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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44화 (44/351)

# 44

19화

허진은 오랜 고민 끝에 마주전으로 향했다.

이유는 바로 마심단 때문이었다.

마심단을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재료야 자신의 힘으로 구할 수 있고, 또한 만드는 이 역시 마현의 가신이니 남들의 이목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다.

‘차라리 내가 먼저 돌을 맞는 것이 낫다.’

허진은 눈빛을 굳히며 마주전 안으로 들어섰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인가?”

사공소는 늦은 시간에 허진이 찾아오자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를 맞이했다.

“부탁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부탁?”

부탁이라는 말에 사공소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허진을 바라봤다.

평생 누군가에게 부탁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허진이 찾아와 부탁을 드릴 것이 있다고 하니 사공소 역시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자네가 부탁도 할 줄 알았는가? 오랜만에 얼굴을 봤으니 차라도 마시며 들어보지.”

사공소와 허진은 마주전에서 나와 마휴당으로 향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를 사이에 두고 둘은 앉았다.

“부탁이 무언가?”

“……마심단을 서른 알쯤 사적으로 제조했으면 합니다.”

“마심단을?”

싱글싱글 웃던 사공소의 표정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자네가 마심단을 쓸 일이 있던가?”

사공소는 허진의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제자 때문이군.”

“송구합니다, 교주님.”

“자네도 제자를 들이더니 많이 바뀌었군 그래.”

허진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심단 서른 알이라……, 그 아이의 별호가 흑풍대군이니 흑풍대에게 줄 생각인가?”

“그럴 예정입니다.”

“본좌는 그대가 흑풍대군에게 유령대의 일부를 흑풍대로 줄 거라 예상했는데, 아닌가 보군.”

“저도 그리 하려 했지만 싫다고 그러더군요.”

“싫다고?”

“예. 직접 만들고 싶다 하여 그냥 그리 하라 했습니다.”

“호오.”

사공소는 의외라는 듯 감탄사를 터트렸다. 사공소가 그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이유가 있었다.

마현이 허진의 제자였기에 직속 무력단체를 만드는 것만 허락했다.

만약 자신의 제자였다면 쓸 만한 교인들을 뽑아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대공자 추도영도, 이공자이자 아들인 사공찬도, 그리고 삼공자 도종극 모두 사공소가 직접 교인들 중에서 쓸 만한 이들을 추려 직속 무력단체를 만들어 주었다.

그 셋 중 무력단체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겠다는 제자는 누구도 없었다.

그렇기에 마현 역시 허진이 흑풍대를 직접 만들어 주리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그런 예상이 빗나가 버렸다.

굳이 사공소가 아니더라도 교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예상을 했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무력단체를 가진다는 것은 한 마디로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단숨에 자신의 자리를 확고하게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교인들 중에서도 특별히 엄선된 자들만 골라서 사부가 만들어 주니 거부할 까닭이 없었다.

한 마디로 아무런 힘과 노력 없이 굴러 들어오는 황금호박인 것이다.

“역시 재미난 아이야.”

하지만 사공소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기만 했다.

“생각이 다른 것인지 아니면 그릇이 다른 것인지…….”

사공소는 속에 든 생각을 굳이 입 밖으로 꺼냈다. 그 낮은 중얼거림을 허진이 못 들을 리 없었다.

“웬만한 이들이라면 세 공자 측 파벌의 입김이 닿아 있을 텐데?”

아직 공자들끼리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아 공공연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암암리에 파벌이 형성되어 있었다.

사공소는 근 5년이나 제자를 받지 않았다.

더 이상의 공자는 없을 것이라 예상한 것인지 그나마 중립을 지키며 눈치를 봐오던 몇몇 수뇌부들 역시 자신들의 거처를 정하는 눈치였다.

사공소는 이런 사실을 알았지만 모른 척 묵인했다.

어차피 공자들 중에 가장 힘이 있는 자가 소교주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손때가 묻지 않은 자들을 고르려 하는 것 같습니다.”

“자네가 왜 본좌에게 찾아와 마심단을 부탁하는지 이제 이해가 가는군.”

“무리한 부탁을 드려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렇다 한들 내 공적으로 마심단을 허락할 수 없네. 제아무리 상황이 그렇다 한들 형평성이 있으니까.”

“……공적이라 하심은?”

허진은 고개를 들어 사공소의 눈치를 살폈다.

“알면서 왜 묻나? 하지만 눈을 감아주는 것은 이게 마지막일세. 자네와의 친분, 그리고 그 아이와의 인연을 생각해 한 번만 눈을 감아주는 것이야. 알겠나?”

“고맙습니다, 교주님.”

사공소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나 역시 관심이 가는 아이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 목소리에 허진은 사공소에게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현이 힘을 가질수록 사공소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사공찬이 더 힘들어질 것이 뻔했다.

하지만 허진은 탁자 아래, 무릎 위에 올려놓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죄송합니다, 교주님. 하지만 저는 기필코 제 제자를 소교주 자리에 앉힐 것입니다.’

허진의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 * *

이른 아침 마현은 가릉의 지하 연구실에서 그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허진의 뜻에 따라 오전에는 가릉에게, 오후와 저녁에는 허진에게 가르침을 받기로 한 까닭이었다.

“주군.”

“왜 그러나?”

