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18화
“헉헉헉!”
흑풍대와 설영대의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 풍겼다. 또한 온몸이 피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다들 안색 또한 그리 좋지 않았다.
무리한 내력의 운용과 함께 장시간 쉬지 않고 마력을 끌어올린 탓이다.
그래도 마지막 포위망만 뚫으면 숨통이 트일 것이다. 전황은 그들의 바람처럼 그렇게 되는 듯했다.
하지만 포위망을 벗어나며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들이 흑풍대와 설영대를 막아섰다.
‘검림?’
마현은 그들 속에서 나부끼는 깃발을 보며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전혀 알 수 없는 문파였다.
잠시 설린, 냉천휘와 매직마우스와 전음으로 정보를 주고받았지만 그들 역시 모르는 문파였다.
“이 땅에서 사악한 마인들을 몰아내라!”
뒤쪽에 서 있는 수장인 듯한 장년인이 명을 내리자, 그를 따르는 무인들이 쏟아져 나오며 흑풍대와 설영대를 덮쳤다.
힘들어하는 흑풍대를 보던 설영대주가 흑풍대주 왕귀진을 향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는 설영대가 앞장서겠소.”
대답도 듣지 않고 설영대주가 내력을 담아 소리치려고 할 때 왕귀진이 그의 어깨를 잡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흑풍대는 주군의 명을 따를 뿐이오. 그것이 죽음의 길일 지라도!”
왕귀진의 얼굴은 창백하고 땀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눈빛만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흑풍대는 강하다!”
왕귀진의 우렁찬 목소리에 흑풍대 역시 목이 찢어져라 복창했다.
“흑풍대는 강하다!”
“흑풍대는 강하다!”
“검은 바람은 모든 것을 지운다!”
왕귀진의 이어진 목소리에 흑풍대는 여전히 목이 찢어져라 복창했다.
“검은 바람은 모든 것을 지운다!”
“검은 바람은 모든 것을 지운다!”
“흑풍대는 스켈레톤들을 이용해 막아서는 자들을 모조리 도륙하라!”
왕귀진이 검을 휘두르며 명을 내렸다.
“와아아아!”
“우리는 흑풍대다!”
함성을 지르며 흑풍대는 더욱 짙은 마기를 내뿜었다.
챙챙챙챙챙!
그들은 스켈레톤을 움직이느라 여태 허리에 차고만 있던 검을 일제히 뽑아들었다.
‘마교 대공자의 진정한 힘은 본인의 마공이 아니라 수하들이군.’
설영대주는 고개를 들어 허공에 떠 있는 마현을 올려다보았다.
-캬캬캬캬캬!
-키키키키키!
삼백 구의 스켈레톤이 일제히 검림을 향해 달려 나갔다.
“와아아아!”
“사악함으로 만들어낸 강시들이다! 이 땅을 정화하라!”
백여 명의 검림 무인들 역시 몰려오는 스켈레톤을 향해 검을 들었다.
콰광!
두 집단이 굉음과 함께 부딪혔다.
그렇게 또 한 폭의 지옥도가 소화산 아래 평원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흑풍대를 따라 이동한 무림맹 무인들은 놀란 얼굴로 스켈레톤과 검림이라는 신비단체의 격돌을 지켜보고 있었다.
추풍낙엽(秋風落葉).
현 상황을 설명하는 데 있어 이보다 더 어울리는 말은 없을 것이다.
참으로 놀랍게도, 무림맹 무인들을 그토록 괴롭혔던 스켈레톤이 검림의 무인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검림의 무력은 질풍노도처럼 거침이 없었다. 그들은 개개인이 엄청난 무력을 보여주며 순식간에 스켈레톤의 태반을 무력화시켜 버린 것이다.
“대체 저들은 어디서?”
담기량은 너무 놀라 자신의 입술이 살짝 벌어진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아무리 머릿속 모든 기억과 지식을 헤집어 봐도 검림이라는 두 글자가 떠오르지 않자 당혹스럽기만 했다.
그건 담기량뿐이 아니었다. 오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장문인과 가주들 역시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양측의 싸움을 지켜보는 담기량 옆으로 검림주 진필성과 좌검, 우검 호법이 함께 다가왔다.
“미약하나마 이렇게 정파 무림의 기둥인 무림맹에 도움을 줄 수 있어 참으로 기쁩니다.”
진필성은 최대한 예를 갖추며 포권을 취했다.
검림이 등장했을 때 뒤편에서 명을 내리던 장년인이 갑작스럽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니 담기량과 그 뒤에 서 있던 무림맹 수뇌들은 잠시 당황하며 바로 인사를 받지 못했다.
