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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5화 (2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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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어차피 아무런 수업조차 듣지 않았으니 검이나 도 같은 병기를 사용하지 않을 테니, 그냥 주먹으로 한 대 때리고 가거라.”

교관의 목소리에는 조롱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반쯤 부숴 버리면 되겠지?’

마현은 커다란 통나무가 한 사람 앞에 하나씩 준비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서클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준비된 통나무는 천 개가 아니었다. 대략 백 개가 조금 넘는 통나무를 준비했을 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넉넉하게 준비한 것이었다.

마현은 대충 눈대중으로 익힌 권술의 한 자세를 떠올렸다.

통나무에 가까이 붙어 왼손을 뻗어 통나무에 올린 후 두 다리를 벌려 엉거주춤하게 자세를 나췄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말아 쥐었다.

“마나 버스트(Mana burst)!”

서클에서 끌어올린 내력은 마현의 왼손을 타고 통나무 안으로 스며들어 통나무 중심부에 안착했다.

“하압!”

마현은 주먹을 휘두르며 통나무 안에 안착된 마나 덩어리를 폭발시켰다.

콰광!

콰지직, 지지직!

통나무는 그 자리에서 터지며 옆으로 쓰러졌다.

마현이 생각한 것처럼 통나무의 절반쯤이 부서져 있었다.

“어, 어…….”

옆에서 보고 있던 교관은 너무 놀라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마현은 그런 교관을 지나쳐 다음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사공소의 표정은 더욱 딱딱하게 굳어졌다.

‘분명 주먹이 통나무를 때리기 전에 터졌다. 그리고 그리 큰 내력은 아니지만 분명 통나무로 흘러들어 갔어.’

“흠…….”

사공소는 다시 침음성을 터트렸다.

마현이 보여준 움직임은 격체전공(隔體傳功)의 수로 가기 바로 전 단계였다.

“부교주.”

“예, 교주님.”

“분명 저 아이, 자네가 데리고 올 때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사공소의 물음에 대답하는 허진의 표정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사공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마현을 쳐다봤다. 그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져 있었다.

‘무공을 시작한 지 겨우 일 년. 이제 마용심법으로 얼마 되지 않을 마력을 익혔을 텐데 벌써부터 기의 운용이 저렇게 자유롭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군, 놀라운 일이야.’

사공소는 어느새 미소를 지우고 자신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마현을 쳐다보는 허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비록 시선은 차갑지만 허진의 눈동자는 분명 웃고 있었다.

저 아이를 보는 순간 제자로 삼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제자로 받아들일 생각을 굳힌 모양이군.’

마현이라는 아이에 대해 단지 흥미로운 이야기 정도로 듣고 지나쳤지만 지금은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다음은 암기술입니다.”

교관은 마현에게 열 개의 단검을 넘겨 주었다.

마현은 이질적인 감촉이 느껴지는 단검을 들고는 과녁을 쳐다봤다. 대략 6장(丈) 정도 떨어진 곳에 사람 머리만한 과녁이 눈에 들어왔다.

‘9개!’

분명 10개 다 맞추는 아이들이 나올 것이라 예상하며 마현은 단검을 손에 쥐었다.

“풋!”

단검을 쥔 모습을 보고는 여기저기서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단검을 던질 때는 칼날을 잡는 것이 기본 상식이었다. 헌데 마현은 단검 손잡이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나 미사일(Mana missile)!”

마현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단검 겉으로 얇게 마나 미사일을 둘렀다.

“하압!”

일부러 우렁찬 목소리를 터트리며 순차적으로 단검을 앞으로 집어던졌다.

쐐애애액―

콱, 콰과과곽!

다섯 개의 단검이 정확히 과녁 중앙에 꽂혔고, 네 개는 아슬아슬하게 과녁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머지 단검 하나는 과녁을 한참 벗어나 꽂혀 있었다.

“후우…….”

마현은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며 다음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허어…….’

사공소는 마현을 보면 볼수록 탐이 났다.

