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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40화 (340/347)

< 제113화. 새 출발의 어려움 (5) >

제113화. 새 출발의 어려움 (5)

“음? 강진이 아니냐!”

행보관도 설마 여기서 이강진을 만날 줄은 몰랐던 모양인지 제법 놀라는 눈치였다.

“영석이가 가게 차렸다는데, 한 번은 와 봐야지. 근데 생각보다 줄이 이렇게 길 줄은 몰랐다.”

“저하고 같이 들어가시죠. 영석 형도 행보관님 보면 기뻐할 거예요.”

이강진에게만 부여된 특권.

줄 서서 기다릴 필요 없이 가게에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이강진 덕분에 행보관은 4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던 지루함의 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행보관을 직접 데리고 가게로 향한 이강진.

“영석 형님! 누가 오셨는지 한번 나와서 보세요.”

이강진의 목소리를 듣고 주방에서 바로 고개를 내민 민영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해, 행보관님! 오신다고 미리 연락이라도 주시지 그랬습니까!”

“너 바쁜데 굳이 연락까지 할 필요가 있나. 그보다 장사 엄청 잘되는구나. 많이 걱정했었는데 다행이군.”

“다 강진이 덕분입니다.”

행보관도 이미 방송을 통해 이강진이 어떤 식으로 민영석에게 도움을 줬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래, 강진이가 너, 와플 고집하는 거 말려 준 덕분에 잘된 거지. 난 방송 보면서 네가 미친 줄 알았다. 왜 당근하고 연근으로 와플을 만들 생각을 했냐?”

당시에는 그게 잘 먹힐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확실히 무모한 도전이었다는 걸 민영석 본인도 깨닫고 있었다.

이강진이 그것을 바로잡아 주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서서 계속 이야기하기도 뭣하니까 일단 앉으세요. 강진아, 너도 앉아.”

“네. 행보관님, 저쪽으로 가죠.”

두 사람은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메뉴판을 살폈다.

행보관이 이강진에게 메뉴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

“어느 게 제일 맛있냐?”

“매운 거 좋아하시면 방송에 나왔던 짬뽕 라면 추천드립니다. 감칠맛 나는 라면을 좋아하신다면, 소고기 라면을 드시는 것도 좋고요.”

“소고기 라면이 네가 영석이한테 레시피 제공했던 그거지?”

“하하, 행보관님, 외식의 왕도 다 챙겨 보셨네요.”

이강진이 민영석에게 라면 레시피를 제공하는 모습은 바로 이틀 전에 방영되었던 최신 편의 내용이었다.

“내 밑에서 일했던 애들이 티비에 나오는데 안 챙겨 볼 수가 있나. 그리고······.”

행보관의 시선이 주방 쪽으로 향했다.

“영석이 녀석, 군대에서 마음고생하다가 전역해서 그런지 계속 신경이 쓰이더구나. 그것 때문에 더 열심히 방송을 챙겨 본 것일지도.”

좋은 계기로 전역을 결정하게 된 건 아니었다.

군대라는 곳에 회의감을 느껴서 전역을 결심하게 된 민영석.

행보관은 이강진이 미처 몰랐던 뒷이야기들을 흘렸다.

“영석이가 전역하기 한 달 전이었을 거다. 갑자기 나한테 전화를 걸어오더구나. 술 좀 사 줄 수 없겠냐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만났더니, 느닷없이 막 펑펑 울어서 놀랐었지.”

“영석 형이 울었다고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행보관.

이건 금시초문이었다.

‘하긴, 본인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동생인 나한테 하기엔 민망할 테니까.’

이강진이 민영석의 입장이었어도 말을 안 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행보관 앞에서 눈물을 보일 정도로 민영석은 군 생활에 많은 괴로움을 느꼈었다.

주방에서 열심히 라면 조리에 집중하는 민영석을 보면서 행보관은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래도 저렇게 웃으면서 일하는 거 보니까 이제야 안심이 좀 되는 거 같구나.”

행보관은 라면이 먹고 싶어서 민영석의 라면 가게를 찾아온 게 아니었다.

