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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10화 (310/347)

< 제99화. 말년휴가 (1) >

제99화. 말년휴가 (1)

평소에 점심 식사를 할 때쯤이 되자 이강진은 1분대원들 중 에서 가장 먼저 눈을 떴다.

현재 시간, 10시 반.

더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일어난 김에 이강진은 전화나 몇 통 하고 오기로 결심했다.

혹여나 분대원들이 자신의 인기척 때문에 잠에서 깰까 봐 최 대한 조심스럽게 생활관 문을 열었다.

복도로 나오자, 이강진처럼 일찍 잠에서 깬 병사들이 몇몇 돌 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이 이강진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했다.

"충성!"

"충성. 일찍 일어났네?"

"제가 원래 잠이 좀 없는 체질이라서 그렇습니다, 하하!"

박격포병으로 활약 중인 박채홍 상병.

그는 양손에 손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헬스 가게?"

"예. 이강진 병장님도 같이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간만에 웨 이트 한번 땡기셔야 하시지 않습니까?"

"음, 그럴까?"

요즘 운동을 잘 못 했다.

원래 꾸준히 몸매 관리를 할 생각이었으나, 이런저런 일들 때 문에 운동을 게을리하는 날이 빈번해졌다.

휴가를 나갔을 때에는 헬스장을 등록할 수가 없어서 홈 트레 이닝을 하거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조깅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갈수록 빼먹는 일이 많아졌다.

게다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하 자 기껏 만들어 뒀던 몸매가 점점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박채홍 덕분에 갑작스러운 위기감을 느꼈다.

"그래, 가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라. 준비하고 헬스장으로 바로 갈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원래 운동은 같이하는 사람이 있어야 재미있는 법이다.

박채홍을 먼저 보낸 이강진은 오랜만에 관물대 안쪽 구석에 보관되어 있는 헬스 물품들을 꺼냈다.

'일, 이등병 때에는 개인 보호대 가져와서 사용하는 것도 눈 치 보였는데.'

지금은 간부만 없으면 이강진의 세상이다.

보호대를 착용한 후에 헬스장으로 곧장 향했다.

하나 도중에 행보관이 이강진을 불렀다.

"헬스장 가나 보군."

"충성! 예, 그렇습니다."

"가기 전에 잠깐 나 좀 보자."

행보관의 부름 때문에 이강진은 헬스장으로 향하던 걸음을 잠 시 선회해야만 했다.

행보관실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행보관이 이강진에게 무언 가를 건넸다.

"이거 받아라."

연대장이 이강진, 허인강 두 사람에게 주라고 했던 3박4일 포 상 휴가증이었다.

"네가 쓸 곳이 있을지 모르겠구나."

말년 휴가 한 번 갔다가 오면 곧바로 전역하는 이강진이 이제 와서 이 휴가를 어디에 쓸 수 있으랴.

마침 잘됐다 싶었는지 이강진은 나중에 말하려고 했던 사실을 행보관에게만 미리 꺼내기로 했다.

"어차피 전 쓰지도 못할 휴가니까 분대원들에게 양도해도 되 겠습니까?"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래라. 상관없다. 누구한테 줄 거냐?"

"일단 운상이한테 맡기려고 합니다. 휴가 없는 애 있으면 주 라고 할 생각입 니다."

"그렇군. 알았다. 그럼 운상이한테 나중에 네 포상 휴가 양도 받을 병사 정해지면 나한테 알려 달라고 해라."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이 다른 병사에게 휴가를 양보한 것이 이번까지 치면 과연 몇 번째일까.

포상 휴가를 따내는 건 좋지만, 이강진의 계산을 벗어날 만큼 너무 많은 휴가증들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이런 식으로 포상 휴가를 양보해야만 했다.

뭐든지 적당히.

훈련소에 입대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군 생활에 임해야겠다고 늘 다짐하고 또 다짐했건만.

'너무 잘해서 문제네.'

군대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일요일이 마지막이라는 뜻은, 다시 말해서 종교 행사 또한 마 지막이라는 의미가 된다.

기독교 군종병으로서 먼저 교회로 내려갈 준비를 서두르는 곽 분섭. 생활관을 나서기 전에 이강진이 그를 불렀다.

"분섭아, 잠깐만."

다른 병사들한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를 최대한 낮줬

"혹시 오늘, 지윤 씨 온다는 말 들었어?"

"못 들었습니다만."

전화로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혹한기 훈련 때문에 통화할 시 간이 없었다.

토요일에는 하필이면 행보관이 당직사관이어서 장구류 정비 에 일광건조에,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굳이 한지윤이 안 온다 하더라도 이강진은 교회로 내려갈 생 각이긴 했다. 그래도 기왕 가는 거, 한지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이강진은 곽분섭의 등을 토닥여 줬다.

"그래, 알았다. 그만 내려가 봐라."

"예, 알겠습니다. 충성!"

굳이 큰 기대는 가지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전역해도 시간만 맞으면 한지윤과 언제든 만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오히려 군대에 있을 때보다 전역한 이후가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오늘은 목사님에게 인사만 드리면 되겠군.'

이제 슬슬 이곳과 작별할 준비를 해야만 한다.

후임들과 함께 교회로 내려간 이강진.

종교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그는 목사와 따로 이야기를 나눴오늘이 이강진의 마지막 종교 행사라는 것을 알게 된 목사는 상당히 아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강진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의 시선이 피아노 쪽으로 향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여성.

그녀는 아쉽게도 한지윤이 아니었다.

'오늘 지윤씨는 못오나 보군.'

한지윤과의 관계가 돈독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종교 행사였다.

