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3화 (33/351)

# 33

8화

“성격상 돌려 말하지도 못하거니와, 사공자 눈빛을 보니 돌려 말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하니 그냥 말하지. 사공자는 부교주님의 제자가 맞는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스승님의 제자라는 것은 교인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일 텐데요.”

“끌끌끌끌.”

가릉은 눈가의 주름을 더욱 깊게 파며 가래가 낀 웃음을 내뱉었다.

“다른 이들은 속여도 나는 못 속여.”

가릉의 말에 마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 늙은이가 누군지 아는가?”

“…….”

마현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가릉을 쳐다만 볼 뿐이었다.

“마의당 당주지. 거기에 좀 오래 살았는가? 내가 모신 교주님만 해도 현 교주님까지 세 분이지.”

가릉은 목에 가래가 끼었는지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상처를 입힌 이공자 사공찬 말이야.”

“…….”

“그에게 아주 재미난 장난을 쳐놨더군.”

가릉의 얼굴에 주름이 한껏 늘어났다. 눈빛을 보니 웃음을 짓는 것 같았다.

“이 나이가 되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네만…….”

가릉은 마현 쪽으로 몸을 숙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하지만 사공찬의 몸에 심어놓은 장난에는 호기심이 생기더군.”

“그래서요?”

마현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내 강시를 다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술들을 접하고 배웠지. 그리고 더 이상 내 눈을 피해갈 수 있는 사술은 없을 것이라 자부했어. 하지만 사공자, 자네의 그 능력은 이 늙은이가 처음 본 것이었어.”

차분하던 가릉의 눈빛이 어느새 욕망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그 사술을 어디서 배웠나?”

“제 귀에는 능력을 알려달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만.”

“칼칼칼칼칼.”

가릉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가래가 섞인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늙은이가 주책을 부렸군.”

“저를 바라보던 눈빛이 아주 뜨겁더군요.”

“흠…….”

가릉은 갑자기 웃음을 멈추며 침음성을 내뱉고는 마현을 쳐다봤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이 늙은이가 초조해진 모양이야. 내가 생각해 봐도 별 친분도 없는 이가 찾아와 전 재산을 내놓으라고 하는 꼴을 보였으니.”

강한 욕망을 담고 있던 가릉의 눈동자는 어느새 힘없는 노인의 멍한 눈동자로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말일세.”

힘이 담긴 카랑카랑하던 목소리가 아닌 깊은 회한에 잠긴 나직한 어조로 가릉은 말했다.

“평생 이루고 싶은 그 무언가가 있어. 나는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할 생각이야.”

가릉의 눈빛은 전보다 더 강렬하고 뜨겁게 활활 타올랐다.

“자네가 주지 않으면 빼앗아서라도……, 그 사술이 무엇인지 알아내야겠네.”

가릉의 몸 주위로 유형의 시커먼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단지 검은 기운이 아니라 독이었다. 하지만 그 독이 마현에게까지 흘러오지는 않았다.

지금은 단지 위협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 독이 마현을 덮칠 것이 분명했다.

“알려줘도 배우지 못할 겁니다.”

마현은 느긋한 표정으로 말하며 찻잔을 들었다.

“그건 내가 판단한다!”

가릉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독기운이 일렁거리며 마현을 위협했다.

“그래, 그 한이라는 게 무엇인지나 들어 봅시다. 그래야 알려주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닙니까.”

비록 그렇게 말했지만 흑마법을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다만 가릉이 무엇에 이토록 집착하는지 잠시 궁금해진 것뿐이었다.

“……강시다.”

“강시?”

“그래, 강시술의 부활이다.”

가릉은 독을 다시 흡수하며 대답했다.

“강시라는 게 뭡니까?”

강시의 존재를 알 턱이 없는 마현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거참, 마인 주제에 강시도 모르다니…….”

의외의 질문에 맥이 탁 풀렸는지 가릉의 카랑카랑하던 목소리는 차가움을 잃고 흐려졌다.

