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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45화 (345/347)

< 제115화. 어려운 결정 (3) >

제115화. 어려운 결정 (3)

그토록 찾고 찾던 소예민을 설마 프로 게이머들이 모여 있는 숙소에서 만나게 될 줄은 꿈에서도 예상 못 했다.

‘예민이가 나한테 예전에 프로 게이머가 꿈이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한 적이 없었는데.’

대신 이런 말은 들은 적이 있었다.

20대 초, 중반 때의 자신은 이것저것 얽매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무작정 도전해 보고 다녔다고.

히말라야 등산 도전도, 사하라사막 횡단 도전도.

전부 다 그때 경험했던 일들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프로 게이머는 금시초문인데. 그보다 예민이가 원래 게임을 좋아했었나?’

같이 게임을 해 볼 일이 없었기에 그녀의 게임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한편. 소개도 하기 전에 소예민의 이름을 먼저 맞힌 이강진의 덕분에 오종한은 어리둥절했다.

당사자인 소예민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예민 씨 이름을 어떻게 알았어?”

순간 속으로 아차 싶었다.

이강진과 소예민은 회귀 이후의 세계에선 방금 막 처음 만난 설정이었다.

이전에는 나두석과 소예민이 각각 이강진의 오른팔, 왼팔이 되어 열심히 움직여 줬지만, 지금은 이강진의 왼팔 소예민이 아닌 프로 게이머, 소예민이었다.

적당한 핑계를 찾아야 했다.

“예전에 기사 나갔던 적 있었잖아? 그거 때문에 예민이······ 아니, 예민 씨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어.”

바라 케일러스 1, 2군을 통틀어 유일한 홍일점인 소예민.

지난달에 e스포츠 기자가 와서 바라 케일러스 팀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오종한은 눈여겨볼 만한 신인 중 한 명으로 여성 프로 게이머 소예민을 언급했었다.

“아, 내가 인터뷰할 때 말했었구나.”

이강진의 둘러대기가 제대로 통했다.

사실 이강진은 그 인터뷰 기사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거기에 소예민의 이름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도 모른다.

대충 찍었는데 운이 좋게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이런 건 조심해야 하는데.’

자신이 아는 사람을 만났다고 반사적으로 알은척을 하면, 이런 식으로 뒷수습을 하기가 난처해질 때가 있다.

그래도 이강진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토록 찾고 싶었던 소예민을 여기서 만나게 되지 않았는가.

문제가 있다면.

‘왜 하필이면 프로 게이머를······.’

그녀가 해야 할 건 게임이 아니라 문서 작업, 그리고 영업과 부서 관리다.

그게 그녀의 체질에 더 맞기도 하고 말이다.

하나 지금의 소예민은 프로 게이머가 하고 싶은 듯했다.

‘골치 아프네.’

소예민을 일찍 찾게 된 건 기쁜 일이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예민이가 지금 꾸는 꿈을 응원해야 할지, 아니면 일찌감치 방향을 잡아 줘야 좋을지······.’

굉장히 난이도가 있는 문제다.

* * *

오종한의 사무실로 향한 이강진.

그는 오종한과 둘이서만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매니저와 코치가 자리를 비워 준 덕분에 이강진이 원하는 둘만의 시간이 갖춰 줬다.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어, 그냥 선수들 동향이 좀 궁금해서.”

여기서 직접적으로 소예민을 콕 찍어 물어보면 오종한에게 괜한 의심을 살 수가 있다.

그래서 이강진은 일부러 다른 선수들의 동향을 묻는 척하기로 했다.

“1군 선수들 경기력은 좀 어때?”

“나쁘지 않아. 첫 리그 참가에 우승까지 노려 볼 정도로.”

아마추어들도 아마추어들이지만, FA 시장에 나온 실력 좋은 기성 프로 게이머들을 많이 확보한 덕분에 팀의 전력은 급상승했다.

실력이 뛰어난 만큼 몸값도 높다.

그러나 오종한은 바라 코리아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이들의 몸값을 맞춰 줄 수 있었다.

“다 강진이, 네 덕분이지. 네가 열정적으로 팍팍 밀어줘서 내가 원하는 드림팀이 완성될 수 있었어.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너한테 우승으로 보답할게.”

“그래 준다면야 고맙지.”

실제로 많은 e스포츠 전문가들은 바라 케일러스가 새롭게 창단한 매치 오브 레전드 팀을 이번 대회의 강력한 다크호스로 여기고 있었다.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게임 팬들 역시 이번에 바라 케일러스가 제대로 사고 한번 칠 거 같다는 높은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었다.

강한 전력을 갖춘 바라 케일러스.

오종한의 목적은 우승컵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강진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2군 선수들은 어때?”

“걔네들도 나쁘지 않지. 다 입단 테스트 보고 뽑은 거니까.”

“예민 씨도 입단 테스트 통과한 거야?”

“음······ 솔직히 말하면 좀 애매했어. 아슬아슬했다고 해야 하나. 근데 그때 테스트 봤던 아마추어들이 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제 기량이 안 나오더라고. 그렇다 보니 예민이한테까지 기회가 간 거지.”

“지금은 어때?”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아직 1군으로 올라서려면 더 노력해야 할 거 같지만.”

이강진은 아직도 소예민이 프로 게이머를 꿈꾸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 소예민이······ 세상 참 오래 살다가 볼 일이네.’

이강진이 기억하는 소예민은 게임과 전혀 연관이 없는 삶을 살아왔을 것만 같았던 커리어 우먼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런 과거가 있었을 줄은 전혀 몰랐다.

“형,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응? 뭔데?”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강진은 오종한에게 도움을 한번 받기로 했다.

