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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4화 (24/351)

# 24

24화

시퍼런 마기가 두 눈에서 폭사되었다 사라졌다.

가부좌 위, 단전 바로 앞에 가지런히 모아져 있던 두 손이 풀어졌다. 마현은 양손을 꽉 쥐며 무릎 위로 가져갔다. 그리고 웃었다.

입마관 졸업식을 보름 앞둔, 2서클을 만든 지 정확히 10개월이 되던 날 아침.

웃고 있는 마현의 단전 주위로 세 개의 서클이 회전하고 있었다.

* * *

“오늘도 변함이 없나?”

허진의 말에 령유는 허리를 숙였다.

“변함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내공 수련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래?”

허진은 감정이 들어나지 않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충!”

령유는 허리를 다시 한 번 숙인 후 사라졌다.

“변함없다라…….”

허진의 무심한 얼굴에 조금이지만 실망감이 살짝 내비쳤다.

‘적어도 다른 움직임은 있을 줄 알았는데…….’

허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닫힌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허진의 얼굴을 스치며 지나갔다.

‘내 눈이 틀린 것인가?’

허진은 잠시 마현을 떠올렸다.

그러자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그리 쉬운 아이가 아닌 것은 틀림없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군. 하지만 오늘이면 어떤 아이인지 알게 되겠지.’

막 잡념에서 벗어나려는 때였다.

“부교주님.”

“무슨 일이냐?”

“교주님께서 납시었사옵니다.”

“안으로 뫼셔라.”

허진은 창문을 닫고는 문 앞으로 걸어갔다.

문이 열리고 교주 철혈마제 사공소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준비를 하지 않았나?”

사공소는 의식 때 입는 화려한 붉은 색 곤룡포를 입고 있었다.

“준비가 뭐 있겠습니까? 그냥 이대로 가면 됩니다.”

“그런가?”

사공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 중앙에 놓인 탁자로 걸어가 앉았다. 허진은 시녀를 시켜 차를 내오게 한 후 사공소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오늘 드디어 보겠군.”

“입마관 졸업시험이야 매년 보시지 않았습니까.”

“아니 졸업시험 말고. 부교주, 자네가 제자로 들이고 싶다는 그 아이 말일세.”

“예.”

허진은 달리 할 말이 없어 그저 고개를 살짝 숙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네의 엄포가 없었다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진작 찾아가 한 번 봤을 텐데…….”

“엄포라니요. 신이 어찌 교주님께 엄포를 놓겠습니까.”

“그런가?”

“그렇습니다.”

“그럼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지.”

사공소는 약간의 짓궂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에 농을 섞었다.

“어쨌든 자네가 점찍은 아이가 누군지 기대가 되는군, 후후후.”

“설마 교주님의 세 제자들에 비하겠습니까?”

허진의 대답에 사공소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다들 마음에 안 차.”

“그래도 하나같이 최고의 기재들이 아닙니까, 교주님.”

“됐네, 머리 아픈 이야기는 그만하지.”

사공소는 눈가에 주름을 더욱 깊게 잡았다가 다시 풀었다.

“이제 슬슬 입마관으로 가셔야 할 시간이옵니다, 교주님.”

그때 방 안으로 마교 군사 율기가 들어왔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사공소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허진을 쳐다봤다.

“가지. 자네의 제자가 될 아이를 보러. 하하하하.”

허진은 사공소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그와 함께 입마관 대연무장으로 향했다.

* * *

둥. 둥. 둥. 둥. 둥―

장중한 북소리가 대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대연무장 위쪽으로 거대한 석단이 만들어지고 그 위로 붉은 천막이 세워졌다. 그 천막 안에는 화려한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교주님께서 납시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입마관 대연무장에 퍼지자 천 명의 마련생과 교관들은 그 자리에서 엎드렸다.

