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41화 (41/351)

# 41

16화

흑사신들은 마현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자신들을 강제 귀환시킨 탓인지 별로 표정이 좋지 않았다.

“서열은 정해졌나?”

그렇다고 마현이 그들에게 사과할 생각은 없었다.

마현의 말에 흑검과 흑창이 고개를 돌려 흑권을 쳐다봤다. 그와 동시에 흑도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구석으로 가 쪼그려 앉더니 머리를 벽에 쿵쿵 부딪혔다.

“정해진 모양이군.”

마현은 앞으로 나서는 흑권과 구석에서 머리를 처박는 흑도를 보며 피식 웃었다.

“흑도, 이리 와.”

마현이 흑도를 불렀지만 그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주인, 본좌를 그냥 놔두면 안 될까?”

풀이 잔뜩 죽은 목소리였다.

“흑도, 너 당장 이리 와!”

흑검이 흑도를 향해 차갑게 명령조로 말했다.

그러자 흑도가 흑검을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다시 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흑권이 다시 입을 열려는 흑검을 손으로 살짝 말리며 부드럽게 불렀다.

“흑도!”

“왜 그러슈, 흑권 수장.”

흑권의 부드러운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흑도는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고개만은 여전히 돌리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도 자네는 여전하군, 허허허.”

흑권은 시정잡배와도 같은 흑도의 말에 그저 성격 좋은 서당 훈장처럼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수장으로 말하지만 우리 흑사신 간에 서열은 없네. 그러니 그만 이리로 오게나.”

“서, 선배님. 아, 아니 수장님.”

그러자 가장 당황한 것은 흑검이었다.

“흑검.”

“……예.”

흑권의 부름에 흑검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비록 우리가 살았던 시대는 다르나 이제는 동료가 아닌가? 그리고 다들 살만큼 살다가 죽었고. 안 그런가? 그러니 누가 위니 아래니 그런 것은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네. 이건 수장으로서의 명령이자 방침일세. 그러니 따라주게.”

흑권은 흑검을 부드럽게 타일렀다.

“……알겠습니다. 흑권 선배님이 우리들의 수장이시니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

흑권은 부드럽게 웃으며 흑창을 쳐다봤다.

“상관없습니다.”

흑창은 아주 짧게 대답했다.

“푸하하하하. 역시 흑권 선배님이셔.”

우중충하게 벽 모서리에 앉아 있던 흑도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허리를 젖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흑검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와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암, 이제 우리는 동료지, 동료야. 애초에 서열 싸움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었어. 안 그러냐, 흑검아? 크크크.”

“이, 이놈!”

흑검은 차디찬 목소리를 내뱉으며 허리에 찬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흑권 선배, 아니 수장. 이 흑도, 자존심은 상하지만 수장으로 모시겠소. 잘 부탁하오.”

흑권은 흑검을 살짝 피해 다가와 흑권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러면서 다시 고개를 살짝 돌려 흑검과 흑창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흑검. 크크크.”

흑도의 말에 흑검은 검을 잡은 채 부들부들 떨었다.

“잘 부탁한다, 흑창.”

흑창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제 정리가 완전히 된 것인가?”

마현의 물음에 흑도가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서둘러 입을 열었다.

“다 끝났다, 주인.”

그런 흑도의 모습에 마현은 다시 피식 웃은 후 흑권을 쳐다봤다.

“그럼 본론만 이야기하지. 오늘부터 돌아가며 나와 비무를 했으면 한다.”

“비무?”

“너희들 역시 어느 정도 느꼈겠지만, 나는 이 세계 사람이 아니다.”

어렴풋 느끼고 있었지만 막상 마현의 입을 통해 듣게 되자 다들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온 곳은 하르센 대륙, 그리고 나의 진정한 신분은 흑마법사다.”

“흠…….”

흑권은 마현의 말을 들으며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일일이 설명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니 머리를 비워라. 내 기억을 주겠다.”

