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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25화 (325/347)

< 제103화. 1분대 면회 (4) >

제103화. 1분대 면회 (4)

30분가량 더 이야기를 나눈 뒤, 이들은 행보관실에서 나왔다.

김철은 행정분과 병사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그들이 머무 는 생활관으로 향했다.

백우호는 성태강, 곽분섭과 함께 아까 눈여겨봤던 달라진 휴 게실을 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이강진은 기운상, 허인강과 같이 탄약고로 향했다.

원래 민간인이 탄약고에 함부로 접근하면 안 된다.

그러나 군대에선 통용되는 법칙 같은 것이 있다.

'상급 부대한테 안 들키면 그만이지.'

이미 행보관한테는 허가를 받아 뒀다. 행보관은 영내에 대대장도 없고 하니까 마음껏 갔다 오라는 말만 슬쩍 흘렸다.

탄약고로 올라가던 중에 이강진은 빨래 건조장과 분리수거장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긴 예전이랑 똑같네."

"달라진 곳은 휴게실 정도밖에 없어. 나머지는 그대로야. 아, 사람도 달라졌지."

이강진이 전역한 뒤에 이곳에 올 동안, 몇몇 후임들도 이강진 처럼 전역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기운상도 조만간 전역한다. 그래서 이강진은 무리를 해서라 도 동기들을 데리고 이곳 1075대대를 찾게 되었다.

탄약고로 향하는 길.

여기 또한 변함이 없었다.

"오랜만에 오르니까 숨차네."

이강진은 과거에 자신이 어떻게 하루에 두 차례 이상 이곳을 오르락내리락했는지 신기했다 .

현역 시절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왔다 갔다 했었지만, 지금 와서 해 보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았다.

마침내 탄약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가 줄어들 때쯤.

탄약고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지,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최영고의 목소리였다.

이강진이 간부들과 행보관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최 영고는 근무 시간 때문에 이곳 탄약고로 올라와야만 했었다.

"돌고래."

"누구냐!"

"수상한 거수자."

"용무는!"

"탄약고 불법 침입."

헛웃음을 흘린 최영고는 이강진에게 탄약고 쪽으로 오라고 손 짓했다. 그러자 이강진이 씨익 웃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어때, 잘 대답했지?"

"엉망진창이야. 암구호 답어도 틀렸고. 그냥 생각나는 거 대충 대답했지?"

"어, 내가 답어를 알 리가 없잖아. 그보다 영고 너, 설마 선임 근무자로 투입된 거냐?"

최영고는 한 차례 어깨를 으쓱였다.

"어. 나, 저번 달부터 선임 근무자로 들어가기 시작했어."

그 말을 들은 순간, 이강진은 갑자기 지구 종말의 시기를 직 감했다.

"네가 선임 근무자라니. 이러다가조만간 지구 멸망하는 거 아니냐?"

"나라고 평생 이등병이란 법은 없잖아. 그러는 강진이 형은. 형도 이등병 시절 있었으면서. 안 그래?"

"뭐, 그렇긴 하지."

이강진이 상병을 달았을 때, 선임들도 지금의 이강진처럼 같은 반응을 보였다.

네가 상병이라니, 내일 지구가 멸망하나 보다.

이런 말을 농담식으로 자주 들려주곤 했었다.

탄약고 안으로 들어선 이강진.

그는 탄약고 천장 가운데에 손을 스윽 뻗었다.

천장이 약간 들리면서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비밀 공간이 드러 났다.

그 안에 병사들이 몰래 추진을 해 둔 먹거리들이 한가득 보관 되어 있었다.

기운상과 최영고, 허인강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최영고와 같이 탄약고 근무를 서고 있던 후임 근무자, 양두원 이병은 전혀 몰랐었는지 헛숨을 삼켰다.

"저, 저런 공간이 있었습니까?"

"쉿."

최영고가 양두원에게 주의를 줬다.

"원래는 상꺾 이상인 분들만 알고 있는 비밀 공간이야. 나나 인강이는 강진이 형 덕분에 알긴 했는데, 혹시 모르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하고 있어. 알았지?"