방금 마현이 보여준 기술은 단검을 던진 것이 아니었다. 기의 흐름에 단검을 밀어 넣은 것이었다.

‘거기에다 마지막 하나는 고의로 맞추지 않았어.’

정말 무공을 일 년 배운 녀석이 맞는가, 의심이 갈 정도로 기의 운용이 놀라웠다. 사공소의 눈에 마현은 그저 그런 아이가 아닌 기의 운용에 관해서는 천재였다.

사공소는 가라앉은 눈으로 마현을 주시하고 있는 허진을 슬쩍 쳐다봤다. 그리고는 이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다시 마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사공소의 눈빛에는 다른 감정이 담겨 있었다.

마현은 마지막 시험대 앞에 섰다.

“마지막 보법시험입니다!”

마현은 땅바닥에 그려진 발자국들을 내려다보았다.

총 열다섯 개가 찍혀 있었다.

마현은 발자국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3개의 서클에 내력을 모두 끌어올린다면 상당히 무리가 따르지만 열다섯 개를 전부를 밟을 수는 있었다.

‘무리할 필요는 없다. 마지막 세 발자국은 찍지 않는다!’

마현은 단전을 둘러싼 서클의 마력을 모두 끌어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첫 발자국 위로 발을 올려놓았다.

“블링크(Blink)!”

파바바바, 파바밧!

마현의 몸은 발자국의 순서에 따라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열두 개의 발자국을 찍은 마현은 휘청거리며 열세 번째 발자국을 겨우 찍었다. 그리고는 지친 듯 열네 번째와 열다섯 번째 발자국은 밟지 않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헉헉헉.”

마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도면……, 무난할 거야.’

마현은 한참 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콰당탕탕탕!

우당탕탕탕!

의자가 뒤로 넘어가는 소리가 대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소리를 들어 보건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

의자가 뒤로 넘어가는 것도 모른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들은 바로 사공소와 허진이었다.

특히 사공소의 눈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자신조차 마현의 신형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마치 잔상처럼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삼류 보법인 광마보를 어느 상승 보법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보법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미, 믿을 수 없다! 나, 나의 눈이 따라가지 못하는 보법이라니!’

천재였다.

아니 천재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부, 부교주. 부, 분명 저 아이 본교로 와서 무공을 익힌 것이 맞나?”

“교, 교주님.”

허진은 사공소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미안하네.”

“서, 설마!”

“정말 미안하네.”

사공소는 허진을 항해 고개를 돌렸다.

“저 아이, 저 아이. 나 주게!”

“교, 교주님!”

허진은 사공소를 불렀지만 그는 이내 시선을 돌려 마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율 군사!”

사공소는 허진의 시선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군사 율기를 불렀다.

“예, 교주님.”

“당장 저 아이에 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라. 하나도 빠짐없이 가져와야 한다. 이 시험이 끝나기 전에.”

“명!”

율기는 그 즉시 정보단체 비영대를 향해 뛰어갔다.

사공소는 내력이 고갈돼 비틀거리며 그늘로 걸어가는 마현을 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 * *

올해 입마관 졸업시험에 큰 이변이 일어났다.

원래 마지막 마련생에서부터 역순서로 수석을 비롯해 100위까지 순위가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수석이 가장 후미에서 시험을 치른 아이가 아니라 가장 먼저 시험을 본 아이였다. 그것도 차등과 엄청난 실력 차이를 보인 것이었다.

모두 그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형식적으로 수련에 겨우 참가했을 뿐인 마현이 어쩌면 입마관 역사상 가장 우수한 성적일지도 모르는 엄청난 기록을 남긴 것이다.

그런 충격은 대연무장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의외의 결과에 마교 수뇌부들 역시 호기심 어린 눈빛을 띠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고조되어갈 때 군사 율기가 마현의 신상정보를 들고 왔다.

사공소는 재빨리 받아들고는 자세히 읽어나갔다.

마현에 대한 신상정보를 읽어나가면서 사공소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나갔다.

