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25화
마현은 극양천혈공 마공서를 품에 넣으며 중앙에 무릎을 꿇은 채 공포에 젖어 벌벌 떠는 독모진과 독무웅, 그리고 독패장 총관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철용.”
“예, 주군.”
“일단 피해 입은 이들을 관으로 데려다 주라. 그리고 시신도 수습하라 이르고.”
“명!”
마현은 독무웅 앞으로 걸어갔다.
독무웅은 마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렇게 다시 보게 되는군.”
스르릉.
마현은 왕귀진의 허리에 꼽힌 검을 뽑아들었다.
“알고 그랬거나 모르고 그랬거나, 본인에게 검을 들이 댄 자를 살려둔 적이 없다.”
마현은 검을 들어 독무웅의 목을 단칼에 베어 버렸다.
푸학!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마현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왕귀진에게 내밀며 몸을 돌렸다.
“저 둘을 총타로 끌고 가라. 본교로 보낸다.”
“명!”
독패장을 나서는 마현의 눈에 걸왕이 들어왔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일일이 직접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현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된 걸왕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노, 수치심, 치부를 들킨 치욕감 등등.
“걸왕 선배님.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마현은 그런 걸왕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인 후 독패장을 나왔다.
* * *
다음 날.
사천성은 경천동지할 한 가지 소식에 뒤흔들렸다.
바로 사천성에서 일어난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곳이 마교가 아니라 사천성 정파의 한 핵심인 독패장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관에서 발표한 것이니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더욱이 놀란 것은 그 독패장을 마교 대공자 흑풍마군이 단 서른 명의 흑풍대만을 이끌고 단숨에 멸문시켰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은 하나의 노래를 만들어냈다.
검은 바람을 조심하라.
검은 바람이 불거든 무조건 피해라.
검은 바람이 휘몰아친 곳에는 오로지 죽음뿐이니.
* * *
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어대는 소리에 흥에 겨운 사천당문.
내일 있을 사천당문 가주의 막내 여식 당비연의 생일잔치 준비로 한층 들뜬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갈이 사천당문 가주실에서 터져 나왔다.
“뭐라? 총관, 지금 뭐라고 그랬나?”
“사천성 내 일어났던 흉수가 독패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독패장이 마교 대공자 흑풍마군의 흑풍대에게 멸문되었다고 합니다, 가주님.”
믿지 못할 소식에 재차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하아, 어찌 그런 일이……. 어찌…….”
가주 당자성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혹 마교가 일을 저지르고 난 후 일을 수습하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닌가?”
“관에서 직접 발표를 했으니 그럴 확률은 거의 전무합니다.”
“관이라……. 휴우…….”
당자성은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콰당.
가주실 문이 벌컥 열리며 사색이 된 당화평과 당문혜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버지.”
둘은 내일 있을 동생 당비연의 생일을 맞이해 선물을 준비하러 번화가로 나갔다가 독패장과 마교에 대한 소문을 듣고 급히 돌아온 것이었다.
“소, 소식을 들었습니까?”
너무 놀랐는지 당화평은 말까지 더듬으며 말을 꺼냈다.
“조금 전 관에서 사람이 왔다갔습니다.”
총관이 당자성을 대신해 대답했다.
“총관님. 제가 지금 저잣거리에서 듣고 온 소식이 사실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총관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라니……, 하필 마교라니…….”
당화평은 당자성과 별반 다르지 않는 반응을 보이며 비어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독패장 이놈들! 정파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가 있지…….”
“오라버니, 이미 멸문한 방파입니다.”
“안다, 내 알아.”
당화평은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대답했다.
“분명 함정이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독패장이…….”
“네 마음을 안다만…… 그만하거라. 어차피 독패장이야 무림맹 소속이라고 하지만 정마지간의 문파가 아니었더냐.”
“하오나 아버지.”
“관에서 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그 자리에 걸왕께서 있으셨다고 하더구나.”
“거, 걸왕이요? 개방 태상방주?”
“그래. 그분이 증언을 했으니 함정은 아닐 것이야. 휴우…….”
당자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떻게 걸왕이나 되시는 분이 고작 마교 놈과 어울리셨다는 말입니까!”
“하아…….”
당화평의 말에 당자성은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가주님, 내일 작은 아가씨 생일잔치는 어떻게 할까요?”
“해야지. 차라리 잘 되었군. 총관.”
“예, 가주님.”
“당장 내일 초대된 문파들에게 전서구를 날리게. 내일 이 일로 논의를 좀 하자고.”
“알겠습니다, 가주님.”
당자성의 명에 총관은 서둘러 가주실을 빠져나갔다.
그 시각.
“들었는가?”
“뭐를 말인가?”
“글세, 이번 사천성 흉수가 독패장이었다고 하더군.”
“저, 정말인가? 독패장이면 정파가 아닌가?”
“글쎄, 마교에서도 금지한 마공을 어디서 입수해 익혔다는군. 그 마공을 익히기 위해 여인들의 생혈이 필요했다고 하더군.”
“허어, 말세로군, 말세야. 정파에서는 흉수가 마교라고 그렇게 떠들더니 알고 보니 정파라…….”
“그러게 말일세.”
