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56화 (56/351)

# 56

6화

“오늘 저녁이 되면 저들이 어떤 능력을 가지게 될지 알게 될 거야.”

마현은 피곤함을 느끼는지 기지개를 켰다.

“피곤할 테니 잠시 쉬어라. 어차피 저들이 깨어나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마현은 지하 연무실 구석에 놓인 의자로 걸어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반 시진쯤 지나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기절했던 흑풍대원들이 하나 둘씩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마현은 그 소리에 감았던 눈을 떴다.

가릉은 마현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상당히 피곤했던지 곤히 자고 있었다. 마현은 가릉을 깨우지 않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흑풍대원들은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며 조금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제법 차분한 마음을 유지했다.

몸을 살피던 흑풍대원들은 피부 위로 드러난 마정석을 만지다가 이내 그 마정석이 구미혈 자리에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자 안색이 파리하게 변했다.

그러자 몇몇은 다급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공에 들어갔고, 어떤 이들은 선 채로 마력을 끌어올려 보는 이들도 있었다.

우우우웅―

마력이 마정석을 지나자 가벼운 파동이 지하 연무장을 은은하게 울렸다.

그 파동에 흑풍대원들은 하나같이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하지만 그 파동이 흉측한 문신으로 스며들었고, 그 문신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뿜어져 나와 자신들의 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당연히 흑풍대원들은 고개를 들어 일제히 마현을 쳐다보았다.

마현은 그런 눈빛에 응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왕귀진과 철용을 불렀다.

“대주와 부대주는 앞으로 나오라.”

왕귀진과 철용은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마현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마력을 다시 끌어올려라.”

왕귀진은 여전히 의아했지만 마현의 말에 단전에서 마력을 다시 끌어올렸다.

우우웅―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임맥을 타고 마정석을 통과했다. 그러자 은은한 기운이 왕귀진의 몸을 에워 감쌌다.

스르릉.

마현은 손을 뻗어 철용의 허리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느닷없는 마현의 행동에 철용도, 왕귀진도, 그를 지켜보는 흑풍대원들 역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대주.”

“예, 주군.”

“목을 내밀어라.”

마현은 검을 들며 짧게 명을 내렸다.

“헙!”

“헉!”

마현의 말에 흑풍대원들은 너무 놀라 다들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왕귀진는 떨리는 눈으로 마현과 그가 들고 있는 검을 번갈아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타는 목을 침으로 적셔 보았지만 갈증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왕귀진은 굳게 결심한 듯 눈을 감는 것과 동시에 주먹을 말아 쥐었다.

“예, 주군.”

왕귀진은 목이 드러나게 고개를 위로 올렸다.

“내력을 끊지 마라.”

“충!”

왕귀진은 짧지만 강한 힘을 담아 대답했다.

쐐애애액―

마현은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검은 날카로운 파공성을 지르며 왕귀진의 목을 베어 들어갔다.

깡!

그런데 검이 왕귀진의 목을 치는 순간, 불꽃이 튀며 흡사 쇠와 쇠가 부딪히는 듯한 타음이 지하 연무장에 터졌다.

휘리릭, 챙그랑, 탕, 탕, 탕!

왕귀진의 목에 부딪힌 검은 마현의 손을 떠나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강한 반탄력에 의해 마현이 그만 검을 놓쳐 버린 탓이었다.

지하 연무장은 조용했다.

그런 정적을 깨는 것은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검이 만들어낸 소리뿐이었다.

“수고했다.”

마현의 말에 왕귀진은 믿어지지 않다는 듯 손을 올려 목을 쓰다듬었다.

목은 아주 매끈했다.

분명 검이 날아와 목을 쳤는데도 매끈했다.

“추, 충!”

이내 왕귀진은 정신을 차리며 군례를 취했다.

마현은 고개를 들어 흑풍대원들을 쳐다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보았느냐?”

“…….”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지만 마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느 갑옷보다 강한 피부. 이게 너희가 가진 힘 중 하나다.”

“…….”

“너희는 지금보다도 더 강해질 것이다.”

