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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02화 (302/347)

< 제97화. 최종 관문 (3) >

제97화. 최종 관문 (3)

담배를 다 피운 모양인지 부소대장이 소대장에게 들어갈 것을 제안했다.

"날씨도 추우니, 이제 슬슬 막사로 들어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나서야 이강진과 백우호는 입을 열었다.

가장 먼저 말을 꺼낸 쪽은 백우호였다.

"야, 강진아, 방금 부소대장님하고 소대장님이 한 말…… 들었냐?"

"어, 사단장님이 오신다는 거, 다 뻥이라고 했지."

"하! 이거 봐라? 아니, 대대장님도 진짜 너무하시네! 아무리 그 래도 그렇지, 병사들을 속일 생각을 하다니!"

오지도 않을 사단장을 들먹이면서 병사들에게 긴장감을 유지 하도록 거짓 정보를 흘렸다.

속았다는 사실에 백우호는 열이 차올랐다.

물론 그건 이강진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된 이상, 이들도 거기에 상응하는 행동으로 되받아쳐 주고 싶었다.

"우호야, 박스 버리지 마라. 이번 행군은 무조건 가라군장이 다!"

"당연하지!"

까딱했다가 말년에 정말로 완전군장을 둘러메고 혹한기 행군 에 임할 뻔했다.

* * *

일요일 아침.

원래 말년 병장쯤 되면 종교 행사는 대부분 불참한다.

백우호와 김철은 이 대부분의 범주에 속했다.

하나 이강진은 아니었다.

부대에 있는 동안, 이강진은 꾸준히 교회를 나간다는 성실한 이미지를 목사에게 심어 주고 싶었다.

미래의 장인어른이 되실 분이었기에 미리 좋은 이미지를 쌓 아 두고 싶었다.

이강진의 이런 노력이 통한 걸까.

종교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목사는 첫 열에 앉은 이강진을 보 면서 환하게 미소를 보였다.

"곧 전역한다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굉장히 성실하게 교회에 나오는군."

"이제 전역하면 목사님의 말씀을 못 듣게 되지 않습니까? 그 게 아쉬워서 계속 나오게 되는 거 같습니다."

"허허,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아닙니다. 목사님이 해 주신 말씀은 언제나 저에게 많은 도 움이 되었습니다. 힘든 군 생활을 이겨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어 주신 분인데, 말년이라고 어떻게 생활관에만 처박혀 있겠 습니까? 저는 그렇게 시간을 낭비할 바에야 차라리 이곳에 나와서 목사님 말씀에…… 아니, 하느님 말씀에 좀 더 귀를 기울이 고 싶습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어쩜 이리도 사랑스럽고 대견할 수가 있을 까.

목사는 흐뭇한 미소로 이강진을 바라봤다.

"그래, 전역하고 나서도 항상 하느님의 은혜, 잊지 말도록 하 고. 물론 나하고 내 딸도 잊으면 안 되네."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아멘!"

사랑에 충성하는 남자, 이강진.

신앙심을 가장한 그의 충성심은 오늘도 한 단계 상승했다.

* * *

혹한기를 앞둔 마지막 주말 저녁.

기운상이 분대원들에게 이런 지시를 했다.

"내일 화스트페이스 걸리면 한동안 정신없을 테니까 미리미 리 준비해 둬라. 특히 완전군장은 미리 싸 둬. 나중에 완전군장꾸릴 시간 따로 안 주니까."

"예!"

훈련 전날은 쉬어도 쉬는 날이 아니다.

내일 있을 훈련을 위해서 사전에 준비를 해 둬야 훈련 당일이 편해진다.

이강진도 일찌감치 군장을 준비해 두기로 했다.

그는 완전군장에 들어갈 군용품들이 아닌, 종이 박스를 꺼냈 다.

그것을 바로 곁에서 목격한 최영고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강진 병장님, 이번에 사단장님 오신다는데…… 괜찮으신 겁니까?"

걸리는 즉시 말년 휴가가 취소되고 바로 영창행이다.

그게 무서워서 이강진과 백우호는 가라군장을 포기하고 완전 군장을 선택했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준비하는 건 가라군장이었다.

이강진이 씨익 웃었다.

그러더니 입구에 있던 조은석에게 말했다.