“천세 천세 천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마련생과 교관들은 일제히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교주 철혈마제 사공소와 부교주 염라서생 허진을 비롯한 마교 주요 수뇌부들이 입마관 대연무장에 만들어진 석단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고작 입마관 마련생의 졸업시험이 있는 날 이들이 참가할 필요가 있는가 싶지만, 교주 사공소는 해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조직의 힘이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 만들어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렇게 교주 사공소를 따라 참석하던 주요 고위 수뇌부들이 종종 눈에 띄는 아이가 있으면 제자로 삼기도 하면서 입마관 졸업시험은 마교의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기립!”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교관과 마련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어 있던 의자에 교주를 비롯해 수많은 고위 인사들이 자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자 마련생들의 눈에는 흥분감과 긴장감이 가득 찼다.

어쩌다 보니 마현은 뒤쪽이 아닌 앞쪽에 서게 되었다.

그래서 마교 수뇌부들이 앉아 있는 석단과 거리가 가까웠다. 자연스럽게 부교주 허진과 눈이 마주쳤다.

마현은 그의 눈빛을 잠시 바라보다가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저 아이인가?”

사공소는 허진의 시선 끝에 서 있는 마현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렇습니다.”

“흐음…….”

사공소는 보고만 받았지 마현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재밌는 아이더군.”

사공소는 마현을 보며 히죽 웃었다.

“모든 수련을 거부하고 일 년 동안 오로지 심법에만 매달린 아이라. 그것도 하루에 한 시진도 안 자고 말이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수련을 했을까?”

사공소는 손으로 턱을 짚으며 시험 준비를 위해 움직이는 마련생들 사이에서 마현을 유심히 쳐다봤다.

허진 역시 령유를 시켜 항상 주시하고 있으니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주시했는데도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아이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교주님.”

허진은 슬쩍 미간을 좁히며 사공소를 쳐다봤다.

“왜 그러나?”

“방금 듣기로…… 저 아이에 대해 알아보신 것 같습니다.”

“아! 그거?”

사공소는 느긋한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부교주, 자네가 관심을 가지는 아이라고 해서 그냥 한 번 알아봤을 뿐이야. 꽤 재미있는 아이더군.”

“정말 그것뿐입니까?”

“설마 교주인 내가 자네가 점찍어둔 아이에게 손이라도 뻗을까봐 그러는가?”

사공소는 허진을 향해 야릇한 미소를 보이고는 다시 대연무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는 사이 대연무장에는 시험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물들이 설치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련생들은 외각으로 물러나 대연무장을 빙 둘러서서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현 역시 외각으로 벗어나 있었다.

“흠…….”

보고에 의하면 마현은 교관들 사이에서 입마관 사상 최악의 둔재로 낙인 찍혀 있었다. 이미 겪어본 마현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살아갈 아이가 아니었다. 허진은 마현에 대한 생각을 거듭할수록 점점 더 알 수 없었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알 수 있겠지. 마교에서 내쳐지던가 아니면 내 제자가 되든가.’

결국 변함없이 지켜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둥 둥 둥―

이내 북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 퍼지면서 졸업시험이 시작되었다. 총 네 가지의 시험을 보게 되는데, 그 시험들은 얼마나 기초가 잘 다져져 있는가를 점검하는 시험이었다.

시험을 보는 순서는 그동안 수업에서 받은 성적을 기준으로, 성적이 가장 낮은 이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사실 단순했다.

입마관 졸업시험을 보러 온 교주를 비롯한 고위 수뇌부들의 눈에 고작 마공을 익힌 지 1년 된 아이들의 실력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러니 당연히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장 떨어지는 아이부터 시작해 마교 수뇌부들에게 차츰 뛰어난 아이들을 보는 재미라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간혹 이 자리에서 제자를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천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일일이 관찰할 필요 없이 순서상 뒤쪽에 있는 아이들만 간단히 살필 수 있게 배려한 것이었다.

“마현, 앞으로.”

그런 이유로 마현이 가장 먼저 호명되었다.

마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시험장 위로 올라갔다.

교관의 지시에 따라 마현은 제법 무게가 나갈 법한 바위 앞에 섰다.

