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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5화 (5/351)

# 5

5화

손정은 ‘사제’라는 말뜻을 알지 못한 듯하다.

“그러니까 신들을 믿으며 수행하는 이들이냐고.”

“그런 뜻이야?”

“그래.”

“그렇다면 스님이나 도사님들이 사제가 맞을걸.”

손정의 말에 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상에도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당연히 신관, 아니 사원도 있고?”

“절이나 도관(道觀)을 말하는 거야? 그럼, 부처님을 모시는 곳 중에 유명한 곳이라 하면 소림사가 있고, 천존님을 모시는 곳이라면 아마 무당파가 제일이지? 내가 전에 말했지? 무림인들.”

손정은 이처럼 마현이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물어오자 신이 났는지 침까지 튀기며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쥐어짜내며 설명했다.

“소림사하고 무당파라고 하면 무림에서도 최고로 쳐주는 문파야. 간단하게 설명하면 부처님과 천존님을 모시는 절과 도관인 동시에 최고의 무림 문파지.”

손정은 어깨까지 들썩이며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현은 무림인에 대해 손정에게 들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손정의 꿈이 무림인이라 제법 많은 것을 알고 있어 비교적 세세히 설명을 들었던 것이다.

‘신성기사들과 비슷한 존재들인가?’

체계는 다르지만 일단 신이 있다는 것과 신전을 지키는 사제들이 있고, 조금은 다르지만 신성기사들과 비슷한 존재도 있음을 알았다.

“혹시 부처님과 천존님이 빛의 신이야, 아니면 어둠의 신이야?”

마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어느 신이 어둠을 관장하는 신인지 알아야 그 신과 교감을 나누고 어둠의 마나를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빛의 신, 어둠의 신?”

그 말을 들은 손정의 얼굴은 금세 자신 없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몰라?”

“……어. 들은 적이 없어.”

목소리 또한 축 늘어진 풀포기처럼 힘이 없었다.

“그럼 부처님이나 천존님이 죽음이나 파괴, 혹은 전쟁 같은 것을 추구해?”

마현은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말을 풀어 질문했다.

“아니. 확신은 못하겠지만 그건 아닐 거야. 혹 현아, 마신(魔神)에 대해 물어보는 거야?”

어둠의 신과 마신이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기에 마현은 손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신이라면 일단 마교의 상징인 아수라신이 있고.”

그 말에 마현의 눈빛이 번뜩였다.

“죽음을 다스리는 신이라면 염라대왕이 있고, 그 아래 저승사자들이 있어. 그 외에 잡다한 마신들이 많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마교의 아수라신이 가장 유명해.”

손정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리듯 대답했다.

‘있다! 어둠의 신이.’

비록 어둠의 신들 중 어떤 권능을 가진 신인지는 모르지만 마현에게 있어서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줘.”

마현의 목소리가 조금 격해지고 자연스럽게 억양이 올라갔다.

“쉿!”

손정은 마현의 입을 손가락으로 막은 후 그를 잡고 후미진 골목길로 들어왔다.

“비록 이곳 사천성이 정파와 마교의 영역 분기점이라고 해도 정파의 힘이 더 강한 데야. 그래서 함부로 마교를 입에 담으면 큰일 나. 마인들의 수도 많지만 그보다 정파인들의 수가 더 많거든.”

손정은 마현에게 여기로 끌고 온 이유를 설명했다.

마현은 손정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어도 대략적으로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태생적으로 빛과 어둠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상반되듯이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 역시 서로를 향해 반감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나의 꿈이 무림인이라고 해도 많은 것은 몰라. 아는 것까지만 설명해 줄게. 우연히 이야기꾼의 말을 들었는데 마교는 과거 명교로 불렸었대. 그리고 그때는 지금과 달리 아수라라는 마신을 믿는 종교단체였고. 그런데 지금의 명나라가 만들어지면서 황제의 명으로 명교를 강하게 탄압했다고 했어. 그 후 마교는 종교적 색채를 지우고 완벽히 무림 단체로 탈바꿈했대. 그리고 그들 역시 스스로를 명교인이 아닌 마교인, 혹은 마인이라 부른다고 하더라. 현재 이곳 사천성을 분기점으로 중원의 서쪽을 완벽히 장악한 무림 단체야. 그래봐야 대부분이 서쪽 변방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수라신을 섬긴다고는 하더라.”

