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들의 세계 (272)화 (272/274)

하늘을 뒤덮은 빛

달칵.

스테이크를 썰던 세드릭의 손이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다시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그가 묘한 미소와 함께 모르쇠로 나오자, 레이 역시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즐기며 느긋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룩스 제국의 총리는 참 복도 없지 않습니까? 나라에 굵직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습격을 걱정해야 하니 말입니다.”

“······.”

세드릭은 그제야 칼질을 완전히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친 가운데, 이번에 멈칫한 것은 레이였다.

세드릭의 두 눈에 도는 초롱초롱한 빛이, 여간 미친 것 같지 않았기 때문.

그러나 그의 광기 어린 눈빛보다 가관인 것은 이어지는 그의 말이었다.

“이런, 제가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놓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게 재미있는 일입니까?”

“지루한 얘기는 아닌 듯한데요. 그러니 말씀해 주세요. 지금 저와 관련된 이들이 무언가 큰일을 벌이고 있는 중인 건가요?”

모른 척 발뺌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치 그것이 진실이기를 기대하며 하는 말처럼 들렸다.

“···예. 다만 꽤나 어설프게.”

“저런··· 그건 굉장히 아쉬운 소식이군요.”

진심으로 낙담하는 반응에, 이를 지켜보는 레이의 미간에 희미한 주름이 졌다.

“할 말은 그것뿐입니까?”

“어설픈 것은 실망스러운 법이니까요. 그게 무엇이든.”

“······.”

사실 레이의 ‘어설프다’라는 평가는 주관적인 것이었다. 본인들이 들었다면 매우 억울해했을 만큼.

세드릭의 추종자들이 준비한 작전은, 일반적인 테러와는 궤를 달리했다.

그러니 만약 모든 것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당한 것인지도 모르는 채 당할 것이었다.

‘에너지석과 화염 폭발을 중첩시키면 원래의 위력보다 몇 배 이상의 폭발력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 분명했지.’

그들이 테러를 일으킬 거라는 첩보를 입수한 후, 레이 일행은 여러 방면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그 결과, 세드릭의 추종자들이 어떤 작전을 세웠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그들은 총리의 차가 빽빽이 세워진 마천루 사이의 도로를 지나가는 순간, 양쪽 건물들의 꼭대기에서 폭발을 일으킬 작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상층부에 있는 유리창들이 일시에 터져나가면서, 건물 잔해와 불벼락이 대로 위로 떨어져 내릴 터.

설사 첫 폭격을 피하더라도, 건물의 숲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않는 한, 총리를 태운 차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그리고 이러한 테러를, 어떠한 폭발물이나 총기류를 소지하지 않은 사람들이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니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평범해 보이는 사람을 무턱대고 저지할 수는 없는 법. 설사 누군가 수상하다며 신고해 봤자 체포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증거가 없으니까.

이렇다 보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완벽한 계획이라 여겼을 것이다.

오직 자신들처럼 경이로운 초능력을 가진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러니 아마 실패의 가능성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았을 터.

그러나 상대가 나빠도 너무나 나빴다.

레이와 그의 일행은, 초능력을 사용한 테러에 한해서 누구보다 화려한 업적을 가진 경력직이었으니까.

‘노력은 가상하다만···.’

세드릭의 추종자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 봤자, 모두 레이의 손바닥 위였다.

레이는 곧 수포로 돌아갈 테러범들의 계획을 잠시 떠올리다가, 다시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 집중했다.

그리고 그로서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것 중 하나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째서 아이들을 끌어들였습니까?”

“끌어들이다니요? 제가요?”

“아이들을 아카데미에 보낸 것도, 지금 저 길 위로 내몬 것도 당신이지 않습니까.”

“흠,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세드릭은 여유롭게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태연한 얼굴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에게 새로 생긴 초능력자 아카데미에 한번 다녀보라고 권유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는 열심히 배워보라는 것 외에는 따로 한 말이 없습니다.”

즉, 학생들이 세레누스 곳곳에서 자잘한 테러를 일으킨 것은 그의 지시사항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고···.’

날카로운 눈으로 세드릭의 표정을 살피던 레이는, 그에게 지금 상황을 친히 짚어 주기로 했다.

“제가 추측하기로, 당신의 부하들은 초능력자들에 대한 사회 인식이 개선되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을 위해 벌이고 있는 일이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아하, 그렇군요. 루체스 백작님 입장에서는 꽤나 거슬릴 만한 행동을 한 것이겠네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당신의 사람들이 슈네스펠트에서 초능력자들을 비밀리에 사들인 정황도 포착했습니다.”

슈네스펠트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서 인신매매를 벌였다는 증거 역시 확보하고 있었다.

여기엔 시두스 엑시티움이 사라지자 당황하며 레이에게 연락을 해온 알바트로스의 도움이 꽤 컸다.

“흠, 그런가요.”

세드릭은 화들짝 놀라는 시늉도,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며 서둘러 발뺌을 하지도 않았다.

어떠한 충격도, 죄책감도 보이지 않는 그 얼굴을, 레이는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흥분하지 않고 끝까지 또박또박 물었다.

“당신의 충직한 집사가 각지에서 사 온 사람들을 당신의 부하로 들이거나, 연구소에 실험체로 넘겼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할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글쎄요···.”

