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9화 (39/351)

# 39

14화

“앉아라.”

마현은 의자 하나를 가져와 허진 앞에 앉았다.

“그래, 어떤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 온 것이냐?”

허진의 목소리에는 미약하지만 들뜬 감정이 실려 있었다. 혹시나 마현이 무공을 배우겠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나름 기대한 것이다.

“단전의 성장이 멈췄습니다.”

마현의 대답에 허진은 순간 섭섭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감정을 수습했다.

“아마 마령단의 기운 때문일 것이다.”

“네?”

마현은 조금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작은 그릇에 많은 물을 담을 수 없다. 너의 깨달음에 비해 마령단의 기운이 큰 것은 당연한 일. 좀처럼 없는 일이지만 마령단의 기운 때문일 것이다. 마령단의 풍부한 기운으로 인해 너의 단전 크기는 네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단전을 만들었을 것이다. 현재 너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그 어떤 벽을 허문다면 단전은 다시 커질 것이고, 그때 가서 다 흡수하지 못한 마령단의 기운마저 모두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허진은 마현이 아직 마령단의 기운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것이라 예상하며 이야기해 주었다.

“마령단의 기운이라면 모두 흡수한 지 이미 오래입니다.”

“뭐?”

허진은 그 말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령단의 기운은 무려 일 갑자다.

어지간한 깨달음이나 무공의 성취가 없다면 쉽게 흡수할 수 있는 그저 그런 영약이 아닌 것이다.

“……잠시 네 몸을 살펴봐야겠다.”

잠시 고민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더니 허진은 이내 손을 내밀었다.

마현은 망설임 없이 스승을 향해 손목을 내밀었다.

찌릿한 느낌이 손목에서 바로 느껴졌다.

허진의 기운이 마현의 몸 안으로 스며들어온 것이다.

눈을 감고 마현의 단전을 살피는 허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허어! 이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허진은 기운을 거둬들이며 복잡한 눈으로 마현의 얼굴을 쳐다봤다.

“무엇이 문제인지 아시겠습니까, 스승님?”

진지한 목소리로 묻는 마현의 얼굴과 몸을 허진은 번갈아 쳐다보며 불쑥 물었다.

“네 나이가 올해로 열일곱이지?”

“그렇습니다.”

허진은 느닷없는 질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

허진이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자신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자 마현은 답답한 마음에 그를 불렀다.

“내가 너무 잘난 제자를 두었구나.”

“네? 그게 무슨…….”

허진은 여전히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섭섭하다.”

“……?”

마현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어 그저 눈만 끔뻑이며 허진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스승의 손길을 타지 않는 녀석이…… 허허, 허허허. 무심한 놈.”

결국 욕 아닌 욕 같은 말까지 들었다.

“……스승님?”

마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허진을 빤히 쳐다보며 다시 그를 불렀다.

“너의 단전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마현은 속으로 허진이 뜸을 들여도 너무 들인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불만스런 감정이 생겼지만 밖으로 그것을 내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단전의 성장이 멈춘 이유가 너무 궁금했기에 마현은 허진을 향해 몸을 숙였다.

“네 몸이다.”

“……?”

“너의 나이 이제 열일곱이다. 순수한 신체로만 봤을 때 너는 완성된 신체를 가지지 못했다. 보통 스무 살 전후로, 사람의 체질에 따라서는 그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신체가 다 자란다. 즉, 완성된다는 소리다. 네가 아직 나이가 어리다 보니 더 이상의 성장을 단전 스스로 거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허진의 말은 마현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문제였다.

정상적인 성장을 한 이라면 이처럼 어린 나이에 지금의 마현처럼 많은 내력을 가지지 못한다.

마현은 눈을 내려 자신의 몸을 쳐다봤다.

아직은 어린 나이, 그로 인해 아직 다 성장하지 못한 몸.

“솔직히 이 스승은 네가 홀로 이만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거라. 지금 너의 한계는 시간이 흘러 더 자란다면 해결될 문제다.”

