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68화 (168/351)

# 168

18화

무극연환미혼진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인 중궁(中宮)에 내력을 쏟아 붓던 제갈휘는 문득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오한에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콰과광!

깃발이 꽂혀 있던 중궁 지점의 땅이 불룩 솟아오르더니 용암이 터지듯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든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수염에서 노린내가 나고 무복 끝자락이 열기에 녹아 눌러 붙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불길이 치솟은 곳은 제갈휘가 있던 그곳 한 군데가 아니었다.

무극연환미혼진을 활성화시키는 주요 방위인 팔괘와 구궁에서도 벽력탄이 터진 것처럼 강렬한 불길이 기둥처럼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 불길에 휘말려 각 축을 담당하던 제갈세가의 무인들이 불타 한 줌의 재가 되며 죽어나갔다.

“무, 무슨 일이오?”

근처에서 기문진에 갇힌 허진을 죽이기 위해 개방 제자들을 재촉하던 불취개 역시 놀란 목소리로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리고는 이내 뜨거운 열기에 낯을 찡그렸다.

불취개는 제갈휘에게서 그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

아니 듣지 않아도 제갈휘의 얼굴에서 드러난 표정이 그 어떤 대답보다 더 정확했다.

기문진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대략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아 무극연환미혼진 내부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허진이 제갈휘마저 상상하지 못한 엄청난 힘으로 무극연환미혼진을 부숴 버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간발의 차이로 제갈세가 무인들이 기문진의 주요 축으로 달려가 내력을 쏟아 부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다면 필시 허진의 힘에 부서졌을 것이다.

불취개의 생각이 맞았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밖에서 보았을 때 반투명하던 기문진 내부가 자욱한 먼지가 바람에 쓸려가듯이 깨끗하게 변하고 있었다.

‘하, 한 명이 아니다?’

불취개는 눈을 부릅뜨며 전면을 주시했다.

기문진이 완전히 사라지고 기문진 바로 밖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던 귀갑철마대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밖에서 자신들을 견제하던 유령대도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허진을 뒤로 물리며 한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네, 네놈은?”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흑풍마군 마현이었다.

불취개는 불기둥이 치솟으며 제갈세가 무인들을 한 줌의 재로 변하게 만든 검게 그을린 구멍들을 쳐다보았다. 동시에 화산파에서 선보였던 마현의 놀라운 마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제갈세가와 함께 공을 들이고 또 들여 펼친 대계가 성공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마현의 등장으로 그것이 깨진 것이다.

불취개는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마현을 노려보았다.

“오냐, 내 오늘 이 자리에서 뼈를 묻는 한이 있어도 네놈과 염라서생의 목을 따주마.”

불취개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푸른빛이 감도는 타구봉을 꺼내들었다.

“오늘 미친 개 두 마리를 잡아보자꾸나! 개방 제자들은 타구진(打狗進)을 펼쳐라!”

탁, 타탁, 탁탁탁…….

삼백이 조금 안 되는 개방 제자들이 저마다 타구봉과 비슷한 크기의 몽둥이를 꺼내 바닥을 두들기며 마현뿐만 아니라 허진과 귀갑철마대까지 겹겹이 에워싸며 원진을 구축했다.

그들은 거추장스러운 화산파와 기문진을 구성했다가 태반이 죽어나간 얼마 남지 않은 제갈세가를 뒤로 밀치듯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몽둥이로 박자에 맞춰 바닥을 두들기며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일제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불취개 역시 타구진 안으로 뛰어들었다.

마현은 그런 불취개를 보며 한편으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걸왕 때문이었다.

북해빙궁에서 걸왕을 만나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던 그날 새벽.

술에 취해 찾아온 걸왕은 횡설수설하며 불취개에 대한 걱정을 한 무더기 늘어놓은 후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곯아떨어졌다.

왠지 의도적이라는 느낌이 강했지만, 오죽했으면 그렇게 했을까 싶기도 했다. 아마 걸왕 그 자신도 차마 대놓고 불취개를 한 번쯤 살려달라는 말을 하지 못해 그런 수를 썼으리라.

‘나도 마음이 많이 약해졌군.’

마현은 손을 들어 가슴을 슬쩍 쓰다듬었다.

‘이 몸의 원 주인의 성품 때문인가?’