"이, 이병 양두원! 예, 알겠습니다!"

어차피 양두원이 이 비밀의 공간을 알고 있다 해도 이용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같이 근무하는 선임이 있는데, 혼자서 몰래 이곳을 어떻게 활 용하겠나.

한편 이강진은 아직도 멀쩡히 사용되고 있는 초소의 비밀 공 간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간부들은 진짜 모르나 보네."

"어쩌면 행보관님은 알고 계실지도 모르지."

"하긴, 그분은 알고 있어도 모른 척하실 분이니까."

병사들 고생하는데, 군것질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다는 아량을 베풀고도 남을 사람이다.

초소도 바뀐 건 없었다. 이강진이 아는 모습 그대로였다.

'여기서 별의별 일을 다 겪었었는데.'

대대장, 연대장이 갑자기 순찰을 오질 않나.

심지어 이강진이 당직을 설 때 사단장이 갑자기 순찰을 와서 이곳 탄약고 초소를 점검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유선망이 말썽을 일으켜서 통신병과 같이 간부들 몰래 이곳으로 잠입했던 적 도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다 추억이지.'

그 추억은 이제 가슴속에만 묻어 두기로 했다.

* * *

백우호가 한발 먼저 가서 살폈던 휴게실로 들른 이강진.

달라진 헬스장과 공중전화 박스를 확인한 그는 비디오 게임기와 코인 노래방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백우호는 성태강과 함께 오랜만에 FIFA 대전을 펼치고 있었다.

스코어는 3대 0.

백우호가 압도적으로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끝까지 승기를 놓지 않은 성태강이 최종 승리자가 되었다.

"우호야, 너, 실력 너무 많이 죽은 거 아니야? 예전의 백우호가 아닌데?"

"뭐? 그래! FIFA는 형이 더 잘한다. 인정할게! 하지만 진짜 축구는 좀 다를걸?"

"그럼 나가서 축구 한판 할까?"

"좋지! 강진아, 너도 할 거지?"

오래간만에 부대에서 공을 차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가는 게 좋다.

언제 또 이곳에 다시 올지 모르니까.

"그래, 콜!"

"좋았어! 지는 쪽이 PX 쏘는 거다?"

"당연하지!"

내기 죽구가 성사되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멤버들은 단시간 내에 금세 모여들었다.

졸지에 김철도 같이 끼게 되었다.

"나는 축구는 진짜 소질 없는데? …."

"살 빼야 한다며? 이럴 때 몸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결국 김철은 이강진의 말에 설득을 당하고 말았다.

이강진과 백우호, 김철을 포함한 병사들이 A팀.

성태강과 기운상을 중심으로 뭉친 곳이 B팀.

두 팀이 PX를 두고 격돌했다.

예전부터 부대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라고 소문이 났던 이강 진이 먼저 칼을 뽑아 들었다.

순식간에 세 명을 제친 이강진.

그 모습에 성태강은 혀를 찼다.

"우호랑 다르게 강진이 실력은 여전하네!"

"난 쉬는 날에도 축구 하러 다니거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공을 안 차면 몸이 근질거릴 정도였다.

마지막 수비를 따돌린 이강진의 거침없는 슈팅!

죽구공이 B팀의 골망을 힘차게 흔들었다.

경기가 시작된 지 5분도 안 돼서 선취점을 따냈다.

오래간만에 성태강의 승부욕에 불이 붙었다.

"얘들아! 민간인한테 지면 안 된다! 현역의 힘을 보여 주자!"

"예!"

"1 중대, 파이 팅!"

사기가 넘치는 옛 후임들의 모습에 이강진도 같이 텐션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느낌이었지.'

사회인 이강진에서 잠깐 벗어나 병장 이강진으로 다시 돌아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PX를 건 내기 죽구의 결과는 성태강이 이끄는 B팀이 3 대 2 로 아슬아슬하게 승리를 거뒀다.

이강진이 혼자서 고군분투를 해 봤으나 한계는 명확했다.

