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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41화 (141/351)

# 141

16화

마현의 눈에서 폭사되기 시작한 마기가 한순간 몸을 휘감았다.

서서히 유형화되며 마현의 몸을 완전히 뒤덮은 흑무는 그 범위를 넓혀 갔다.

도검을 휘두르며 혈전을 벌이고 있는 전장이 차츰 고요속에 파묻혔다.

이제껏 접해 보지 못한 엄청난 마기에 무림맹 무인들이 흠칫하며 먼저 뒤로 물러났다. 그로 인해 전장은 다시 소강상태에 빠져 들었다.

무림맹 무인들은 긴장된 눈으로 서서히 넓게 퍼져가는 흑무를 쳐다보았다.

“꿀꺽!”

고요 속에서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크하하하하!”

“크크크크!”

“이제 본좌가 나설 때가 된 것인가?”

“후후.”

짙은 마기가 담긴 목소리가 고요한 전장을 뒤흔들었다.

* * *

이제는 흑풍대와 북해빙궁의 모습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어진 흑무 속에서 광오한 흉소가 터져 나왔다. 그 흉소는 단순히 흉흉한 웃음이 아니었다.

지극히 순수한 마기가 담긴 웃음!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기이한 마력이 순식간에 장내를 장악했다.

“크으윽!”

“컥!”

내력이 약한 중소문파의 제자들은 그 마소(魔笑)에 충격을 받고 휘청거렸다. 직접적으로 단전에 충격을 받아서인지 그들의 얼굴은 새하얗게 탈색되었고, 몇몇은 입과 코에서 실낱같은 피를 흘렸다.

그리고 짙은 흑무가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지점은 애초에 마기가 시작되었던 중심, 마현이 아니었다.

흑무는 마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방위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네 곳으로 모여든 흑무는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흑사신에게 흡수되었다. 흑사신들은 장내에 퍼진 흑무를 남김없이 흡수하자 눈을 부릅떴다.

그들의 눈에서 순수한 마기를 담은 안광이 찰나지간 폭사되었다가 갈무리되었다.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최대한 그대들의 힘을 개방시켰다. 그 시간은 한식경이다. 길을 뚫어라!』

매직마우스로 흑사신을 향해 뜻을 전하는 마현의 몸은 온통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서클 단전에 남아 있던 마력의 태반을 흑사신에게 나눠줬기 때문이다.

이제 마현이 가진 마력은 얼추 3할 정도였다.

“흐읍!”

흑도는 흡사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크크크크크.”

흑도 특유의 경망스러운 웃음이 튀어나왔다.

몸에서, 그리고 마정석으로 이뤄진 단전에서 느껴지는 풍부한 마력을 음미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평소 흑사신이 보여준 무력이 대단한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과거 그들이 살아 있을 때와 비교한다면 5할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했지만 평생 무인으로 살다 죽었던 그들은 만족하지 못했다. 아니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 원인은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마현에게 있었다.

그들이 생전의 힘을 온전히 찾기 위해서는 마현의 힘이 필요했다. 즉, 마현의 서클이 그들의 힘을 제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흑권이 마현을 여전히 주군으로 섬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흑권도 흡족한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현이 마력을 그들에게 몰아준 덕분에 근 7할에 가까운 힘을 느끼고 있었던 까닭이다.

“갈! 정파 무림인들의 기개가 땅에 떨어졌구나!”

청성파의 옥허자가 흑사신의 기이한 등장에 선뜻 다시 검을 들지 못하는 무림맹 무인들을 보며 노기 어린 호통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몸을 날렸다.

“우습구나!”

흑권이 몸을 날린 옥허자를 향해 크게 진각을 밟으며 주먹을 내질렀다.

콰광!

검과 주먹이 부딪히며 폭음이 터졌다.

하지만 그 폭음이 끝나기도 전에 흑권은 다시 한 번 검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후우우우웅!

그의 주먹에는 검은 강기가 맺혀 있었다.

파황마권(破荒魔拳)! 그는 살아 있을 당시 그것 하나만으로도 천하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본신절기를 마음껏 펼친 것이다.

와장창창창!

흑권의 주먹에 맺힌 묵강은 여지없이 옥허자의 검을 부숴 버렸다.

