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32화 (332/347)

< 제111화. 동원훈련 (5) - 14권 완결 >

제111화. 동원훈련 (5)

20발 모두 발사한 이강진은 사격을 마무리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한 발, 딱 한 발 빗나갔는데!’

이 한 발 차이 때문에 조기 퇴소의 기회를 날려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졌다.

이렇게 된 이상.

마지막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 볼 수밖에 없었다.

‘동원 훈련에서 만발을 맞히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만발을 맞힌 예비군이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열 명 안팎이지 않을까.

그렇게 믿어야만 한다.

“전 사로 사격 끝. 전 사로 사격 끝. 표적지 확인 후 교체.”

예비군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사격했던 표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먼저 도착한 백우호는 환호를 질렀다.

“그렇지! 만발이다!”

백우호는 이로써 조기 퇴소가 확정되었다.

그렇다면 이강진은?

“······.”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토록 긴장되었던 적이 또 있을까.

표적지를 뗀 이강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탄착구를 확인했다.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세던 이강진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스물?’

뭔가 이상했다.

한 발이 분명 빗나갔다. 그건 이강진이 직접 육안으로 확인했다.

그럼 대체 이 한 발은 어디서 날아온 건가?

이강진의 왼쪽 사로에서 사격했던 예비군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뭐야! 한 발 어디 갔어! 왜 열아홉 발이야!”

그제야 이강진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옆에서 쏘던 아저씨가 내 표적지에 한 발 쏴 줬나 보네.’

이 정도면 하늘이 이강진에게 내일 조기 퇴소 반드시 하라고 등을 떠밀어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 * *

드디어 예비군들이 제일 싫어하는 주간 행군 차례가 다가왔다.

조교들이 미리 말했던 것처럼 단독군장 차림으로 뒷산을 왔다 갔다 하면 주간 일정은 모두 끝난다.

예상 소요 시간은 1시간에서 1시간 반 사이.

이 더운 날씨에 산을 탄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폭염 주의보라도 안 내리나?’

아니면 비라든지.

이런 기상 악화가 없는 한, 짬처리 되는 건 매우 어려워 보였다.

주간 행군은 각 생활관별로 팀을 짜서 조교들이 직접 리드를 하는 식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선배님들, 슬슬 출발하겠습니다.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차석준 병장이 먼저 앞장섰다. 그 뒤를 예비군들이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저벅, 저벅, 저벅.

뒷산이라도 산은 산이라는 걸까. 경사가 제법 된다.

앞서 걸어가던 예비역 몇몇이 차석준에게 딜을 걸었다.

“조교야, 그냥 적당한 곳에 가서 짱박히면 안 되냐?”

“날씨도 더운데, 괜히 고생할 필요 없잖아.”

“어차피 간부들도 안 보이고. 어때, 좋지?”

그러나 차석준은 ‘조금만 참으시면 됩니다.’라는 말만 계속 반복할 뿐이었다.

그렇게 10분가량을 묵묵히 걸어가던 차석준.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휴식 구간이니까 이곳에서 쉬다가 내려가겠습니다. 10분간 휴식!”

예비군에게 복명복창 따윈 없었다.

쉰다는 말에 이들은 쓰고 있던 방탄모를 바로 벗고는 그것을 의자 삼아 앉았다.

군복을 입고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절로 체력이 닳고 있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이 망할 군복을 벗어 버리고 싶었지만, 아직 동원 훈련이 끝나려면 한참 남았다.

동원 훈련 끝이 무언가.

행군도 아직 안 끝났다.

이강진은 손목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휴식 시간으로 예정되어 있던 10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차석준과 양희언은 이들에게 행군해야 한다고 재촉하지 않았다.

10분이 20분이 되고, 20분이 30분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교들은 침묵했다.

결국 예비역 한 명이 조교들을 불렀다.

“조교야, 우리 행군 이걸로 끝난 거야?”

“휴식도 행군의 일환이지 않습니까? 이대로 40분만 더 버티면, 딱 행군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내려갈 수 있을 겁니다.”