죽구는 결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아무리 이강진이 날 고 긴다 하더라도 그를 뒤에서 받쳐 줄 수 있는 팀원이 없으면 의미 또한 없다.

승리까지 따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이강진은 옛 후임 들과 같이 부대 내에서 축구를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만족했다.

진 건 진 거였기에 이강진은 곧장 지갑을 꺼냈다.

"PX 가자. 내가 쏘마!"

그러나 병사들은 이강진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PX에 큰 욕심 이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여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아까 치킨하고 피자를 너무 먹어서? …."

"PX가 영 안 땡겨요, 형."

내기에서 져서 PX를 사 주려고 해도 승자가 그걸 거부하는 희한한 상황이 펼쳐졌다.

그래도 빈손으로 가기에는 좀 그랬다.

"가서 라면이라도 사와 그건 나중에 먹을 수 있잖아."

결국 병사들은 이강진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이강진 일행을 배웅할 겸해서 1 분대와 행정분과만 그들과 같이 PX로 내려가기로 했다.

그 전에 이강진은 동기들과 함께 행보관, 소대장, 그리고 1부 소대장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행보관님."

"그래, 운전 조심하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보자꾸나."

"예!"

이곳에서 행보관을 보는 게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음번에 면회를 오면, 그때는 지금의 행보관이 아닌 다른 행 보관이 1중대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간부들과 인사를 나눈 뒤에 이강진 일행과 병사들은 위병소 근처에 있는 PX를 방문했다.

라면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한 병사들.

그나마 PX여서 덜 나왔지, 일반 편의점에서 이런 소비 패턴을 보였더라면 수십만 원은 긁었을지도 모른다.

양손 가득 봉지 라면들을 챙긴 병사들을 향해 이강진과 백우 호, 김철은 작별을 고했다.

"군 생활 열심히 하고! 그리고 운상이는 전역하기 전까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라."

"고마워. 조심해서 들어가!"

"강진이 형, 우호 형! 나중에 또 면회 와!"

"철이 형도 다음에 또 봐!"

위병소를 나서는 동안에도 1중대원들은 이강진 일행을 배웅했다.

차에 오른 뒤, 이강진은 운전대를 돌렸다.

점점 멀어지는 부대의 모습을 보면서 세 남자는 잠시 침묵했 다.

누구도 입을 열진 않았다. 그러나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 하루를 통해 이들은 1075대대에서 또 하나의 추억을 쌓 았다.

그리고 이 추억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움으로 바뀔 것이다.

* * *

1분대 면회를 마치고 돌아온 이강진은 다시 월요일 아침을 맞 이하게 되었다.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

주말 동안 이강진은 잠시 꿈을 꾼 듯한 기분이었다.

하나 이제는 다시 현실로 돌아올 차례다.

사무실로 출근하자마자 이강진은 나두석이 올린 보고서를 빠 르게 훑었다.

사업 확장안과 더불어 인력 채용 진행 상황 등이 적혀 있었나두석이 보고서를 살펴보는 이강진에게 물었다.

"오늘 마지막으로 1차 면접 끝날 테니까, 곧 2차 면접 일정을 잡아야 합니다. 다음 주 수요일부터 시작할 예정인데, 대표님도 참가하실 건가요?"

"참가해야지. 여태껏 그래 왔으니까."

1차는 실무진 면접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2차 면접은 가급적 이면 대표인 이강진이 직접 참가를 하려고 노력해 왔다.

아무리 바빠도 자신과 함께할 사람은 직접 본인의 눈과 귀로 보고 듣고, 그리고 확인한 다음에 결정을 내리고 싶었다.

보고서를 닫은 이강진은 시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배가 고프다 싶더니 어쩐지.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네. 밥이 나 먹으러 가자."

"어디로 가실 건가요?"

"가까운 데 가야지."

가까운 곳, 즉 바라 식 당이다.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데다 맛도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가게에 들어선 이강진과 나두석.

그 순간.

이강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중대장님?"

< 제103화. 1분대 면회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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