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1화. 동원훈련 (1) >
제111화. 동원훈련 (1)
문자를 확인한 결과.
이강진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같은 날짜네.”
15일부터 17일까지.
훈련받을 장소도 백우호와 동일했다.
같이 2박 3일 동안 동원 훈련을 받을 친구가 생기자 이강진은 안도를 했다.
‘회귀하기 전에는 동원 훈련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때는 청주에 계속 있었던 탓에 옛 전우들과 같이 훈련을 받을 확률이 다소 낮았다.
하나 지금은 서울로 전입신고를 해 뒀기 때문에 이 근처에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백우호도 마침 근방에 살아서 같이 훈련을 받으니까, 라인혁과 오호만도 잘하면 이강진, 백우호와 같이 훈련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일 출근하면 형들한테 한번 물어봐야겠네.’
훈련받을 날짜가 같다면, 그들도 이강진처럼 이미 문자를 받았을 것이다.
만약 두 사람까지 같은 일자, 장소로 배정된다면······.
‘시끌벅적한 동원 훈련이 되겠어.’
* * *
이강진은 내심 라인혁과 오호만도 같이 동원 훈련을 받는 걸 기대했었지만.
안타깝게 불발로 끝나게 되었다.
라인혁이 어제저녁에 받았던 동원 훈련 안내 문자를 보여 주면서 말했다.
“문자가 오긴 했는데, 나는 너희 훈련받기 전에 먼저 받을 거 같다.”
이강진, 백우호보다 2주 먼저 동원 훈련을 받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오호만도 라인혁과 같은 일자에 배정되었다.
“어떻게 또 둘, 둘 이렇게 갈라졌네. 기왕이면 우리 넷이 같이 받으면 참 좋을 텐데.”
라인혁도 많이 아쉬워했다.
최악의 수는 전부 다 따로 훈련을 받는 거다.
다행히도 그런 경우의 수는 면했다.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붙어 있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해야만 했다.
“요즘 동원 훈련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이 형들이 먼저 체험하고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알았어. 정보 기대할게.”
이미 이강진은 다 알고 있었지만, 라인혁을 위해서 모르는 척해 주기로 했다.
희한하게도 동원 훈련을 받았을 당시의 일도 대부분은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도 훈련받을 부대는 다르니까.’
라인혁이 가져오는 정보가 정말로 유용하게 쓰일지도 모른다.
* * *
동원 훈련 때문에 라인혁과 오호만은 2박 3일 동안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자리를 비워도 이미 부사수들의 역량이 충분히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공백이 눈에 띌 정도로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물론 일주일, 한 달, 이런 식으로 장기간 자리를 비웠더라면 공백이 크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2박 3일이니까 가능한 거였다.
화요일에 동원 훈련을 받기 위해 출발했던 라인혁과 오호만.
첫째 날 저녁.
라인혁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라인혁 : 강진아, 뭐 하고 있냐?
뜬금없이 날아온 메시지.
이강진은 곧장 답장을 보냈다.
-이강진 : 잔업 중
-이강진 : 왜?
-라인혁 : 여기 더럽게 심심해. 정신병 걸릴 거 같다.
-라인혁 : 살려 주라······ ㅜ_ㅜ
메시지를 확인한 이강진은 키득키득 웃음을 흘렸다.
원래 동원 훈련에 참가하기 전에 핸드폰을 제출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그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라인혁의 성격상, 절대로 폰을 반납하지 않을 것이다.
메시지로 계속 이야기 상대 좀 되어 달라고 조르는 라인혁.
이강진은 그에게 오호만이랑 놀면 되지 왜 자신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냐고 물었다.
-라인혁 : 호만이 자고 있어.
자는 사람을 깨워서 억지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라인혁의 메시지를 보면서 이강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인혁이 형 모습이 남 일 같지가 않네.’
어쩌면 2주 후의 이강진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 * *
드디어 2박 3일간의 동원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라인혁과 오호만.
