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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73화 (173/351)

# 173

23화

“사형을 제외하고 모두 죽여라.”

그 명에 피리를 물고 있던 고루귀령들의 뺨이 불룩해졌다. 피리 소리가 변하자 사공찬과 그 일행들 주위에서 서성거리던 강시들이 다시 그들에게 몰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멀찌감치 떨어져 불난 집 구경하는 구경꾼처럼 그 상황을 지켜보던 율기가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곧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여긴 것인지 다시 무심한 표정을 돌아갔다.

‘응?’

비릿한 피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며 천천히 부채질을 하던 율기의 미간이 좁아졌다.

왠지 느낌이 이상했던 것이다. 날카로운 눈으로 고개를 번쩍 들어올린 율기는 천장을 한 군데도 빠짐없이 세세히 살폈다.

‘피 냄새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 건가?’

율기는 얼굴을 구기며 살랑살랑 흔들던 부채를 격하게 부쳐댔다.

잠시 후, 율기가 천장에서 눈을 뗐을 때 천장의 한 기둥 위에서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거기에는 한 사내가 무공의 고수라도 쉽게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잠입해 있었다.

마구간에서 워프게이트 마법진을 설치한 후 마주전으로 향했던 마현이 투명화 마법과 함께 하이드 마나 포스 마법(Hide mana force; 마나은폐 마법)으로 마주전 천장 위에서 몸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마현은 기가 막혔다.

율기가 무공을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수신을 위해 익힌 정도가 아니었다.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꿰뚫어볼 정도로 엄청난 고수다. 급히 마나은폐 마법을 펼치지 않았다면 분명 율기는 자신의 기척을 찾아냈을 것이다.

가슴 저 밑바닥부터 살심이 꾸역꾸역 올라왔다. 하지만 마현은 참을 인(忍)자를 마음속으로 새기며 애써 살심을 숨겨야 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곧 네놈의 목을 쳐주겠다. 그리고 혼백이 되면 네 혼백마저 지워 버릴 것이다.’

마현은 마주전에서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마주전에 교주님이 없다면 마휴당에 있을 것이다.’

마현은 율기를 의식해 더욱 조심스럽게 마휴당 지붕으로 올라갔다.

“누구냐!”

막 지붕 위에 발을 디디는 순간 마휴당 내에서 일갈이 터졌다.

‘헙!’

마현은 헛바람을 들이마시며 재빨리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콰과과광!

강한 폭음과 함께 마휴당 지붕의 기왓장이 터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강력한 일장에 터진 지붕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커다란 구멍 사이로 뼈마디가 앙상한 장년인이 눈에 들어왔다.

마현은 그자에게서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죽음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죽은 자들에게서나 흘러나올 법한 사기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생기가 있는 걸 보면 강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서클 단전의 마력을 갈무리하고, 거기에 마나은폐 마법까지 더해 철저하게 자신의 모습을 감췄다. 그럼에도 구멍 사이로 보이는 빼빼 마른 장년인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다.

‘우위를 점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자다!’

새로 나타난 자는 귀림주 능자필이었다.

마현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능자필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마현은 아주 느리게 플라이 마법을 이용해 옆으로 반걸음 비켜났다.

능자필이 여전히 자신이 떠 있던 허공을 쳐다보는 것으로 보아 다행히 온전히 들키지는 않은 듯싶었다.

파방!

한참이나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능자필은 사기가 가득한 일장을 다시 허공에 격발시켰다.

섬뜩한 기운이 허공에 몸을 숨기고 있는 마현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흠…….”

능자필은 고개를 잠시 갸웃거리며 길게 솟아난 뾰족한 손톱으로 뺨을 긁었다.

“이상하군.”

그런 후에도 한참이나 더 허공을 바라본 후에야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가 다시 침상 위에 눕는 모습에 마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으로 마현의 등은 어느새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일단 교주님을 무사히 탈출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니…….’

마현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서클 단전에서 마력을 끌어올려 눈에 집중시켰다. 그렇게 투시 마법을 펼친 마현은 마휴당 내부를 샅샅이 살폈다.

그러던 어는 순간 마현의 눈빛이 반짝였다.