“강시란 죽은 자를 살리는 술법이다.”

그 말에 마현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달라진 마현의 그 눈빛을 가릉은 읽을 수 있었다.

‘뭔가 있다!’

쿵쾅 쿵쾅 쿵쾅!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무엇을 아는 것이냐!”

가릉이 벌게진 얼굴을 하고선 벌떡 일어섰다. 그 바람에 앉아 있던 의자가 거친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마현은 그저 픽 웃으며 입꼬리를 말았다.

“이놈!”

가릉은 단숨에 몸을 띄워 탁자 위로 올라가서는 마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백 살이 넘은 노구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움직임이 무척 날렵했다.

“블링크!”

마현은 가릉이 탁자 위로 올라서자마자 침상 앞으로 순간 이동했다.

쑤아악!

가릉의 손은 허공을 갈랐다.

“헙!”

가릉은 탁자 아래로 내려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그런 그의 눈에 침상 앞에 서 있는 마현의 모습이 들어왔다.

“가 당주.”

마현은 가릉을 향해 마기를 발산하며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이제껏 연세를 생각해 대우해 줬건만 그대의 모습은 너무 무례하다.”

마현의 마기는 어느새 투기와 살기까지 담고 있었다.

가릉은 몸을 조여오는 기운에 대항해 입술을 깨물었지만 본능적으로 몸이 가늘게 떨리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가릉이 마의당 당주이고 모든 교인이 알아주는 원로 마인이라고 해도 그는 무인이기에 앞서 마의였다.

‘이제 입마관을 졸업했다고 들었는데……. 하기야, 이공자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설마 벌써 부교주님의 절기를 전수받은 것인가? 크흠, 그건 아니다! 부교주님에게 그런 사술은 없다.’

가릉은 갑자기 몰려온 혼란스러움에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혼란만 생겨났다.

“가 당주, 지금 그대의 모습은 하극상 그 자체다.”

마현이 다가오자 가릉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말하라, 강시란 어떤 존재인지를.”

“…….”

가릉은 자신을 짓누르는 마현의 기운에 조금이라도 대항하기 위해 독문무공인 독공을 극성으로 일으켰다. 그제야 어느 정도 숨이 트이는지 마현을 제대로 쳐다볼 수 있었다.

“도, 도대체 자……, 아니, 사공자의 진정한 정체가 무, 무엇이오?”

“그건 그대가 알 필요 없다. 말하라, 아니면 넌 나를 기만한 죄로 이 자리에서 죽는다.”

마현의 살기 어린 말에 가릉은 등골을 타고 차가운 한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강시란 내 평생 한이오.”

그렇게 일순간 기가 꺾인 가릉은 고개를 숙이며 강시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맞춰 마현 역시 기운을 다시 갈무리했다.

“다시 앉으시오. 보아하니 이야기가 제법 길 것 같은데.”

“아, 알았소.”

기가 꺾인 것인지 아니면 마현의 말에 이제는 한이 되어 버린 강시술에 대한 희망을 찾은 것인지, 가릉은 쉽게 말문을 열었다.

마현의 예상대로 제법 오랜 시간 가릉은 강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설명이 끝나는 순간 가릉은 고개를 들어 마현의 얼굴을 뚫어질 듯 갈망 어린 시선으로 쳐다봤다.

‘강시라…….’

마현은 가릉의 설명을 떠올렸다.

과거 철강시에서부터 혈강시, 그리고 아수라강시까지 수많은 강시들이 만들어지고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황실의 탄압이 시작된 그 시기에 모든 강시들은 사라졌고, 강시술마저 완전히 맥이 끊어졌다고 한다.

“이 가모는 소환술이 반드시 필요한 아수라강시까지 원하는 것은 아니오. 그저 꼭두각시 인형일지라도 강시를 다시 만들고 싶을 뿐이오. 내 평생을 강시를 위해 바쳤소. 그러니 사공자.”

