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13화
“낭인들이야 돈 줘서 내보내면 되잖아. 두 배 쳐줄 테니 나가라고 그래.”
짜증이 한가득 묻은 목소리였다. 흑풍대를 바라보는 눈빛 또한 마치 비렁뱅이를 보는 듯했다.
그 순간 왁자지껄하던 1층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마현은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청년을 쳐다보았다.
“무례한 자군.”
낮은 목소리다.
하지만 이미 청년은 자리를 벗어나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그냥 이 객잔을 통째로 빌리지.”
“…….”
지배인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어차피 또 이상한 놈들이 물을 흐릴 수 있으니까. 등 단주.”
“예, 도련님.”
청년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문 어르신들 오면 불러. 그리고 저것들은 냄새나는 것 같으니까 빨리 치워 버리고.”
“알겠습니다, 도련님. 편히 쉬십시오.”
허리를 살짝 숙인 중년인은 몸을 틀어 지배인을 불렀다.
“자네 뭐 하나? 어서 도련님을 안내하지 않고.”
청년의 무례함을 중년인은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중년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현과 흑풍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여기 대표가 누군가?”
다짜고짜 내뱉는 말이 하대였다.
대답이 있을 턱이 없었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이 깊게 깔렸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지 중년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잔뜩 주름이 잡힌 눈으로 흑풍대를 훑었다.
낭인의 무리라 여겼는데 그 사이에 검은 비단 유생의를 입은 마현이 보이자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가 다가왔다.
“공자가 이들의 대표요?”
마현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고개를 들었다.
“본인은 감숙성 제일 상단인 난주감상(蘭州甘商)의 상호단주(商護團主) 독심검객 등예라 하오.”
자신을 소개하며 사내는 어깨를 으쓱했다.
등예는 별다른 무가가 없는 감숙성에서 독심검객이란 별호로 제법 이름을 날리는 자였다.
별호처럼 그는 손을 쓰는 데 있어서 일말의 자비심도 없는 잔혹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감숙성 제일 상단인 난주감상의 상호단주로 있으면서 나름 행사 꽤나 하고 다니는 자였다.
상호단은 난주감상의 외아들인 감영의 호위무단이었다.
등예는 자신의 소개를 마치고 ‘자, 이만하면 알아서 기어라’라는 듯한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마현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앉아 있을 뿐이었다.
등예의 표정이 일순 냉혹하게 변했다.
“아니,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마현이 입고 있는 옷이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터라 성급하게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나 잠시 시간을 주었음에도 마현이 대답을 않자 결국 그의 입꼬리가 슬쩍 비틀렸다.
“뭐, 보아하니 어디 풍족한 집안의 자제분 같은데…… 내 셈을 치룬 값의 두 배를 쳐주겠소. 아니 세 배를 쳐주지.”
사실 등예에게 있어 돈을 두 배로 쳐주든 세 배로 쳐주든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의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등예는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한데 왠지 이상했다. 이쯤 하면 무언가 돌아오는 말이 있을 법도 한데 마현은 여전히 그를 쳐다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이자가?”
등예는 검자루에 손을 얹으며 은근히 협박했다.
“도저히 말로는 안 되는 자로구나!”
챙!
결국 등예는 검을 뽑아들었다.
자신을 소개하지도 않는 자이니 별반 이름 없는, 그저 조금 잘사는 어느 문사 집안의 자제일 거라고 등예는 심증을 굳혔다. 그렇기에 더 이상 참지 않고 검을 뽑아든 것이다.
어차피 낭인들이야 자신의 한 수도 못 받아낼 비천한 놈들이니까.
등예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거들먹거리며 마현의 목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냥 말 듣는 것이 좋을 게다. 조만간 도련님의 사문인 청성파 도인들이 오시면 큰 경을 칠 터.”
막상 검을 뽑았지만 낭인들의 피를 검에 묻히고 싶지 않아 등예는 협박의 강도를 조금 더 높였다.
“청성파라……, 후후후.”
등예의 입에서 청성파가 거론되자 마현은 그때서야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세상에 별별 인간들이 다 있다는 것은 알지만 머릿속에 헛바람이 잔뜩 들어간 멍청한 귀족 같은 놈들을 여기서도 보게 될 줄은 몰랐군.”
“뭐라고 하는 거야?”
등예가 무슨 말을 하든 말든 마현은 결정을 한 듯 철용을 불렀다.
“철용.”
“예, 도련님.”
마현의 표정이 냉혹하게 바뀌며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올라가서 겁을 상실한 놈을 끌고 내려오도록.”
“알겠습니다.”
철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항하면 팔 하나쯤 잘라도 된다.”
“명!”
철용은 마현을 향해 복명한 후 4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향해 신속히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등예가 몸을 날려 그를 가로막았다.
“이제 보니 혼이 나봐야 정신을 차릴 놈들이구나. 애들아!”
등예의 신호에 상호단원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시퍼런 칼날이 품어내는 예기가 객잔을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철용은 우습다는 듯 입가를 실룩이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놈!”
등예는 별호처럼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고 일말의 망설임 없이 철용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본보기로 한 놈의 목을 자를 심사였다.
싸아악!
쾌검 한 줄기가 한순간 철용의 목을 휘감았다.
목이 잘릴 것이라고 추호도 의심치 않던 등예였다. 하지만 곧 들려온 소리는 그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깡!
마치 쇠와 쇠가 부딪힌 것과 같은 타음이 들렸다.
“큭!”
동시에 그 충격으로 등예는 손이 저려 칼을 놓칠 뻔했다.