“노신이 어제 생각을 해봤습니다만…… 제아무리 본교 하급무사들을 모아 마심단을 먹인다고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차라리 노신이 쓸 만한 아이들을 모아 보겠습니다.”

가릉이 어렵게 말을 꺼낸 이유가 있었다.

마교 하급 무사들의 수준은 뛰어나봐야 이류 마인이다. 정파로 따지면 이류 무사. 그들에게 마령단도 아니고 마심단을 먹인다고 해도 잘 되어봐야 절정마두 초입이다.

그에 반해 다른 공자들이 거느린 무력단체들의 수준은 못해도 절정마두 이상이었다. 아마 그 세 무력단체의 대주들이라면 초절정마두의 극(極)인 옥예금화(玉蘂金花)의 경지를 이루었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그중 한 명쯤은 극마지경(極魔之境)에 한 걸음을 내딛어 오기조원(五氣朝元)의 경지를 넘보고 있을 지도 몰랐다.

“괜찮다. 내 생각한 바가 있으니까.”

이미 마현의 머릿속에는 흑풍대를 어떻게 만들지 구상이 다 되어 있었다.

“하오나 무력단체의 인원은 다른 공자들처럼 딱 서른 명을 양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른 명이라…… 물론 서른 명이겠지. 하지만 그 서른 명이 나에게는 곧 삼백 서른 명의 병사가 될 거다.”

“예?”

가릉은 마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나중에 알게 돼. 누구에게도 죽지 않는 불사의 군단을 보게 될 테니까…….”

차갑게 입 언저리를 말아 올리는 마현의 눈에서는 섬뜩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에 가릉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나저나 가릉.”

“예, 주군.”

“혹 이 세상에 마나…… 자연의 기운을 담은 광석이 존재하는가?”

혹시나 몰라 가릉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마나석만 있다면 현재 마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최고의 전사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가릉은 마현의 질문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끔 마현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를 내뱉는 것도 모자라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왜 그러나? 내 얼굴에 뭐라도 묻은 것인가?”

“아, 아닙니다. 주군.”

가릉은 마현의 말에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혹 만년한옥이나 만년온옥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

마나석의 종류가 이렇게 세부적으로 나눠질지 몰랐던 마현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하지만 애써 겉으로 표시하지 않고 가릉의 말을 계속 들었다.

“……그밖에 혈옥석이라든가 몇몇 더 있습니다. 만년한옥이나 만년온옥 같은 경우 그나마 자주 발견되어 본교뿐만 아니라 정파에서도 어지간한 규모의 문파들은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겁니다. 세간에 풍문으로 떠도는 다른 것들은 거의 전설 속에서나 전해 오는 것들이 많습니다. 간혹 발견된다고 해도 몇백 년에 하나 정도입니다.”

가릉은 마현의 눈빛이 탁한 것을 보고 설명이 부족한 듯해, 좀 더 자세히 얘기했다.

“본교에도 있다는 말인가?”

“만년한옥이라면 노신에게도 있사옵니다. 보시겠습니까?”

가릉은 마현이 워낙 호기심 어린 눈빛을 띠는지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러지.”

마현은 가릉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년한옥이라…….’

마현은 호기심을 애써 누르며 가릉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가릉이 향한 곳은 지하 연구실의 또 다른 방이었다.

그 방 안으로 들어가자 조금 전 가릉과 함께 있던 방과는 달리 조금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한옥의 영향인가?’

마나석 자체가 순수한 마나가 아닌 다른 기운을 머금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방 안에 막상 들어가 보니 중앙 석단 위에 관 하나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마현은 그 관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만년한옥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마나석과 성질이 동일한 것인가이다.’

막상 관 앞에 다가서자 마현의 호기심 어린 눈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가릉은 조심스럽게 관 뚜껑을 열었다.

수아아―

관 뚜껑이 열리자 차가운 한기가 관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마현은 한기를 느끼며 관 가까이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관 안에는 한 구의 시체가 들어 있었고, 그 아래 푸른빛이 감도는 청명한 석판이 깔려 있었다.

마현은 그 시체가 여섯 구의 강시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내 강시에게서 관심을 지우고 만년한옥을 내려다봤다.

‘이게 만년한옥인 모양이군.’

마현은 손을 내밀어 만년한옥을 쓰다듬었다.

차가운 기운이 손을 타고 몸으로 스며들었다.

“음!”

이내 마현의 눈에 실망감이 어렸다.

최상의 마나, 즉 기운을 담고 있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너무 강한 냉기를 가지고 있었다.

굳이 사용을 하려고 한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제약이 있었다.

‘아쉽구나.’

마현은 관에서 물러나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후우, 이거 일이 조금 복잡해지겠는걸?’

잠시 이와는 다른 성질의 만년온옥을 떠올려보았지만 역시나 사용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 보지 않아도 극양의 기운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잠깐!’

아쉬운 마음으로 몸을 돌리려는 마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의 비율을 맞춘다면?’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어쩌면 그것이 의외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건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었다.

“가릉.”

“예, 주군.”

“혹 본교에도 만년온옥이 있나?”

마현은 관을 조심스럽게 닫는 가릉을 향해 물었다.

“여기에는 없고 마의당에 있습니다.”

“마의당에?”

마현은 가릉을 빤히 쳐다봤다.

그 입으로 귀하다고 한 것이 모두 가릉의 손에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마의당 귀빈 병실 침상에 깔려 있습니다.”

가릉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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