마현은 마력을 끌어올려 자신의 기억 일부를 끄집어냈다.

“메모리 크램(Memory cram)!”

하르센 대륙의 마법사와 기사, 용병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이 흑사신들의 머릿속으로 주입되었다.

“흐음…….”

“으음…….”

머릿속에 낯선 기억들이 떠오르자 흑사신들은 놀라 탄성을 내지르다가 곧 침묵에 빠졌다.

“마법사라……, 실로 놀라운 존재들이군.”

흑권은 순수하게 마법사의 존재에 대해 감탄했다.

“뭐야? 기사라는 놈들이 뭐 이리 형편없어?”

흑도는 마치 자신의 자존심이 상한 것처럼 투덜거렸다.

“마법사의 존재 때문인가? 기사들의 검술이 우리와 달리 너무 조악하군.”

“이야기하기 편하겠군. 며칠 전 너희들의 무공을 본 후 나는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 괜히 검사들의 세상이 아니더군. 언젠가는 하르센 대륙으로 돌아가야 하나 중요한 것은 내가 여기, 이 무림에서 살아남아야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들의 힘이 필요하다.”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이군. 그대가 있어야 우리가 있으니까. 그리고 이왕이면 우리는 강한 주군을 모시고 싶다. 어차피 우리는 그대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

흑권의 진지한 말에 마현은 입안에서 쓴맛을 느꼈다. 비록 마현에게 속박된 존재임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마음은 주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이었기에.

“우리에게 무공을 배우고 싶다는 것인가?”

흑권이 여전히 진지하게 물어왔다.

“아니, 그새 잊은 모양인데 나는 흑마법사다. 너희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나를 단련시키는 것이다.”

마현은 흑권뿐만 아니라 다른 세 흑사신을 일일이 쳐다봤다.

“나를 무공에 익숙하게 만들어라. 나는 흑마법사로서 무인들의 위에 설 것이다.”

마현의 눈동자에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 * *

“왜, 왜 다들 나를 봐?”

흑도는 흑사신들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인상을 확 찌푸렸다.

“흥, 네놈이 가장 약하지 않느냐.”

흑검이 코웃음을 치며 당연한 질문을 왜 하느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가 어째?”

흑도는 기세를 일으키며 흑검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 가지고.”

흑검은 아예 흑도의 시선마저 무시하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너, 너…….”

“그만들 하게.”

보다 못해 흑권이 나섰다.

“크흠!”

흑권이 나서자 흑도는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흑검 반대편으로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그냥 흑도부터 하지.”

더 이상 지켜보았다가는 시간만 허비할 것 같아 마현이 먼저 흑도를 지목했다. 자신을 지목하자 흑도는 신경질적인 눈빛으로 마현을 노려보았다.

“왜 나야? 응? 주인도 나를 무시하는 거야 뭐야?”

“그나마 하르센 대륙의 기사들이 추구하는 검술이 흑도, 너와 가장 비슷한 것 같아서 너를 지목했다. 그 다음은 흑검, 그리고 흑창, 흑권 순서로 한다.”

마현은 일방적으로 순서를 정해 버리고는 몸을 돌려 지하 연무실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쳇!”

흑도는 껄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마현을 따라 지하 연무실 중앙으로 나갔다. 어쩔 수 없이 가장 먼저 나왔다고 해도 마현의 앞에 서는 순간 흑도의 얼굴은 진지하게 바뀌었다.

“안 그래도 주인의 능력이 궁금했는데…… 크크크, 잘 부탁해.”

흑도의 말에 나머지 세 흑사신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차갑게 가라앉았다. 마현의 기억 주입 마법으로 인해 마법사라는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단편적인 기억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법으로 인해 주입된 남의 기억일 뿐이었다.

그런 기억과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달랐다.

