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35화 (135/351)

# 135

10화

“뭐야?”

사공찬의 관자놀이에서 힘줄아 돋아났다. 그리고 몸에서 거센 투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기세는 고스란히 도종극을 덮치며 압박해 들어갔다.

도종극은 그 기운을 흘리며 사공찬 앞으로 바싹 다가가 얼굴을 드밀었다.

“크크크, 머지않아 그럴 날이 올 것입니다. 머지않아……. 사형이 원치 않아도 그리 될 겁니다.”

도종극은 혀를 날름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는 사공찬의 어깨를 툭 건드리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낄낄낄낄.”

멀어져가는 도종극에게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사공찬은 그런 도종극을 보며 입술을 한일자(一) 모양으로 굳게 닫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 * *

서악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화산의 중턱.

마현과 흑풍대, 그리고 설린과 냉천휘, 설영대가 모여 있었다. 힘든 싸움을 거쳐 화산파를 벗어난 그들이어서 그런지 다들 땀으로 흠뻑 젖은 모습이었다.

또한 검에 베여 너덜너덜 찢어진 옷은 크고 작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얼룩져 있었다.

“문제는 지금부터군.”

마현은 화산파가 있는 산 정상과 아래를 훑어보며 중얼거린 후 설린과 냉천휘를 쳐다보았다.

“본인 때문에 애꿎은 일에 휘말리게 되어 미안하오.”

“괜찮아요.”

설린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설 사저가 그렇다는군요.”

냉천휘는 설린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내 약속하겠소. 어떤 일이 있어도 북해빙궁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을 것이오.”

마현은 뒤에 시립한 왕귀진과 회회혈마를 돌아보았다.

“대주, 그리고 이장로.”

“예, 주군.”

“하명하시옵소서.”

왕귀진과 회회혈마가 마현 곁으로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이 시간 이후로 흑풍대는 설영대를 보호하라. 그리고 이 장로는 설 소궁주와 냉 소협을 보호하라. 그대들은 북해빙궁을 보호하는 데 있어 제 목숨을 돌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명!”

“알겠습니다, 주군.”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여 마현의 명을 받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설린은 그런 두 사람의 등을 바라보며 급히 만류했다.

“북해의 바람은 보기보다 매섭답니다.”

마현은 설린의 말에 그녀를 향해 몸을 틀었다.

“그 뜻이 아니오.”

“……?”

“나와 이장로, 그리고 흑풍대가 죽어야 한다면 북해보다 먼저 죽겠다는 뜻이오.”

“그렇다면 주군.”

회회혈마가 마현과 설린 사이로 다가왔다.

“주군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길을 북해로 잡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북해로?”

“아마도 무림맹에서는 이미 특단의 조치를 취했을 겁니다.”

“특단의 조치라 함은?”

“십중팔구 본교로 향하는 길목마다 길을 틀어막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여…….”

회회혈마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입을 뗐다.

“일단은 북해로 향했다가 북해빙궁의 안전이 확보되면 바로 신강으로 내려가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주군.”

“나쁘지 않은 제안이네요.”

설린의 흔쾌한 대답에 마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그리하지.”

마현은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곳은 무림맹 적지 한가운데다. 현재 화산파에 모인 오파일방과 육대세가의 무인들 수만 해도 엄청날 것이다. 그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적은 인원이다. 그런 인원이 두 패로 갈라지는 것보단 함께하는 것이 낫다.

게다가 가는 길목마다 무림맹 산하 문파들이 저지를 하며 진로를 가로막을 것이 아닌가.

그럴 경우 끈질기게 뒤쫓아 올 무림맹의 추격대까지 대비하며 매번 혈로를 뚫어야 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주군.”

“종남파가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곧장 녕하를 거쳐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이 나을 것 같네요.”

설린은 회회혈마의 제안에 자신의 의견을 조금 더 보탰다.

“최단시간 몽고로 들어가면 무림맹에서도 어찌하지는 못할 것이오. 몽고만 지나면 바로 북해이니…….”

냉천휘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좋소, 그리합시다.”