정확한 무게는 알 수 없겠지만 대략 400근은 되어 보였다. 그 바위는 마치 절구통처럼 생겨 성인이 아니라도 팔로 충분히 안을 수 있는 구조였다.

“첫 시험은 내력시험입니다.”

매년 똑같은 시험이라 마련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익히 알고 있었지만 교관은 큰 소리로 순서를 알렸다.

“바위를 들고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 데까지 걸어 나가거라.”

마현은 그 말을 들으며 살짝 낯을 찌푸렸다.

바위를 드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얼마나 걸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수업 자체를 듣지 않아서 아이들의 수준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 지금에 와 낭패가 된 것이었다.

“빨리 시작하지 못할까!”

교관은 마현이 뜸을 들이자 나직하게 호통을 쳤다.

마현은 재빨리 대연무장을 둘러싸고 있는 마련생들을 둘러봤다.

천 명 중 백 명 안에 들어야 하는 시험이다.

안전하게 마승관에 들려면 대략 전체 순위 50위쯤 하는 게 남들의 주목도 받지 않으며 떨어질 확률도 적다고 판단했다.

‘50위라…….’

마현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바위를 끌어안았다.

‘서른다섯 발자국만 가자.’

마현은 서클에서 내력을 끌어올렸다.

“라이트 로우드(Light load)!”

마현의 몸에서 뻗어나간 내력은 바위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바위는 순식간에 무게가 가벼워졌다. 본래 무거운 짐 등을 가볍게 하는 마법을 바위에 건 것이었다.

마현은 바위를 번쩍 들어올리고는 앞으로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정확히 서른다섯 걸음을 걷고 나서 바닥에 내렸다. 그 순간 마현은 몰랐지만 교관들의 눈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가 이내 비웃음으로 변해갔다.

‘죽어라 내공을 쌓더니 그래도 내력시험은 최고 수준으로 통과하는군. 하지만 이제 끝이다!’

모두가 그런 눈빛으로 마현을 쳐다봤다.

반면 마련생들은 너무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자네가 관심을 기울이는 아이가 첫 번째라…….”

가장 먼저 시험을 치루기 위해 나온 마현을 보며 사공소는 허진을 쳐다봤다. 그 둘 역시 시험을 치루는 순서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역시 재미있는 아이야, 안 그런가?”

“…….”

허진은 조금 어색한 미소로 사공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사공소는 그런 허진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가 흥미로운 눈으로 마현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응?’

마현이 바위를 드는 순간 사공소의 눈빛이 번쩍였다.

날카롭게 변한 눈빛은 마현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마현이 바위를 내려놓았을 때 다시 한 번 눈빛이 번쩍였다.

“흠…….”

사공소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침음성을 자신도 모르게 터트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함께 앉아 있는 마교 고위 수뇌부들을 쳐다봤다. 아무도 주위 깊게 마현의 움직임을 보지 않았음을 알아차리며 다시 고개를 돌려 마현을 쳐다봤다.

어느새 사공소의 눈빛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봤는가?”

“예.”

허진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변했지만 눈동자만은 반짝였다.

사공소와 허진은 봤다.

바위가 가볍게 들리는 모습, 그리고 필시 그 무게의 바위를 들고 걷는다면 지면에 바위의 무게로 인해 깊은 발자국이 생겨야 하는데 남지 않은 것. 게다가 바위를 내려놓을 때 의외로 가벼운 소리가 난 것까지, 사공소와 허진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미세한 틈이라 만약 사공소와 허진이 마현이라는 아이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면 그냥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부터 사공소의 말이 사라지며 눈동자는 마현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공소의 눈동자가 향한 곳은 커다란 통나무가 서 있는 곳이었다.

허진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또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기대가 되는군.’

이번에 마현은 커다란 통나무 앞으로 다가가 섰다.

어른 몸통 두세 배는 되어 보이는 아주 굵은 통나무가 수직으로 세워져 있었다.

“두 번째 시험은 공격시험입니다.”

교관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현은 통나무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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