마현을 쳐다보는 가릉의 눈동자에는 절실함이 묻어나왔다.

“강시에 관해 아는 것이 있으면 뭐든지 알려주시오. 정말 강시술의 열쇠가 될 만한 것을 알려준다면 이 늙은이 뭐든지 다 하겠소.”

마현은 갈망으로 가득 찬 가릉의 눈빛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

‘강시라……, 아주 재미있군. 설명을 들으면 데스나이트나 스켈레톤, 좀비와 비슷한 존재인 것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임이 틀림없어.’

문득 마현은 현재 계약 중인 네 기의 데스나이트를 떠올렸다.

시간이 나지 않아 그들을 다시 부르지 않았지만 그들이 깨어난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둠의 갑옷을 입지 않은 채 마치 스켈레톤처럼 해골의 모습으로 어둠에서 깨어났었다.

그 이유가 아마도 이곳의 장례문화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더 구체적인 이유를 찾는다면 갑옷의 유무이겠지만.

죽은 기사들은 갑옷이 입혀진 채 땅에 묻힌다. 그리고 피와 살이 흙으로 돌아갈 때 만들어지는 사기가 뼈뿐만 아니라 갑옷에도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그 둘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 이치로 깨어나는 데스나이트들은 하나같이 갑옷을 입은 채 깨어나는 것이다.

물론 간혹 갑옷과 함께 매장되지 않아 스켈레톤처럼 깨어나는 데스나이트도 있다는 소리를 오래된 서적과 풍문을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같은 이유로 마현이 깨운 데스나이트도 모두 갑옷을 입지 않은 모습으로 깨어났다.

그것은 보기도 안 좋고, 외부의 충격을 일차적으로 막아주는 갑옷도 없었기에 자신의 마기를 이용해 갑옷을 만들어 줄까 잠시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군문의 장수가 아닌 한 거의가 갑옷을 입지 않는 중원 무림의 세상에서 너무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싶어 잠시 결정을 뒤로 미룬 상태였다.

마현은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가 당주.”

“마, 말씀하시오.”

“현재 어디까지 복원했소?”

“…….”

가릉은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그의 표정으로 보건대 상당히 망설이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미 칼자루는 마현이 쥐고 있었다.

“싫으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냅시다. 나야 아쉬운 것이 없으니.”

마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하자 가릉이 서둘러 마현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아, 아니오. 마, 말하겠소.”

마현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검기(劍氣)에 피부는 베어지나 뼈까지 검상을 입지는 않았소. 검사(劍絲)에는 뼈도 다치나 잘려지지 않고, 검강에는 잘리오. 아마 철강시와 혈강시 중간쯤이 될 것이오.”

망설임이 사라졌는지 목소리에 막힘은 없었다.

‘호오.’

마현은 속으로 나직한 감탄을 터트렸다.

그만하면 데스나이트가 입는 갑옷이나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데스나이트에게 갑옷이 아닌 피부를 입히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최소한 남의 이목은 끌지 않을 테니까.’

어느 정도 생각을 굳힌 마현은 가릉을 불렀다.

“가 당주.”

마른 침을 삼키며 가릉이 마현을 쳐다봤다.

“선택은 두 가지가 있소.”

“무엇이오?”

“그냥 돌아가든가…….”

가릉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아니면 나에게 무릎을 꿇던가.”

“그, 그 말은?”

“나는 내 사람이 아닌 자에게 나의 것을 알려주지도 보여주지도 않아.”

어느새 마현은 다시 가릉을 향해 말을 놓고 있었다.

“하, 하지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군. 어차피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니 시간을 주지. 길지 않은 시간이 될 수도 있고, 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내가 찾아가는 날 확실한 대답을 하면 된다.”

“…….”

망설이는 가릉을 향해 마현이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보탰다.

“적어도 그대가 무릎을 꿇으면 평생의 한을 풀게 된다는 것은 약속하지.”

마현은 느긋하게 식은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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