마현의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하지만 흑풍대원들의 귀에 들리는 마현의 목소리는 이 세상 그 어떤 소리보다 컸다.

* * *

음산한 달빛과 스산한 바람으로 가득 찬 묘지터.

수백 년간 수많은 마인들이 묻힌 곳이었다.

그곳에 마현이 흑풍대원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마현은 묘지터 중앙에 도착하자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며 흑풍대원들을 쳐다봤다.

그들 역시 마현의 발걸음에 맞춰 걸음을 멈추었다. 마현을 쳐다보는 흑풍대원들의 얼굴에는 무한한 신뢰감과 충성심이 묻어나왔다.

분명 마현의 말대로 흑풍대원들은 강해졌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처럼 강해질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현은 자신들을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여기서 너희들의 진정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흑풍대원들의 표정은 이내 흥분감이 묻어나왔다.

두근거리던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이제 너희들은 마인이 아니라 사령검사로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마현의 몸에서 사기가 뿜어져 나왔다.

“진정한 너희들의 힘이 되어줄 수하들이다.”

구르르르르―

약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묘지터 바닥이 바르르 떨렸다.

“헙!”

“헉!”

동시에 흑풍대원들의 입에서 짤막한 헛바람들이 터져 나왔다.

“해, 해골…….”

쿠그르르르.

달그락, 달그락, 턱턱턱…….

마현과 흑풍대원들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새하얀 해골들이 사기로 가득 찬 푸른 기광을 번뜩이며 땅을 헤집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가라, 너희의 수하는 너희가 직접 고르라.”

마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흑풍대원들의 명치에 박혀 있는 마정석의 사기가 눈을 통해 뿜어져 나왔다.

후들후들.

순식간에 사기에 휩싸인 흑풍대원들은 풍이라도 걸린 것처럼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런 그들의 머릿속으로 난데없이 생경한 지식들이 떠올랐다.

저벅, 저벅, 저벅.

왕귀진이 가장 먼저 발걸음을 옮겨 깨어난 스켈레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왕귀진은 사기로 가득 찬 눈동자로 주변을 훑었다.

타닥, 다다닥.

왕귀진이 다가가자 스켈레톤들이 뼈마디를 바싹 움츠리며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왕귀진은 늑대의 무리에 뛰어든 한 마리 산신, 백호처럼 스켈레톤 사이를 누비다가 걸음을 딱 멈췄다.

스켈레톤이 한 구가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왕귀진도 그 이유를 몰랐다.

그냥 눈앞에 서 있는 스켈레톤이 가장 강하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또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심정으로 스켈레톤의 해골 위로 손을 올렸다.

“인 소켓(In socket)!”

왕귀진은 하르센 대륙 네크로 나이트(Necro knight)들이 사용하는 룬어를 내뱉으며 마력이 마정석을 통과하며 만든 사기를 일으켜 스켈레톤의 몸을 휘감았다.

번쩍―!

검은 빛이 터지며 스켈레톤이 검은 연기로 화해 왕귀진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띠링―

왕귀진의 명치 부근, 마정석 아래 반원 형태로 새겨진 열 개의 작은 마법진 하나에 해골 머리가 새겨졌다.

그렇게 왕귀진은 환각에라도 빠진 것처럼 몽롱한 가운데, 자신이 정확히 무얼 하는지도 모른 채, 스켈레톤을 하나둘 흡수해갔다. 곧 비어 있던 나머지 아홉 개의 마법진이 채워졌다.

열 개의 작은 마법진을 모두 채운 왕귀진은 묘한 흥분감에 한참이나 몸을 떤 후에 정신을 차렸다. 그런 그의 눈에 마치 고양이가 쥐 사냥이라도 하는 것처럼 스켈레톤을 흡수하는 흑풍대원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사령검사……, 네크로 나이트…….”

왕귀진은 상의를 풀어헤치고 마정석과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문신, 즉 마법진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 * *

흑풍대가 머무는 흑풍각.

2인 1실로 만들어졌지만 왕귀진과 철용은 대주와 부대주라는 직책에 대한 예우로 독실을 배정 받았다.