마현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허진은 그런 마현을 보며 흐뭇한 감정이 들었고 한편으론 섭섭함 역시 느껴야 했다.

“후우…….”

나직이 한숨을 내쉰 마현은 고개를 들었다.

“그만 물러가보겠습니다.”

“그래.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오늘 하루는 그냥 편히 쉬어라.”

마현은 허리를 숙여 인사한 후 몸을 돌렸다.

‘열일곱에 일 갑자 반. 굳이 내력으로만 따진다면 초절정 정도인가? 귀재라고 불리던 추도영도 그 나이에 저 정도는 아니었어.’

허진의 눈은 문을 나서는 마현의 등을 끝까지 좇았다.

‘천재는 그냥 놔두어도 알아서 길을 연다고 했던가?’

섭섭한 마음은 이내 야속함으로 바뀌었다.

자신의 거처로 돌아오던 마현은 방 한구석에 놓인 커다란 면경 앞에 섰다.

그동안 제대로 자신의 몸을 본 적이 없었던 마현은 생각보다 어린 자신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열일곱 살 소년 치고는 제법 청년 티가 났지만 그래도 어리긴 매한가지였다.

빠르면 스무 살, 늦으면 그보다 이삼 년 뒤.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다.’

마현은 한참 동안 면경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다 피식 웃으며 손을 들었다.

‘설마 내 자신에게 저주 마법을 펼치게 될 줄은 몰랐군.’

결심을 굳히자, 마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아직 성장하지 못한 몸이라면 강제로 성장하게 만들면 될 뿐.’

마현은 지금 저주 계열의 흑마법인 노화(老化) 저주 마법(Aging)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적에게 펼치는 것처럼 한순간 강력한 노화 저주 마법을 펼칠 생각은 아니었다. 그건 급격한 몸의 변화를 가져와 신체의 균형을 완전히 깨 버리는 마법이다.

노화 저주 마법을 펼치겠지만 아주 약하게, 그리고 서서히 대략 일 년 정도의 시간을 들여 20대 초중반의 신체로 탈바꿈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그렇다 해도 오는 신체의 불균형인데…….’

마현이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공자님, 마의당 가 당주께서 오셨습니다.”

“가 당주가?”

가릉의 이름을 듣는 순간 마현의 머릿속에 뭔가 반짝 스쳐지나갔다.

“안으로 모셔라.”

마현의 허락이 떨어지자 가릉이 안으로 들어왔다.

“주군을 뵙습니다.”

가릉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흑사신의 일은 모두 끝난 건가? 생각보다 흑도에게서 시간이 걸렸군. 자, 앉지.”

마현은 가릉을 데리고 다탁으로 가 앉았다.

“주군, 전에 말씀하신 마심단 제조에 필요한 것들을 적어 왔습니다.”

가릉은 품에서 종이를 꺼내 마현 앞으로 내밀었다.

마현은 그 종이를 펼쳐 안에 적힌 내용을 읽어보았지만 사실 약초 등에 거의 무지한 터라 읽어봐도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나보다 스승님과 이야기하는 게 더 빠르겠군.”

“부교주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솔직히 지금 내가 무슨 힘이 있나?”

가릉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한 가지 더 일을 해줘야겠다.”

마현은 종이를 품에 넣으며 가릉을 쳐다봤다.

“하명하십시오.”

“일 년 동안 강제로 내 몸을 20대 초로 성장시킬 생각이다.”

갑작스런 마현의 말에 가릉의 눈이 크게 떠지며 눈가에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흐름을 역행하는 일이다 보니 몸에 불균형이 생길 것이고 생각 이상으로 무리가 올 것이다. 그런 내 몸을 보호하고 싶다.”

“주, 주군. 외람된 말씀이오나…… 주군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지 노신이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가릉은 결코 묻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알면 알수록 마현의 능력은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나야 부교주님의 제자이면서 본교의 네 번째 공자가 아닌가?”

마현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해 주었지만, 스스로도 이것이 가릉이 원하는 대답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내 사람이니 말해 주지.”

