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1화
다크 스켈레톤 300구.
이제는 좀비가 된 철골강시 2,000구.
그리고 듀라한이 된 묵혈강시 500구.
도합 2,800구의 언데드들이 순간 마주전을 향해 몸을 틀었다.
―캬아아아아!
―끼햐아아아!
근 3천 구의 언데드 군단은 찢어져라 입을 쩍 벌리고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귀성을 내질렀다. 섬뜩한 귀성이 한순간 마주전 앞마당을 뒤덮었다.
“이, 이…….”
그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귀성으로 인해 순간 뒷걸음질을 친 도종극은 언데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벌렸지만 목소리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도종극의 눈동자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광경에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마현이 만든 괴이한 검은 골강시야 그렇다고 쳐도, 나머지 철골강시와 묵혈강시들은 바로 귀림에서 만든 것이었다. 그러니 도종극은 강시들이 귀성을 내지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강시들이 자신들이 서 있는 마주전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며 귀성을 지른 것이다.
“대, 대고루귀령.”
도종극은 강시들에게서 손가락을 떼지 못하며 대고루귀령을 불렀다.
뒷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그의 표정으로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대고루귀령 역시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뭣들 하느냐? 조혼강술을 극성으로 끌어올리지 않고!”
대고루귀령은 답답한 마음에 강시를 직접 조종하는 고루귀령들을 재차 닦달했다. 그 명에 고루귀령들은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피리에 숨을 밀어 넣었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키키, 키히이이.
―캬, 캬아아, 캬아.
귀청을 때리는 귀성이 서서히 사그라지며 마치 여인들의 곡소리처럼 흐느끼는 소리로 바뀌었다.
자박 자박 자박.
이제는 좀비가 된 철골강시들은 몸을 흐느적거리며 마주전과 이어진 석단으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이어 듀라한이 된 묵혈강시들 역시 그 사이사이로 끼어들어 마주전 앞 석단으로 향했다.
“대고루귀령!”
도종극의 격한 목소리에 대고루귀령은 근처 고루귀령이 입에 물고 있는 피리를 빼앗아 입에 물었다. 그리고 음산하기 이를 데 없는 귀력(鬼力)을 끌어올려 피리에 집중시켰다.
그러자 피리가 파르르 떨리며 그 주위로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 파장이 퍼져나갔다. 대고루귀령은 그 파장을 자신들이 서 있는 석단을 향해 몰려오는 강시들에게로 집중시켰다.
그 파장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강시들은 잠시 주춤거리며 발걸음을 멈췄다.
일단 강시들이 반응을 보이자 대고루귀령은 파장을 서서히 넓히며 귀력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강시, 즉 좀비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허리를 앞으로 살짝 숙였다.
―캬아아아아!
―꺄아아아아!
좀비들은 입을 쩌억 벌리며 다시 한 번 고막을 찢어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귀성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전보다 더 흉흉한 귀광을 내뿜었다.
여전히 흐느적거리는 몸놀림이었지만 그들이 걷는 속도는 한층 더 빨라졌다.
순식간에 석단 앞까지 꾸역꾸역 밀려온 것이다.
도종극은 통제가 되지 않는 언데드, 묵혈강시와 철골강시를 보며 두려움에 빠져들었다.
자신들이 강시를 다룰 때에는 더할 나위 없는 든든한 무기였지만, 통제권을 상실한 지금은 무엇보다도 무서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강시는 죽지도 않는 귀물이다.
베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이지(理智)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두려움도 없다. 그렇기에 팔다리가 잘려도 끝까지 달려드는 지독한 놈들이다.
게다가 죽은 자들의 주검을 가지고 강시로 만들면서 시행된 술법으로 인해 그들의 몸은 인간의 신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해져 있었다.
그런 강시를 만든 귀림의 소림주였기에 도종극은 누구보다 강시의 무서움을 잘 안다.
언데드, 도종극의 눈에 비친 강시들이 우르르 석단으로 오르는 계단 위로 몰려들기 시작하자 도종극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다 다리가 꼬여 바닥에 콰당 엉덩방아를 찧었다.
“대사혼마령!”