왕귀진은 이른 아침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맨몸으로 면경 앞에 섰다. 1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끈한 몸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보기에도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과거 눈동자가 거칠고 탁했다면 지금의 눈동자는 맑으면서도 무거웠다. 쓸데없이 거칠고 투박하기만 했던 마기와 투기가 눈동자 안으로 갈무리가 된 것이다.

그의 눈동자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자신의 상반신을 살폈다.

짙은 검회색의 마정석이 눈에 들어왔다.

왕귀진은 손을 들어 마정석과 그걸 둘러싸고 있는 피부를 매만졌다. 손끝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그 손길은 마정석과 이어진 화상자국과도 같은 문신, 마법진으로 이어졌다. 화상으로 인해 문드러진 피부는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손은 가슴 상부를 다 훑은 뒤 아래로 내려가 열 개의 자그만 마법진에 도달했다.

그 열 개의 마법진 안에는 전에는 없던 해골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왕귀진은 단전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자연스럽게 임맥을 타고 흐르던 마력은 잠든 마정석을 깨웠다.

우우웅―

마정석은 나직한 울음을 토해냈다.

말 그대로 아주 나직한 울음소리였지만 왕귀진에게는 달리 들렸다. 자신의 몸 안에 잠든 야수가 깨어나며 나직하게 으르렁거리는 소성(笑聲)처럼 들렸던 것이다.

-캬캬캬캬캬―!

-캬르르르―!

머릿속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왕귀진은 오로지 사기로 가득 찬 그 흉흉한 웃음에 몸이 흠칫 굳어졌다.

그 소리의 진원을 떠올린 것이다. 바로 열 개의 마법진 안에 잠든 스켈레톤들이었다. 그들은 의념으로 자신들을 깨우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면경을 통해 자신의 몸을 살피던 왕귀진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며 초점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선명해진 눈앞에 어두운 밤 귀기로 가득 찬 묘지터가 보였다.

아수라 지옥도를 직접 눈으로 본다면 이런 광경일까.

미친듯 날뛰는 스켈레톤 사이로 사기에 취해, 광기에 사로잡혀 날뛰는 흑풍대원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마치 자신은 이들과 전혀 상관없는 제3자처럼 멍하니 그 장면만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열 구의 스켈레톤을 모두 흡수한 흑풍대원들이 푹푹 쓰러지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얼마 후 자신 역시 다시 시야가 흐려지며 정신을 잃었다.

왕귀진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삼 일이라는 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가 있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린 후 그는 다시 잠을 잘 수 없었다. 삼 일이라는 시간 동안 잠을 자서가 아니었다. 정신을 차린 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떠오르는 낯선 지식 때문이었다.

그렇게 밤을 꼬박 지새운 후에야 왕귀진은 조금 편해졌다.

두서없이 쏟아져 들어오던 지식들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으며 머리가 비교적 가벼워진 탓이었다. 정신이 맑아지자 왕귀진은 새로운 지식들을 천천히 되새길 수 있었다.

그때야 비로소 사령검사, 원어로는 ‘네크로 나이트’의 개념을 이해했고, 그로 인해 이제 자신이 다스리는 스켈레톤에 관한 존재도 자연스럽게 파악했다.

그렇게 새로운 지식들을 접해서일까. 아니면 상승마공을 접하면서 머리 부분의 혈도가 뚫려 자연스레 잠자던 총기가 깨어난 것 때문일까. 왕귀진이 풍기는 분위기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원래 왕귀진은 조금 아둔하고 단순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워낙 밑바닥부터 생활을 해온 터라 가진 지식도 많지 않아 남들이 보기에 무식하게 보인 면도 없진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아둔하고 단순한 성품임을 알았기에 마현이 왕귀진을 수하로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그런 인물일수록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 더욱 강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왕귀진은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실감하며 마른 수건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그사이 그의 몸은 말라 있었다. 특별히 수건으로 몸을 닦을 필요가 없어진 왕귀진은 다시 수건을 내려놓고 욕실에서 걸어 나왔다.

“대주, 안에 계십니까?”

문이 열리며 철용이 안으로 들어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