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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04화 (304/347)

< 제98화. 마지막 훈련 (2) >

제98화. 마지막 훈련 (2)

여태껏 군 생활을 아무리 잘해 왔다고 해도, 한번 발이 어긋 나면 잘 쌓아 왔던 공든 탑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군 생활 잘해 온 병사라고 해도 규정에 어긋나는 짓을 하면 영창이다.

이강진과 백우호가 지금 딱 그런 상태였다.

"1 분대, 군장 가지고 앞으로 나와라."

"아, 알겠습니다!"

분대원들의 시선이 이강진, 백우호 둘에게 고정되었다.

이들은 두 사람이 가라군장을 준비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군장을 오픈하는 순간,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는 연 출이 가미될 것이다.

그리고 말년 휴가고 뭐고 그런 거 다 짤린 채로 바로 영창으 로 직행할 게 뻔했다.

백우호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이강진에게 물었다.

"가, 강진아! 어, 어쩌냐!"

"……."

당황스러운 건 이강진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사단장이 온다는 건 대대장의 거짓말이라고 했었는데. 설마 정말로 사단장이 이곳에 올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혹한기 훈련 받을 때 사단장이 왔었던 거 같기도 하고.'

차라리 혹한기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이 기억이 떠올랐더라 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쩌지?'

방법을 떠올려야 한다.

이대로 군 생활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모은 휴가들인데, 그걸 이딴 일로 다 날려 버린다면 얼 마나 억울할까.

망설이는 1분대원들. 그러자 소대장이 이들을 닦달했다.

"뭣들 해! 어서 군장 가져오지 않고."

"예,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이들은 발걸음을 억지로 뗐다.

한편, 병사들의 표정을 예의 주시하던 행보관의 표정이 갑자 기 굳어졌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것이다.

간부들 중에서 유일하게 행보관만 알아차렸다. 아직 나머지 간부들은 1분대가 몰래 감춰 온 불편한 진실을 눈치채지 못했 다.

터벅터벅.

군장을 가지고 가면서 이강진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입구를 제 발로 자진해서 걸어가는 그런 기분이었다.

'사단장, 저 양반은 왜 하필 이때 와서……!'

온 것까진 봐줄 만하다. 그러면 다른 병사들을 지목하든가. 많 고 많은 병사들 중에서 왜 1중대 1분대를 지목했는지, 이강진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운이 안 좋았다.

사실 이유는 이것밖에 없다.

운에 울고 운에 웃고.

이건 사회에 있을 때에나 군대에 있을 때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이강진은 최대한 시간을 벌어 보기로 했다.

갑자기 자세를 숙이는 이강진. 중대장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강진, 너 뭐 하냐?"

"죄송합니다. 쉬는 시간에 양말이 젖어서 발 좀 말리느라 전 투화를 아예 벗고 있었습니다. 신고 바로 가겠습니다."

전투화 끈을 최대한 천천히 묶었다.

1분대원들은 이강진이 일부러 시간을 벌기 위해 저런 연기를 펼친다는 사실을 단번에 깨달았다.

그들도 이강진을 도와주기 위해서 최대한 천천히 행동했다.

세월아 네월아 군장을 푸는 1분대원들.

이들의 모습을 보니 답답함이 몰려왔다.

중대장이 쓴소리를 하려고 할 때였다.

"잠깐만."

갑자기 사단장이 전투복 상의 주머 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액정 화면을 확인하자마자 사단장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여보세요. 어. 왜…… 아니, 그거 내일 가도 되는 거잖아. 꼭 오늘 갈 필요가 없… …. 알았어. 알았다고! 일단 끊어."

거칠게 통화를 끊어 버린 사단장.

안 그래도 가라군장 때문에 불안한 와중에 사단장의 기분까 지 안 좋아졌으니, 그야말로 불운에 불운이 겹친 셈이었다.

하나 이강진은 다르게 생각했다.

위기를 기회로!

여태껏 이강진이 남들보다 한발 먼저 앞서갈 수 있었던 원동 력이 바로 이런 마음가짐이었다.

'보아하니 사모님이 뭔가 급한 일이 있는 거 같은데.'

