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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30화 (330/347)

< 제111화. 동원훈련 (3) >

제111화. 동원훈련 (3)

PX에서 사 온 것들로 배를 채우는 동안, 이강진은 훈련 일정표를 살폈다.

1일 차에 주특기와 독도법, 그리고 화생방 훈련이 몰려 있었다.

내일은 오전에 사격을 시작한다.

그리고 오후에······.

“진짜로 행군이 들어 있네.”

“뭐? 행군이라고?”

이강진의 혼잣말을 들은 백우호는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거짓말이지? 동원 훈련에 왜 행군이 들어 있어?”

“나도 그렇게 믿었다.”

하나 2일 차 오후 훈련 일정에 ‘주간 행군’이라는 네 글자가 딱 새겨져 있었다.

‘인혁이 형이 나 겁주려고 일부러 거짓말한 줄 알았는데.’

설마 그게 사실일 줄이야.

라인혁이 한 말이 거짓이 아님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때마침 조교가 생활관 복도를 지나쳐 가고 있었다.

백우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조교! 잠깐만 이쪽으로.”

“왜 그러십니까, 선배님?”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무엇 때문에 그런 걸까.

양희언은 일단 백우호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했다.

“이 형이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러는데, 내일 훈련에 주간 행군이 잡혀 있거든. 이거, 우리가 아는 그 행군 아니지?”

“주간 행군 맞습니다.”

“예비역들을 데리고 행군을 하겠다고? 이게 원래 있었어?”

“원래는 아닙니다. 작년까진 없었는데, 올해부터 예비역도 현역만큼의 전투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위에서 지침이 내려와서 새로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런다고 예비역들의 전투력이 올라가기나 할까.

전투력은 몰라도 짜증은 한없이 올라갈 것 같았다.

“그보다 선배님들, 곧 점심시간 끝나니까 집합 준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양희언은 갈 길을 가 버렸다.

황당하게 그지없는 일에 백우호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강진아, 행군한다는데······ 우리, 어쩌냐?”

이강진이 할 말은 이것뿐이었다.

“거리가 짧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아니면 짬처리 되기만을 바라든지.

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 *

주특기 훈련을 위해 모여든 예비역들.

이들은 의욕이라는 게 전혀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연병장에 집합했다.

“각 조별로 흩어져서 주특기 훈련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주특기 훈련 끝난 뒤에는 실전 서바이벌 훈련 진행할 테니, 다들 성실히 훈련에 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대답하기도 귀찮아하는 예비역들.

그들을 보던 중대장이 의미심장한 말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이번 동원 훈련부터 성과제가 적용된다는 거, 다들 알고 계십니까?”

성과제라는 말에 예비역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은 들어 봤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훈련마다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예비군들을 조기 퇴소 시켜 주는 제도를 말합니다.”

조기 퇴소!

예비역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원래 퇴소 시간이 17시라면, 성적 우수자들의 경우에는 오후 훈련 없이 바로 오전 11시에 칼같이 퇴소시켜 줄 예정입니다.”

자그마치 6시간이나 일찍 퇴소시켜 준다.

군대에서의 6시간은 사회에서의 20시간과 견주어도 될 만큼 가치가 있는 시간이다.

“조기 퇴소를 위해 다들 힘내 주시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아까와 다른 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조기 퇴소가 걸려 있다면 이야기가 아주 많이 달라진다.

이강진과 백우호는 서로를 바라봤다.

이들이 노리는 건 단 하나.

‘무조건 조기 퇴소다!’

오랜만에 1중대의 전설이 움직일 시간이다.

* * *

서바이벌 훈련은 동원 부대 뒤에 위치한 작은 야산에서 진행되었다.

나무 기둥 곳곳에 페인트 탄이 묻어 있었다.

페인트 총으로 상대방을 가격하면 그대로 적은 아웃.

최종적으로 승리한 팀에게 점수 2점이 부여된다.

조기 퇴소는 입소한 예비역들 중 상위 20퍼센트 이상의 성적을 거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이 20퍼센트 안에 들기 위해선 초반부터 점수를 많이 따 둬야 한다.