콰광!

그의 주먹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옥허자의 가슴에 그대로 꽂혔다.

푸학!

“크아아악!”

옥허자는 입에서 피를 뿜으며 끈 끊어진 연처럼 힘없이 뒤로 날아갔다.

그의 몸이 땅바닥으로 처박히며 나뒹굴려는 찰나, 청성파 장문인인 청허자가 재빨리 몸을 날려 옥허자의 몸을 받아들었다.

“사제, 정신 차리게. 사제!”

청허자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옥허자의 몸을 흔들었다.

충격에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옥허자의 몸은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또한 입가에 흐르는 피에는 잘게 부서진 내장 조각이 섞여 있었다. 회복불능의 중한 내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이놈!”

청허자는 핏발이 선 눈동자로 흑권을 쳐다보며 노기 어린 목소리를 터트렸다. 그는 옥허자를 땅에 내려놓으며 흑권을 향해 달려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무무가 먼저 흑권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군대의 전장이든, 무림인들 간의 싸움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사기다.

자칫 꺾일지도 모르는 아군의 사기를 다시 하늘 높이 세우기 위해 무무가 몸을 날린 것이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무무는 소림 특유의 항마력이 깃든 내력을 주먹에 담아 흑권을 향해 내질렀다.

소림사 절예 중에서도 이름 높은 백보신권이었다.

“흥!”

밀려오는 권강에 흑권은 코웃음을 치며 무무의 주먹을 향해 그 역시 주먹을 내질렀다.

은은한 은빛 광채로 둘러싸인 주먹과 먹구름처럼 보이는 마기가 깃든 주먹이 부딪혔다.

콰과과광!

고막을 찢을 듯한 폭음과 함께 내력과 마력이 서로 부딪혀 폭발하며 기파가 사방으로 찢어지듯 휘날렸다.

“크으!”

그 속에서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 신음의 주인은 바로 무무였다.

놀랍게도 무무는 어느새 처음 자신이 서 있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그의 두 발 앞에 마치 밭고랑처럼 깊게 두 줄기의 흔적이 난 걸로 보아 충돌에 의한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강제로 뒤로 밀려난 것 같았다.

무무의 입가에 굵은 핏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정작 무무는 진탕된 내기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는 눈치였다. 오로지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난 흑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 무무의 눈동자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몹시 요동치고 있었다.

“파, 파황마권?”

무무는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고도 자신의 말을 믿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파황마권은 과거 흑권이 개벽권마 맹우림으로 죽은 이후 실전된 마공인 까닭이다.

그나마 무무가 무승각주로서 무공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나 권공이 전공이었기에 알아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수백 년 전에 실전된 마공인지라 누구도 몰라봤을 것이 분명했다.

흑권은 그런 무무를 향해 의미 모를 미소를 살짝 짓고 있었다.

무무는 입술을 깨물며 다른 흑사신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 그의 눈에 유독 흑창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마력을 옷처럼 두른 사내. 그리고 유난히 길고 검은 창이 보였다.

“나는 섬서 파창마가(破槍馬家)의 마독용이다.”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겼을까.

섬서성 북부에서 창으로 명성이 자자한 파창마가의 가주 마독용이 호기롭게 자신을 밝히며 흑창 앞으로 나섰다.

선혈이 낭자한 이런 전장에서 가문과 이름을 대는 것 자체가 조금 우스운 일이었지만, 마독용은 굳이 자신을 소개하며 나갔다.

흑창은 과묵한 그답게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왼손을 들어 까딱거렸다.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원래 흑창이 말이 없다는 것을 마독용이 알 리 없다. 그 때문에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여겼는지 금세 얼굴이 붉어지며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례한 놈, 정파의 힘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마!”

마독용은 머리 위로 창을 휭휭 돌리며 흑창을 향해 몸을 날렸다.

마독용은 원호를 그리는 창대를 이용해 흑창의 하체를 노렸다. 하지만 흑창은 다리를 슬쩍 틀어 창을 피하더니 마독용의 가슴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그냥 단순히, 마독용의 가슴을 향해 창을 툭 찌른 것뿐이었다.

쇄에에엑!

