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6화
“큭!”
양곽원은 신음을 토하며 급히 양팔을 들어 얼굴을 보호했다. 그런 양곽원 앞으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양곽원과 함께 온 열풍대주였다. 그는 남해태양궁의 무인답게 마나 미사일을 향해 열기가 가득한 주먹을 휘둘렀다.
콰광!
마현은 양곽원을 보호하며 막아선 열풍대주를 향해 마나 미사일이 아닌 아이스 재벌린을 만들어 날렸다. 숨 쉴 틈도 없이 곧바로 얼음창이 날아오자 열풍대주는 이를 악물며 왼 주먹을 내질렀다.
콰과광!
폭음과 함께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큭!”
휘날리는 눈가루 속에서 열풍대주의 짧은 비명이 터졌다. 모습을 드러낸 열풍대주의 왼팔 전체가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쩌적 쩌저적.
왼팔을 뒤덮은 얼음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자세히 살피니 얼음만 갈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왼팔 역시 얼음과 함께 갈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파삭! 우두두두둑!
얼음이 부서지는 순간 열풍대주의 왼팔도 얼음 조각처럼 부서졌다. 왼팔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왼쪽 어깻죽지에서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 다만 살이 시커멓게 죽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살도, 그 위를 얼리고 있는 냉기가 사라지면 피가 흐를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열풍대주의 눈빛은 여전히 굳건했다. 자신의 주군을 위해서라면 이 자리에서 죽을지언정 피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엿보였다.
마현의 차가운 눈이 반쯤 감겼다. 반개한 그의 눈동자는 열풍대주를 넘어 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양곽원에게로 향했다.
열풍대주는 양곽원에게 너무나도 아까운 수하였다.
“일단 오도평과 시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살피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소.”
냉천휘가 다가와 마현을 만류했다.
“남해태양궁과 온전히 척을 질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훗…….”
마현은 열풍대주의 굳은 눈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리고 양곽원을 쳐다보았다.
“좋은 수하를 두었군. 네 목숨은 그보다 중한 열풍대주의 팔을 거둔 것으로 대신 받았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다.”
마현은 양곽원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마침 냉천휘가 말리기도 하고, 겨우 두어 번 마주친 자였지만 열풍대주의 대쪽같은 성품과 눈빛이 마음에 들었기에 굳이 죽이고 싶지 않았다.
마현답지 않은 조금은 변덕스러운 결정이었다.
열풍대주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는 마현을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비록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그가 충분히 감사하고 있음을 마현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대주, 양 소궁주의 발을 놓아줘라.”
“명!”
마현의 명에 왕귀진이 바닥을 짚고 있던 양손을 뗐다. 그러자 아무리 벗어나려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었던 양곽원의 몸이 용수철이 튕겨지듯 땅속에서 툭 튀어나왔다.
“크으으.”
겨우 땅속에서 몸을 뺀 양곽원은 욱신거리는 오른 발목을 손으로 잡았다.
“크윽!”
하지만 오른 발목에 손이 닿는 순간 눈가에 고통스러운 주름이 잡혔고, 꽉 다문 이빨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고통을 시작으로 생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휘감아가자 양곽원은 휘청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어야 했다.
“소궁주.”
한 팔을 잃어 양곽원 못지않게 고통을 느낄 열풍대주였건만 그는 재빨리 소궁주를 부축했다. 그러다 양곽원이 오른발을 잡고 계속 고통을 호소하자 서슴없이 바지 하단을 찢었다.
“흡!”
열풍대주의 눈이 크게 떠졌다.
드러난 양곽원의 오른쪽 발목은 생각보다 더 크게 퉁퉁 부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약간 뒤틀린 것이 분명 뼈가 골절된 듯 보였다.
그리고 기형적으로 부어오른 그 발목에는 검푸른 멍 같은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사기가 침투한 것이 분명했다.
흡사 깡마른 자가 내력을 이용해 발목을 으스러지도록 잡은 것 같았다. 하지만 양곽원의 몸은 잠시 땅속에 파묻혀 있지 않았던가.