과거 같으면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알아 버린 것이다. 학성과 허진으로 시작해, 설린을 걸쳐 걸왕까지…….

“훗!”

마현은 옅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감정이 당혹스러웠지만, 그렇다고 꼭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마현은 곧 웃음을 거두며 냉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본인에게 날카로운 살기를 드러냈으니 죽이지는 않더라도 그에 합당한 대가는 치러야 할 것이다!’

“국 대주.”

마현은 귀갑철마대주를 불렀다.

“귀갑철마대는 오로지 스승님만 보필하라!”

“명!”

“그건 하 대주, 유령대도 마찬가지다!”

마현은 국충과 하강우에게 명을 내리고는 타구진 앞으로 걸어 나갔다.

“주군.”

허공에서 우려가 담긴 하강우의 목소리가 조용히 허진 곁으로 흘러들어갔다. 당연히 허진 바로 옆에 있던 국충 역시 마현의 명을 듣고 염려 어린 눈빛으로 허진을 바라보았다.

기문진이 부서진 이상 허진과 귀갑철마대, 그리고 유령대라면 어느 정도 위험과 타격은 입겠지만 충분히 이 자리에 있는 개방과 화산파, 그리고 제갈세가를 쓸어버릴 수 있었다. 물론 마현과 흑풍대의 전력이 가담했을 경우 그렇다는 것이다.

평소 허진이라면 반드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허진은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그냥 뒤로 물러나 있으라.”

허진은 느낀 것이다.

마현이 한층 성장한 것을.

더욱이 위험하다 싶으면 그때 나서면 된다. 남은 것은 이제는 마현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자신의 품에서 벗어날 준비가 다 되었는지 지켜만 보면 되는 것이다.

씁쓸하지만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싶은 것이 허진의 마음이었다.

“미친개를 때려잡는 것이 거지가 해야 할 일이다!”

살기가 더해지며 흥분에 휩싸인 불취개의 목소리에 마현은 낯을 찡그렸다.

『네놈 때문에 북해까지 나를 찾아온 걸왕이 불쌍하군.』

마현의 매직마우스에 덩실덩실 춤을 추듯 보법을 밟던 불취개의 발놀림이 엇갈리며 신형이 흐트러졌다.

“뭐, 뭐라고 하는 것이냐?”

불취개는 불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놈, 간악한 세 치 혀로 본 방주를 농락하려는 것이냐?”

얼마 전 개방 제자가 올린 보고서를 통해 허진과 걸왕이 접촉한 사실을 떠올리자 목소리가 절로 격해졌다. 잔뜩 흥분한 걸왕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벌게진 눈동자로 마현을 노려보았다.

마현은 그런 불취개의 시선을 무시하며 흑풍대를 불렀다.

“흑풍대는 앞으로 나서라!”

바람에 무슨 색깔이 있을까 싶지만 분명 개방 제자들은 눈앞에서 검은색을 머금은 바람을 보았다. 바람이 멈췄다고 느낀 순간 마현 주위로 검은색 피풍의를 입은 서른 명의 흑풍대가 어느새 서 있었다.

“골강시들을 다루는 자들이다. 바닥을 조심하…….”

불취개는 화산파에서 본 골강시를 떠올리며 타구진을 형성하고 있는 개방 제자들에게 재빠르게 주의를 주려 했지만 마현의 움직임이 그보다 더 빨랐다.

“어쓰퀘이크(Earthquake)!”

마현은 오른발을 크게 들어 바닥에 강하게 내려찍었다.

파방!

그러자 마현이 내딛은 오른발을 중심으로 강렬한 마력의 파장이 퍼져나갔다. 이어 타구진 때문에 뒤로 물러났던 화산파와 몇몇 살아남은 제갈세가 무인들은 물론이고, 개방 제자와 불취개마저 상상조차 하지 못한 후폭풍이 몰아쳤다.

콰르르르르르!

땅거죽이 쭉 밀려 올라가더니 거대한 파도처럼 요동치며 타구진을 형성하고 있는 개방 제자들을 덮쳤다. 하지만 그것은 7서클 마법의 어쓰퀘이크가 가진 진정한 힘의 시작일 뿐이었다.

콰크크크큭, 콰르르릉!

지축이 흔들리고, 땅이 갈라지며 폭죽이 터지듯 흙덩어리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으헉!”

마치 하늘의 재앙인 지진이 일어난 듯했다.

