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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16화 (316/347)

< 제101화. 새 출발 (3) >

제101화. 새 출발 (3)

늦은 시간에 스키장에 도착한 이강진 그리고 한지윤.

차를 주차한 뒤에 두 사람은 호텔 건물로 향했다.

로비에서 대기 중이 던 한 남자가 이강진을 보자마자 밝은 미 소를 건네면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강진 씨. 오랜만입니다!"

나두석의 지인, 정태성이었다.

예전에 이강진은 그에게 크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정태 성 덕분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한지윤과 마음껏 스키를 탔었다.

이번에도 정태성은 이강진을 적극적으로 서포트할 예정이었다.

"바로 스키장을 이용하실 거라면 체크인하시고 짐 푸신 다음 에 이곳 로비로 다시 와 주시기 바랍니다. 전 여기에서 계속 대 기하고 있을 테니까요."

"네, 금방 오겠습니다."

이들의 방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 다. 이강진이 머물 호실 옆에 한지윤의 호실이 위치했다, 정태성이 일부러 이렇게 붙여 둔 것이다.

이강진은 호실 배치에서부터 나두석의 간섭을 느꼈다.

'아니다. 괜히 두석이 탓하지 말자. 방이 가까우면 나야 좋지.'

혹시 한지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이강진이 바로 달려 갈 수 있지 않겠나.

가까운 건 좋은 것이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이들은 정태성이 말했던 것처럼 다시 호 텔 로비로 향했다.

정태성은 두 사람을 보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잘 어울리시네요. 그럼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스키장 전문가, 정태성만 믿으면 된다.

그가 추천하는 장소만 왔다 갔다 하면 별문제 없을 것이다.

야간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래도 낮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한산한 편이었다.

정태성은 떠나기 전에 이강진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저번에 드리긴 했는데, 혹시 또 몰라서 한 장 더 드리겠습니다. 재미있게 즐기시다가문제가 터지면 언제든 명함에 적혀 있 는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그러면 제가 알아서 다 처리해 드리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태성 씨."

"천만에요.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너무 오래 두 사람의 곁에 붙어 있으면, 데이트 현장을 방해 할 수가 있다. 정태성은 그렇게까지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적절한 타이밍에 빠져 주기로 했다.

이렇게 다시 둘이 된 이강진과 한지윤.

스키장에 왔으니, 스키를 타야 하지 않겠나.

"지윤 씨, 저번에 제가 알려 드렸던 거, 기억하시나요?"

"네, 얼추요."

완벽하진 않았다. 스키라는 게 연습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한정된 그런 스포츠 아닌가.

연습을 거의 못 했기 때문에 복습의 시간을 가지는 게 좋아 보였다.

"우선은 안전하게 넘어지는 방법부터 다시 알려 드리도록 할 게요. 일단 자세부터. 자, 저를 보세요."

다수의 알바 경험을 토대로 길러 온 스키 실력을 유감없이 뽐 내는 이강진.

한지윤은 이강진의 즉석 강의에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이다음은 실습이다.

눈 위에서 이강진을 따라 40분 정도 연습을 한 뒤.

이들은 바로 리프트를 타고 초급자 코스로 향하기로 했다.

이강진이 먼저 출발했다.

"너무 겁먹지 마시고요. 천천히, 그대로 쭉 내려오시면 돼요. 너무 빠르다, 방향 조절이 안 될 거 같다 싶으시면 아까 제가 알 려 준 방법대로 착지하면 됩니다."

"네!"

목소리에 바짝 긴장감이 담겨 있었다.

이강진은 한지윤이 너무 긴장감에 짓눌리지 않도록 옆에서 계 속해서 그녀를 응원했다.

"좋아요. 잘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조금씩 전진하세요."

"이, 이렇게요?"

"네, 훌륭합니다!"

칭찬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강진은 한지윤에게 최대한 좋은 말로 스키를 알려 주려고 했다.

물론 군대였다면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딱 한 번만 말해 준다음에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하라고 했을 것이다.

하나 여기는 군대가 아니다. 사회다.