잘만 이용하면 군장 검사 없이 사단장을 바로 보낼 수 있을지 도 모른다.

이강진은 영혼을 담은 시간 끌기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전투화를 다 신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왼쪽 발을 끌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사단장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시 한번 중대장이 이강진에게 뭐라고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전에 행보관이 먼저 순서를 가로챘다.

"아까 강진이 발을 살펴봤는데, 발 아래쪽에 물집이 크게 하나 잡혀 있었습니다. 갑자기 전투화 신고 걸으려고 하니까 거동 이 좀 불편할 수도 있으니 봐주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행보관의 설명을 듣고 사단장 또한 이해한다면서 고개를 작 게 끄덕였다.

사단장이 인정했는데, 중대장이 어찌 왈가왈부할 수 있으랴.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하나뿐이다.

'운이 안 좋아서 걸렸으니, 운으로 극복해야지!'

이강진은 도박을 해 보기로 결심했다.

사단장 일행 앞에 도착한 이강진. 군장 끈을 푸는 것도 아주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임했다.

그 순간.

띠리리리 링

또다시 사단장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강진을 비롯해 모두의 시선이 사단장에게 집중되었다.

"이 여편네가 또……."이번에는 통화를 거절했다. 그 선택 한 번이 이강진에겐 엄청 나게 큰 절망을 가져다줬다.

'아니, 포기하기엔 일러!' 마지막 순간까지 이강진은 버텨 보기로 했다.

그의 간절함이 통하기라도 한 걸까.

계속해서 사단장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사모님, 힘내세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단장의 사모님을 응원하기 시작한 이 강진.

결국 버티다 못한 사단장이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갔다.

"지금 나 바쁘다고 했잖아! 백화점 세일이야 나중에 또 하면 그때 가고……. 뭐? 이 번 세일 놓치 면 나보고 알아서 하라고? 아니, 여편네가 정신이 나갔나! 그깟 세일이 뭐가 중요하다고……. 낚싯대도 세일 품목에 있어?"

낚싯대 이야기가 나오자, 사단장의 목소리에 부드러움이 담 기기 시작했다.

"그래, 그거. 내가 예전부터 눈여겨보던 모델명 맞아. 그게 정 말로 세일 목록에 있다고? 그렇다면야……. 알았어, 바로 갈 테니 까, 당신 옷 입고 대기하고 있어. 내가 전화하면 바로 내려와. 알 았지?"

사단장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낚시를 좋아한다. 휴가를 받을 때면 항상 후임들과 함께 낚시를 떠 나곤 한다.

그 때문에 사단장 밑에서 일하는 간부들은 좋아하지도 않는 낚시를 하러 다니느라 죽을 맛이었다.

낚시광 사단장이 좋아하는 낚싯대가 세일한다고 하니, 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어흠! 대대장, 내가 말이야,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그러는 데, 이만 가 봐야 할 거 같군."

곁에서 통화 내용을 전부 들은 대대장.

사단장의 가 보겠다는 말은 대대장에게도 환영할 만한 것이 었다.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래, 자네도 병사들하고 행군 무사히 끝내도록 하고."

사단장의 걸음걸이 속도가 삘?라졌다.

기적이 일어난 셈이었다.

이 틈을 노린 행보관은 1분대원들에게 크게 손짓을 하면서 말 했다.

"곧 행군 다시 시작할 테니까 들어가서 쉬고 있어라."

"예, 알겠습니다."

혹여나 대대장이 군장 검사를 할지도 몰랐기에 행보관은 병사들을 재빨리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군장을 짊어진 이강진은 분대원들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자 리에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행보관은 헛웃음을 흘렸다.

* * *

사단장의 갑작스러운 등장 때문에 병사와 간부 들은 가슴을 크게 쓸어내려야만 했다.

그래도 별 탈 없이 무사히 지나갔기에 망정이지, 이강진과 백 우호의 가라군장이 사단장 앞에서 그대로 까발려졌더라면 끔찍 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저녁 6시 반이 딱 되었을 때, 1075대대 병력들이 4박 5일 동 안 신세를 지게 될 임시 진지에 도착했다.