"은석아, 문 좀 닫아 줄래? 소리 안 새어 나가게 꽉 닫아."

"이병 조은석! 예, 알겠습니다!"

갑자기 왜?

이런 의문이 들었지만, 선임이 시키는 일이니 일단 하고 보기 로 했다.

혹시 몰라서 생활관 문을 잠그기까지 했다.

철두철미한 보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들 모여 봐라."

이강진의 집합 명령에 분대원들은 하던 일을 잠시 중단하고 그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이거,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해라.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나하고 우호가 어제 박스 버리러 갔다가 무슨 이야기를 들었 는데, 그게 말이지……."

이강진은 1 분대원들에게만 대대장의 거짓말을 공유하기로 마음먹었다.

소대장과 1부소대장이 나눴던 대화 내용을 이강진을 통해 그 제야 알게 된 1분대원들.

속았다는 분노보다는 허탈감이 먼저 밀려왔다.

기운상이 혹시 몰라서 이강진에게 확인차 다시 물었다.

"그게 정말입 니까?"

"어, 나만 들은 게 아니라 우호도 같이 들었어. 그치, 우호야?"

자신의 턴이 도I자, 백우호는 격렬하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 였다.

장난기 많은 백우호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강진은 1분대원들을 상대로 이렇게 큰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더더욱 믿음이 갔다.

사단장이 안 온다는 걸 알아도 훈련 내용 자체가 바뀌는 건 없다.

달라지는 건 그저 마음가짐뿐.

"사단장님 안 오신다니까 혹한기 훈련 받을 때 마음 편히 가 져라. 너무 과도하게 긴장할 필요 없어."

이강진은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긴장감과 압박감에 짓눌려기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후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 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1분대원들에게 어제 들었던 정보를 공유해 준 것이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분대원들.

군장을 꾸리는 이들의 손놀림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대신, 이건 있었다.

"그렇다고 너희들도 우리처럼 가라군장 싸면 안 된다. 짬 안 되 면 완전군장 해."

"하하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가라군장은 말년 병장의 특권이다.

아직 저들에게는 한참 먼 미래의 일이다.

* * *

병사들이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혹한기 훈련 1일 차의 아침 이 밝았다.

훈련 시작 시간은 오전 9시부터. 그 전까지 병사들은 평소처럼 아침점호를 받고 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막사로 올라오고 나서부터는 화스트페이스에 대한 대비를 갖 춰야 했다.

기운상이 마지막으로 분대원들의 군장 상태와복장을 직접 점 검 했다.

허인강이 차고 있던 단독군장을 살피던 기운상의 표정이 심 상치 않게 변했다.

"너, 수통에 물 채웠어?"

"이, 이병 허인강! 죄송합니다! 바로 받아 오겠습니다!"

기운상은 맞선임인 조은석에게 시선을 돌렸다.

"야, 조은석, 넌 맞선임이면서 후임 수통 상태도 확인 안 했 어!"

"죄, 죄송합니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라. 혹한기 훈련이라고, 혹한기 훈련! 내년에는 너희가 후임들 데리고 훈련 뛰어야 한다고! 어리버리 타면 너희만 손해야! 하나라도 더 배울 생각으로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알겠냐!"

"예! 알겠습니다!"

평소의 기운상과 다르게 오늘은 날이 바짝 선 모습이었다.

후임들에게는 괴로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평상시처럼 후임들하고 장난치 면서 훈련을 받다가 긴장이 풀려서 사고라도 벌어지면 큰일이다.

그것 때문에 착하고 천사 같던 선임들조차도 훈련 시즌만 되 면 방금 기운상이 보여 준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

이강진도 분대장 노릇을 할 때에는 그랬다.

그렇다고 후임들이 이강진과 기운상을 싫어한 건 아니다.

이들도 두 사람이 왜 훈련 때에만 예민하게 행동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에 크게 담아 두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이강진이 물통을 채우고 오려는 허인강에게 조언을 들려줬다.

"물 가득 채우지 마. 무겁기만 할 뿐이니까. 한 3분의 2 정도 만 채워도 충분할 거다."

"이 병 허인강. 감사합니다!"

그간 짬으로 다져 온 노하우들만 이렇게 후임들에게 하나하 나씩 흘리면 된다. 이강진이 이번 훈련 때 해야 할 일은 이것만 으로도 충분했다.

