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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31화 (331/347)

< 제111화. 동원훈련 (4) >

제111화. 동원훈련 (4)

오랜만에 만나게 된 원라원.

백우호는 이강진에게 조용히 물었다.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고? 누군데?”

“원도문 의원님이 라원이 아버님이셔. 라원이가 누군지는 너한테도 몇 번 말했었어.”

“난 기억이 안 나는데.”

기억이 나게끔 해 주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나 휴가 나갈 때마다 스파링 두고서 매번 서점에서 경쟁 붙었던 사람 있다고 했었잖아.”

“아! 스파링 아저씨구나!”

‘스파링 아저씨’라는 표현에 원라원은 쓴웃음을 흘렸다.

틀린 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정하기에도 참 부끄러웠다.

그때는 스파링 하나에 목을 맬 때였지만, 지금은 서점에 가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강진이 준 스파링도 일단 받긴 했는데, 그렇다고 막 집중해서 보거나 그러진 않았다.

만약 원라원이 현역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랐을 테지만 말이다.

미리 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아 둔 원라원이 이강진에게 차례를 넘겼다.

“여기 뜨거운 물 잘 나오더라. 훈련소 때처럼 덜 익은 라면 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아.”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나저나 같이 훈련받을 줄 알았더라면 미리 연락해 볼 걸 그랬네.”

동원 예비군은 입소한 순서대로 번호와 조가 편성된다. 아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입소를 같이하는 경우가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강진은 백우호와 같이 훈련을 받는다는 걸 미리 알았기 때문에 기다렸다가 둘이 나란히 같이 입소를 했다. 그래서 앞뒤 연결 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같은 조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중에 이야기 나눌 시간 있으면 그때 보자.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먼저 가 볼게.”

“어, 아버님한테도 다시 한번 국회의원 당선 축하드린다고 대신 전해 줘.”

“알았어.”

원라원이 사라진 뒤, 백우호가 목소리를 낮췄다.

“너, 국회의원 쪽하고도 인맥이 있냐?”

“어, 우리 가게에 오셔서 여러 번 식사도 하고 그러셨어.”

“이야, 인맥 끝판왕이네.”

대한민국은 학연, 혈연 등 인맥의 힘이 없으면 힘든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그런 일조차 발생하지 않도록 이강진은 군대에 있을 때부터 계속 인맥을 관리해 왔다.

백우호도 관리해야 하는 중요 인맥 중 하나였다.

“넌 연예계 쪽 담당이니까, 앞으로 그쪽에 내가 볼일 생기면 잘 좀 부탁할게.”

“짜식이. 야, 우리가 어디 하루 이틀 본 사이냐? 지옥 같은 군대를 같이 헤쳐 왔는데, 내가 그런 것도 못 해 줄까. 나만 믿어라. 내가 힘닿는 데까지 무조건 도와줄게!”

이강진의 말이라면 백우호는 무조건 들어줄 생각이다.

그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기 때문이다.

* * *

라면을 들고 야외 벤치로 향한 이강진과 백우호.

이동하던 와중에 이강진은 심각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조교들을 발견했다.

“진짜로 PX에 라면이 없대?”

“예, 그렇습니다.”

“하······ 그래서 내가 미리 사 놓으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건만.”

“죄송합니다, 차석준 병장님.”

예비역들이 호시탐탐 PX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부대에 있는 현역 병사들도 동원 훈련 기간 때만큼은 PX를 이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난감해하는 차석준.

이강진은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조교야.”

“병장 차석준! 예, 선배님.”

“라면 먹게?”

“네, 그렇습니다.”

“하긴, 오늘 저녁밥이 완전 쉣이긴 하지.”

그래서 이강진도 백우호와 같이 라면에 물을 받아 두고 여기까지 나온 거였다.

“우리, 라면 많이 남았는데, 하나 줄까?”

“아닙니다. 굳이 안 그러셔도 됩니다, 선배님.”