마현은 도를 들자마자 급격히 달라진 흑도의 기세에 마음을 가라앉혔다. 막상 마주하고 서자 흑도가 내뿜는 사기와 기세는 상상 이상이었다.

“후우…….”

마현은 입술을 살짝 벌려 긴 숨을 내쉬었다.

“시작할까?”

마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파밧.

그 순간 흑도의 신형이 아래로 푹 꺼졌다. 한순간에 흑도의 신형을 놓친 것이다.

“블링크!”

마현은 흑도가 서 있던 장소로 순간이동했다.

흑도가 서 있던 곳에 서자 자신이 있던 자리를 덮쳐가는 흑도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파이어 재벌린(Fire javelin)!”

마현의 손에서 순수한 불로만 만들어진 창(槍)이 만들어졌다.

쑤아아앙!

파이어 재벌린은 흡사 화살처럼 흑도의 등을 향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헙!”

흑도는 헛바람을 들이마시며 몸을 비틀었다.

동시에 눈을 가득 채우며 날아오는 파이어 재벌린을 보자 도를 들어 몸을 방어했다.

콰광!

파이어 재벌린이 흑도의 도에 꽂히자 폭발했고 수많은 불덩이들이 다시 한 번 터지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흠…….”

흑도는 검게 그을린 도와 손 언저리를 내려다보며 나직한 침음성을 내뱉었다.

“크크크, 이거 재미있는데…….”

흑도는 도를 들어 바닥을 향해 한 번 휘두르고는 마현을 쳐다봤다.

“주인, 이제 여유가 없을 거야.”

흑도의 몸이 살짝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보자 마현은 그 즉시 그리스 마법을 주위에 펼쳤다.

앞으로 크게 발을 내딛는 흑도의 눈썹이 순간 꿈틀거렸다. 마치 바닥에 기름이라도 발라놓은 것처럼 발이 주르르 미끄러진 것이다. 흑도의 입술이 차갑게 비틀어졌다. 동시에 눈은 반짝거렸다.

쿵!

흑도는 내력을 끌어올려 천근추(千斤墜) 수법으로 그리스 마법의 효용마저 무시하며 마현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역시 그리스 정도는 우습다는 건가?’

마현은 가까이 다가온 흑도를 보며 다시 블링크를 써서 멀리 떨어졌다. 역시나 흑도의 등이 보였다. 마현은 다시 공격 마법을 위해 서클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때였다.

흑도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며 입꼬리를 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파밧!

순간 흑도의 신형이 잔상만 남기며 사라졌다.

“헙!”

사라진 흑도가 마현 바로 앞에 나타났다.

“브, 블링크?”

쐐애애액!

흑도의 도가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며 마현의 목 바로 앞으로 날아와 딱 멈췄다.

“끝!”

흑도는 마현을 보며 장난스럽게 웃더니 도를 거두며 어깨에 턱 걸쳤다.

“생각보다 주인 약하네.”

그러면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어떻게 네가 블링크를?”

“브리…… 에, 뭐? 본좌는 그거 몰라.”

마법 언어인 룬어는 물론 하르센 대륙 공통어조차 모르는 흑도가 블링크 마법에 대해 알 턱이 없었다.

마현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처럼 순식간에 순간이동한 흑도를 보자 반사적으로 질문이 나온 것이었다.

“방금 그 움직임을 묻는 것이다.”

“이형환위(移形換位).”

“……이형환위?”

“보법이 극에 달하면 펼칠 수 있는 무공 중 하나다.”

“흠…….”

마현은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나저나 마법이라는 거 신기하네. 주인 한 번 더 어때? 살살해 줄게.”

흑도는 마현의 능력이 신기하면서도 흥미로웠는지 목소리가 살짝 들떠 있었다.

“자괴감마저 드는군.”

마현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질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허무할 정도로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질 줄은 몰랐다.

“흑도, 그만해라.”

흑권이 다시 한 번 비무를 하자고 조르는 흑도를 말리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