이강진이 포함된 1조는 서바이벌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분대장은 국민 영웅이라 불렸던 이강진이 맡기로 했다.

“미끼를 쓰는 작전을 사용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미끼요?”

“네, 발놀림이 빠른 한두 명을 이용해서 적들을 끌어 들이는 겁니다. 나머지 인원은 근처에 매복해 있다가 적들이 보인다 싶으면 바로 발포하면 됩니다.”

유인작전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적인 작전이다.

하지만 효과가 좋은 작전이기도 하다.

이강진과 같은 조로 편성된 예비군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총원은 일곱 명.

적군을 모두 섬멸하는 것이 승리 조건이다.

적군을 유인할 미끼 역할은 발이 빠른 백우호와 이강진이 직접 맡기로 했다.

모든 준비가 다 끝났을 때.

차석준 병장이 보호구를 착용한 상태로 깃발을 들어 올렸다.

“시작!”

깃발이 내려감과 동시에 양 팀의 인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강진과 백우호가 먼저 페인트 탄을 쏘면서 요란하게 이들 앞에 등장했다.

타다다다다!

거의 페인트 탄을 난사하다시피 했다.

이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유인이다.

어그로를 잔뜩 끈 다음에 이강진과 백우호는 재빨리 뒤로 이동했다.

뒤쪽에서 페인트 탄이 날아왔지만, 페인트 총은 이들이 현역 때 사용했던 K-2나 K-1처럼 정확도가 높은 무기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페인트탄은 이들의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기만 할 뿐, 이렇다 할 유효타를 주진 못했다.

이쯤이면 됐다 싶을 때.

이강진은 숨어 있던 분대원들에게 외쳤다.

“지금입니다!”

1조원들이 엎드려쏴 자세로 일제히 적군을 노렸다.

탕탕탕!

사방에서 날아드는 페인트 탄에 상대 팀은 우왕좌왕했다.

여기까지는 나름 좋은 흐름이었다.

하지만.

이강진이 미처 예상 못 한 게 있었다.

‘왜 이렇게 못 맞혀!’

이쯤 해 줬으면 이강진의 1조가 압도적인 전력 차이로 승기를 가져왔어야 했다. 그러나 1조원들의 사격 실력이 이렇게까지 형편없을 것이라고는 예상 못 했다.

시간이 지나니 오히려 1조가 불리해지고 있었다.

벌써 세 명이나 아웃당했다.

남은 인원은 이강진, 백우호를 비롯해서 단 네 명뿐.

반면, 상대방은 단 한 명도 아웃당하지 않은 상태였다.

7대 4.

이강진의 1조가 불리하다.

“어, 어쩌죠?”

조원이 당혹감에 사로잡힌 얼굴로 이강진에게 물었다.

“······.”

생각에 잠기는 이강진.

수적으로 불리한 싸움을 어떻게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을지, 그걸 생각해 내야 한다.

방법이 없진 않았다.

“일단 저쪽으로 이동하죠!”

이강진의 말대로 1조원들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한 명이 페인트 탄을 맞고 아웃됐다.

남은 인원은 고작 세 명.

한 명을 희생한 대신에 이강진과 1조원들은 언덕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페인트 탄을 장전한 이강진.

사실 페인트 총에는 비밀이 하나 숨겨져 있었다.

타앙!

이강진이 쏜 페인트 탄 한 발이 직선으로 쭉 날아가기 시작했다.

하나 페인트탄은 이내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

떨어진 페인트 탄이 상대팀 인원의 정수리에 정확히 명중했다.

한 발을 더 발사한 이강진은 또 한 명을 추가로 아웃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페인트탄은 직선으로 날아가지 않는다.

곡사 형태로 날아간다.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일부러 언덕 위를 점령한 것이다.

이강진과 1조원들은 마음 놓고 상대방을 저격할 수 있지만, 상대 팀은 언덕 위에 숨어 있는 이강진 일행을 쉽게 노리지 못했다.

백우호와 남은 1조원도 이강진의 곡선 사격을 그대로 따라 했다.

그 많던 적군들이 순식간에 아웃되었다.

남은 인원은 단 한 명!

마지막 타깃은 이강진의 몫이었다.