오자마자 오호만은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라인혁은 군복을 입은 채로 사무실에 와서 이강진에게 그동안 쌓인 썰 보따리를 풀었다.
“야, 요즘 동원 훈련, 개 빡세. 돌아 버리는 줄 알았다니까?”
흥분을 삭히지 못하는 라인혁. 그가 놀라운 말을 꺼냈다.
“행군시킨다니까, 행군!”
“에이, 거짓말하지 마. 동원 훈련에 무슨 행군이야.”
“정말이라니까! 뭐였더라? 강한 육군 뭐시기 저시기 하면서 요즘은 예비역들도 빡세게 훈련을 시키게끔 위에서 지침 사항이 내려왔다고 행군까지 일정에 포함시켰대. 그거 듣고 나 참······ 진짜 어이가 없더라.”
회귀 이전에 받았던 첫 번째 동원 훈련의 기억을 떠올리는 이강진.
아무리 생각해도 훈련 내용 중에 ‘행군’은 없었다.
‘그냥 인혁이 형이 운이 안 좋았던 거겠지.’
가끔 타이밍이 안 좋으면 이런 재수 없는 경우도 발생하곤 한다.
이강진이 훈련받을 때에는 안 그럴 것이다.
그냥 일시적인 현상이리라.
그렇게 믿기로 했다.
* * *
드디어 동원 훈련 첫째 날이 다가왔다.
오랜만에 군복을 꺼내 입은 이강진은 전신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내가 싫다, 진짜로.”
군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왜 이리도 꼴 보기 싫은지.
국방색만 봐도 몸에 힘이 절로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군복을 입은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자꾸 의욕이 사라지고 나태함이 몰려왔다.
그저 군복 한번 입었을 뿐인데도 벌써부터 피곤했다.
“슬슬 가야겠네.”
시간에 맞춰서 입소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부대에서 지각했다고 통과를 안 시켜 줄 수도 있다.
그러면 다음 훈련을 기약해야 한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군대도 마찬가지다. 먼저 갔다 온 사람이 승리자다.
어차피 받아야 할 훈련, 차라리 빨리 받고 끝내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나두석에게 2박 3일 동안 대리인 역할 잘 부탁한다는 문자를 보내 놓은 뒤, 곧장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려고 할 때쯤 나두석한테서 답장이 왔다.
잘 다녀오라는 내용의 문자였다.
이런 문자를 받으니, 이강진은 갑자기 입대할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갈비 없는 갈비탕이라도 먹고 가야 하나?”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 * *
위병소 바로 앞에 차를 주차시킬 수 있는 커다란 공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에 차를 놓아둔 이강진은 스마트폰을 만지면서 백우호를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찰나.
예비역들이 이강진을 알아보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저 사람, 이강진 맞지? 외식의 왕도에 출연 중인 그 이강진 대표.”
“어? 진짜네!”
“와, 연예인이랑 같이 훈련받겠네. 내 평생 이런 경험을 다 해 보고. 신기하고만.”
엄밀히 말하면 이강진은 연예인이 아니다.
그러나 티비에 자주 나오면 요즘은 연예인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몇몇 예비역이 용기를 내어 이강진에게 말을 붙였다.
“저기······ 이강진 대표님 맞죠?”
“예, 그렇습니다만.”
외식의 왕도 때문에 이강진을 처음 보는 사람들도 그에게 ‘대표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낯선 사람들한테도 대표님이라고 불리니 기분이 참 묘했다.
“혹시 괜찮으시면 사진 같이 찍어 주실 수 있나요? 제 여자 친구가 대표님 팬이거든요. 부탁 좀 드릴게요.”
“네, 괜찮습니다.”
이강진의 팬 서비스는 현역이었을 때부터 후하기로 유명했다.
찰칵!
“감사합니다, 대표님!”
“저기, 괜찮으시면 저도 찍어 주실 수 있나요?”
“저희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본의 아니게 이강진 팬 미팅이 열리고 말았다.