하지만 섬전과도 같은 빠른 속도에 마독용은 경악했다.

“헙!”

마독용은 헛바람을 들이마시며 최대한 몸을 틀어 허리를 젖혔다.

찌직, 사각!

하지만 온전히 흑창의 창을 피하지는 못했다.

흑창의 날카로운 창날은 마독용의 가슴 섶을 자르며 피부를 얕게 벴다.

쿵!

뒤로 물러나는 마독용을 보며 흑창은 바닥에 창을 강하게 내려놓고 다시 반듯하게 허리를 폈다.

곧게 세워진 흑창의 창날에서 한 방울의 피가 또르르 흘러내렸다.

한 방울의 피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혈향이 흑창의 코끝을 간질였다. 그 혈향에 흑창의 코가 벌렁거리더니 콧잔등 위에 주름이 잡혔다.

그 때문일까? 언제나 무표정하던 흑창의 얼굴이 왠지 근엄하게 바뀌었다.

“흐으음…….”

흑창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흑창을 향해 마독용은 이를 악물고 다시 창을 찌르며 달려들었다.

후우웅, 탁!

흑창은 여유롭게 창을 회전시키며 마독용의 창을 막았다.

“감히 본좌 앞에서 창을 논하려 하는 게냐?”

흑창은 여전히 근엄한 얼굴로 마치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창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다, 라는 표본을 보여주려는 듯 그는 가볍게 창을 들어 마독용의 허리를 창대로 후려갈겼다.

퍽!

충격에 마독용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였다.

그러자 흑창은 창을 반대로 회전시키며 마독용의 등을 창대로 재차 가격했다.

퍼벅!

흑창의 일갈이 터져 나왔다.

“본좌로 말할 것 같으면…….”

흑창은 창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훙 훙 훙 훙 훙!

퍼버버벅!

창이 수십, 수백의 원을 그리며 마독용의 몸 곳곳을 후려쳤다. 쉴 새 없이 마독용의 몸을 가격한 흑창은 엄숙한 얼굴로 뒤로 물러나며 창을 거뒀다.

그리고 마치 홀로 수련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니면 일생일대의 적을 앞에 두고 현란한 창술을 펼치는 것처럼 창술 몇 초식을 더 펼친 후 창을 거둬 바닥에 쿵, 찍으며 똑바로 섰다.

그의 얼굴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민망할 정도의 흡족한 미소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진우주천상천하유아독존고금제일천하무쌍우내무적창(眞宇宙天上天下唯我獨尊古今第一天下無雙宇內無敵槍)이 바로 본좌다. 그 누가 본좌 앞에서 창을 논하겠는가? 창하면 본좌, 본좌하면 창. 창을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린 것이 바로 본좌다.”

한 호흡?

스스로 말해 놓고도 낯 뜨거울 거창한 자화자찬을 단 한 호흡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모두 내뱉었다.

수다와 잡담의 무아지경에 빠진 여인네들이 봐도 놀랄 일이었다. 또한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이야기꾼도 이처럼 빠르게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평소 아낀 말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듯, 자화자찬을 늘어놓은 흑창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더욱 진해진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묵직하게 끄덕였다. 그리고는 희열에 찬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거 똘아이 아냐!”

그런 흑창을 보며 흑도는 어이없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너무나도 달라진 흑창을 보며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어 입을 살짝 벌리고 있던 흑권과 흑검 역시 이번만은 흑도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말에 흑창의 귀가 꿈틀 움직였다. 그리고 그의 표정 역시 묘하게 일그러졌다.

“갈! 감히 본좌에게 그런 쌍스러운 말을 하다니, 정녕 네놈이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내 손속에 사정을 두었건만,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로구나.”

흑창은 고개를 내려 얼굴과 온몸이 퉁퉁 부은 마독용을 내려다보며 호통 쳤다.

“으아 아우…….”

이빨이 모두 부서지고 혀가 반쯤 떨어져 나가 입 안이 엉망이 된 마독용은 제대로 된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래서 고개가 떨어져라 열심히 좌우로 흔들며 부정했다.

그러면서 손가락을 들어 흑도를 가리켰다. 한껏 부릅떠진 마독용의 눈에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의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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