그나마 제갈묘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그 앞으로 걸어가 포권을 했다.
“이렇게 도움을 주시다니 무림맹 맹주님을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갈가의 제갈묘입니다.”
“아! 위명이 자자한 신기수사이시로군요. 본인은 그저 검림이라는 작은 단체를 이끌고 있는 진필성이라고 합니다. 부끄럽게도 아직 별호는 없습니다.”
진필성은 제갈묘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담기량에게도 다시 눈으로 인사를 건넸다.
“부끄럽게도 무림맹 맹주를 맡고 있는 담기량이라 하오.”
담기량은 그제야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했다.
“이쪽은 본림의 호법을 맡은 우검 호법 후동관과 좌검 호법 요추광이라고 합니다.”
진필성은 뒤로 한 걸음 비켜서며 뒤에 서 있는 두 호법을 소개했다.
“우검 호법입니다.”
“좌검 호법이오.”
두 호법 역시 포권을 취하며 자신들을 소개했지만 이름까지 밝히지는 않았다. 그 둘이 이름보다 검림이라는 단체에서 호법으로 불리기를 더 원하고 있음을 담기량을 비롯해 무림맹 수뇌들은 알아차렸다.
“무림맹의 힘만으로도 사악한 이들을 벌하는 것은 충분하겠지만 그저 자그만 손길이라 너그럽게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진필성은 무림맹 수뇌들을 은근히 띄워주었다.
그 말에 의혹의 눈초리는 여전했지만 무림맹 수뇌들은 어느 정도 경계심이 풀리는 눈치였다.
“아니오, 감사하오.”
담기량은 그들을 향해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왕지사 이리 되었으니, 무림맹의 영웅들께서는 못미덥더라도 본림이 한 팔을 거들어 뒤처리를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겸양을 떨며 무림맹을 한껏 치켜세우고는 검림주 진필성은 몸을 돌렸다.
“사악한 마인들을 처단하지.”
“예, 림주.”
“명을 받드옵니다.”
“그럼 정식 인사는 조금 늦추겠습니다.”
진필성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다시 예를 차린 후 두 호법과 함께 흑풍대와 설영대를 향해 몸을 날렸다.
“흠…….”
담기량은 입 밖으로, 제갈묘는 속으로 나직하게 침음성을 머금었다.
쌔애애액!
날카로운 검이 스켈레톤의 흉부로 파고들었다.
퍼석!
-캬아아아!
스켈레톤은 무기력하게 부서졌다.
“크윽!”
여기저기서 스켈레톤들이 부서질 때마다 계속 충격을 받은 흑풍대원 몇이 쓰러지는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결국 설영대까지 전면에 나섰지만 파죽지세로 몰고 들어오는 검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현은 어금니가 부서져라 깨물었다. 제아무리 마현이 마법사이지만 아직까지 고작 6서클이었다.
6서클의 힘 역시 무시할 수 없다지만 다수를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강력한 대인공격과 광범위 살상 마법은 7서클에 올라서야 진정한 힘을 표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흑사신! 일단 무너지는 곳을 도우라, 어서!』
마현의 눈에 핏발이 섰다.
‘아무도 죽이지 못한다. 내 수하의 죽음을 나 카칸, 마현은 용납할 수 없다!’
마현은 마력을 쥐어짜듯 서클 단전에서 끌어올렸다.
“덤벼라. 이 사악한 마인들아!”
그 순간 좌검 호법과 우검 호법이 흑풍대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둘의 검날에 흑풍대원과 설영대원 몇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마현은 더욱 짙어진 살기를 띠며 그 두 호법 앞으로 뛰어내렸다.
“내 검이 우선이다!”
그런 마현 앞으로 검림주 진필성이 다가와 검을 뽑아들었다.
그를 본 순간 마현은 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겉보기에는 담담한 얼굴과 평범한 기세였지만 마현은 느낄 수 있었다.
‘강자다! 스승님과 비견될 정도로…….’
마현은 미간에 주름을 깊게 만들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크아악!”
마현이 잠시 놀라 주춤하는 사이에도 흑풍대원과 설영대원의 고통에 찬 비명이 들려왔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검림의 좌검, 우검 호법과 고군분투하는 설린과 냉천휘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흑사신은 저 둘을 맡아라, 어서!』
마현의 명에 흑사신들은 몸을 돌려 설린과 냉천휘를 보호하며 좌검, 우검 호법과 부딪혔다.