오자마자 병사들은 총기거치대에 개인화기부터 넣었다.

그다음, 들고 있던 군장을 포함해서 미리 실어 온 의류대를 텐 트 안으로 던져 뒀다.

텐트로 돌아오자마자 백우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놈의 군 생활은 하루도 긴장을 늦줄 수가 없네. 어떻게 사단장님이 갑자기 오시냐? 우리 X 돼 보라고 그러는 줄 알 았어."

이강진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니, 지금은 그러려니 하고 가볍게 넘기기로 했다.

"그래도 결과적으론 다 잘 풀렸잖아."

"그렇긴 하지."

과정이 문제가 있어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

사단장과 다른 간부들에게는 안 들킨 거 같긴 하지만…….

'행보관님은 눈치채셨을지도 모르겠군.'

이강진의 물집 설정도 행보관이 그 자리에서 애드리브로 바로 잡은 거였다.

사실 이강진의 발바닥은 멀쩡했다. 그럼에도 물집 이야기를 했던 건 이강진이 시간을 끄는 걸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그것만 봐도 이강진은 자신이 가라군장 싸 온 것을 행보관이 눈치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행보관은 이강진을 따로 불러 뭐라고 하지 않았다.

행보관도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이강진의 생각과 같았다. 결과적으로 봤을 땐 아무도 손해 보지 않았다. 그러면 된 거다.

'지나간 일이니까 잊어버리자.'

아직 혹한기 훈련은 시작도 안 했다.

오늘을 포함해서 총 4박 5일. 사단장이 기습적으로 방문했던 일보다 더 큰 사건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마지막 훈련인 만큼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받아야 한다.

텐트로 돌아온 기운상이 전파 사항을 전달했다.

"샤워하신 다음에 옷 갈아입고 바로 취침 준비하면 된다고 합 니다."

"샤워? 이 날씨에?"

백우호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온수 샤워도 아닌 냉수 샤워를 해야 하는데, 영하로 뚝 떨어진 와중에 누가 냉수로 야외 샤워를 하겠나.

찝찝해도 그냥 잘 생각이었다.

하나 바로 이어지는 기운상의 말이 백우호의 마지막 남은 희망을 앗아 갔다.

"행보관님께서 샤워 한 명도 빠짐없이 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행보관의 명령이라는 말에 이강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호야, 무조건 해야겠다."

"아, 왜! 난 하기 싫다고."

"행보관님, 우리가 가라군장 싸 온 거 눈치채셨어. 약점을 잡 힌 이상, 혹한기 훈련 받는 동안만이라도 군말 없이 행보관님 말 에 따르는 게 좋을 거야."

그래도 사단장에게 들킨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상당히 싸게 먹힌 셈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백우호는 이강진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어으, 추워!"

야외 샤워장으로 향하는 분대원들.

1분대부터 먼저 순서대로 샤워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 문에 샤워장에는 이들을 제외하고 아직 아무도 없었다.

기다리고 있던 1부소대장이 이들을 향해 물을 튀겼다.

"으아으!!"

"부, 부소대장님! 차, 차갑습니다!"

"어차피 샤워하러 왔잖아. 이렇게 미리 몸을 적신 다음에 샤워해라. 물 엄청 차가우니까. 그럼 난 간다."

부소대장은 일찌감치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백우호가 퇴장하려는 부소대장을 붙잡을 생각으로 물었다.

"부소대장님은 샤워 안 하십니까?"

"안 해. 난 그냥 물티슈로 대충 땀만 닦고 잘 거다."

이럴 땐 간부가 참 좋다.

부소대장이 떠난 뒤, 병사들은 호수에서 콸콸 흘러나오는 물 줄기를 한동안 바라만 봤다.

누군가가 먼저 선뜻 용기를 내기 힘들었다.

어차피 할 거, 빨리하고 들어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이강진이 나섰다.

천하의 이강진조차 혹한기 냉수 샤워는 두려울 수밖에 없었대야에 담겨져 있는 물 안에 손을 담갔다.

이강진의 소감은 아주 짧고 강렬했다.

씨 발."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 제98화. 마지막 훈련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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