“어허, 괜찮아. 뭐 먹고 싶어? 종류별로 사 뒀으니까 말만 해.”

“······.”

차석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얌전히 이강진의 호의를 받느냐.

아니면 맛없는 짬밥으로 저녁을 해결하느냐.

선택의 시간이 도래했다.

“그럼······ 전 짜X게티로 하겠습니다.”

“컵라면? 아니면 봉지라면?”

“봉지 라면이 좋습니다.”

“우리 후배가 먹을 줄 아네. 그렇지. 봉지 라면이 맛있긴 하지. 알았어, 기다려 봐. 우호야, 내 라면 좀 맡아 줘. 생활관에 좀 다녀올 테니까.”

여기서 생활관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다. 라면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이강진. 그는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아 이들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자, 여기.”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선배님.”

“그래. 그리고 우리 일병 후배도 괜찮다면 이거 챙겨 둬.”

신X면 봉지 라면을 건네줬다.

차석준만 챙겨 주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양희언도 같이 챙겨 주기로 한 것이다.

양희언은 차석준의 눈치를 살폈다. 차석준은 자기 눈치 살필 거 없다면서 선배님이 주는 거 그냥 받으라고 말을 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그래, 고생하고.”

“예!”

양희언을 먼저 보낸 뒤.

이강진은 차석준과 함께 같이 라면 취식을 하기로 했다.

면발을 크게 삼킨 백우호가 차석준을 보면서 물었다.

“넌 전역 언제야?”

“7월입니다.”

“얼마 안 남았네?”

“예, 그렇습니다.”

순간 이강진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말년들은 보통 동원 훈련 조교로 잘 안 나오려고 할 텐데. 무슨 사정이라도 있어?”

“사실 저도 나오기 싫었는데, 인원이 너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저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인력 부족.

그건 이강진이 1075대대에서 근무할 때에도 항상 겪었던 문제였다.

매번 행보관한테 우리 분대로 신병 좀 달라고 슬쩍슬쩍 말을 흘려야 한 명 줄까 말까 했다.

그때가 떠오른 모양인지 이강진은 왠지 모르게 차석준이 측은하게 보였다.

인력 부족 때문에 말년에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이곳까지 끌려 나오게 된 그가 불쌍해 보였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 하나 있었다.

“이번 동원 훈련을 마지막으로 앞으로 조교 일은 안 하게 될 겁니다. 그 전제 조건으로 이번 훈련에 참가하게 된 겁니다. 행보관님이 그렇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이제 본격적으로 말년 병장의 행보를 걷게 된 차석준.

“전역하면 뭐 할 건데?”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복학하기 전에 아르바이트 좀 하면서 생활비도 벌고······ 그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바할 거면 나중에 우리 가게로 와. 바라 식당이라든지, 한아름 수제버거라든지. 카페 알바 하고 싶으면 티날레로 와도 좋고. 고깃집이나 초밥, 디저트 가게도 추가로 계속 오픈할 테니까, 원하는 거 있으면 이 형한테 말만 해. 바로 알바로 꽂아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선배님! 제가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말년인데도 불구하고 동원 훈련 조교 일을 하게 되어서 상당히 불만이 많았던 차석준.

그러나 이강진 덕분에 그 불만이 많이 사그라들게 되었다.

세상은 인맥 사회다.

그건 이강진에게만 통용되는 게 아니었다.

차석준같이 전역을 앞둔 일반 말년 병장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 * *

동원 훈련 2일 차 아침이 밝았다.

새벽에 눈을 뜬 예비역들은 오랜만에 듣는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점호를 받기 위해 환복을 개시했다.

아직 눈을 못 뜬 예비역들도 곳곳에 보였다.

이강진은 생활관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환복을 마쳤다.

“우호야, 나 먼저 나간다.”

“벌써 준비 다 끝났어? 무지하게 빠르네.”

현역 시절 때에도 이강진만큼 빠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덕분에 1분대 후임들은 항상 이강진보다 빨리 아침점호 준비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었다.