오전 9시 정각.

막사 내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현 시간부로 화스트페이스, 화스트페이스.

"화스트페이스!"

"총기부터 받아 와! 어서!"

"바로 목진지로 달려갈 사람들은 행정반 가서 총기 챙기고 점 령 보고부터 해!"

"개인 물품은 다 의류대에 짱박아라! 저번 중대, 대대 ATT 때 처럼 대대장님이 오셔서 직접 생활관 검사할 수도 있으니까!"

예나 지금이나 상황이 걸리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강진은 막내인 허인강과 함께 목진지로 바로 투입될 예정 이었다.

진지 점령은 우선으로 실행해야 할 사항 중 하나다.

이강진은 곧장 허인강을 챙겼다.

"인강아! 총부터 챙겨라!"

"예, 알겠습니다!"

행정반에서 각자 자신의 총기를 챙긴 두 사람.

빠르게 막사를 벗어난 뒤에 바로 산행길에 올랐다. 며칠 전에 눈이 와서 그런지 오르막길이 꽤 미끄러웠다. 이강진도 몇 번 발을 헛디딜 뻔했다.

"조심해라, 인강아. 천천히 올라와."

"그래도 점령 보고를 빨리 해야……."

"훈련보다 안전이 최우선이야. 진지 점령 보고 신기록 세운다 고 나중에 회사 지원할 때 이력으로 쳐주지도 않는다고. 군대는 무조건 잘할 필요 없어. 중간만 가도 돼."

오히려 남들에 비해 뛰어나면 고생만 더 한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군대는 참 희한한 곳이다.

이들이 점령해야 할 진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총기부터 거치한 이강진은 유선 키를 들고서 행정반을 찾았

"광기대, 광기대, 여기를 지강산이라 알리고 진지 점령 끝났 다는 통보. 수신 양호한지."

-수신 양호.

키를 내려놓자마자 이강진은 넓적한 돌을 찾았다.

"이게 좋겠네."

마침 근처에 적당해 보이는 돌이 두 개 있었다.

"인강아, 이거 던질 테니까, 구석으로 피해 있어라."

휙,휙!

돌 두 개를 호 안에 던져 넣은 이강진은 이내 그것을 의자로 삼았다.

"어흐, 편하고 좋네! 뭐 해, 너도 앉아."

"앉아 있어도 됩 니까?"

"여긴 탄약고 초소 아니니까 괜찮아."

허인강은 이런 대규모 훈련은 거의 처음이었다. 그렇다 보니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았다.

'마침 잘됐네.'

안 그래도 심심하던 이강진은 허인강에게 자신의 군대 노하우를 강의하기로 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군대에선 목숨 걸고 잘할 필요 없어. 그런 다고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으니까. 훈련도 마찬가지야. 딱 욕 만 안 먹을 정도로 중간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알겠습니다. 근데 이강진 병장님은 제가 알기론 중간만 가셨 던 분은 아닌 거 같습니다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강진은 말하는 것과 행동이 달랐다.

중간만 가라곤 하지만, 이강진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군 생활 에 매진했다.

하나 이런 데에는 다 목적이 있었다.

"미친 듯이 열심히 해야 할 때가 있긴 하지. 그게 언제인 줄 알 아?"

"잘 모르겠습니다."

"포상 휴가가 걸려 있을 때. 오케이?"

"아하……."

실제로 이강진은 원하는 만큼의 포상 휴가를 다 챙겼다 싶을 때부턴 그렇게까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분대장을 기운상에게 넘겨주고 나서부터는 아예 노골적으로 PX에 짱박힐 때도 많았다.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거기에 맞춰서 변하면 된다.

군대는 변하지 않지만, 병사들은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이강진은 그걸 말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하나 더 팁을 주자면……."

수다 엔진이 걸리려고 하려던 찰나였다.

근처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강진은 벗었던 방탄모를 재빠르게 다시 썼다. 총구를 겨누 면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정지, 정지, 정지! 손들어, 누구냐!"

멀리서 보이는 실루엣.

이마에 선명하게 빛나는 은색 계급장.

그것을 보자마자 이강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대대장이 벌써 여길 왔다고?'

< 제97화. 최종 관문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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