그제야 예비역들은 차석준, 양희언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차석준은 이강진을 향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순간.

이강진은 자신의 작전이 통했음을 깨달았다.

조교들을 잘 대해 주면,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이강진은 일부러 차석준, 양희언에게 봉지 라면을 줬던 것이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그게 ‘정(情)’이라는 것이다.

군대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다. 정이 없을 리가 없다.

전부 이강진의 계산대로였다.

* * *

마지막 남은 야간 훈련.

야간 훈련이라고 해 봤자 사실 별건 없었다.

연병장에서 대충 1시간 정도 멍 때리면서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8시가 되자마자 예비역들은 빠르게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이로써 모든 훈련이 끝났다.

동원 부대에서 보내는 마지막 취침 시간.

점호를 빠르게 끝낸 뒤에 이들은 바로 잠자리에 누웠다.

평상시에는 저녁 10시에 자라고 해도 너무 이른 시간이기 때문에 쉽게 잠에 못 든다.

그러나 새벽부터 일어나서 군복 입고 훈련을 받아서 그런지 벌써부터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낯선 천장을 보면서 생각에 잠기는 이강진.

‘내일이면 퇴소구나.’

오랜만에 겪어 본 군 생활.

비록 2박 3일뿐이었지만, 현역 시절 때 겪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런 시간이었다.

하나 추억은 추억으로 묻어 두는 게 제일 좋다.

‘내일 조기 퇴소 결정되면 바로 나가든가 해야겠어.’

마음은 벌써 부대 밖에 가 있었다.

* * *

금일 아침점호 역시 열정이 넘치는 중대장 때문에 구보로 하루를 시작해야만 했다.

이틀 연속 아침 구보. 동원훈련에서 정말 겪기 힘든 일이었다.

‘산행도 해보고. 별의별 경험을 다 해보네.’

세수를 마친 후에 자리로 돌아온 이강진은 스킨과 로션을 꺼냈다.

그때, 타이밍 좋게 양희언이 생활관을 방문했다.

“선배님들, 식사 집합은 따로 없을 예정이니 알아서 식당으로 식사하시러 가시면 됩니다.”

“조교야, 오늘 아침 메뉴 뭐냐?”

큰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예비군들은 습관처럼 조교에게 식사 메뉴를 물었다.

오늘의 메뉴는 간단했다.

“군데리아입니다.”

“잉?”

“군데리아?”

갑자기 예비군들의 눈이 반짝였다.

왜일까, 다른 건 몰라도 군데리아는 그래도 한번 먹어 보고 싶었다.

그건 이강진과 백우호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룻바닥에 누워서 새우잠을 청하던 백우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진아, 밥 먹으러 가자!”

안 그래도 이강진도 오늘은 아침밥을 먹을 생각이었다.

군데리아라는 말에 평소보다 많은 인원들이 식당을 찾았다.

햄버거 빵에 슬라이스 치즈, 패티 한 장씩, 딸기잼, 샐러드, 그리고 묽은 수프에 우유까지.

그때 먹었던 군데리아 식단 그대로였다.

이강진이 먹는 레시피가 있었다.

우선 딸기잼에 슬라이스 치즈, 샐러드를 끼워 넣고 하나.

나머지는 패티 한 장에 햄버거 소스를 넣어서 먹는다.

남은 빵 조각은 수프에 묻혀서 먹으면 된다.

‘간만에 먹으니까 새롭네.’

현역 시절엔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이상은 먹었던 군데리아.

이등병 때에는 군데리아가 나오는 날만 오매불망 기다렸던 적도 있었다.

군데리아를 먹고 나면 높은 확률로 부작용이 발생한다.

바로 화장실 문제다.

다행스럽게도 이강진은 오늘은 배 속 상태가 괜찮았다. 밥 먹기 전에 미리 화장실에서 볼일을 봐 둔 덕분이었다.

하나 백우호는 여지없이 화장실로 직행해야만 했다.

