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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45화 (45/351)

# 45

20화

“그대가 부자인지 본교가 부자인지 모르겠군.”

만약 만년온옥이 마현이 생각하는 것처럼 뜨겁지 않고 따뜻한 기운을 가졌다면 내상 치료나 그밖에 치료에 엄청난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 분명했다.

“가 보지.”

“제가 모시겠습니다.”

가릉은 마현을 모시고 마의당 깊숙이 마련된, 별채에서도 가장 화려한 곳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마교 수뇌급만 이용하는 병실이라서 그런지 겉보기와는 달리 안은 매우 화려했다.

마현은 곧장 침상으로 다가가 손을 얹었다.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현이 침상 위에 깔린 푹신한 이불을 걷어내자 나무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만년온옥이 침상 위에 깔려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마현은 틈을 발견하고 침상 겉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후끈거리는 기운이 침상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생각보다 뜨거운 열기에 마현은 낯을 찌푸리며 침상 겉판을 옆으로 치웠다.

침상 안에는 의외로 큰 만년온옥이 들어 있었다.

마현은 손을 뻗어 만년온옥을 쓰다듬었다.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겠어.’

마현은 만년온옥에게서 손을 뗐다.

“본교가 돈이 아주 많은 모양이야.”

그 말에 가릉이 주름을 한껏 잡으며 피식 웃었다.

“실은 필요가 없는 물건입니다. 이곳에 올 정도의 마교 수뇌부면 사실 만년온옥은 있으나마나한 것입니다.”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마현은 침상에 걸터앉으며 만년온옥을 내려다보았다.

“끝을 좀 잘라야겠군.”

“예?”

마현의 말에 가릉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이거 끝을 좀 자른다고 해서 그다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은데…….”

“그렇기는 하지만…….”

마현은 흑사신 중 흑검을 소환했다.

푸하학!

마현 근처 바닥에서 흑검이 불쑥 튀어 올라왔다.

“무슨 일이지?”

흑검은 홀로 소환된 것에 의아해하며 마현을 쳐다봤다.

“흑검, 여기 끝을 좀 잘라줘야겠다.”

흑검은 마현의 손가락이 가리킨 만년온옥을 쳐다봤다.

“길이는 3촌(寸) 정도면 되겠군.”

흑검은 시답잖은 일로 자신을 부른 것을 알자 낯을 잔뜩 찌푸렸다.

하지만 흑검은 그런 생각과는 달리 만년온옥을 번쩍 들어올리고는 검으로 깔끔하게 잘라 버렸다.

가릉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만년온옥은 깔끔하게 끝이 잘려나갔다.

“휴우…….”

가릉은 결국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현은 그런 가릉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잘라낸 만년온옥을 밖으로 끄집어낸 후 침상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다. 확실히 전보다 따뜻한 기운이 줄어들었지만 그리 큰 차이는 없었다.

“수고했다.”

마현은 흑검을 귀환시키고는 만년온옥을 옆구리에 끼었다.

“가릉, 만년한옥이 있는 곳으로 가지.”

“서, 설마…….”

가릉은 순간 마현의 눈에서 탐욕으로 가득 찬 욕망을 보고야 말았다.

“하, 하지만 주군!”

가릉은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마현 곁으로 급히 따라붙었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는 법이다.

가릉 역시 한으로 맺혀 있던 강시술을 마현의 도움으로 풀었지만 그 뒤에 홀로 강시술을 완성시켜 보고 싶다는 욕심이 다시 생긴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남은 강시를 만년한옥으로 만든 관에 보관해 둔 것인데…….

“만년한옥이 조금이라도 잘린다면 그 안에 있는 강시는 보존을…….”

가릉의 말에 마현은 발걸음을 딱 멈췄다.

“어차피 흑사신도 만들었지 않나?”

마현은 가릉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다시 발걸음을 뗐다. 가릉은 마현의 그 미소가 왠지 사악하게만 느껴졌다.

“주, 주…….”

가릉이 어물거리며 마현을 부르려는 순간 이미 그는 지하 작업실로 들어가 버린 후였다.