땅속에 어마어마한 양의 벽력탄을 묻어두었다가 터트린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사방을 뒤흔들며 튀어 오른 땅거죽은 타구진을 흔드는 것도 모자라 순식간에 깨트려 버렸다.

그나마 개방 제자 중 사결 이상은 신형을 유지했다지만 그 수는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개방 제자들이 바닥에 뒹굴고 뒤집히며 터진 흙더미 속에 깔렸다.

“진정한 지옥을 보여주지!”

마기가 가득한 마현의 음습한 목소리가 그 위를 덮었다. 동시에 흑풍대원들의 눈에서 마기가 폭사되었다.

―캬캬캬캬캬!

―캬하하하하!

갈라진 땅속에서 지옥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음습한 귀성이 흘러나왔다.

“으으으!”

“다닥 다다닥!”

그 귀성은 심력이 약한 자들의 혼을 집어삼키는 마성을 담고 있는 듯 내력이 약한 개방 제자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신음했다.

푹!

삐죽 갈라진 땅속에서 검게 변한 손 뼈다귀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 검은 손뼈는 쓰러져 있는 개방 제자의 발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으아악!”

개방 제자가 공포에 비명을 지를 때 온통 검은 해골 하나가 갈라진 땅을 헤집으며 불쑥 튀어 올라왔다. 어지간한 사람보다 더 몸집이 좋은 검은 스켈레톤은 개방 제자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개방 제자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고는 입을 쫙 벌렸다.

―캬아아아아!

스켈레톤은 온몸을 바르르 떨며 귀성을 터트렸다.

뻥 뚫린 동공에서 시퍼런 귀기가 흐르는 안광이 번쩍였다.

“이, 이놈!”

그 근처에 있던 개방의 한 호법이 분노에 찬 일갈을 터트리며 스켈레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전과 달리 색깔이 새까맣게 바뀐 것이 께름칙했지만 이미 화산파에서 한 번 경험했던 터라 그다지 큰 경각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격에 스켈레톤을 부숴 버리고 개방의 제자를 구하기 위해 혼신의 힘으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빠각!

강력한 일타가 스켈레톤의 등을 후려갈겼다.

스켈레톤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지 휘청거리며 앞으로 몇 걸음을 떠밀리듯 내딛었다. 하지만 개방 호법의 예상처럼 스켈레톤은 부서지지 않았다.

―캬르르르!

스켈레톤은 나직하지만 섬뜩한 흉성을 터트리며 들고 있던 개방 제자를 헌신짝 버리듯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서는 개방의 호법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이, 이 요물!”

개방 호법은 다시 한 번 혼신의 힘을 다해 스켈레톤의 턱을 몽둥이로 후려쳤다.

빠각!

그 충격에 스켈레톤의 목뼈가 꺾이며 얼굴이 뒤로 돌아갔다. 스켈레톤은 천천히 손을 올려 돌아간 머리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그리곤 귀성을 터트리며 포효했다.

“히, 히익!”

바로 앞에서 귀성을 들으니 호법은 등골이 쭈뼛 서는 동시에 내부가 진탕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는 사이 스켈레톤은 손을 뻗어 호법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으아악!”

―키키키, 키키키키!

스켈레톤은 달랑달랑 매달려 발버둥치는 호법을 보며 기괴한 웃음을 터트리고는 갈라진 땅거죽 사이로 내려찍었다.

“크아아악!”

그 우악스러운 힘에 개방 호법의 몸이 얼굴만 남긴 채 갈라진 땅 속에 막대기처럼 꽂혔다.

스켈레톤은 그런 개방 호법의 머리 위에 발을 얹으며 양팔을 들어 제 가슴을 마구 쳤고 다시 한 번 귀성을 터트렸다.

―캬아아아아아!

그 귀성은 땅바닥을 마구 두들겼다.

푹 푹 푹 푹 푹!

그러자 근 삼백 구에 달하는 검은 스켈레톤이 땅속에서 일제히 튀어 올라왔다.

“아아아악!”

“크아아악!”

동시에 개방 제자들의 비명소리가 전장을 가득 채웠다.

스켈레톤들이 손속에 자비를 두어서인지 전장에 피는 튀기지 않았지만 스켈레톤의 귀성과 무인들이 공포에 젖어 내지르는 비명소리로 인해 한 폭의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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