저린 손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기 위해 다른 한 손을 가져다대기도 전이었다. 등예는 자신의 목을 향해 다가오는 철용의 손아귀를 보았다.
“컥!”
철용은 등예의 목을 손으로 움켜잡으며 번쩍 들어 벽으로 밀쳤다.
쿵!
그 힘이 얼마나 셌던지 천장에서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부대주.”
철용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왕귀진의 목소리에 등예의 목을 쥐고 있는 손을 풀었다.
“켁켁켁!”
막혔던 숨을 다시 몰아쉬는 등예를 향해 철용은 손등을 휘둘렀다. 등예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급히 검을 들어 철용의 손을 막았다.
깡!
역시나 이번에도 쇳소리가 검과 철용의 주먹 사이에서 터졌다. 그 무지막지한 힘에 등예는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다, 단주님.”
철용의 무위에 놀란 상호단원들이 우르르 뛰어왔다.
어느새 객잔 입구는 흑풍대에 의해 가로막혀 있었다.
철용은 본래의 목적대로 계단 위로 올라갔다.
그러는 사이 객잔 1층에 놓여 있던 탁자와 의자들이 한쪽으로 밀려났다. 흑풍대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치운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 마현이 앉아 있는 탁자만은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달라진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분위기였다.
객잔 안의 공기는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 공기를 누르고 있는 것은 진한 살기와 투기였다.
한순간 달라진 객잔 안의 분위기에 등예의 몸은 한순간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버렸다.
그냥 단순히 낭인들이라 치부했는데, 아니었다. 살을 에는 듯한 투기와 살기는 수백 수천의 바늘이 되어 살을 콕콕 찔렀다.
그때서야 등예는 소름이 쭉 돋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무림에 관한 지식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이들과 명확하게 일치되는 집단은 생각나지 않았다.
상대를 알 수 없는 적이 더 무섭다는 것을 등예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몸이 뻣뻣하게 굳고 입술이 바싹 말라갔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잘못하다가는 죽는다는 것을…….
‘살아야 한다.’
등예는 순간 쉴 새 없이 머리를 굴리며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무언가 번뜩 떠오르자 등예는 망설임 없이 검을 거두며 마현이 있는 곳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고, 공자.”
마현은 등예 쪽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냥 여유롭게 술잔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예는 주절주절 말을 꺼냈다.
“조, 조금 후면 청성파 도인들이 오시오. 그러니 조, 좋게 해결합시다.”
마현은 술잔을 내리며 왕귀진을 불렀다.
“대주.”
“예, 주군.”
왕귀진은 군례를 취하며 복명했다. 그의 호칭은 좀 전과 달리 흑풍대주로 되돌아와 있었다.
“본인에게 검을 겨눈 자다. 일단 그 팔 하나를 잘라라.”
“명!”
다시 군례를 취하는 왕귀진의 신형은 어느새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등예 바로 앞이었다.
“히익!”
등예는 왕귀진의 움직임을 보지도 못했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수였다. 그가 기겁하며 검을 들어 품으로 바싹 당겼다. 아니 당기려 했다. 하지만 당길 수 없었다.
번쩍!
등예는 하얀 빛을 봤다.
하얀 빛이 지나간 자리에 붉은 물방울이 튀어 오르는 것이 보였다. 새빨간 피였다.
쿵!
그리고 귓가에 천둥처럼 들려오는 소리.
이어 느껴지는 통증!
“으아아아악!”
지독한 통증에 등예는 양손을 들어 몸을 감싸려 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왼손뿐이었다. 그리고 바닥에서 팔딱팔딱 뛰는 자신의 오른손이 보였다.
등예는 지독한 통증 속에서도 목숨만은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적어도 청성파 도인이 올 때까지만이라도 버텨야 했다.
등예는 살기 위해 마현 앞으로 무릎을 꿇은 채 기어갔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만 주시면 청성파 도인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등예는 마현 앞에서 머리를 몇 번이나 조아리며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그 말은 네놈들을 살려두면 청성파가 여기로 온다는 소리인가?”
등예는 마현의 말에 고개를 미친듯 위아래로 주억거렸다. 그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마현의 말을 살려준다는 의미로 착각한 것이다.
“청성파라…….”
마현의 눈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태일 도장이었던가?”
마현은 사천당문에서 보았던 태일을 떠올렸다.
“그놈이 오면 좋겠군.”
태일 도장이란 말에 등예는 재빨리 다시 입을 열었다.
“오십니다! 태일 도장께서 오십니다.”
그 이름이 자신을 살려줄 것이라 믿었는지 등예가 태일의 이름을 들먹이며 소리쳤다.
“그래?”
마현의 입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지어졌다.
“대주.”
“예, 주군.”
“저들은 감히 본인에게 검을 들었다. 모두 한 팔씩 잘라라.”
“명!”
흑풍대 몇몇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금세 객잔 안에는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비명을 들으며 마현은 차가운 눈동자를 머금은 채 술잔을 들었다.
‘태일, 그놈이 여기로 온단 말이지?’
“후훗!”
마현은 술잔에 담긴 술을 단번에 털어 넣었다.
* * *
정파 무림의 양대 산맥이자 민간에서는 도교의 본산지로 유명한 무당파.
그 때문에 무당파 경내는 항상 수많은 참배객으로 인해 북적거렸다. 하지만 지금의 무당파는 한산했다. 평소 그리 많던 참배객도 보이지 않았고, 넓은 무당파 안을 채우고 있는 것도 무당파 제자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