결정을 내린 마현은 지체하지 않고 흑풍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북쪽으로 길을 잡는다.”

“명!”

“명!”

흑풍대 역시 조용히 명을 받들었다.

* * *

화산파 장문인실.

담기량을 비롯해 무림맹 수뇌들과 양곽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이 앉아 있는 탁자 위에 중원 전도가 펼쳐져 있었고, 그 지도 위에는 나무로 작게 깎아 만든 말들이 천산을 중심으로 도처에 놓여 있었다.

“대략 이틀 후면 마교로 향하는 길목은 모조리 막힐 것이오.”

당자성이 손가락으로 ‘당(唐)’자가 적혀 있는 말들과 ‘개’자가 적혀 있는 말들을 함께 가리켰다.

“무당과 제갈세가 역시 귀주성으로 내려갔으니, 그들이 쉽사리 운남을 통해 서장 쪽으로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외다.”

제갈묘가 가리킨 곳에는 제갈세가와 무당파를 상징하는 글자가 적힌 말들이 놓여 있었다.

“하북팽가는 내일 새벽이면 섬서성에 들어설 것이오.”

“소림사 역시 하북팽가와 같습니다, 아미타불.”

“종남파 역시 감숙과 녕하로 향하는 길목을 모조리 틀어잡았소이다.”

무림맹의 모든 힘이 섬서성과 마교로 통하는 길목으로 차근차근 집중되고 있었다.

파드득.

마현과 북해빙궁이 어느 길목으로 갈 것인지 한참 논의하고 있을 때 한 마리의 전서구가 장문인실 안으로 날아와 곡상천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곡상천은 전서통에서 자그만 전서를 꺼내 읽었다.

깨알 같은 글씨를 읽어 내려가는 곡상천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서서히 번졌다.

“무슨 일이오?”

“먹이를 물었소.”

“그 뜻은?”

곡상천은 전서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내용을 설명했다.

“절반이 넘는 우리 종남파의 제자들을 감숙과 녕하로 향하는 길목에 배치시킨 것은 모두들 알고 계실 것이오.”

“그렇다면 바로 신강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북해로?”

“그렇소이다.”

곡상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종남파 관할에 사는 사냥꾼이 산을 타고 넘어가는 무리를 보았다고 전갈을 보내왔다는구려. 그 사냥꾼의 설명을 들어본 결과 십중팔구 마교와 북해빙궁이 틀림없다는 결론이외다.”

북해로 바로 빠져나갈 가능성은 배제한 뒤 작전을 짠 터라 약간 후회가 되었지만, 다행히 아직 늦지는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서두르면 그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소림사는 본맹으로 오는 중일 테니 이른 새벽 합류하는 즉시 움직이도록 하시오. 그리고 하북팽가는 포성현(蒲城縣)으로 오라 전갈을 넣어주시오. 하북팽가는 그곳에서 합류하도록 하지요.”

“아미타불.”

“알겠소이다.”

담기량은 고개를 돌려 당자성과 청허자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인접거리에 있는 사천당문과 청성파는 종남파와 합류해 감숙과 녕하로 향하는 길목을 철통같이 막아주시오.”

“알겠소, 맹주.”

“그리하지요.”

“그리고 다른 분들은 우선 소수라도 선발대를 급히 섬서성으로 보내주십시오.”

담기량은 고개를 숙여 지도에 그려진 섬서성에서 북으로 향하는 길목을 내려다보았다.

“북해빙궁은 몰라도, 마교는…… 그 목숨으로 무림맹의 치욕을 씻어야 할 것입니다.”

담기량의 말에 양곽원이 말없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둘 사이에 눈빛이 짧게 오갔다.

남해태양궁과 무림맹 사이에 오간 밀약 때문이다.

장차 정마대전이 벌어질 경우 남해태양궁은 무림맹에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무림맹은 남해태양궁이 북해빙궁을 삼킬 때 역시 힘을 실어주기로 한 것이다.

* * *

산길조차 제대로 나지 않은 깊은 산중이었다.