기독교 종교 행사가 아니었더라면 이강진은 한지윤과 이렇게 까지 친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일까. 마지막 종교 행사라는 게 유독 아쉽게 다가왔다.

찬송가와 함께 드디어 종교 행사가 시작되었다.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목사님의 말씀도 듣고.

이강진이 여태껏 참여해 온 종교 행사 그대로였다.

그러나 오늘은 평소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이번 종교 행사가 마지막이라는 병사가 있더군요."

목사의 시선이 이강진에게 고정되었다.

나오라는 신호였다.

이강진은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이럴 줄 알았어.'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이강진의 생일 때였다.

목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이강진은 내일이 자신의 생 일이라는 말을 꺼내게 되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목사는 지금처럼 그를 따로 앞으로 불러 세 웠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강진 병장을 위해 다 같이 축하의 노래를 불러 주도록 합 시다.

생일 때 들었던 목사의 멘트와 지금의 멘트가 거의 동일했다.

병사들은 박수와 함께 이강진을 위해 열정적으로 노래를 불 렀다. 왠지 모를 창피함은 온전히 이강진의 몫이었다.

그래도 목사가 이강진을 위해서 신경을 써 주는 건데, 싫은 티를 낼 순 없었다.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연기라는 게 힘들구나.'

한지윤이 얼마나 힘든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 * *

이강진의 마지막 종교 행사가 끝났다.

목사와 인사를 나누기 위해서 이강진은 좀 더 교회에 남아 있 기로 했다.

"운상아, 애들 데리고 먼저 막사로 올라가 있어라. 난 분섭이 하고 같이 올라갈게."

"예, 알겠습니다."

1중대원들을 먼저 보낸 뒤에 이강진은 목사와 못다 한 이야 기를 나눴다.

목사는 이강진의 손을 꼬옥 잡아 주면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시간만 된다면 내가 나가서 밥이라도 한 끼 사 주고 싶은데, 점심에 내가 일정이 있어서 그러지도 못하겠군."

"제가 나중에 전역하고 나면 목사님 따로 찾아뵙겠습니다. 그 때 사 주시기 바랍니다."

"자네가 와 준다면 나야 좋지!"

사실 목사보다는 한지윤을 보기 위해 온다는 느낌이 더 강했 다.

물론 이 말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목사가 섭섭하게 생각할 테 니까.

뒷정리를 끝낸 곽분섭이 이강진을 찾았다.

"이강진 병장님, 다 끝났습니다."

"알았어. 목사님, 그럼 분섭이하고 같이 올라가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악수를 나누고 헤어지려고 하던 찰나였다.

교회 옆 주차장에 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들어섰다.

처음 보는 차량이었다.

하나 차를 끌고 온 운전자는 처음이 아니었다.

"늦어서 죄송해요!"

한지윤. 그녀가 왔다.

* * *

목사의 배려 덕분에 이강진은 한지윤과 따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한지윤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이 강진은 혹시 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촬영하다가 도중에 나오신 건가요?"

"아…… 들켰네요."

어쩐지.

이강진의 예상대로였다.

평상시와 다르게 오늘 한지윤의 화장은 꽤 진한 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바로 그녀의 현 복장이 었다.

여성용 정장을 차려입은 한지윤.

그녀는 종교 행사에 참여할 때 단 한 번도 정장을 입고 온 적이 없었다.

드라마 녹화 도중에 잠깐 짬을 내 이곳으로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종교 행사 전에 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차가 많이 막히더 라고요. 죄송해요, 강진 씨.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출발할 걸 그랬나 봐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렇게 지윤 씨 얼굴 본 것만으로도 충 분한걸요."

이건 가식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사실 이강진은 오늘 한지윤을 못 볼 줄 알았다. 종교 행사가 시작되기 전만 하더라도 그녀가 이곳에 올 거라는 보장이 어디 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한지윤은 이강진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선물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다음에 볼 때에는 강진 씨 전역한 후겠네요?"

"네, 그렇게 될 거 같습니다."

"그럼 스키장 여행 한 번 더 같이 가요. 저도 어떻게든 시간 내 볼게요."

"좋죠. 저번에 갔던 곳이라도 괜찮나요? 아니면 새로운 스키 장?"

"지난번 그곳이 좋을 거 같아요. 직원분도 친절했고, 그리고 익숙한 코스여야 스키 실력이 더 빨리 늘지 않겠어요?"

여행 이야기가 나올 때면 한지윤은 항상 텐션이 오른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언제까지 계속해서 이곳에 앉아 여행 계획을 짤 수는 없었다.

시간을 확인한 한지윤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선 말했다.

"이만 가 봐야겠네요."

슬슬 촬영장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미리 전역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지윤 씨 덕분에 군 생활무사히 잘 버텨 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전역하고 나서도 저희, 꼭 자주 만나요. 약속."

그녀가 먼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이런 식의 약속 제스처는 해 본 적이 없던 이강진이지만, 그래도 안 하면 안 되는 그런 분위기였다.

이강진과 한지윤은 서로 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그녀와의 약속은 꼭 지킨다. 그것이 이강진의 신념이다.

한지윤을 먼저 보낸 뒤, 이강진은 교회를 벗어났다. 이제 이 교회를 찾을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 * *

월요일 아침 점호를 마친 이강진은 A급 전투복을 차려입었다. 동기인 백우호, 김철과 함께 행정반에 들어선 이강진.

그들은 당직사관인 소대장 앞에 나란히 정렬했다. 이강진이 동기들을 대표해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충성 병장 이강진 외 2명, 휴가 출발하겠습니다!"

드디어 오늘.

이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말년 휴가가 시작된다.

< 제99화. 말년휴가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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