백우호가 없는 동안, 이강진은 생활관을 찾은 차석준 조교의 말에 집중했다.

“조기 퇴소 하실 선배님들 명단 불러 드리겠습니다. 이강진 선배님, 백우호 선배님, 성일혁 선배님······.”

예상대로 이강진, 백우호는 조기 퇴소자 명단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상 호명한 선배님들은 10시에 퇴소식 치르고 훈련 물자 반납 진행한 다음에 스마트폰 받고서 퇴소하시면 됩니다.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저한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차석준이 자리를 비우자, 곧바로 백우호가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조교가 뭐래?”

“조기 퇴소자들 명단 불러 줬어.”

“진짜? 우리는 있지?”

“어, 10시에 퇴소식이라니까 미리 장구류 반납할 준비해 두자.”

“나이쓰으!”

조기 퇴소자로 선정된 이들을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예비역들.

단독군장들을 죄다 군장 안에 쑤셔 넣기만 하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개인 짐까지 챙긴 뒤.

그것들을 들고 연병장으로 향했다.

오전 10시.

이강진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날씨가 영 별로인데?’

마치 비가 올 것 같은 그런 날씨였다.

설마 비가 오겠나.

이런 생각을 하면······.

‘꼭 비가 오더라.’

마치 동원 훈련을 받은 예비역들을 농락이라도 하려는 모양인지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내릴 거면 진작에 내리든가!’

이놈의 군대 날씨는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었다.

* * *

갑작스러운 폭우 때문에 퇴소식은 실내에서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퇴소식을 마친 후에 이강진은 차석준한테서 입소 때 제출했던 업무용 스마트폰과 교통비를 받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배님.”

“고생하셨습니다!”

차석준과 양희언이 이강진, 백우호 두 사람을 미소로 배웅했다.

걸음을 떼기 전에 이강진은 백우호와 짧게 시선을 교환했다.

이들은 방금 받은 교통비 봉투를 한곳에 모았다.

그리고 그것을 두 병사에게 건넸다.

“선배님? 이건 선배님들한테 지급되는 교통비입니다만······.”

“알아.”

두 사람은 알면서도 이걸 차석준, 양희언에게 내밀었다.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이거 가지고 PX 가서 맛있는 거라도 사 먹어. 우리의 자그마한 성의라고 생각하고.”

“그래, 나중에 전역하거나 휴가 나오면 나나 강진이한테 연락해. 거기 안에 우리 개인 번호 넣어 뒀으니까, 그거 보고 연락하면 될 거야. 그럼 형들이 밥이라도 한 끼 살게.”

예비역들을 통제하느라 그동안 조교들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수고비라도 쥐여 주고 싶었다.

차석준은 그들이 건네준 교통비 봉투를 조심스럽게 받았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래, 고생하고. 몸 건강히 전역하는 게 최고니까 다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 알았지?”

“병장 차석준. 예, 알겠습니다!”

“일병 양희언. 선배님 말씀, 가슴 깊이 새겨듣겠습니다!”

이들을 뒤로하고 이강진은 백우호와 함께 막사 밖으로 나섰다.

아까에 비해 빗줄기가 제법 약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제법 오고 있었다.

이강진은 주저하지 않고 바로 군복 상의를 벗었다. 그리고 그것을 머리 위로 펼쳤다.

“판초우의가 없으면, 군복이라도 대신 이용해야지. 안 그러냐?”

“그렇지. 이렇게 된 거, 주차장까지 누가 먼저 도착하나 내기할까?”

“좋지!”

그냥 주차장까지 걸어가면 재미없지 않은가.

이강진은 오랜만에 백우호의 내기에 어울려 주기로 했다.

“하나, 둘······.”

“셋!”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신이 난 두 남자.

입소할 때에는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그런 기분이었으나.

조기 퇴소를 하게 되니 없던 힘마저 생겼다.

전역을 하거나 퇴소를 할 때.

그때가 이들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 제111화. 동원훈련 (5) - 14권 완결 > 끝

ⓒ (35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