‘찾았다!’

교주의 개인연무석실 안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는 사공소를 발견한 것이다.

사공소의 상태를 확인한 마현의 안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공소가 피폐한 모습으로 쇠사슬에 묶여 있어서가 아니었다. 사공소가 있는 바로 옆에 자신을 극도로 긴장시킨 능자필이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만일 저 안으로 텔레포테이션을 펼친다면 마력의 파동을 알아차릴 것이 분명하다.’

사공소를 탈출시키려면 분명 무슨 수를 써야 한다.

마현은 투시 마법을 이용해 사공소의 개인연무석실을 좀 더 세세하게 살폈다.

그때 마현의 눈에 띈 것은 견고하고 두꺼운 석문이었다. 어지간해서는 뚫기 어려워 보이는 문이었다.

그 석문은 사람의 힘으로 열고 닫는 것이 아니라 기관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잘 되었군.’

마현은 천천히 서클 단전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마력이 전신을 휘감자마자 텔레포테이션 이용해 연무석실 안으로 순간이동했다.

“누구냐…….”

사공소가 마현의 인기척에 고개를 들며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마현은 사공소에게서 등을 돌린 채 석문을 보고 있었다.

화르륵!

“파이어 볼!”

마현의 손에서 주먹만 한 불이 만들어졌다. 마현은 화구를 손에 든 채 석문 바로 옆 벽면을 주시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현은 벽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벽 속에 숨어 있는 톱니바퀴들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블링크!”

화르르―

마현의 손 위에서 일렁거리던 파이어 볼이 마치 불씨가 퍽 꺼지듯 사라졌다.

콰직!

그리고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연무석실 벽면에서 은은하게 들려왔다.

움직이는 물체나 사람에게 시전한다면 어림도 없을만한 마법 조합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벽면 속에 고정된 톱니바퀴를 파괴하는 것이었고, 또한 블링크를 시킨 파이어 볼도 4서클의 하위 마법인 까닭에 성공한 것이었다.

“누구냐?”

다시 마현의 등 뒤에서 사공소가 갈라진 목소리로 힘없이 물었다.

그제야 마현은 사공소 앞으로 뛰어갔다.

“괜찮으십니까?”

“……대공자로구나.”

사공소는 몇 날 며칠 곡기뿐 아니라 물까지 끊은 상태라 그런지 눈의 시력이 상당히 나빠진 모양이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마현은 뒤로 물러나며 서클 단전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굵은 쇠사슬은 총 다섯 개였다.

쾅 쾅 쾅!

그렇게 쇠사슬을 살필 때 마현의 예상대로 연무석실 밖에서 석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충격에 석문이 파르르 떨렸고, 그 여파로 인해 석실 벽면이 울리며 돌가루가 천장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자신이 판단한 능자필의 능력으로도 시간이 제법 걸리겠지만 충분히 석면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이면 마현에게는 충분했다.

마현은 윈드 커터를 중첩해 위력을 배가시켰다.

쐐애애액!

다섯 줄기 바람의 칼날이 쇠사슬로 날아갔다.

서걱! 촤르르르 철커걱!

쇠사살은 반으로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큭!”

쇠사슬이 떨어질 때 사공소의 요혈에 박힌 침까지 흔들며 고통을 주었는지 그의 입에서 미약하지만 외마디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마현은 앞으로 고꾸라지는 사공소를 얼른 다가가 안았다.

그리고 그에게서 풍겨지는 지독한 악취에 미간을 좁혔다. 단지 그 냄새 때문이 아니었다. 침이 요혈에 박힌 상처 부위가 썩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현은 어느 정도 시간 여유가 있다고 판단하고 사공소의 요혈에 박힌 쇠침을 제거하려 손을 뻗었다.

콰과과광!

그때 굉음과 함께 석문이 부서졌다.

석문은 몇 덩이의 커다간 돌덩이가 되어 와르르 무너졌고, 온몸에 살기와 함께 사기를 두른 능자필이 안으로 들어왔다.

“쥐새끼가 잘도 돌아다니는구나!”

마현이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전개였다.

“어떻게 생긴 놈인지 잡아서 살가죽을 벗…….”