그가 신경이 쓰여서 이 먼 곳까지 직접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행보관의 아랫사람 챙기기는 여전했다.

짬뽕 라면과 소고기 라면으로 주문을 마친 후에 남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갔다.

민영석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이강진은 행보관의 근황 또한 궁금했다.

“행보관님은 지금 어디서 근무하고 계십니까?”

“8740대대에서 근무 중이다. 1075하고 좀 떨어져 있는 곳이야. 차로 정확히 35분 걸리더라.”

8740도 1075대대처럼 보병 부대로 구성되어 있다.

부대 이야기가 나오자, 행보관의 미간이 일그러 들었다.

“녀석들, 어찌나 말을 안 듣던지. 특히 말년들. 아주 지독하더라. 휴가 다 짬처리 시켜 버리겠다고 그렇게 협박을 했는데도 어찌나 농땡이를 피우던지······. 고단수들이야, 고단수들. 어휴!”

분명 행보관이 욕을 하는 상대는 이강진이 아닐 텐데, 이상하게도 이강진이 자꾸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강진도 말년 때는 행보관과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였던 적이 있었다.

아마 그 때문이리라.

‘그래도 내가 뭐 특별히 잘못한 건 없었으니까.’

사고만 안 치면 된다.

이강진은 군 생활을 하면서 부대가 뒤집어질 만한 사고를 저지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크게 마음의 짐은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군인도 아니고.’

이게 핵심이다.

마침 이들이 주문했던 라면이 나왔다. 이강진은 거기에 맞춰서 스마트폰 워치를 확인했다.

시간을 초 단위로 확인하는 이강진. 행보관은 그의 행동에 궁금증을 가졌다.

“그건 뭐냐?”

“아, 이거요? 주문 넣고 음식 나오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측정해 보려는 거예요. 영석이 형이 라면 조리하는 속도가 처음에는 엄청 느렸거든요. 한 20분 걸렸었나······ 그래서 최대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제가 몇 가지 팁을 알려 줬어요. 이제는 빨리 나오네요.”

이강진은 민영석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

아직 행보관에게도 말을 못 했지만, 바라 코리아의 빵빵한 지원도 받는 중이었다.

행보관은 너털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영석이하고 네가 설마 이런 식으로 계속 연을 이어 가게 될 줄은 몰랐구나.”

“저도 몰랐어요.”

사람 일이라는 게 참 어떻게 될지 모른다.

* * *

식사를 마친 후에 僊린活? 민영석과 작별 인사를 주고받았다.

“고생하고. 나중에 와이프하고 딸 데리고 한번 더 찾아오마.”

“시간만 된다면 좀 더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죄송합니다, 행보관님.”

아직 대기 줄이 남아 있었다. 행보관은 민영석에게 신경 쓰지 말라면서 그의 등을 토닥여 줬다.

“중사 민영······!”

무의식적으로 민영석은 관등성명을 댈 뻔했다.

멋쩍은 듯 웃어 보이는 민영석을 보면서 행보관은 씩 웃었다.

“일하다가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고. 다음에 보자.”

“예,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래. 강진이, 너도 고생하고.”

“감사합니다, 행보관님. 나중에 또 봬요!”

행보관을 보낸 뒤.

이강진은 민영석과 함께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행보관과 같이 라면을 먹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가게가 잘 운영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 목적이었다.

민영석이 주방으로 들어간 동안, 이강진은 행보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간부들 전부 다 다른 부대로 배치받았다고 했었지.’

이제 1075대대에 이강진이 아는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다.

‘인강이 전역하면 아예 없네.’

스마트폰을 꺼내 달력 어플을 실행했다.

허인강의 전역일을 기록해 둔 적이 있었다.

날짜는 다음 달 21일.

‘얼마 안 남았네.’

그 전에 이강진은 1075대대에 한 번 더 면회를 가고 싶었다.

허인강이 전역하면 1075대대를 방문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게 된다.

‘집에 들어가면 인강이한테 전화나 해 봐야겠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조급함이 밀려왔다.

* * *

허인강한테 면회 가도 되냐고 물어본 이강진은 그 자리에서 바로 면회가 가능한 일자까지 확답을 받을 수 있었다.