'군대 방식은 이제 좀 잊자.'

막 전역한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는 모양인지 이강진은 고 개를 좌우로 세차게 가로저었다.

이강진의 모습을 본 한지윤은 당황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 이렇게 하는 거 아닌가요?"

"아, 네. 그거 맞습니다!"

군대에 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 내려고 한 행동이었는 데, 본의 아니게 한지윤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 * *

스키장에서 2시간가량을 보낸 두 사람은 늦은 시간, 다시 호 텔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곳에 오자마자 쉴 틈도 없이 계속 스키만 타서 그런지 배가 상당히 출출했다.

뭐 먹을 거 없을까?

식사를 하기에는 너무 애매했다. 식당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 이것저것 둘러보려고 하던 찰나였다.

"강진 씨, 편의점 어때요?"

아직 편의점은 한창 운영 중이었다.

식당은 물 건너갔지만, 그래도 이들에겐 편의점이 있다.

한지윤과 함께 편의점을 찾은 이강진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 했다.

'역시 라면이겠지?'

컵라면 몇 개를 집었다. 그사이에 자리를 비웠던 한지윤이 뭔 가를 한 뭉텅이로 가져왔다.

소시지, 뿌리는 치즈, 참치, 볶음김치, 김, 기타 등등.

"제가 라면 맛있게 끓이는 법 알고 있거든요. 저만 믿으세요, 강진 씨."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한지윤이었다.

스키 배울 때보다도 더 의욕이 넘쳤다.

한지윤의 귀여운 모습에 이강진은 웃으면서 그녀의 장단에 어 울려 주기로 했다.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마친 후에 이강진이 머물기로 한 방에 서 모이기로 했다.

한지윤이 머물기로 한 방에 이강진이 가는 것보다 그 반대가 더 나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여자의 프라이버시는 존중해 줘야지.'

이강진의 배려 덕분에 한지윤은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혹여 나 이강진이 봐선 안 될 물건 같은 걸 보기라도 한다면, 한지윤 은 당분간 그의 연락을 피할지도 모른다.

자정이 거의 다 되어 가는 시간.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이강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호실 문을 열어 줬다.

"늦어서 죄송해요, 강진 씨."

"아닙니다. 마침 잘 맞춰서 오셨어요."

두 사람이 편의점에서 사온 먹거리들을 미리 세팅해 놓은 이 강진.

이제 라면만 끓이면 된다.

먼저 컵라면을 뜯은 뒤, 토핑을 올려놓고 뜨거운 물을 부은 다 음에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토핑 준비는 한지윤의 몫이었다.

작은 플라스틱 칼로 정교하게 토핑 재료들을 손질하는 그녀.

누가 보면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인 줄 착각 할 만큼 신중을 기했다.

한지윤이 신경을 많이 써 준 덕분에 그래도 먹음직스러운 라 면이 완성되었다.

라면으로 우선 배를 채우기로 했다.

면발을 크게 한 젓가락 들어 올린 이강진은 그것을 후르릅 삼 켰다.

그러더니 이내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면서 한지윤에게 맛있 다는 신호를 보냈다.

"같은 컵라면이라도 맛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니, 신기하군요."

"가끔 밤에 라면이 땡길 때 자주 해 먹는 방식이거든요. 아! 저, 사실은 강진 씨한테 부탁드릴 게 있는데."

"어떤 건가요?"

한지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뽀글이라는 게 그렇게 맛있다고 하던데…… 혹시 괜찮으시다 면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어떻게든 꼭 맛보고 싶어서요."

한지윤의 입에서 뽀글이라는 단어가 나올 줄은 몰랐다.

뽀글이.

이강진이 현역이었을 때, 야간 근무 마치고 잠을 청하기 전에 출출하면 만들어 먹고 했던 라면 끓이는 방식이다.

한지윤이 원하는데, 까짓것 뽀글이 하나 못 해 줄까.

"알겠습니다. 잠깐 기다려 주세요."

마침 훌륭한 뽀글이 재료인 간짬뽕이 있었다.

