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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37화 (337/347)

< 제113화. 새 출발의 어려움 (2) >

제113화. 새 출발의 어려움 (2)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 이강진은 혹시 몰라서 이용진에게 이런 질문을 꺼냈다.

“사실 오늘 컨설팅 신청자가 나 군대에 있을 때 알고 지냈던 간부시거든.”

“응? 그랬어?”

이용진은 전혀 몰랐다.

모르는 게 당연했다. 같이 군 생활을 경험했던 것도 아니고 말이다.

“영석이 형님한테 부소대장님이라고 계속 부르면 안 되겠지?”

“뭐, 가급적이면 지양하는 편이 좋지. 근데 관계를 아예 숨길 필요까진 없을 거 같다.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 거 같기도 하고. 처음 서로 딱 만날 때 군대 간부였다는 건 밝히고 가자. 그러면 나중에 네가 말실수로 부소대장님이라 불러도 사람들은 다 이해할 거야.”

설령 계속 말실수를 해도 진행자인 강한도가 알아서 잘 커버를 쳐 줄 것이다.

그게 진행자의 역할이다.

이용진과 그렇게 합의를 본 후.

드디어 녹화가 시작되었다.

강한도가 이강진, 한지윤과 함께 미리 마련되어 있는 스튜디오로 향했다.

“듣자 하니 오늘은 와플을 아주 좋아하시는 분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와플이라는 말에 한지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와플요? 그럼 오늘 원 없이 와플 먹을 수 있는 건가요?”

“그렇죠. 대표님이 저희도 많이 먹게 해 주실 겁니다. 그렇죠?”

은근슬쩍 우리도 시식에 참가하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해 오는 강한도.

이강진은 이들을 보면서 싱긋 웃었다.

“그때 봐서요.”

장담은 못 한다.

먹는 입이 하나인지, 셋인지 여기에 따라 만들어야 하는 와플 양이 달라진다.

카메라 앞에서 음식을 만들어야 해서 안 그래도 긴장하고 있을 텐데, 그런 상태에서 세 명이 먹을 양을 만들라고 하는 건 무리한 부탁일지도 모른다.

시간도 걸리고 말이다.

그래서 이강진은 이들에게 알았다고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스튜디오에 도착한 세 출연자들.

미리 도착해 있던 민영석이 이들을 반겼다.

“안녕하십니까! 민영석이라고 합니다!”

“아! 이분이 오늘 사연 주신 분인가 보네요.”

여기가 이강진의 연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 부소대장님이 여긴 어떻게 오신 겁니까!”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이강진은 이미 민영석과 만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자리에서 민영석을 마치 처음 만난 것처럼 연기를 선보였다.

대한민국 톱 여배우를 여자 친구로 두고 있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군대에서 간부들, 선임들을 속일 때 갈고닦은 거짓말 솜씨 때문에 그런 걸까. 이강진의 연기 실력은 상당히 능숙했다.

강한도가 이강진과 민영석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서로 아는 사이인가요?”

“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간부셨어요. 전역하셨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설마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이야, 대한민국 땅 참 좁네요! 이런 우연이!”

우연한 만남.

방송에서 이런 연출은 꼭 들어가는 편이 좋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더더욱.

뜻하지 않은 장면 연출 덕분에 이용진 PD는 씨익 웃었다.

* * *

군대에 있을 때에는 병사와 간부로 만났었지만, 지금은 요식업에 도전하려는 자와 그에게 컨설팅을 해 주려는 자로 만났다.

강한도는 이강진에게 군대에 있을 때 당시를 물었다.

“영석 씨가 그때는 대표님을 잘 대해 주고 그랬나요?”

“예, 당시에 1부소대장님이었는데, 착한 형처럼 병사들을 스스럼없이 잘 대하고 챙겨 주시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만났을 때 깜짝 놀랐어요.”

“대표님이 놀랄 만도 하겠네요. 반대로 영석 씨가 군대에서 본 대표님은 어땠나요?”