능자필은 거대한 물체로 다시 앞이 막히자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신형을 띄우는 능자필에 앞서 마현은 서클 단전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윌 오브 락(Wall of rock)!”

마력이 연무석실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콰르르르르!

연무석실 바닥이 잠시 흔들리는가 싶더니 바위로 된 벽이 불쑥 튀어 올라왔다. 이렇게 일차적으로 능자필을 가로막은 이유가 있었다.

만일 다급한 마음에 텔레포테이션을 펼쳤다가는 비틀린 공간 안에 갇혀 버리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여나 성공을 한다고 해도 능자필까지 순간이동이 될 확률이 컸다.

“쥐새끼가 재미난 장난을 치는구나!”

거대한 석벽 너머로 능자필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현은 수하들을 남겨 놓고 왔던 천산의 어느 거산 정상으로 텔레포테이션을 시전했다.

콰과과광!

환한 빛이 뿜어졌다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석면이 다시 부서지며 자욱한 돌먼지가루가 연무석실 안을 가득 채웠다.

“이제 네놈의…….”

득의양양하게 부서진 석면을 밟고 넘어오는 능자필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당연히 벽 뒤에 있을 것이라 예상하던 사공소와 마현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까닭이다.

능자필은 당황하며 주위를 살폈다.

분명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으아아아아!”

분노에 찬 능자필의 사악한 음성이 석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 * *

철퍼덕!

피가 고인 대리석 바닥 위로 사공찬의 무릎이 강제로 꿇려졌다.

“죽여라!”

수많은 상처로 인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사공찬은 여전히 죽지 않는 눈빛으로 도종극을 올려다보며 독기를 내뿜었다.

도종극은 슬쩍 고개를 돌려 율기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율기는 싱긋 웃음을 보이고는 모른 척 대전을 나갔다. 율기가 나가자 도종극은 안도의 눈빛을 띠며 다시 사공찬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그가 사공찬 앞으로 걸어가 쪼그려 앉았다.

“사형, 그럴 수는 없습니다.”

“…….”

“사형이 죽으면 천마신공을 얻기가 좀 곤란해지거든요.”

도종극은 비열하게 웃었다.

“나를 죽여라! 아니면 반드시 네놈의 살과 피를 갈아서 마셔버릴 것이다.”

“낄낄낄. 어디 기대해 보겠습니다. 나를 죽일 수 있는지.”

비릿한 웃음이 걷히며 도종극의 얼굴과 목소리가 차갑게 굳어졌다.

푹!

“컥!”

갑자기 사공찬의 눈이 부릅떠지고 드러난 눈동자는 고통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그런 사공찬의 허벅지에 자그만 단도가 꽂혀 있었다.

도종극은 다시 웃음을 머금으며 사공찬 앞으로 얼굴을 바싹 내밀었다. 그런 그의 손은 허벅지에 박힌 단검을 이리저리 후비고 있었다.

“크으으으!”

사공찬은 지독한 통증에 얼굴에 피가 몰리고 관자놀이와 이마에 힘줄이 불룩 튀어 올랐다.

“소교주님.”

그때 부마전으로 갔던 흑살거부가 대전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도종극은 허벅지에 박혀 있던 단검을 뽑아 사공찬의 어깨에 피를 닦았다.

“찾았느냐?”

도종극의 목소리는 기대감에 은근히 떨리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다.

“제대로 찾아본 것이냐?”

도종극은 신경질적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부마전을 비롯해 흑풍각, 그리고 마의당까지 속속히 찾아봤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일이 틀어지자 도종극의 눈두덩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그곳에 없다면 다른 곳도 찾아봐야 할 것이 아니냐!”

“하, 하오나 아직까지 보는 눈들이 많아 그리할 수 없었습니다.”

비록 도종극이 소교주 자리에 올랐지만 완전히 마교를 장악하지 못했다. 지금 이렇게 사공찬과 대장로, 그리고 마현의 수하들을 피로 숙청한 것은 어디까지나 명분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눈들이 많았다.

흑살거부는 지금 그런 현 상황에 대해서 말한 것이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도종극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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