가릉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흑마법사다.”

“……흑마법사?”

처음 듣는 말에 가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충 그 정도만 알아둬라.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까.”

오히려 더욱 궁금증이 커졌지만 가릉은 애써 호기심을 억눌렀다.

“그럼 지하 연무실로 내려가 볼까?”

마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노신은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같이 내려가지. 그대 역시 흑사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할 것이 아닌가.”

마현은 가릉을 데리고 지하 연무실로 내려갔다.

지하 연무실은 아주 어두웠다.

가릉이 먼저 나서 화섭자를 꺼내려 했지만 지하 연무실의 구조를 모르니 횃불을 켤 수가 없었다.

“라이트(Light)!”

마현은 라이트 마법으로 지하 연무실을 밝게 만들었다.

“헉!”

가릉은 신비한 빛 덩어리에 깜짝 놀라 뒷걸음 치다가 계단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가릉의 눈동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빛 덩어리를 만들어 지하 연무실로 들어서는 마현의 등을 따라 움직였다.

‘도대체 주군의 진정한 능력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마현을 쫓아 발걸음을 빨리 놀렸다.

가릉은 지하 연무실 구석에 서서 마현을 지켜봤다.

“흑사신, 소환!”

마현의 손에 그려진 알 수 없는 도형이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땅바닥에서 네 명의 흑사신이 불쑥 튀어 올라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켈레톤처럼 뼈로만 이루어져 있던 흑사신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여느 인간처럼 각자 개성을 가진 모습으로 소환되었다.

“허허헛.”

흑권이 가장 먼저 몸을 움직이며 흡족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은 예전처럼 공기와 공명된 소리가 아닌 입과 혀로 이루어진 완벽한 목소리였다.

“마음에 드는가?”

약간이라도 어색함이 있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그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보통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외형적으로 완벽했다.

“크하하하하!”

역시나 흑도였다.

그는 한이라도 풀려는 듯 목청껏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면경! 면경!”

흑도는 그렇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가장 먼저 면경을 찾았다.

하지만 지하 연무실에 면경이 있을 리 만무했다. 흑도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구석에 서 있는 가릉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 멱살을 움켜잡았다.

“야, 가 어린아이야!”

“왜, 왜 그러십니까, 어르신?”

“면경이 준비되지 않은 것을 보니, 내가 말한 놈으로 하지 않았지?”

흑도는 금방이라도 가릉을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그만 해라, 흑도.”

마현의 음성에 흑도는 시퍼런 눈빛으로 가릉을 한 번 째려본 후 잡고 있던 멱살을 풀었다.

“그러고 보니 면경을 준비하지 못했군.”

마현은 그들이 다시 소환되면 달라진 자신들의 모습을 궁금해할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지. 미러 이미지(Mirror image)!”

마현은 네 흑사신의 경상(鏡像)을 만들었다.

네 흑사신은 느닷없이 자신들 앞에 나타난 사람 모양의 형상에 잠시 깜짝 놀랐다가 어느 순간 그 형상이 자신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면경이 없으니 일단 그것으로 만족해라.”

흑사신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신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크크크, 크하하하하!”

세 흑사신은 조용히 자신들의 모습을 살폈지만 유독 한 명, 흑도만은 다시 목젖이 보일 정도로 고개를 젖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정녕 이게 내 얼굴이란 말인가?”

흑도는 풍이라도 걸린 환자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며 환희에 찬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도 이제 천하미남의 반열에 오르는구나, 기다려라 천하의 여인들이여! 이 광풍도마 사극유가 너희들의 가슴에 활활 타오르는 불화산을 터트려 주겠다. 크하하하하!”

급기야 미친놈처럼 대소를 터트리더니 이내 히죽히죽 웃음을 남발했다.

다른 세 흑사신은 외형보다 새로 얻은 신체가 자신들에게 잘 맞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폈지만 흑도만은 관옥 같은 얼굴을 뜯어보기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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