이강진의 부지런함은 동원 훈련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연병장으로 나오니, 이강진 단 한 명뿐이었다.

“괜히 일찍 나왔나.”

나온 김에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을 풀었다.

살을 빼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여 두는 게 좋다.

‘그나저나 공기는 참 좋단 말이지.’

군대가 가진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다.

군대 전경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어느새 예비역들이 모두 연병장에 집합했다.

아침점호는 현역 시절 때 받았던 것과 비슷하게 펼쳐졌다.

“지금부터 아침 구보를 실시하겠습니다.”

“네?”

“구보를 한다고요?”

예비역들은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하며 귀를 의심했다.

동원 훈련에 구보라니,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러나 중대장의 태도는 완고했다.

“딱 한 바퀴만 뛰고 들어갑시다. 자자! 대열들 갖추시고!”

“아휴······.”

“새벽에 무슨 구보야······.”

중대장이 어르고 달랜 덕분에 겨우 아침 구보 대형이 만들어졌다.

“전체 뛰어! 가!”

열정이 넘치는 중대장 덕분에 예비역들은 아침부터 땀을 흘려야만 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이동 중에 군가 한다’ 스킬은 사용하지 않았다.

설령 그렇게 했어도 잔득 뿔이 난 상태가 되어 버린 예비역들이 군가를 불러 줄 리가 만무했다.

중대장도 그걸 잘 아는 듯했다.

약속대로 딱 한 바퀴를 돌고 나서야 아침점호가 끝났다.

해산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예비역들은 생활관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예비역들은 씻기를 포기하고 생활관 바닥에 바로 드러누워 부족한 잠을 취했다.

백우호도 그런 경우였다.

하나 이강진은 달랐다.

“나 씻고 올게.”

“너도 참 부지런하다. 난 귀찮아서 못 하겠어.”

현역 때에는 이런 일정을 어떻게 소화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 * *

오전 일정으로 사격 훈련이 잡혀 있었다.

전역 이후 처음으로 사격에 임하게 된 이강진.

원래대로라면 대충 조정간을 연발에 두고 마구 갈렸을 것이다. 하나 이번 동원 훈련은 달랐다.

사격통제관이 예비군들을 세워 두고 이런 말을 했다.

“만발을 맞추신 분들에게는 특별히 10점을 부여하도록 하겠습니다.”

10점. 어마어마한 점수다.

여태껏 점수를 챙기지 못했던 예비군들도 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착실하게 점수를 쌓아 온 이강진, 백우호는 순위를 방어하기 위해 무조건 만발을 맞춰야 한다.

“우호야, 자신 있지?”

“당연하지. 한 발 한 발 신중을 기해서 쏠 거다.”

단지 불안 요소가 있다면, 지금 들고 있는 총이 이들이 원래 사용하던 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처음 만지는 총으로 만발을 맞힌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통제관은 이강진이 속한 조에게 손짓했다.

“올라가시면 됩니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는 1조 멤버들.

화생방 훈련처럼 사격 또한 개인플레이다.

엎드려쏴 자세를 취한 이강진.

멀리 보이는 표적지를 가늠쇠에 맞춰 봤다.

‘할 만해!’

군대는 자신감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있다면, 웬만한 건 다 해결할 수 있다.

사격도 마찬가지다.

지레 겁을 먹으면 맞힐 것도 못 맞히게 된다.

“준비된 사수부터 사격 개시.”

발포 허가가 떨어졌다.

기념비적인 첫 발은 이강진의 것이었다.

그다음, 백우호의 총성이 뒤를 이었다.

타앙! 탕! 탕!

총을 쏘던 순간.

갑자기 풀에서 방아깨비가 튀어나온 탓에 이강진의 총구가 크게 흔들렸다.

탕!

‘······망할!’

마른침을 절로 삼켰다.

‘한 발 빗나갔어!’

만발이 아니고선 의미가 없다.

갑자기 찾아온 위기!

이강진의 이마에 주룩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제111화. 동원훈련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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