수박 겉핥기식이지만 마현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유용한 정보였다.

“그렇구나.”

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봬도 나 무림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 내 꿈이 무림인이잖아. 그래서 잡다한 거라도 무림에 관한 것은 듣는 대로 족족 외웠거든.”

손정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가슴을 쭉 내밀었다.

“고맙다.”

“헤헤헤.”

마현의 말에 손정은 쑥스러운 듯 혀를 내밀며 웃었다.

“무림에 대해 더 말해 줄까?”

“아니 마교에 대해서 더 아는 건 없어?”

마현의 말에 손정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미안.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야. 뭐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아는 건 대부분 이야기꾼들의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이야기꾼들은 마교에 대해 이야기를 잘 안 하거든. 이것도 정말 우연히 하는 걸 들어서 겨우 이만큼 아는 거야.”

“그렇구나. 알았어, 고맙다.”

마현은 손정의 어깨를 툭 쳤다.

“고맙기는 뭘. 친구 사이에.”

마현은 손정과 함께 다시 구걸에 나서며 마교에 대해 생각했다.

‘아수라, 그리고 마교……라. 일단 마교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 것 같군. 어쩌면 마교로 가야 할지도…….’

손정의 말이 마현의 상념을 깼다.

“빨리 와!”

“그래.”

마현은 잠시 생각을 접고 앞서 걷고 있는 손정을 향해 발걸음을 빨리 놀리며 따라갔다.

* * *

시간이 흐르면서 마현은 이 세상의 마나와 좀 더 친숙해져갔다. 비록 서클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저녁마다 심장에 마나를 모으는 수련을 통해서 미약하지만 조금씩 마나가 쌓여갔다. 하르센 대륙이었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마나의 양은 풍부하지만 농도나 분포도가 약해 수련을 그만두는 대로 족족 몸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도 수련을 그만두면 마나가 빠져나간다. 하지만 그 시간이 매우 느리다.

실상 무림인들이 보면 코웃음 칠 정도로 미약한 마나였지만 마현은 최대한 마나와의 친화력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조금씩 심장에 마나가 모이면서 마현은 세상을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무림인들을 식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나가 없을 때는 몰랐지만, 물론 지금도 서클조차 만들지 않아 정확한 판단을 할 수는 없었지만, 일반인들과 무림인들을 어렴풋이나마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무림인들 중에 가장 먼저 마현의 눈에 띈 것은 바로 개방이었다. 현재 마현이 거지 생활을 하니 그들과 자주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당한 힘을 가진 거지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이들의 놀림이나 행패에도 그저 굽실거리며 구걸하는 모습이 나름 신기했다.

‘재미있는 세상이야.’

힘을 가진 자라면 누구라도 군림하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혹 그렇지 않다 해도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허리를 굽실거린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긴, 하르센 대륙 역시 별별 길드가 다 있으니…….’

마현은 하르센 대륙을 떠올렸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회상을 털어 버렸다.

“오늘은 성도 중앙대로 쪽 번화가로 가볼까?”

오늘따라 손정은 구걸하는 게 따분하고 싫은 모양이었다.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며?”

마현은 손정과 함께 구걸을 처음 나서면서 지켜야 할 주의사항에 대해 들었었다. 그중 하나가 자신들의 구역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특히 손정은 몇 번이나 되풀이하면서 그것을 거듭 강조했다.

“가서 구걸만 안 하면 문제없어. 가보고 싶지 않아? 구경시켜줄게.”

손정은 그렇게 말했지만 표정으로 보니 정작 자기가 가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가자, 응? 가자, 가자.”

손정은 마현이 대답 없이 그냥 서 있자 옆에 매달리듯 달싹 달라붙어 졸랐다.

“가고 싶어?”

마현이 묻자, 손정은 기다렸다는 듯 얼른 대답했다.

“응.”

하지만 고개를 크게 끄덕이던 손정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아니라, 난 현이 너한테 사천성 성도의 중앙 번화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지. 사천성 성도에 살면서 번화가 한번 못 봤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손정은 눈에 보이는 뻔한 변명을 하며 마현을 다시 꼬셨다.

마현은 그런 손정을 빤히 쳐다봤다.