도종극은 우스꽝스럽게 넘어졌지만 그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대사혼마령은 도종극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팔을 들어올렸다. 도종극의 명이 아니어도 대사혼마령은 대고루귀령과 고루귀령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고루귀령들에게만 이 상황을 맡겨둘 수 없다고 판단한 대사혼마령은 지체하지 않고 사혼마령들을 앞으로 내보낸 것이었다.
오백 명의 사혼마령들은 석단 위로 오르는 철골강시와 묵혈강시를 날카로운 손톱으로 할퀴듯 쳐내며 고루귀령들과 도종극을 보호했다.
“대고루귀령. 아시다시피 사혼마령들이 저들을 막는 것은 한계가 있소. 방법을 찾으시오!”
팡!
대사혼마령 역시 석단 위로 올라서는 강시 하나를 발로 강하게 쳐내며 소리쳤다.
팡 팡! 샥샥샥!
대사혼마령은 끊임없이 석단 위로 기어오르는 강시들을 발로 쳐내고, 회색빛 긴 손톱으로 할퀴듯 쥐어뜯었다. 하지만 마주전 주위를 길게 두르고 있는 석단을 모두 지키기란 사실상 요원한 일이었다.
“사혼마령들은 석단을 포기한다. 원진을 이중으로 꾸려 마주전으로 들어서는 입구를 차단하고 고루마령들을 보호하라!”
대사혼마령의 명에 사혼마령들은 고루마령들이 서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사혼마령들은 석단 위로 오르려는 강시들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쐐애애액!
하지만 사혼마령들의 손톱은 강시들의 가슴을 할퀴지 못하고 애꿎은 공기만 찢을 뿐이었다.
―크르르르!
―캬르르르!
저돌적으로 석단 위로 몰려들던 강시들이 순간 주춤했다. 대사혼마령의 명에 의해 사혼마령들이 도종극과 대고루귀령, 그리고 고루귀령들을 보호하며 마주전으로 통하는 대문 앞에 원진을 만들자마자 강시들은 거짓말처럼 걸음을 딱 멈춘 것이다.
그리고는 몸을 구부정하게 숙인 채 흉맹한 눈빛을 뿜어대며 낮게 울음을 토해냈다.
그렇게 살기를 머금은 채 으르렁거리던 언데드들이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그 위압적인 모습에 대사혼마령은 처음으로 눈매를 일그러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강시들은 조금 전처럼 무작정 몰려오는 게 아니었다. 마치 사냥몰이를 하듯이 조직적으로 자신들을 겹겹이 에워싸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고루마령들이 자리를 지키며 살수를 뿌리기에는 한 척 정도의 간격 차이가 있었고, 그것을 좁히기 위해 한 걸음 내딛으면 그들이 구성한 원진에 자칫 허점이 생길, 미묘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위치에 서 있었다.
그렇게 강시들은 아슬아슬한 경계 지점에 딱 멈춰 서서 귀림의 귀인들을 향해 나직하게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캬르르, 캬아아아아!
그때 철골강시, 좀비 하나가 반걸음 앞으로 나아가 귀성을 터트리며 한 사혼마령을 향해 팔 하나를 쭉 내밀었다.
그 모습에 사혼마령은 잠시 갈등 어린 눈빛을 띠는가 싶더니 굳은 눈빛으로 반걸음 내딛으며 철골강시를 향해 긴 손톱을 휘둘렀다.
서걱!
사혼마령의 손톱에 철골강시의 가슴이 쥐어뜯겼다. 사혼마령은 썩은 살점이 묻은 손으로 이번에는 철골강시의 목 줄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콰득!
사혼마령의 손톱은 여지없이 철골강시의 살갗을 꿰뚫으며 목 줄기를 움켜잡았다. 그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왔다.
“귀물 따위가……, 죽어라!”
사혼마령이 눈빛에서 살기를 내뿜으며 철골강시의 목을 부러트리려 손아귀에 힘을 주려는 때였다.
그 주위에 있는 철골강시들이 한순간 사혼마령에게 달려들어 팔과 다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마치 아귀(餓鬼)처럼 사혼마령의 팔과 다리를 물어뜯었다.