“어휴, 말로 다 표현 못 할 정도였어요. 모든 병사들에게 있어서 모범이 되는 존재였다고 할까요? 괜히 국민 영웅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죠. 성실하고, 착하고. 중대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강진이를 좋아했습니다. 간부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줬으면 받는 게 있어야 하는 법.

이강진이 민영석을 잘 포장해서 말해 줬으니, 민영석도 그에 대한 보답을 멘트로 담아 카메라 앞에서 밝혔다.

군대에 대한 회상은 여기까지.

프로그램의 본래 취지에 맞게 이제 슬슬 요식업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 볼 차례다.

강한도가 스태프한테서 받은 작은 종이를 보면서 말했다.

“오늘 컨설팅 신청해 주신 민영석 씨는 디저트 사업에 도전하시고 싶고 하셨네요. 와플이었죠?”

“네.”

“저하고 지윤 씨가 와플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오늘 기대 많이 하고 있겠습니다!”

“맡겨 주세요!”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민영석.

외식의 왕도에 얼굴을 비쳤던 대부분의 출연자들도 민영석처럼 처음엔 자신감 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 줬었다.

그러나 정작 맛을 평가해 보면 80퍼센트 이상은 이강진이 생각하는 양호 기준을 넘기지 못했다.

과거의 경험들 때문일까.

이강진은 불안감을 느꼈다.

“메뉴는 어떤 게 있나요?”

민영석은 여전히 당찬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강한도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당근초코 와플, 생강딸기 와플, 연근크림 와플 등등이 있습니다.”

“······.”

이강진의 불안함이 그대로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 * *

외식의 왕도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메뉴를 듣자마자 벌써부터 솔루션거리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래도 여태껏 출연했던 신청자들은 적어도 메뉴만큼은 정상이었다. 하나 민영석은 아무리 개성 시대라 해도 메뉴 선정이 너무 독특했다.

최근에 와플에 푹 빠져 있다고 어필했던 강한도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지어졌다.

“영석 씨······? 당근초코 와플이라는 게 대체 뭔가요?”

“말 그대로 당근과 초코를 갈아서 만든 와플입니다. 당근의 쓴맛과 초코의 단맛이 절묘하게 아우러져 여태껏 맛보지 못했던 맛을 선사할 겁니다.”

“직접 맛은 보셨나요?”

“예, 물론이죠!”

만약 그것을 먹고서 맛있다고 판단을 내렸다면, 민영석의 입맛이 굉장히 특이한 거다.

다음으로 이강진이 물었다.

“왜 이런 메뉴들을 선정했나요? 이유가 있나요?”

“예!”

카메라 앞이었기에 이강진에게도 존댓말로 대답하기로 한 민영석.

그가 자신의 생각을 직접 출연진에게 들려줬다.

“제가 요식업 경력이 많은 것도 아니고, 오랜 노하우를 지닌 다른 와플 사장님들하고 경쟁하기에는 너무 불리할 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독창적인 걸로 밀어붙여 보려고 일부러 이런 메뉴들을 세팅해 봤습니다. 어떤가요, 대표님?”

“으음······.”

솔직히 말해서 이건 정도가 지나쳤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막상 먹어 보면 맛있을지도.’

이강진도 말로만 들었기에 어떤 맛일지 감이 제대로 안 잡혔다.

이럴 때에는 먹어 보는 게 답이다.

“일단 맛을 본 다음에 이야기해 보도록 하죠. 방금 말씀해 주신 메뉴들, 바로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반전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 * *

당근초코 와플, 생강딸기 와플, 연근크림 와플이 차례대로 이들 앞에 세팅되었다.

먼저 이강진이 시식을 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 시식대에 오른 음식은 바로 연근크림 와플.

나이프를 이용해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뒤.

그것을 그대로 입안으로 가져갔다.

“······.”

우물거리던 이강진은 강한도와 한지윤에게 연근크림 와플이 담긴 접시를 슬쩍 밀었다.

“두 분도 한번 맛보세요.”

“진짜요?”

“꼭 먹어야 하나요?”

“네, 여러분들의 의견도 중요하니까요.”