열풍대주는 꿀꺽 신음을 삼키며 재빨리 열풍대원을 불러 양곽원을 부축하게 했다. 자신이 하고 싶었지만 한 팔을 잃은 터라 제대로 부축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양곽원과 열풍대의 모습에 무림맹 수뇌들은 순간 눈빛이 반짝였지만 이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양곽원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처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무림맹 한가운데서 거리낌 없이 자신들에게 무력시위를 한 마현의 과감한 성정 때문이었다.
무림맹 수뇌부, 그들 중 오파일방 장문인들은 결국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안색을 찌푸렸다. 그리고 복잡함을 담은 그들의 눈빛이 짧은 시간 서로를 오갔다.
마현은 여인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누구지?”
“오도평의 식사를 가지고 온 여인입니다.”
“그런데 죽었다?”
마현은 여인의 배가 검에 잘린 것을 유심히 살폈다.
“흠!”
어느새 그 주검 앞에 회회혈마가 헛기침을 내뱉으며 잘 접혀지지도 않는 뭉툭한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자세히 보기 위해 여인의 잘린 옷자락을 젖히고 검상이 드러나게 했다.
“커험!”
곡상천이 회회혈마의 반대편으로 다가가 몸을 숙여 여인의 검상을 살폈다.
“흥,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지 모르겠군.”
청허자는 노골적으로 왕귀진과 마현을 번갈아 쳐다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흠…….”
회회혈마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폈다.
“단서를 찾기 어렵겠습니다, 주군.”
곡상천 역시 몸을 펴며 고개를 저었다.
“단순한 검상이오.”
“단순한 검상이라고 하면?”
“그 어떤 검결도 남기지 않고 단칼에 벤 것이오.”
마현은 곡상천과의 대화 도중 찰나지만 무림맹 수뇌부들 사이에서 오가는 눈빛을 발견했다.
“이래선 증거를 찾을 수 없겠군.”
청허자는 마현을 향해 노골적인 적의를 내비치더니 난감하다는 듯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 모습에 마현은 실소를 터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알아낼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나직했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당연히 좌중의 이목이 마현에게로 모였다.
하지만 마현은 그런 시선을 무시하며 왕귀진에게 오도평의 시신을 가져올 것을 명했다. 마현의 명에 흑풍대원 둘이 독에 타살된 오도평의 시신을 별채에서 내와 여인의 시신 옆에 나란히 놓았다.
“누가 그랬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본인이 원하면 죽은 자라 해도 입을 열어야 할 것이다.”
오만하다고 느껴질 만큼 거침없는 마현의 목소리에 다들 몸이 움찔거렸다.
죽은 자가 입을 연다고? 그것이 가당치도 않은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기분 나쁜 예감이 든 청허자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현은 여인의 시체 위로 오른손을 내밀었다. 마현의 눈동자에서 마기가 일렁거리자 오른손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여인의 시신을 휘감았다.
“어둠의 기운의 주인, 나 카칸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주검 곁에 맴도는 혼백이여, 일어나 어둠 앞에 경배하라! 소울 서먼즈(Soul summons)!”
마현의 입에서 근원을 알 수 없는 언어, 룬어가 흘러나왔다.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언어를 듣고 무림맹 수뇌들뿐만 아니라 북해빙궁과 남해태양궁의 인물들 역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마현을 주시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한결같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느낀 것이다.
여인의 몸을 휘감은 마기와 마현의 입에서 나온 언어가 공명되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언어 자체가 가진 힘을 느낀 것이다.
특히나 힘을 가진 언어에 놀란 이는 소림사 방장 혜공대사와 무당파 장문인 청하진인이었다. 불교나 도교나 그 수련이 극에 달하면 평범한 언어에도 항마의 기운이 실린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먼 옛날의 이야기일 뿐, 이미 실전된 지 오래인지라 소림과 무당에서도 이제는 상상 속의 비기라고 치부될 정도였다.
저마다 놀란 표정을 미처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여인의 시신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는 솜처럼 마기를 흡수하며 서서히 선명하게 바뀌었다.
이윽고 흐릿하지만 분명 형체가 있는 그 무엇이 여인의 시신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헙!’
무림맹 수뇌들의 놀람은 극에 달했다.
여인의 시신 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분명 여인이었다. 단지 다른 것은 여인이 살아 있을 적 몸에서 색이 사라지면 저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피부색이 기이하다는 것뿐이었다.