솔직히 말하라는 무언의 뜻이 담겨 있었다. 그 눈빛에 손정은 찔끔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러더니 버럭 화를 냈다.

“그래, 가고 싶다!”

손정은 씩씩거리며 마현을 노려봤다.

“알았어, 가자.”

마현의 말에도 손정은 화가 안 풀렸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씩씩거렸다.

“가자니까.”

마현은 웃으며 손정의 어깨를 툭 치며 앞으로 잡아당겼다.

손정은 그런 마현의 행동에 못 이기는 척하며 걷기 시작하더니 이내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

“번화가 가면 무림인들 엄청 많다.”

손정은 번화가를 가는 내내 무림인 노래를 불렀다.

“무림인 보는 게 그렇게 좋아?”

마현은 그런 천진한 손정의 모습에 담담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럼, 얼마나 멋있는데. 위풍당당한 발걸음에 척하니 허리에 찬 검. 하아, 정말 무림 고수가 나 안 데리고 가나? 그럼 정말 열심히 사부를 모시고 잠도 아껴가며 수련할 텐데.”

이내 손정의 말은 푸념으로 바뀌었다.

“가장 쉬운 길이 개방이겠네.”

마현의 가벼운 농담이었지만 손정은 완강히 고개와 손을 저었다.

“싫어!”

“왜?”

손정의 반응이 재밌어 마현은 그런 그를 조금 더 부추겼다.

“부모 없고 돈 없어 지금 어쩔 수 없이 거지 생활을 하고 있다지만 평생 거지 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아.”

손정은 마현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눈빛을 보니 꽤나 진지한 모습이었다.

“사실 어쩌면 무림인이 되지 못할지도 몰라. 나 같은 아이가 무림인을 꿈꾼다는 게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는 나도 알아.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꿈이고, 평생 못 이룰지도 모르는 꿈이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해. 최소한 나는 거지로 살지는 않을 거야. 하다못해 객잔 점소이를 한다고 해도!”

마냥 어린아이로만 봤는데 나름 어른스러움이 보이자 마현은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하고 멍하니 손정을 쳐다만 봤다.

“뭐 그렇다는 거쥐이!”

조금 어색해진 분위기를 손정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풀며 마현을 끌고 번화가로 향했다.

대로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상점들과 객잔.

그 사이사이에 만들어진 사람들이 빼곡 들어찬 시장.

모든 것이 마현에게는 신선하면서도 신기하게 다가왔다.

구걸하면서 먹은 음식들이 하르센 대륙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잔반이 되어 나오는 것들이라 정확히 어떤 음식들인지 잘 모르고 먹었다. 시장을 돌면서 비로소 그 음식들의 원형을 보게 되었고 달콤한 냄새를 맡으니 참을 수 없이 시장기가 돌았다.

“와! 저기, 저기.”

마현은 노점에서 파는 꼬치를 구경하다 손정이 어깨를 잡아끌자 고개를 돌렸다.

“멋있다, 그지?”

손정이 가리킨 곳에는 웃통을 반쯤 벗은 듯한 상의 사이로 우락부락한 근육을 내보인 채 대도(大刀)를 허리에 찬 사내가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마현의 시선은 그가 아닌 그 바로 뒤에 평범한 차림의 한 사내에게로 꽂혔다. 앞서 손정이 가리킨 이보다 더욱 진한 마나의 향기가 풍겼기 때문이었다.

“멋있지 않아?”

“응? 아, 으응. 멋있다.”

마현은 손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마현은 굳이 자신이 본 것을 알려 주지 않았다.

확실히 대로변으로 나오니 평소 잘 볼 수 없었던 무림인들이 많이 보였다.

‘세상은 달라도 사람들은 다르지 않구나.’

이곳의 도시도 하르센 대륙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마현은 흑마법사로 있으면서 숱한 용병들과 기사들을 보아왔다.

그나마 기사들은 그들 나름대로 규칙과 예의가 있어 조금 덜하지만 용병들의 모습은 천양지차였다.

겉으로 우락부락한 근육을 애써 보이며 거대한 무구를 가지고 다니지만 실은 형편없는 삼류용병이 있는가 하면, 조용하면서도 별반 위화감을 풍기지 않지만 알고 보면 상당한 실력을 겸비한 일류용병들이 있었다.

지금 사천성에서 보이는 무림인들 역시 그런 용병들이나 기사들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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