“예민 씨가 프로 게이머에 계속 도전하다가 중간에 꿈을 접을 것 같은 징조가 보이면, 그때 나한테 연락 좀 해 줘.”

“너한테? 왜?”

“내가 보니까, 왠지 우리 회사에 잘 녹아들 것 같아서. 그래서 바라 코리아로 데려가려고.”

다른 사람이 이강진의 이런 말을 들었다면 대체 뭘 보고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종한은 이강진이라는 사람을 아주 잘 안다.

이강진은 때론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그 이상을 볼 때가 있다.

그건 군대에 있을 때나 사회에 있을 때나 변함이 없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고마워, 형.”

그동안 이강진에게 받은 도움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 줄 수 있다.

* * *

회사로 돌아온 이강진은 나두석을 따로 불렀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무엇부터 들을래?”

나두석은 자신이 선택하기보다는 이강진에게 선택권을 넘기기로 했다.

“형님이 먼저 말씀해 주고 싶은 것부터 해 주세요.”

“그럼 좋은 소식부터. 네 부사수가 되어 줄 사람을 찾았다.”

“정말입니까?”

그건 확실히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아직 ‘나쁜 소식’이라는 불안 요소가 남아 있었다.

“그럼 나쁜 소식이라는 건 뭡니까?”

“사람을 찾긴 찾았는데,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해.”

“형님이 설득해서 데려오는 건요? 형님이 잘하시는 거잖아요.”

물론 그건 이강진의 특기다.

그런 식으로 해서 나두석도 이곳에 데리고 왔으니까.

하지만 이번 경우는 좀 달랐다.

“꿈을 억지로 포기하게 만든 다음에 내가 있는 곳으로 데려오고 싶진 않아. 그러면 못다 이룬 꿈에 미련이 생기거든.”

그 미련은 후회라는 이름의 족쇄가 되어 사람을 평생 옭아매곤 한다.

이강진은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소예민에게 프로 게이머 때려치우고 바라 코리아로 와서 일하라는 것을 강요할 수가 없었다.

이강진이 생각하는 최선책은 이거였다.

“한계에 부딪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다가 안 된다고 본인이 스스로 인정했을 때, 우리가 다른 길이 되어 주면 돼.”

일단 원 없이 도전해 보게끔 그녀를 방치하기로 했다.

그래서 오종한에게 미리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우리, 그때까지만 고생하자, 두석아.”

“알겠습니다. 근데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네요.”

“뭔데?”

“형님이 데려오려는 그 사람이 만약 그 한계를 뚫어 버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럼 그 사람이 바라 코리아에 올 일이 없게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 이강진은 크게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만약 소예민이 정말로 프로 게이머가 될 인재였다면, 회귀하기 이전의 생에 이강진을 만날 일은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계속 프로 게이머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소예민이 과거에 이강진에게 했던 말이 있었다.

이강진과 같이 일했던 때가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로 재미있고 보람찬 순간이었다고.

본인이 직접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다.

이강진은 그 말을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 * *

소예민에게 때아닌 고민이 생겼다.

아니, 사실 입단 테스트를 볼 때부터 계속해서 머릿속에 들던 고민이었다.

과연 자신이 프로 게이머로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원하는 방송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답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어쩐다······.’

자정이 지나 새벽이 깊어질수록 그녀는 더욱 미래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의자에 손을 얹었다.

“아직도 연습하고 있는 거야?”

“어머, 감독님.”

오종한. 그가 2군 선수들이 연습하는 장소를 찾아왔다.

현재 시간, 새벽 3시 반.

다른 선수들은 이미 모두 자러 갔다. 소예민 혼자 남아서 계속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오종한은 그녀의 그런 모습이 신경 쓰여서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소예민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생각할 게 좀 있어서요.”

“무슨 생각?”

“과연 이 길을 택한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프로 게이머라는 직업 자체가 상당히 수명이 짧다. 오종한도 그 부분 때문에 3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일찌감치 은퇴를 결정했다.

소예민은 나이가 적은 편은 결코 아니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프로 게이머 생활에 뛰어든 편이었다.

오종한은 이전에 이강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녀가 프로 게이머로서의 꿈을 접게 된다면, 자신에게 연락을 달라고 했었다.

계속 이대로 고민의 시간만 길어지게 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녀의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이지만, 그 결정을 내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안 된다.

‘슬슬 때가 되었군.’

안 그래도 오종한은 소예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강진이 했던 말이 아니었다.

“협회에서 매치 오브 레전드 이벤트전 주최하는 거, 알고 있지?”

“네, 네 개 구단이 초청받아서 토너먼트전 펼치는 거였죠?”

“맞아, 그 이벤트전 엔트리를 짜야 하는데······.”

오종한은 그녀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이번에 너를 미드 라인으로 넣어 보려고.”

“저, 저를요?”

갑자기 부담스러운 제안이 들어왔다.

“저는 아직 2군인데······.”

“1군 애들은 그때 프로 리그 경기가 있어서 안 될 거 같고. 그리고 e스포츠 협회 내에서도 구단에 정식으로 입단한 선수라면 1군이든 2군이든 상관없다고 했으니까 문제 될 건 없어. 그리고 방송 경기 가지는 거, 결코 쉬운 기회 아니야.”

그건 소예민도 잘 아는 사실이다.

“기회가 왔을 때 한번 붙잡아 봐. 그리고 판단해 봐. 무대에 올라서서 ‘과연 내가 앞으로 이 무대에 계속 설 수 있을까?’ 하고 말이지. 그러면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소예민은 재능이 엄청 뛰어난 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노력하면 가능성은 보일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을 믿고 계속 고된 길을 걸어갈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을지.

이건 소예민의 결정으로 남겨 둬야 한다.

소예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볼게요, 감독님.”

“그래, 힘내.”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 제115화. 어려운 결정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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