정파 오파일방 대부분이 불교나 도교에서 파생된 문파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저 색을 잃은 여인의 형상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산 사람은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죽은 이의 혼백이었다.
확연히 보이는 혼백, 그것이 뜻하는 바는 분명했다.
초혼술(超魂術).
바로 초혼술이었다.
-꺄아아악!
여인의 혼백은 멍하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의 시신을 보자 혼백 특유의 음습하고 섬뜩한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온몸으로 비명을 지르다가 결국 몸을 웅크리고는 바르르 떨었다.
“내 눈을 보라.”
마현은 그런 여인의 혼백을 향해 마력이 담긴 목소리로 명했다. 여인의 혼백은 여전히 부르르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며 마현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마현의 눈에서 귀기가 뿜어져 나와 여인의 눈으로 스며들었다.
“오도평의 저녁식사를 나른 이가 너냐?”
마현의 목소리 역시 귀기를 담아서 그런지 음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혼백은 고개를 마구 위아래로 주억거렸다.
“네가 죽은 이유를 아나?”
그 질문에 혼백은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여전히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이유도 모르고 죽은 가엾은 혼백이라…….”
마현은 처연한 목소리로 안타까워하며 고개를 들어 무림맹 수뇌들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의 눈빛이 몹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누가 너를 죽였나?”
마현의 말에 혼백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죽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 것인지 여인의 혼백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며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공포에 질려 순간 공황상태에 빠진 것이다.
“대답하지 않으면 네 혼백을 지우겠다!”
마현의 목소리에서 살기가 가득한 귀성이 터져 나왔다. 그 목소리에 움찔 반응한 여인의 혼백은 몸을 바르르 떨면서도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그런 혼백의 눈이 어느 한곳에서 멈췄다.
바들바들 떨던 여인의 혼백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바라보는 곳에는 코에 큰 사마귀가 난 청성파 제자 하나가 서 있었다.
-꺄아악!
혼백의 눈에서 원한 가득한 귀기가 뿜어져 나왔다.
-왜 죽였어? 왜 날 죽였어!
한 맺힌 귀성을 내뱉던 여인의 혼백은 단숨에 청성파 제자에게로 날아갔다.
“갈!”
그런 여인의 혼백을 향해 청허자가 몸을 날리며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도가 특유의 항마의 기운을 끌어올려 혼백을 베어 버렸다.
-끼아아악!
혼백의 옆구리에서 뿌연 기운이 흘러나왔고, 곧 검에 베인 자리는 텅 비어 버렸다.
충격을 받은 듯 혼백은 마구 날뛰었지만 청허자가 검에 실은 항마의 기운이 두려운 듯 좀처럼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사, 사술이다. 나는 저 여인을 본 적이 없소.”
그때 코에 사마귀가 난 청성파 제자의 높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고 붉어진 것이 그리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디서 사술을 부리는 것이냐?”
청허자 또한 한껏 목소리를 높이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사실 청허자는 지금 적지 않게 놀란 상태였다.
초혼술은 원시무림시절, 도문의 한 곳이었던 모산파에서 시작되었다. 모산파 도인들은 당시 억울하게 죽은 혼백을 다스리거나 잡귀들을 물리칠 때 초혼술을 사용했다.
하지만 모산파가 멸문하고 그 명맥만 근근이 이어져 내려오던 것이, 수백 년 전부터 차츰 도술이 무공에 밀려나며 이제는 완전히 실전된 상태였다.
초혼술은 분명 도술이긴 하지만, 청허자는 단호하게 사술이라고 우겼다. 혼을 다루던 도술들이 사파로 넘어가 한때는 무림을 피로 물들었던 강시술을 탄생시킨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네 억울한 원한은 본인이 풀어주마.”
마현은 울부짖은 여인의 혼백을 다시 돌려보냈다.
“결국 본색을 드러냈구나!”
청허자는 마현을 향해 검을 들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몸을 날려 검을 휘둘렀다.
마현은 크게 뒤로 물러나며 청허자의 검을 피했다. 연이어 공격을 날릴 줄 알았던 청허자가 잠시 주춤거렸다. 그 이유는 청허자의 다리 밑에 놓인 오도평의 시신 때문이었다.
청허자는 반걸음쯤 앞으로 걸어 나와 오도평의 시신을 보호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담기량이 검을 뽑으며 청허자 뒤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