고 하는데, 가는 김에 제가 이것도 버리 고오겠습니다."

"아니, 괜찮아. 나중에 강진이하고 같이 버리러 갈 거야. 말만 으로도 고맙다."

착한 후임들을 둔 덕분에 백우호는 마음이 훈훈해졌다.

10분 정도 지났을 때, 다시 한번 생활관의 문이 열렸다. 전화를 마치고 돌아온 이강진이 백우호를 찾았다.

"우호야, 박스 버리러 가자."

"하…… 그래."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어찌하랴. 쓸모가 없는 박스를 계속 생활관에 놔두고 있을 필요도 없고 말이다.

오히 려 간부들 눈에 띄면 바로 치우라고 잔소리를 들을 것이다.

굳이 잔소리를 사서 들을 필요는 없다. 시간이 날 때 미리미 리 치워 두는 편이 좋다.

분리수거장으로 향하는 이들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터벅터벅.

늦은 저녁이라 그런지 가로등 불빛이 없으면 분리수거장 가 는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후딱 버리고 가자."

"그래."

박스를 던지려고 하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이강진이 동작을 멈췄다.

"왜 그래?"

백우호의 물음에 이강진이 조용히 해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조금씩 들리는 말소리.

이강진은 누군가가 근처에 있음을 직감했다.

외부인?

아니다. 많이 들어 본 목소리였다.

"소대장님, 여기 담배 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오늘 당직사관인 소대장과 오대기로 인해 막사에서 머물게 된 1 부소대장이었다.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소리가 이어졌다.

잠시 뒤.

부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대장님의 아이디어가 참 좋은 거 같지 않습니까? 병사들 바짝 긴장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사단장님이 오실 거다.'라는 거 짓 정보를 흘리실 줄이야. 솔직히 저, 중대장님이 이거 다 연극 이라고 말씀하시기 전까진 진짜로 혹한기 훈련 때 사단장님 오 시는 줄로 알고 바짝 쫄았습니다, 하하!"

"저도 부소대장님처럼 속을 뻔했었습니다. 우리 중대장님, 날 이 갈수록 연기력이 느시는 거 같아서 큰일입니다."

"덕분에 병사들도 완전히 속지 않았습니까?"

"긴장하고 있는 티가 역력했습니다. 확실히 좋은 방법 같습니다."

숨겨진 진실과 마주하게 된 이강진과 백우호.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들고 있던 박스를 다시 고 이 챙겼다.

< 제97화. 최종 관문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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