뽀글이의 핵심은 바로 라면 봉지로 모든 조리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키포인트다.

간짬뽕 면발을 먹기 좋게 한 번 쪼갠 뒤,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봉지 안을 채웠다.

그리고 나무젓가락을 살짝 벌려 뜯은 부위를 잠갔다.

이대로 몇 분 기다렸다가 물을 버린다. 그리고 라면 봉지를 펼 쳐서 간짬뽕 면발을 소스에 비비기만 하면 끝이다.

"자, 완성입니다."

"오더!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뽀글인가요?"

"네."

이걸 설마 전역하고 나서 또 만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어쩌겠나, 한지윤이 먹고 싶어 하는데 나 몰라라 할 수 도 없고 말이다.

"잘 먹을게요."

인생 첫 뽀글이를 맛보게 된 한지윤.

그녀의 평가는…….

"어머, 생각보다 맛있네요."

"군대에선 봉지 라면을 끓여 먹을 방법이 식당 말고는 없어서 이렇게 뽀글이 형태로 자주 먹곤 했었습니다. 근데 사실 몸에 좋은 맛은 아니죠."

라면 봉지 내면의 폴리에틸렌이나 폴리프로필렌 재질이 손상 되어 안 좋은 성분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도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병사들의 허기를 달래 준 고마운 녀석이다.

'그렇다고 사회에 나와서까지 계속 만들어 먹을 정도는 아니 지만.'

안 그래도 전역하고 나서 재입대하는 꿈을 자주 꾸는 마당에 뽀글이까지 만들어 먹고 말았다.

'오늘도 악몽 신세인가?'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배도 적당히 채웠으니.

바로 2차를 시작하기로 했다.

2차는 정태성이 알려 준 장소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스키장 전경이 보이는 직원 휴게실을 찾았다.

원래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정태성이 두 사람을 위해 힘을 써 둔 덕분에 지금은 이강진, 한지윤 둘만의 프라 이빗 공간이 되었다.

유리 벽 너머로 보이는 스키장의 모습에 한지윤은 절로 감탄 했다.

이강진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은 곳이군요."

"저 번에는 너무 일찍 왔다가 일찍 가서 아쉬웠는데, 오늘은 그 래도 즐길 만큼 즐길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이강진이 맥주 캔을 들었다.

"한잔할까요?"

"네."

그를 따라 한지윤도 자신의 맥주 캔을 들어 올렸다.

맥주 캔을 서로 부딪치니, 작게 '퉁!' 소리가 났다.

과자 몇 개와 맥주 캔 두 개뿐이지만, 그래도 한지윤은 행복 했다.

"화려한 것보다 이렇게 소소한 뒤풀이가 제 취향이거든요."

이렇게 이강진과 나란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물론.

이강진도 같은 생각이다.

다시 한번 건배를 하려고 할 때였다.

"어머, 강진 씨! 눈 오나 봐요."

한지윤의 말대로였다.

하늘에서 조금씩 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이강진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군대에선 악마의 X가루라고 불리던 게 지금은 낭만 그 자체 네.'

만약 여기가 군대였다면, 이강진은 곧장 제설 도구를 들고 밖 으로 튀어 나갔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는 사회다.

걱정 없이 눈이 내리는 걸 보기만 해도 괜찮다.

그때였다.

갑자기 한지윤이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해 왔다.

"강진 씨는… …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순간 입에 머금고 있던 맥주를 뿜어낼 뻔했다.

간신히 참아 낸 이강진은 일단 맥주부터 꿀꺽 삼켰다.

"좋아하는 사람이요?"

"네, 혹시 있나 싶어서요."

잔뜩 달아오른 한지윤의 얼굴.

이강진은 확신했다.

'왔구나.'

그가 그토록 바랐던 고백의 타이밍.

고백의 신이 이강진의 등을 떠밀어 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지윤이 먼저 용기를 냈으니, 이번에는 이강진의 차례다.

"네."

고개를 돌린 이강진은 한지윤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제 눈앞에 있습니다."

< 제101화. 새 출발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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