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55화 (155/351)

# 155

5화

숲을 가로지르는 관도 한편.

젊은 두 무당파 도인, 학성과 학방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나무를 등받이 삼아, 바위를 방석 삼아 잠시 쉬고 있었다.

학성과 학방의 행색은 꽤나 꼬질꼬질했다.

학방은 봇짐을 주섬주섬 헤치더니 그 안에서 벽곡단 두 알을 꺼냈다. 그중 한 알을 학성에게 내밀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사형.”

학성은 학방이 건네는 벽곡단을 받아들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사형으로서 정말 면목이 서지 않으니……, 이거 원.”

학방은 무안한 듯 입맛을 다시며 벽곡단을 입에 넣었다.

월담 아닌 월담을 해 무단으로 무당파를 빠져나온 둘은 근 보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노숙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바로 그들에게 땡전 한 푼 없다는 것이다.

학성이야 수련동에서 나와 바로 월담했으니 수중에 돈 한 푼 있을 리 만무했다. 학방이 돈을 가지고 나왔어야 했는데, 급하게 짐을 챙기느라 가장 중요한 돈주머니를 무당파에 놔두고 나온 것이다.

평소라면 인근 무가에 들려 잠시 돈을 변통이라도 하겠건만 지금 둘의 상황으로 그건 무리였다. 그렇다 보니 둘은 수도승처럼 온갖 고행을 다 하며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사형, 정말 괜찮습니다.”

학성이 미안해하는 학방을 위로한답시고 말을 건넸지만 오히려 그 말은 학방을 더욱 무안하게 만들었다. 제아무리 도인이라고 해도 보름 가까이 벽곡단으로만 끼니를 때우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는 학방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식사는 그렇다고 쳐도 근 보름 가까이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길을 재촉하다 보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른다면 거지가 친구하자고 할 판이었다.

“공연히 이 못난 사제 때문에 사형이 고생하시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알기는 아는구나.”

학방은 학성의 말에 농담하듯 가벼운 어투로 말을 받아주었다.

자신이 자꾸 미안해할수록 학성은 오히려 자책하는 듯했다. 그러니 이렇게 농담이라도 해야 서로에 대한 미안함을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어떻게 할 생각이냐?”

학방의 질문에 학성의 표정이 침중해졌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흠…….”

“일단 사천성으로 가볼까 합니다.”

“사천성이라…….”

학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사천성은 현재 중원에서 유일하게 마교와 정파의 세력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마현에 대한 소식을 들을 확률이 컸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게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날 것입니다. 마교로 가는 한이 있어도요.”

어찌 보면 유약해 보이는 학성의 얼굴에 굳은 의지가 드러났다.

바스락, 바스락.

그때 근처 수풀에서 기척이 들리며 누군가 나타났다.

“낄낄낄. 영락없이 거지로구나.”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나타난 이는 걸왕이었다.

걸왕을 본 학방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걸왕 선배님을 뵈옵니다.”

학성은 걸왕이라는 이름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학성이라고 합니다.”

“앉어, 앉어.”

걸왕은 손짓으로 땅바닥을 가리키며 맨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학방과 학성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금 전과 달리 맨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영락없는 거지로구나. 누가 보면 개방인 줄 알겠어, 낄낄낄.”

둘의 모습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걸왕은 괴팍한 웃음소리를 연신 내뱉었다.

“요 기분 나쁠 정도로 공손한 놈이 마현의 친우라는 놈이구먼.”

걸왕의 말에 학성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친우가 좋긴 좋은 모양이구나. 그만큼 나이를 처먹고도 가출하는 것을 보면…….”

학성과 학방의 얼굴이 동시에 딱딱하게 굳었다.

“낄낄낄낄.”

걸왕은 다시 괴팍한 웃음을 터트렸다.

“간이 그리 작아서야 어디 사내구실이나 하겠느냐? 하긴, 도사라서 사내구실을 할 일이 없나?”