모든 서류를 다 읽은 사공소는 고개를 들어 마현을 쳐다봤다.

‘빛과 어울릴 수 없다. 나는 어둠의 자식이다. 그 이유로 무당파 제자가 되기를 거부했다고?’

신상정보를 본 후 사공소는 더욱 마현이 마음에 들었다.

더욱이 무공을 익힌 지 일 년도 되지 않았다.

정확히 10개월 보름이 지난 아이였다.

“입마관 졸업시험, 수석 마현!”

입마관 관주 악의명이 마련생들 사이에 서 있는 마현을 대연무장 중앙으로 불러냈다. 관행에 따라 교주의 술잔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마현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생각지도 못한 졸업시험 수석을 차지하게 돼 버린 것이다.

그토록 연기까지 해가며 조용히 마승관에 들어가려던 모든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이다. 굳어진 표정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그렇게 마현은 악의명을 따라 대연무장을 지나 석단 중앙으로 향했다.

그곳에 마현이 익히 잘 아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바로 부교주인 염라서생 허진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쳐다보는 허진의 눈빛이 조금 이상했다. 가까워질수록 드러난 그의 표정은 왠지 무언가를 안타까워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동시에 착잡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다 먼저 고개를 돌리는 것도 보였다.

마현은 그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며 사공소 앞으로 다가가 섰다.

“교주님이시다.”

악의명의 말에 마현은 허리를 숙였다.

“마현입니다.”

“어허, 이놈! 어서 부복하지 않고!”

악의명이 마현의 모습에 나직이 호통쳤다.

“됐다!”

사공소의 말에 악의명은 마현을 매섭게 노려본 뒤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마현이라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교주님.”

“고개를 들라.”

마현은 허리를 곧게 펴며 고개를 들었다.

“듣자하니 우리 부교주의 제자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고?”

“헉!”

“헙!”

사공소의 말에 허진의 안색은 더욱 딱딱하게 굳어진 반면, 마교 고위 수뇌부들은 놀라 다들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본좌의 제자가 되는 것은 어떠냐?”

순간 주위는 정적에 휩싸였다.

너무 놀라 그 어떤 소리도 지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것 때문이었나?’

마현은 허진의 표정이 어두운 이유를 비로소 알았다.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

마현은 사공소를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싫습니다.”

그 말에 사공소가 찢어질듯 눈을 부릅떴다. 설마 자신의 제자가 되는 것까지 거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거라. 내 제자가 된다면 너는 천하제일의 무공을 익히게 된다.”

“죄송합니다.”

마현은 공손하게 허리를 반쯤 숙였다. 하지만 교주의 제안은 아주 칼같이 잘라 버렸다.

“크흠…….”

사공소는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마현을 내려다보았다.

그 모습에 대연무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이제는 숨 쉬는 소리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감히 교에서 누가 교주의 말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갓 입마관을 졸업하는 아이가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것도 제자로 들어오라는 어마어마한 제안을.

“푸하하하하!”

사공소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마현은 허리를 숙였다.

“더 이상 볼일이 없다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렸다.

사공소는 그런 마현을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놓친 물고기가 더 크고 맛이 있어 보인다고 했던가?

“본교에서 나의 명을 거스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마현은 사공소의 말에 발걸음을 멈췄다.

“조만간에 보자구나. 내 제자가 되어서…….”

사공소는 그 말을 남기고 몸을 홱 돌려 대연무장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사공소가 대연무장을 나가 버리자 흐지부지하게 졸업시험이 끝이 났다. 뒤에 있을 졸업식 역시 그냥 생략이 되어 버렸다.

마현은 어수선한 입마관 대연무장을 빠져나왔다.

이내 사공소와 허진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의 제안까지.

‘하지만 나는 나의 길을 걸을 것이다! 나는 마인이 되었지만 무인이 아닌 흑마법사다!’

마현이 그렇게 입마관을 나와 향한 곳은 바로 마웅총이었다.

<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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