엉겁결에 철골강시들과 뒤엉켜 원진에 자그만 틈이 살짝 벌어졌다.
철골강시들과 뒤엉킨 사혼마령은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려 했지만 좀비들은 더욱 악착같이 그 사혼마령을 물고 늘어졌다.
“큭!”
다리에 매달린 철골강시 하나가 사혼마령의 허벅지를 깨물었다.
살점이 뜯기는 고통에 사혼마령은 뺨을 씰룩거리며 독수리발톱처럼 갈퀴를 세워 철골강시의 등을 할퀴듯 쥐어뜯었다. 하지만 철골강시는 여전히 허벅지를 물어뜯으며 한 점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강시는 원래 고통을 모르는 귀물들이라는 사실을 새삼 뒤늦게 다시 떠올린 것이다.
“크악!”
잠시 움찔거린 사혼마령은 저도 모르게 한순간 왼쪽 어깨부근에 허점을 노출시켰다. 그러자 철골강시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벌려 괴성을 지르며 사혼마령의 어깻죽지와 목 사이를 물었다.
찌직― 푸학!
사혼마령의 살이 강제로 뜯어지고 피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사혼마령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그 모습은 마치 악어 떼 중앙에 고기 한 점을 던져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철골강시들은 휘청거리는 사혼마령을 단숨에 잡아당겼다.
사혼마령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철골강시들 속으로 끌려들어갔다.
“으아아악!”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사혼마령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철골강시, 즉 좀비들의 무리 속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가 있을 거라 예상되는 곳 허공으로 피와 살점들이 튀어 올랐다.
그렇게 원진에 빈틈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좀비들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묵혈강시에서 듀라한으로 변한 두 구가 그 틈을 향해 튀어나왔다.
“갈!”
그러자 끌려 나간 사혼마령의 옆에 있던 두 사혼마령이 틈이 생긴 공간으로 달려드는 듀라한을 향해 일갈을 지르며 갈고리처럼 만든 손톱을 휘둘렀다.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서는 단숨에 두 듀라한을 죽일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두 사혼마령은 왼손에 들려 있는 듀라한의 머리를 공격해 들어갔다. 강시들의 유일한 약점이 머리이니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카득!
두 사혼마령은 생각대로 듀라한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머리를 부숴 버리기 위해 손가락에 힘을 강하게 주었다. 하지만 듀라한의 머리는 부서지지 않았고, 오히려 사혼마령들의 회색빛 손톱이 찢어졌다.
“큭!”
“으윽!”
손가락 끝에 붉은 피가 스며났다.
고통을 느끼며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나는 사혼마령은 히죽 웃음 짓는 듀라한의 머리를 보며 뒷골이 서늘해졌다.
그 둘마저 휘청거리며 신형이 흐트러지자 원진의 틈은 눈에 드러날 정도로 커졌다.
듀라한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여지없이 몸을 날렸다. 하지만 막 원진 안으로 파고들었을 때 그들을 가로막은 그림자가 허공에서 툭 떨어졌다.
바로 대사혼마령이었다.
대사혼마령의 눈동자에서 귀광이 번뜩이며 양팔에서 음습한 기운이 출수되었다.
팡 팡!
사기가 가득한 장풍이 두 듀라한의 가슴에서 터졌다.
그 일격에 듀라한이 뒤로 날아가 좀비들 속에 떨어졌다.
듀라한들은 신경질적으로 왼손으로 머리를 바닥에 쿵 찍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하아아앙!
듀라한들이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 사이 대사혼마령에 의해 원진의 틈은 완전히 메워졌다.
“무조건 자리를 지켜라!”
대사혼마령은 뒤로 밀려난 듀라한들과 그 뒤에서 귀기를 뿜어대는 좀비들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만들었다.
듀라한들의 모습에 다시 올 것이라는 대사혼마령의 기대와 달리 그들은 조금 전보다 한 걸음 더 뒤에서 어슬렁대며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흐음!’
가늘어진 눈매의 가장자리에 주름이 지어졌다.
심기가 뒤틀린 까닭이다.
어슬렁대며 호시탐탐 자신의 목을 노려보는 듀라한과의 거리는 대략 세 척. 그 세 척의 공간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듯이 어슬렁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