* * *

“세, 세상에…….”

가릉은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그저 분해 되었다가 새로 조립된 관을 내려다보며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만 끔뻑일 뿐이었다.

만년한옥이 반 토막이 났다.

그런데 관 안은 전처럼, 아니 전보다 더 차가운 냉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가릉은 관 안에 새로이 새겨진 듣도 보도 못한 글자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우우웅―

가릉의 손길이 닿자 그 글자는 차가운 기운을 더욱 강하게 내뿜으며 몸부림쳤다.

“이 정도면 됐나?”

마현에게 있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흑마법사, 백마법사의 입장을 떠나 순수한 마법사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 만년한옥을 아래 깔아 만든 관은 참으로 한심하고 조잡했다.

반 토막 났다고는 하지만 사실 관 안에 있는 만년한옥의 10분의 1 정도 크기에 간단한 증폭 마법만 써도 충분했다.

“……도대체 주군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입니까?”

가릉이 떨리는 눈동자로 마현을 올려다보았다.

“말하지 않았나? 흑마법사라고.”

가릉은 그 흑마법사가 무어냐고 다시 묻고 싶었지만 신하(臣下)의 입장에서 더 이상 물을 수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마현은 똑같은 길이로 잘린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을 위아래로 포개 보았다.

그렇게 포개진 만년한옥과 만년옥옥을 살피는 마현의 입가에 짙은 웃음이 만들어졌다. 미묘한 불균형이 느껴졌지만 그건 세세한 작업을 거치면 보완이 가능할 것이다.

‘이 정도면 최고의 마나석이야.’

마현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릉, 오늘 작업실을 써야겠다.”

최고의 마나석인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을 보자 마현은 오랜만에 보는 마나석으로 인해 흥분하고 있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만들어 보고 싶은 욕구에 조바심마저 느꼈다.

하지만 마현이 이곳에서 작업을 하려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은밀한 작업이니만큼 남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편하신 대로 하시옵소서.”

“그리고, 가릉.”

“예, 주군.”

“가서 스승님께 오늘부터 시작되는 무공 수련을 하루만 미뤄야겠다고 전하고 오라.”

“알겠사옵니다.”

마현은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을 들고 옆방에 마련된 가릉의 작업실로 향했다.

먼저 작업실로 뛰어간 가릉이 작업대 위를 깨끗하게 정리 해놓은 상태였다. 마현은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을 작업대에 올려놓았다.

사실상 마현에게 필요한 마나석은 사람 주먹보다 조금 작은 크기면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 마현이 가져온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의 크기는 그보다 더 컸다.

“흑권, 소환!”

쿠르르르.

마현 옆에서 흑권이 모습을 드러냈다.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이 아닌가?”

흑권은 마현이 앉아 있는 작업대에 올려진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을 내려다보았다.

원래 처음 불렀던 흑검을 다시 소환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그보다 흑권이 더욱 믿음이 갔다.

“이건 어디에다 쓰려고 하는가?”

마법사라는 직업에 흥미를 느낀 것인지 흑권은 어느새 말이 조금 많아져 있었다.

“제한적이지만 너희들에게 자유를 주려고 한다.”

그 말에 흑권의 눈이 번쩍였다.

“자유?”

“말 그대로 제한적이다.”

마현은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을 내려다보던 눈을 들어 흑권을 바라보았다.

“그대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몰라도 나는 흑사신을 나의 수신호위로 삼고자 어둠에서 깨웠다.”

마현의 말에 흑권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데 주인이 부르지 않으면 나오지 못하는 수신호위라…… 조금 웃기지 않나?”

“그래서?”

“이거라면 너희들의 자유의지로 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다.”

언제나 담담한 눈동자를 보여왔던 흑권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굳이 내가 불러내지 않아도 너희들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 나를 지킬 수 있다는 뜻이지.”

“그, 그게 사실인가? 고작 이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으로?”

흑권의 목소리 역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가능하다.”

흑권은 확신에 찬 마현의 얼굴을 보며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건이 있겠군.”

그 말에 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이 충성인가?”

“아니.”