레이의 참을성을 시험하듯 말을 늘이던 세드릭은 이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웠습니다. 노집사의 아버지 같은 애정이라, 나름 감동적이지 않나요? 하지만 집사는 내 아버지가 아니니까요. 한낱 사용인이 너무 주제넘게 굴었죠.”

“······.”

“다만 그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꽤나 보기 재미있었습니다. 거의 맹목적인 애정을 받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경험이었거든요.”

“당신이 그러고도···.”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들에게 저를 사랑해 달라 말한 적이 없습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들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세드릭은 레이와 눈을 마주치며 소년 같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런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 그의 눈빛은, 그가 입으로 내뱉는 말과의 괴리 때문에 더욱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저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짧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보통 스치듯 덧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마련이죠. 그러니 어쩌면 저 같은 사람이 가장 많은 사랑과 애정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레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으나, 세드릭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에게 질문했다.

“하지만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제가 벌을 받아야 하나요?”

레이는 언제까지고 세드릭의 궤변을 들어줄 마음이 없었다.

솔직히 이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 봤자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으나, 그는 그래도 일단 질문했다.

“그래서 지금 본인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어쨌든 그들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움직인 걸 텐데요.”

“바로 그 점이 문제입니다. 다들 제가 무언가를 원할 거라고 멋대로 단정 짓죠.”

잠시 말을 멈춘 세드릭은 얇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가며 예를 들었다.

“공작가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니 형을 제치고 가주가 되고 싶을 것이다, 병약하니 건강해지고 싶을 것이다···.”

“아니라는 겁니까?”

“글쎄요. 백작님 눈에는 제가 그렇게 뻔한 바람을 가지고 있을 것처럼 보이시나요?”

“······.”

“저는 그다지 오래 살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세드릭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살아있는 것이 딱히 축복이라 느끼지 않거든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바라지 않고 삶에도 그다지 미련이 없다면, 세드릭 씨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시는 겁니까?”

“글쎄요. 그냥,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네요.”

비상한 머리를 타고났으나, 그것을 펼칠 여건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세상을 원망할 기력조차도 세드릭에게는 없었다.

다만 나약한 몸으로 버티는 의미 없는 시간들이 너무나 지루하고 지겨웠을 뿐.

“그나마 재미있는 것을 꼽자면, 역시 사람을 관찰하는 일이죠. 이따금씩 비상한 능력을 타고나는 환생자들도 그렇고, 일견 범인으로 보이는 이들도 간혹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해낼 때가 있으니까요.”

세드릭은 가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말하는 ‘관찰’에는 사람들을 구슬려서 반응을 살피는 것도 포함되었다.

그는 특히 아랫사람들을 제멋대로 부리는 것보다, 교묘하게 다루는 것을 선호했다.

강제성이 없음에도 오히려 더욱 열성적으로 자신을 위해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나름의 묘미가 있었으니까.

“약간의 응원과 도움만으로도 참으로 많은 것들을 해내는 걸 보고 있노라면, 그 어떤 영화나 소설의 클라이맥스보다 재밌더군요.”

“···그건, 결국 사람들을 가지고 논 것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게 그렇게 되나요? 저는 단지 그들이 소란을 피우는 걸 보는 것이 나름 재미있길래, 한 발짝 뒤에서 관찰했을 뿐인데요.”

“그들이 무언가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한 내용은 몰랐다?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루체스 백작께서도 귀족이시니 아실 텐데요.”

“갑자기 그게 무슨···.”

“저희가 부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일일이 알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면 알아서 디저트가 나오는 것을.”

윗사람이 괜히 들어가서 설쳐봤자 방해 밖에 더 되겠냐는 것이 세드릭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레이는 이 순간, 더 이상의 대화가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만 통보하기로 했다.

“부하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아서, 오늘 당신이 잡혀 들어가는 겁니다.”

곧, 모든 증거를 전달받은 오스틴 쪽 사람들이 세드릭을 구속하기 위해 이곳으로 올 예정이었다.

“음, 그런가요.”

세드릭은 자신이 구속될 것이라는 소식에도 덤덤했다. 레이와의 대화가 끝에 도달한 이 시점에서, 그가 아쉬워하는 것은 따로 있는 듯했다.

“그전에 한 가지 구경할 것이 남아있지 않나요? 아무리 백작님이 보시기엔 어설프다고 해도, 제가 아는 그들이라면 마지막 발악이라도 할 텐데···.”

레이는 감정을 지워낸 얼굴로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살다 살다 이런 사람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자연스레 대답하는 레이의 목소리에도 감정의 흔적은 묻어나지 않았다.

“글쎄요. 부하들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도 몰랐던 분이, 눈으로 본다 한들 알까 싶습니다만.”

레이의 말을 끝으로, 짙은 먹구름 가득한 저녁 하늘이 갑자기 노랗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

이 순간, 세레누스 전역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저녁에서 밤을 향해 가던 시간을 무시하고 태양이 다시 떠오른 것이 아니고서야 설명되지 않을 밝기.

아니,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태양빛이 저 짙은 구름을 뚫을 수는 없는 일.

이는 구름 속에 떠있는 시두스 엑시티움의 힘이 개방되면서, 검은 구체를 중심으로 퍼진 전기의 물결이 내뿜는 빛이었다.

“오··· 이런.”

찬란한 금색과 은색으로 빛나던 구름들이 더없이 밝아진 순간.

하늘 전체가 새하얗게 번쩍임과 동시에, 수백 갈래의 번개가 신벌처럼 내리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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