외식의 왕도를 촬영하면서 이렇게 망설임이 컸던 순간이 과연 또 있었을까.

그래도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 준 사람을 앞에 두고 먹기를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는 건 크나큰 실례다.

아직 이강진은 ‘맛없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맛이 있어서 이들에게도 시식을 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강진이 했던 것처럼 나이프로 와플을 잘라 낸 두 사람.

와플 조각을 먹은 순간.

“······!”

강한도와 한지윤의 표정이 변했다.

거의 억지로 삼키다시피 했다.

“먹어 본 소감이 어때요?”

“그, 그게······.”

“도, 독특한 맛이네요, 호호호······.”

솔직히 말해서 맛이 없었다.

그러나 민영석에게 미안한 모양인지 이들은 차마 음식을 만든 본인 앞에서 쓴소리는 할 수가 없었다.

이강진은 다른 와플들도 직접 맛을 봤다.

그 모습만 봐도 두 사람은 방금 먹은 와플의 맛이 떠올라 몸이 살짝 떨렸다.

한편으론 이강진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개성 넘치는 와플들을 먹는데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다니.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은 이강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아무리 예전에 같은 군부대에서 근무했던 사이라 하더라도.

이건 꼭 말해 주고 싶었다.

“와플은 포기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사실 메뉴를 듣는 순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 * *

이강진은 원래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바로바로 쓴소리를 내뱉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강진이 강한도나 한지윤처럼 민영석을 위해서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고 좋게 포장을 하면 안 된다.

그러면 그 말을 고스란히 믿은 민영석은 이 와플을 시중에 판매할 것이다.

누가 돈을 주고 사 먹을 만한 퀄리티는 절대로 아니다. 이걸 실제로 판매한다면 가게는 분명 망할 터.

만약 그렇게 되면 누가 책임을 질 텐가.

이강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이강진은 독설가를 자처하기로 했다.

설령 상대가 민영석이라 해도 말이다.

민영석은 당황한 모양인지 표정 관리를 못 하는 모습을 보였다.

“맛이······ 없어? 진짜로?”

자신도 모르게 이강진에게 말을 놓기까지 했다.

이강진은 확실하게 못을 박기 위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독창성과 개성으로 승부를 보려고 한 건 좋습니다. 하지만 의도만 좋았을 뿐, 그게 맛으로 연결되진 못했어요.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지, 일부러 돈을 내면서까지 맛없는 음식을 찾진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조회 수를 높이고 싶어 하는 아카튜버들밖에 없어요.”

“······.”

“메뉴를 평범하게 바꾸든지 아니면 와플은 포기하고 다른 분야에 도전을 해 보든지, 지금 단계에서 제가 드리는 솔루션은 이게 다입니다.”

그래도 나름 자신을 가지고 있었던 민영석이었다. 그런데 설마 이런 평가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분위기가 많이 어색해졌다. 얼어붙은 분위기를 풀어 주는 건 MC인 강한도의 몫이다.

“영석 씨, 혹시 와플 말고 다른 요리는 해 본 적 없나요?”

“다른 거라고 해 봤자······.”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야심 차게 준비했던 와플들이 전부 퇴짜를 받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때, 이강진이 문득 이런 말을 꺼냈다.

“형님, 라면 잘 끓이셨잖아요.”

제설 작업이라든지, 아니면 전역 파티 때라든지. 이런 특별한 날에 가끔 민영석이 분대원들을 위해서 병사 식당을 빌려 손수 라면을 끓여 주곤 했었다.

그때 먹었던 민영석표 라면의 맛이 아직도 이강진의 머릿속에, 그리고 혀에 남아 있었다.

“라면은 너무 기본적이잖아. 그걸로 창업을 한다는 건 좀······.”

“아니에요. 분식집 같은 곳에서도 라면 팔고 그러잖아요? 속는 셈치고 일단 한번 만들어 보시는 게 어때요?”

민영석은 마지못해 이강진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와플은 몰라도 라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한다.

이건 이강진이 보장한다.

< 제113화. 새 출발의 어려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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