걸왕은 입을 쩝쩝거렸다.

걸왕에겐 단지 가볍게 놀리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 둘의 얼굴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일그러졌다.

“사천성으로 간다고?”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얄밉게 질문하는 걸왕의 목소리는 느긋했다.

학성과 학방은 걸왕의 질문에 제때 대답하지 못했다.

솔직히 대답하려니 혹여나 무당파에 소식이 들어갈까 봐 걱정이 되었고, 대답을 피하기엔 걸왕은 자신들이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선배였다.

그렇다 보니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요놈들이 어른이 물으시는데, 말을 그냥 씹어? 앙? 내 말이 요, 요 육포더냐?”

걸왕이 질겅질겅 씹고 있던 침이 흥건히 묻은 육포를 입에서 꺼내 둘 앞에 흔들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하지만 눈은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학방은 당황하여 말을 더듬으며 재빨리 대답했다.

“간다고, 안 간다고?”

“가, 갑니다.”

“그래?”

걸왕은 다시 육포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 같이 가자.”

“네, 네?”

학성이 너무 놀라 고개를 번쩍 들고 걸왕을 쳐다보았다.

“뭘 그리 봐?”

“아, 아닙니다.”

“운 없으면 마교까지 가야 하는데, 혼자보다야 셋이 낫지 않겠느냐? 여차 하면 네놈들을 미끼로 던져주고 몸 피하기 좋고, 낄낄낄.”

걸왕은 농이 짙게 묻은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팡 팡 팡!

그리고는 먼지가 풀풀 날릴 정도로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두드려 털었다.

생각지도 못한 걸왕의 말에 학방과 학성은 그저 눈만 붕어처럼 끔뻑이며 걸왕을 올려다보았다.

“왜? 네놈들만 고약한 마현 놈을 만나라는 법이 있느냐? 냉큼 일어나지 못해?”

“아, 예.”

버럭 내지른 걸왕의 호통에 학성과 학방은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놈들아, 꾸물대지 말고 어서 가자.”

그렇게 학성과 학방은 뜻하지 않게 걸왕과 동행하게 되었다.

* * *

투각 투각 투각!

말발굽 소리가 사천성 성도의 대로 위를 무겁게 짓눌렀다. 말발굽 소리가 무거운 이유는 아마도 그 말을 모는 허진 때문일 것이다. 허진은 살기가 감도는 차가운 눈빛을 띤 채 묵묵히 말을 몰고 있었다.

습관처럼 항상 부드럽게 짓던 미소도 보이지 않았다.

살랑살랑 여유롭게 부치던 섭선도 보이지 않았다.

마기도 숨기지 않았다.

그가 지나가는 대로 위에는 찐득찐득한 살기가 말발굽의 흔적과 함께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철컹 철컹 철컹!

그리고 이어지는 무거운 쇳소리.

흡사 군대를 연상케 하는 묵철 갑옷을 입은 한 무리의 인마 떼가 허진의 뒤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허진과 함께 마교에서 떠나온 귀갑철마대였다.

온몸을 두른 묵철 갑옷과 말에 두른 묵철 마갑이 서로 부딪히면 만들어낸 묵직한 소리는 주변의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허진은 귀갑철마대를 이끌고 보란 듯이 정파와 마교 세력의 경계 지점인 중앙 대로를 걷고 있었다. 그들의 출현은 마현을 잡기 위해 마교로 통하는 길목을 두텁게 막고 있는 정파인들의 이목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허진 역시 대로를 중심으로 북쪽에서 진을 치고 있는 정파인들을 보았다.

“국 대주.”

허진은 귀갑철마대주 국충을 불렀다.

허진은 대략 서른 명쯤 되는 정파인, 속청검문 소속 무인들을 쳐다보며 살기를 흘렸다.

“예, 부교주님.”

“보기 싫다. 치워라.”

나직했지만 위엄이 담긴 목소리로 허진이 명을 내렸다.

“명!”