삐이익!

차석준이 입에 문 호루라기를 힘차게 불었다.

“1조 승!”

“아싸!”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포효를 내지르는 1조원들.

이들은 이강진의 이름을 연호하면서 그를 찬양했다.

“역시 국민 영웅! 덕분에 살았습니다!”

“우리, 동원 훈련 동안만큼은 강진 씨만 믿고 따릅시다!”

“좋죠!”

예비역들의 마음마저 사로잡게 된 마성의 남자, 이강진.

그를 따르면 조기 퇴소로 향하는 길 또한 활짝 열리게 되리라.

이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서바이벌 훈련을 끝낸 뒤 바로 화생방 훈련이 시작되었다.

물론 화생방 훈련에도 점수가 걸려 있었다.

“제한 시간 안에 방독면을 다 쓰시면 됩니다. 보호 두건까지 다 착용한 뒤에 정화통이 제대로 결합되었는지 확인하고, 양손을 수평으로 펼쳤다가 접었다가를 반복하면서 ‘가스, 가스, 가스!’라고 외치면 됩니다. 여러분들도 현역 시절 때 다 해 보셨을 테니까, 설명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예비군들이 관심 있어 하는 건 이런 내용이 아니다.

“시간 내에 완벽하게 방독면 마스크를 착용하면 점수를 부여하겠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어느새 모두가 다 점수를 노리는 매의 눈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팀전이 아닌 개인전이다.

이강진은 자신의 차례가 되기 전에 미리 방독면을 세팅했다.

‘머리끈뭉치는 앞으로 돌려 두는 게 좋지.’

이것을 머리 뒤로 바로 넘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착용 완료.

하지만 방독면을 착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부수물자들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안 돼.’

그러면 제한시간 안에 방독면을 다 썼다 하더라도 탈락 처리 된다.

이 순간을 위해서 이강진은 꼼수를 발동하기로 했다.

‘떨어질 거 같으면, 미리 빼놓으면 그만이지!’

어차피 조교들이 방독면 안에까지 살펴보진 않을 것이다.

수통 마개를 비롯해서 부수 물자들을 미리 건빵주머니 안에 넣어 놓은 이강진.

그러는 동안, 어느새 이강진의 차례가 되었다.

“가스!”

“가스!”

간부의 외침에 따라 예비역들은 방독면 주머니 입구를 뜯어냈다.

방독면 마스크를 꺼내는 것까진 좋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부수 물자들이 문제였다.

“5번 탈락! 7번 탈락!”

부수 물자 때문에 순식간에 두 명이 탈락했다.

아직 화생방 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미리 세팅해 놓은 그대로 머리끈뭉치를 뒤로 넘긴 이강진.

보호 두건 끈을 겨드랑이에 끼운 다음에 손바닥으로 정화통을 확인하는 척 연기만 하고 바로 ‘가스, 가스, 가스!’ 구호를 외쳤다.

이강진의 뒤를 이어 백우호도 마무리를 지었다.

교관이 직접 돌아다니면서 방독면 마스크가 잘 착용되었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오른쪽에 있는 두 분한테만 점수 드리겠습니다.”

이강진 그리고 백우호 콤비만 점수를 획득했다.

두 사람은 힘 있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조기 퇴소를 향한 이들의 열정은 여름의 무더위보다도 뜨거웠다.

* * *

모든 훈련을 마치고 생활관으로 돌아온 예비군들.

저녁 메뉴 또한 최악이었다.

이럴 때를 위해서 PX에서 잔뜩 식량을 비축해 놓았다.

“강진아, 컵라면 콜?”

“좋지.”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누군가가 이강진을 불렀다.

“혹시 이강진?”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이강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라원이잖아? 네가 여긴 어떻게······.”

“나도 동원 훈련 받으러 왔지. 설마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반갑다, 야.”

한때 스파링을 두고 경쟁을 벌였던 라이벌, 원라원.

아니,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불러선 안 된다.

“아버님 국회의원 당선되신 거, 축하한다.”

“고마워.”

못 본 사이에 그는 귀한 몸이 되었다.

< 제111화. 동원훈련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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