“그런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쑤아아앙!
강맹한 검강이 공기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마현에게로 날아왔다.
마현은 재빨리 양손을 교차시키며 암 바클러를 중첩시켜 몇 겹의 방어막을 만들었다.
콰과광! 와장창창창!
하지만 검강은 암 바클러를 허무할 정도로 가볍게 부숴 버렸다.
사각!
그러고도 끝까지 기세가 죽지 않은 검강 가닥이 마현의 양팔에 검상을 남기고 말았다.
검상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금세 팔뚝을 적시고 먼지가 피어오르는 땅바닥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올 법도 하건만 마현의 눈매는 더욱 날카롭게 변하며 투기로 활활 타올랐다.
“내 너를 죽여 이 땅에서 마인을 모조리 지워갈 초석(礎石)을 세울 것이다.”
진필성은 들고 있던 검을 발아래 땅바닥에 꽂았다.
‘무슨?’
마현은 진필성의 기이한 행동에 의아해하면서도 뒷골이 서늘해지는 오한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마현은 발아래에서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내력을 느꼈다.
“크!”
마현은 짧은 침음성을 삼키며 재빨리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콰과과과광!
마현이 서 있던 땅바닥에서 수십 줄기의 검강이 솟구쳤다.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그 검강에 마현의 몸은 갈가리 찢어졌을 것이다. 등줄기가 서늘할 정도로 예상치 못한 매서운 공격이었다.
하지만 마현은 그 와중에도 진필성이 서 있는 땅바닥에 필드 쇼크를 시전하는 것과 동시에 십여 개의 파이어 재벌린을 만들어 날렸다.
우르르르!
땅거죽이 뒤흔들렸다.
콰과과과광!
진필성이 서 있던 자리가 폭발하며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갈!”
하지만 막대한 내공이 실린 진필성의 호통과 함께 불기둥은 한순간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불기둥이 치솟았던 그 중심에 진필성이 오연하게 서 있었다. 그런 그의 몸 주위에서 투명한 막이 서서히 걷히는 것이 보였다.
‘거, 검막?’
마현은 진필성의 놀라운 무위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놀랄 일은 그게 끝이 아닌 모양이었다.
제자리에서 핑그르르 한 바퀴 검을 휘돌린 진필성은 마현을 향해 검을 빠르게 찔러왔다.
쑤아아앙!
‘거, 검환?’
검에 활활 타오르던 시퍼런 검강이 극점으로 모이더니 마현을 향해 날아온 것이었다.
“브, 블링크!”
마현은 가까스로 바닥으로 순간이동했다.
하지만 검환은 하나가 아니었다.
바닥으로 이동한 마현의 가슴을 향해 검환 하나가 더 날아왔다.
“실드, 리터레이트!”
마현은 앞으로 실드를 겹겹이 만들었다.
순식간에 다섯 개의 실드가 만들어졌지만 검환은 조금 전의 암 바클러처럼 너무나도 손쉽게 부숴 버리며 힘을 잃지 않고 마현을 향해 그대로 날아왔다.
마현은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다시 양팔을 교차시켰다.
콰과광!
“크윽!”
마현은 검환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입에서 피를 뿜으며 튕겨지듯 뒤로 날아갔다. 겨우 몸을 틀어 바닥에 내려섰지만 그 충격에 마현의 두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쿨럭!”
마현은 사혈을 한 모금 토해냈다.
파리해진 안색은 마현의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내부는 검환의 충격으로 진탕됐고, 내력의 고갈로 추가 공격은 엄두도 내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도 흑풍대의 고통에 찬 비명이 더욱 커졌다.
여전히 스켈레톤들이 앞을 가로막고 흑풍대와 설영대를 보호하고 있어 아직 죽은 이는 없었지만 아슬아슬할 정도로 내몰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한식경, 아니 일다경 이상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마현은 입술이 찢어지도록 깨물었다.
‘일단 피해야 한다.’
여기서 죽음을 당할 수는 없었다.
분하지만 살아 있어야 자신을 이처럼 처참하게 몰고 간 검림에게 몇 배, 아니 몇 십 배 앙갚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우…….”
마현은 허리를 숙여 숨을 깊게 내쉬었다.
“나는 카칸이다.”
마현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진필성을 직시하며 차갑게 말했다.
“누구도 나를 죽이지 못해.”
마현의 몸에서 지독하리만큼 검은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내 수하들도.”
진필성을 바라보는 마현의 눈동자에서 흰자위가 사라지며 온통 짙은 묵색으로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