뜻밖의 대답을 들었기 때문일까. 흑권의 눈이 살짝 커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목숨을 지키는 것이다.”

“의외로군. 본좌는 그 대가로 충성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나는 그런 것을 미끼로 충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충성은 그다지 신뢰하지 않으니까.”

“어차피 우리에게도 그대의 목숨을 반드시 지켜야 할 이유가 있으니 사실상 조건이 없는 셈이군.”

“어둠에 들어가서도 나에 대한 공명을 끊지 마라. 그래야 나를 지켜줄 수가 있으니까.”

“알았다. 그렇게 하지.”

“좋아.”

마현은 흑권에게서 시선을 돌려 작업대를 바라보았다.

“한식경. 그 시간 동안은 너희의 자유의지로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흑권의 눈에서 잠시지만 아쉬운 빛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한식경의 시간을 사용하고 나면 이틀 간 너희는 의지대로 이 세상에 나올 수 없다.”

“삼 일에 하루, 그것도 한식경이라…….”

흑권이 중얼거렸지만 마현은 그 말을 흘리며 자신의 말을 계속 이어갔다.

“나를 중심으로 반경 30장(丈) 이상 벗어날 수 없다. 세상의 일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죽을 위험에 처해졌을 때 너희들의 힘이라면 한식경 안에 나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현은 과거 하르센 대륙에서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그로 인해 데스나이트에게 자유라는 위험 요소를 주면서 이처럼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었다.

“결국 그 시간 역시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소리군.”

흑권은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그 점은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자유의지로 나오면 내가 유지시켜 줄 테니까.”

“좋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마현은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을 작업대에 펼쳤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대로 잘라라.”

흑권은 수강을 일으켜 마현을 도와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을 세세하게 잘라나갔다.

마현은 잘라진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을 섞어 다시 조립해나갔다. 그 사이 마현은 흑권을 시켜 만년한옥과 만년온옥들 사이사이에 작고 정밀한 마법진을 새겨나갔다.

일반 물품이라면 마현이 직접 마법으로 마법진을 새겨 넣으면 되겠지만 마나석은 달랐다.

그렇기에 흑권의 지강을 이용해 조각하듯 마법진을 새긴 후 그 위에 다시 마법을 이용해 새로이 마법진을 새겨 활성화시켰다.

흑권이 해야 할 일은 다 끝났다.

막 귀환하려할 때 흑권이 문득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근데 개수가 조금 많은 것 같은데?”

흑사신은 넷이었다.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자신들에게 필요한 마나석은 네 개, 아니면 그 배수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개수를 보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수하들에게 줄 것이다.”

“수하?”

“너희와는 다른 수하들, 나에게 죽음마저 바칠 수 있는 자들에게 줄 선물이다.”

흑권의 가늘어진 시선이 작업대 위에 올려놓은 수십 조각의 마나석을 향해 쏘아졌다.

자정이 훌쩍 지난 축시(丑時; 새벽 1시~3시).

가릉은 마현의 호출을 받고 지하 작업실로 내려왔다.

작업대에는 주먹보다 조금 더 큰 네 개의 마나석과 서른 개의 주먹 반만 한 마나석이 놓여 있었다.

가릉은 마나석 하나를 살짝 들어 살펴보았다.

마나석을 살피던 가릉의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허어…….’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이 어떻게 변할까 기대를 했는데 막상 살펴보니 약간 실망스러웠다.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이 가지는 특성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저 밋밋한, 단지 자연의 기운을 머금은 평범한 돌덩이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실망한 모양이군.”

마현은 그런 가릉의 표정을 알아차리고 피식 웃으며 물었다.

“본교에 연고지 없는 자들이 묻힌 공동묘지가 있겠지? 사기가 많은 곳이면 좋겠는데……. 이왕이면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면 더 좋고.”

가릉은 마현의 말에 얼른 마나석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그런 곳이라면 마의당에서 관리하는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수하 하나는 아주 잘 두었군.”

마현은 마나석들을 가죽으로 만들어진 작은 포대에 쓸어 넣은 후 어깨에 둘러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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