15일 토요일 오전.

이강진은 차를 끌고 1075대대로 향했다.

백우호와 김철에게 연락을 돌려 볼까 했었으나, 그들은 현재 각자 일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이강진이 좀 한가한 편이었다.

어차피 저번 면회 때처럼 중대원들을 전부 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 허인강 딱 한 명의 얼굴만 보러 가는 것이다.

허인강을 제외하면 지금 1075대대에 근무하는 간무들도, 병사들도 이강진과는 연이 없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래서 이강진은 부담 없이 혼자서 면회를 갔다 오기로 결심했다.

위병소 앞에 차를 주차시킨 뒤, 위병소를 통과해 면회실로 향했다.

‘여기 면회실은 올 때마다 달라져 있네.’

면회실에 앉아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키를 받고 내려온 허인강이 이강진을 찾았다.

“강진이 형!”

“이야, 허인강! 이게 얼마 만이냐.”

“글쎄. 1년은 넘은 거 같은데. 형이 나 일병 달았을 때 면회 왔었으니까. 근데 그게 뭐야?”

“아, 이거?”

이강진은 챙겨 온 비닐봉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 뒀다.

“맨손으로 오긴 좀 그렇잖아. 먹을 것 좀 사 왔지.”

군인들이 가장 먹고 싶어 하는 음식에 항상 손꼽히는 치킨과 피자다.

허인강은 그것들을 보자마자 입맛을 다셨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대대전술훈련 받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는데, 이거 먹고 기운 좀 차려야겠네.”

타이밍이 좋았다.

한 손엔 닭다리를, 다른 한 손에는 피자 조각을 든 허인강은 오랜만에 목에 기름칠을 하면서 먹는 행복에 빠져들었다.

“형한테서 갑자기 전화 왔다는 소식 듣고 처음엔 놀랐었는데. 어쩌다가 면회까지 올 생각을 하게 된 거야?”

계기는 있었다.

“얼마 전에 행보관님 만났거든. 그때 1075대대에 대해서 얼핏 들었어. 나 있었을 때 계시던 간부님들은 다른 부대로 다 가시거나 전역했고. 내가 아는 중대원들도 거의 다 전역해 이제 너 하나만 남았다는 거 깨달으니까, 갑자기 면회 오고 싶어지더라고. 너 전역하면 앞으로 여기 오고 싶어도 못 올 테니까.”

“하긴, 그렇지.”

좋든 싫든, 그래도 20대 청춘의 일부를 바친 곳이다.

한 번쯤은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강진이 형은 역시 부사관을 지원했어야 해. 전역하고 나서도 자신이 군 생활 했던 부대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사람은 강진이 형밖에 없을걸.”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강진은 남들에 비해 두 배 가까운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러니 애증 또한 두 배로 남았다.

허인강 한 명만 만날 생각으로 왔다 보니 면회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치킨, 피자를 다 먹어 치운 후에 면회실을 나선 두 사람.

“슬슬 올라가 볼게, 형.”

“그래. 아, 너 전역하고 난 다음에 알바할 거라고 했지?”

“어, 영업직으로 한번 구해 보려고.”

노가다 마스터라 불리던 허인강이었지만, 취직은 영업직을 지망하고 있었다.

“내 명함 줄 테니까 나중에 알바 자리 필요하면 연락해라. 나, 동원 훈련 받을 때 조교였던 애도 와서 알바시켜 주고 그랬으니까. 너도 한자리 마련해 줄게.”

“진짜? 고마워, 형.”

허인강은 싹싹하고 일 잘하는 타입이다. 그에게 일을 맡기면 일단은 안심이 된다.

허인강을 먼저 보낸 후에 이강진은 위병소를 나섰다.

차에 오르기 전에 그는 1075대대 위병소를 한동안 계속 응시했다.

‘이제 더 이상 여기에 올 일은 없겠지.’

세 번째 입대를 하지 않는 이상은 앞으로 여기와 연을 이어 갈 일은 없을 것이다.

미련 없이 운전대를 돌린 이강진.

이제 정말로 작별이다.

< 제113화. 새 출발의 어려움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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