국충은 군례를 취한 후 서른 명쯤 진을 치고 있는 속청검문 무인들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쿵!

그리고 자루부터 날까지 온통 철로 만들어진 언월도를 바닥에 내려찍었다.

그 소리에 속청검문 무인들이 움찔거렸다.

귀갑철마대주는 그런 그들을 보며 느리지만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제1대, 거도(擧刀)!”

쿵 쿵 쿵 쿵 쿵!

귀갑철마대주 국충 뒤에 오와 열을 맞춘 오십의 인마 중 절반인 스물다섯의 인마가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스물다섯의 인마, 귀갑철마대 소속 2개 부대 중 제1대였다.

그들은 엄청난 무게의 언월도를 들어 대로 위에 깔린 장판석을 내려찍었다. 그리고는 언월도를 허공에서 빙빙 돌린 후 옆구리에 꼈다.

“출병!”

귀갑철마대주의 명이 떨어지자 제1대가 절로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단숨에 서른 명의 속청검문 무인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설마 마교에서 이렇게 보자마자 덤벼들 줄 몰랐던 속청검문 무인들은 허둥지둥 검을 뽑으려 했다.

번쩍!

하지만 그보다 귀갑철마대의 언월도가 더 빨랐다.

서걱!

살이 베어지고 뼈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붉은 피가 허공으로 튀었다.

“으아아악!”

운 좋게 귀갑철마대의 언월도를 피한 속청검문의 무인은 서늘해진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전에 자신의 머리를 짓이겨오는 마갑을 착용한 흉마의 커다란 앞발을 봐야 했다.

콰직!

“크악!”

그렇게 단발마가 재차 터지기도 전에 속청검문 제자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들이 서 있던 곳에는 비릿한 피 냄새만이 떠돌고 있을 뿐이었다.

철컹 철컹!

귀갑철마대원들은 언월도를 거둬들이며 본래 서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그들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 저 멀리서 사천총타 소속 마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선두에 위치한 사천총타주 호태악이 서둘러 달려와 허진 앞에 섰다.

하지만 예를 갖추려던 호태악은 대로 위에 펼쳐진 피와 주검들로 인해 잠시 흠칫하며 허진을 올려다보았다.

말 위에서 눈을 내리깔고 자신을 바라보는 허진의 눈빛은 심금을 오그라들게 만들 정도로 차가웠다. 호태악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떡 삼키다가 그 소리에 놀라 화들짝 몸을 떨었다.

“부교주님을 뵈옵니다.”

대로라 그냥 허리만 깊숙이 숙여도 되었지만 호태악은 허진의 기운에 눌려 자신도 모르게 맨바닥에 부복했다. 땅에 닿은 호태악의 옷자락이 바닥의 질펀한 핏물로 금세 붉게 젖어들었다.

“총타로 가지.”

전 같으면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안부라도 물었을 허진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로 마기와 살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속하가 모시겠습니다.”

호태악은 허진과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허리를 바싹 숙인 채 길을 앞장섰다.

호태악이 그러할 진데 그를 따라 나온 사천총타 소속의 마인들은 어떻겠는가?

숨조차 마음대로 쉬지 못하고, 발소리마저 죽인 채 조용히 뒤를 따를 뿐이었다.

그렇게 스무 걸음 내딛었을까?

저 멀리서 우르르 달려오는 한 무리의 무인들에 의해 다시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비명을 들어서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통해서 소식을 들었는지 허진의 앞을 가로막은 이들은 속청검문 무인들이었다. 단순이 진을 치고 있는 무인들이 아니라 속청검문 소속 정예들인지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기세는 상당했다.

그들 속에서 장년인 하나와 청년 둘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바로 속청검문 문주인 정용휘와 소문주 정호영, 그리고 일대제자인 유엽강이었다. 특히 정용휘는 대로 구석에 주검이 되어 쓰러져 있는 속청검문 제자들을 보자 얼굴을 붉히며 수염을 바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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