이제 이런 현상은 많이 익숙해졌다.
한창 예비역들과 사진을 찍어 주던 중에 이강진의 눈에 익은 차 한 대가 주차장에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남자가 큰 목소리로 이강진을 불렀다.
“강진아!”
그의 등장에 현장은 다시 한번 시끌벅적해졌다.
요즘 대세 래퍼로 자리매김하게 된 백우호.
20대 남자들이라면 거의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이강진과 백우호, 두 사람의 만남에 예비역들의 손이 바빠졌다.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낸 뒤에 카메라 어플을 실행시키고 사진을 찍어 댔다.
영상 촬영을 하는 이도 있었다.
점점 위병소 앞에 혼란스러워졌다.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상사 계급장을 단 부사관이 직접 나섰다.
“자자자! 부대 앞에서 이러지들 마시고 다들 입소합시다!”
그가 통제를 해 준 덕분에 소란스러움이 가라앉았다.
입소 전에 백우호는 난감한 표정으로 자신의 배 부분을 가리켰다.
“살이 쪄서 그런지 벨트가 안 맞더라.”
이강진도 백우호처럼 전역 이후에 살이 좀 쪘었다.
그러나 이내 살을 빼야겠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운동을 진행했다.
그 덕분에 백우호처럼 허리띠가 안 맞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난 딱 맞아.”
“이 배신자. 살이 찌면 같이 쪄야 하는 것이 전우 아니냐?”
“살이 찌고 말고에 전우가 어디 있어. 이왕 이렇게 된 거, 2박 3일 동안 살 좀 빼고 가라.”
맛없는 짬밥을 다시 먹게 생겼으니, 싫어도 알아서 살이 빠질 것이다.
그 생각에 백우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입소하기 전에 치러야 하는 절차가 있다.
“복장 검사하겠습니다. 버클이 보이도록 전투복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역 시절 때처럼 군복을 제대로 입고 왔는지.
전투화는 잘 신고 왔는지.
이런 것들을 확인해야 한다.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허리띠나 전투화 끈 같은 것을 따로 팔고 있었다.
이강진은 완벽하게 갖춰 입고 왔기 때문에 살 필요까진 없었다.
백우호도 마찬가지였다.
복장 검사는 무사히 통과했다.
하나 아직 끝이 아니다.
신원 확인과 동시에 꼭 거쳐야 하는 난관이 있다.
“스마트폰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백우호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안 가져왔는데요.”
“정말입니까?”
“예.”
물론 거짓이다.
주차장에서 이강진과 대화를 나눌 때만 하더라도 백우호는 스마트폰을 두세 차례 계속 확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부대 내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다가 적발될 경우에는 강제로 퇴소 조치 당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정말로 안 가져오셨습니까?”
현역 시절 때 산전수전 다 겪었던 백우호가 고작 이따위 경고에 겁먹을 리가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다음, 이강진의 차례가 도래했다.
“스마트폰 반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백우호는 이강진이 자신처럼 시치미를 뚝 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 있습니다.”
“······!”
순순히 스마트폰을 반납하는 이강진의 모습에 백우호는 헛숨을 삼켰다.
천하의 이강진이 스마트폰을 제출하다니!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예, 수고하세요.”
간부에게 고생하라는 말을 남기고 백우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너, 지금 스마트폰 제출하고 온 거냐?”
“어.”
“와······ 이강진도 다 죽었네. 군대에 있을 때 별의별 꼼수를 다 부리던 네가 고작 저런 말에 겁을 다 먹고.”
그때.
이강진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건빵주머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이강진의 스마트폰이었다.
“아직 한 발 남았다.”
“뭐, 뭐야! 스마트폰이 두 개냐?”
“저기에다 반납한 건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거. 이거는 개인용.”
“크크큭! 역시 이강진!”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된 줄 알았던 이강진이었으나, 오히려 이전보다 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숨기고 있었다.
< 제111화. 동원훈련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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