허름한 객잔 밖 담장 아래 주저앉아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걸왕은 객잔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던 걸왕은 술병을 들어 아예 입에 처넣었다.
마치 술과 원수라도 된 사람처럼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런 걸왕에게 한 떼의 거지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태, 태상방주님.”
사색이 된 얼굴로 걸왕에게 다가간 이는 사천성 분타주였다.
“꼴도 보기 싫으니 꺼지라 하지 않았느냐.”
걸왕은 술병을 입에서 떼며 노기를 터트렸다. 하지만 그들은 머뭇거릴 뿐이었다.
“이놈들이!”
걸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요절을 내기 전에 꺼지지 못할까?”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걸왕의 노기에 사색이 된 분타주는 바닥에 바싹 엎드렸다.
“네놈들도 문제지만 사천당문도 문제야. 오냐, 오늘 내 모두 정신머리를 싹 고쳐주마.”
걸왕은 그 자리에서 사천당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과광!
사천당문에 도착한 걸왕은 다짜고짜 정문을 발로 후려쳤다.
우지끈, 쿠당탕탕!
정문을 부숴 버리고 안으로 들어간 걸왕은 내력을 담아 소리쳤다.
“당자성, 이놈!”
그때 걸왕의 머리 위로 전서구 여러 마리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 * *
다음 날.
사천당문은 수많은 손님들로 인해 왁자지껄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독패장으로 인해 분위기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특히 귀빈석은 분위기가 한층 더 무거웠다.
“크흠!”
걸왕이 귀빈석에 앉아 있는 이들을 향해 노기가 담긴 헛기침을 내뱉자 모두 고개를 푹 숙였다.
“에잉, 쯧쯧쯧…….”
걸왕은 혀를 차며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그러자 귀빈석에 있던 청성파 장로 옥허자, 속청검문 문주 정용휘, 소문주 정호영, 그리고 사천당문의 당자성과 당화평은 고개를 더욱 아래로 떨어뜨렸다.
마교와 독패장의 일로 논의를 하기 위해 모였지만 걸왕으로 인해 오히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처지가 된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그저 나직이 한숨만 내쉬었다.
“아잉, 근데 왜 안 오지?”
그런 분위기를 모르는 당비연은 자리에서 서성이며 활짝 열린 정문 밖을 자꾸 쳐다보았다.
“왜 그러니?”
당문혜는 걸왕의 눈치를 살피며 당비연에게 물었다.
“마 아저씨, 왜 안 와? 분명 온다고 이 비연이랑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했는데…….”
당비연의 말에 당화평과 당문혜는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올 거야.”
“정말?”
“그럼.”
당문혜는 당비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돌려 당화평을 쳐다보았다.
“문혜야.”
“예, 오라버니.”
“마 소협이 오면 네가 접대를 해주거라.”
“하아……. 알았어요, 오라버니.”
“나도 기회를 봐서 마 소협에게로 갈 테니……. 하필 이때 이런 일이 터져가지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알아서 할게요.”
“그래, 고맙다.”
당화평과 당문혜가 마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정문에서 위사가 놀란 음성으로 소리쳤다.
“마, 마교가 온다!”
“뭐?”
“뭣이?”
특히 귀빈석에 앉아 있던 이들 모두가 깜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우당탕탕탕.
의자들이 뒤로 넘어가며 바닥을 뒹굴었다.
“일단 나가봐야겠소.”
당자성의 말에 귀빈석에 있던 걸왕을 제외한 이들이 긴장한 눈빛으로 정문으로 뛰어나갔다. 저 멀리 마교를 상징하는 아수라가 새겨진 붉은 깃발이 세워진 4두마차가 사천당문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수라 깃발 아래 다시 하얀 바람이 그려진 검은 깃발이 달려 있었다.
‘……흑풍마군.’
마차의 주인은 마교 대공자 흑풍마군이었다.
4두마차 뒤로는 서른 기의 묵빛 인마가 따라오고 있었다.
‘흑풍대!’
티끌 하나 없는 흑마에 올라탄 묵빛 피풍의를 두른 흑풍대를 보던 이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독패장이 떠올랐다. 불과 서른 명으로 일 각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독패장을 완전히 멸문시킨 사실 또한 함께 떠올랐다.
그런 생각들이 뒤죽박죽 떠오르자 정문으로 나섰던 이들에게는 더욱 긴장감이 증폭되었다.
두두두두두두―
4두마차는 사천당문 앞에서 속도를 줄이더니 정문 앞에 섰다.
“무슨 일이냐?”
당자성이 앞으로 나서며 나직하게 소리쳤다.
독패장의 일로 목소리가 곱게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은은한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
왕귀진은 그런 눈빛을 자연스레 흘리며 입을 열었다.
“마교 대공자 흑풍마군이십니다.”
끼이익.
왕귀진의 말이 끝나자 4두마차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한 사내가 마차에서 내렸다.
“그, 그대는?”
“마 소협! 서, 설마!”
당화평, 당문혜, 그리고 정호영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앗, 아저씨!”
그리고 반가워하는 당비연의 목소리도 뒤늦게 들렸다.
마현은 당비연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생일 축하한다, 비연아.”
“크흠, 왔냐?”
그리고 한쪽에서 걸왕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5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