숙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무가 듬성듬성한 공터에 마현과 일행들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마현은 자리에 앉지 않고 공터 주위를 오가며 뭔가 일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 마현을 설린과 냉천휘는 유심히 살폈다.

‘진(陣)인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진은 아니었다. 진이라면 분명 기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돌이나 나무 등을 이용해야 하는데, 마현은 아무 것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잠시 후 마현은 일을 마쳤는지 가볍게 숨을 내쉬며 공터 중앙으로 걸어와 섰다.

‘바로 저기에 비밀이.’

설린이 그런 생각을 할 때쯤 마현의 몸에서 기파가 파동 치듯 흘러나와 주위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마현은 여전히 눈을 살짝 감은 채 한동안 서 있다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떴다.

“끝났나요?”

“그렇소.”

마현은 설린과 냉천휘가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가 땅 위로 볼록 솟아난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러자 흑풍대는 익숙하게 불을 지피고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처음 그런 모습에 설린은 물론, 냉천휘와 설영대도 깜짝 놀랐다.

쫓기는 입장에서는 사소한 것도 조심해야 한다. 음식 냄새도 문제지만 아무리 첩첩산중이라 해도 야간에 불을 피우는 행위는 자신들의 위치를 적에게 고스란히 노출시키는 가장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나 어두운 산속의 불빛은 보통 사람이라도 족히 5리 밖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다. 더욱이 무인이라면 그보다 더 먼 거리에서도 충분히 볼 수가 있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설린과 냉천휘에게 마현이 가볍게 웃으며 안심하라 일러주었다. 쉽게 믿기지 않았지만 마현은 밖에서는 자신들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하지만 목숨이 걸린 일인지라 냉천휘는 설영대 몇을 데리고 직접 환영마법진 밖으로 나가 마현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까지 했다.

그런 그들의 움직임으로 인해 주변에 알람 마법이 설치돼 있는 것까지 알게 된 설린은 그저 놀라워할 뿐이었다.

비전에 대해 쉽게 물어볼 수 없었지만 설린은 호기심과 경외감이 담긴 눈빛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 눈빛에 마현은 그저 진법의 일종이라고 얼버무렸다.

마현은 흑풍대가 준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지폈다.

화르르륵.

마현의 손에서 만들어진 순수한 불덩이, 파이어 볼에 의해 나뭇가지는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흠…….’

냉천휘는 타닥타닥 타는 장작불과 마현을 번갈아 쳐다보며 입속으로 침음성을 삼켰다.

볼수록 신기한 능력을 가진 이였다.

보여주는 무력은 분명 마공인 듯한데, 좀 더 자세히 살피면 무공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냉천휘는 설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모닥불에 의해 붉은 빛이 감도는 얼굴로 설린은 간간히 마현을 흘깃흘깃 쳐다보고 있었다.

딱 봐도 설린이 마현을 연모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마현이었다. 마현은 설린과 같은 마음이 아닌 것 같았다.

‘설 사저는 저 사내의 어디가 좋다는 것이지?’

냉천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모닥불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할 일 없이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뒤적이던 냉천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자리를 피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타닥 타닥 타닥.

냉천휘가 자리를 뜨자 침묵 속에서 나무 타는 소리만이 모닥불에 내려앉았다.

“쫓기는 상황만 아니라면 운치 있는 밤이네요.”

결국 침묵을 참지 못하고 설린이 먼저 말을 꺼냈다.

“…….”

마현은 불쏘시개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들은 하르센 대륙과 별반 다름없는데,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마현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내렸다. 그리곤 내려놓았던 불쏘시개를 다시 들어 모닥불을 뒤적거렸다.

마현은 이제껏 미뤄놨던 말을 꺼내려다가 말았다.

보는 눈도 많고, 듣는 귀도 많은 까닭이다.

마현은 설린의 시선을 피해 몸을 살짝 틀어 나무기둥에 등을 기댔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오. 쉴 수 있을 때 쉬어두시오.”

마현은 그 말만 하고는 입을 꾹 닫고 눈을 감았다.

이제는 알아줄 법도 하건만 설린은 야속함에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단 한 사람, 설린을 제외하고 다들 고단함에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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