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82화 (182/351)

# 182

7화

우우우우웅!

한참 워프 게이트진을 보고 있는데 그곳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중앙에 마현이 홀연히 서 있었다.

“……주군.”

가릉은 빛 때문에 눈이 시렸지만 허겁지겁 마현에게로 달려갔다.

가릉뿐만 아니라 두 장로와 무영대주, 그리고 귀갑철마대주인 국충까지 마현에게로 모여들었다.

“다행히 별일 없었군.”

마현은 동굴 내부를 찬찬히 살폈다.

“가 당주, 교주님은 어떤가?”

“현재 잠이 드셨습니다.”

마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공소가 있는 곳으로 몸을 틀다가 잠시 신형이 휘청거렸다.

“주, 주군.”

가릉과 회회혈마가 재빨리 마현을 부축했다.

“괜찮네.”

마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둘의 손길을 뿌리쳤다.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가릉은 마현의 혈색을 보며 말했다.

“내상을 입어서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잠이 든 것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그사이 사공소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현은 그 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깊게 숙였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송구하옵니다, 교주님.”

“본교의 일은 해결이 되었느냐?”

사공소의 눈빛에서는 어느새 예전처럼 기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율기와 삼공자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사공소는 마현의 대답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교주님께서는 본교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교주님께서 돌아오시기를 학수고대하고 계십니다. 힘겨우시겠지만 지금 본교로 모시려 합니다.”

“부교주가 고생이 많겠군.”

사공소는 앓는 소리를 애써 참으며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당분간은 본좌가 있어야겠지.”

“……?”

사공소의 속을 알 수 없는 말에 마현은 이상한 예감을 느꼈다.

“뭐하나? 본교로 돌아갈 준비를 하지 않고.”

사공소의 재촉 어린 명에 마현은 고개를 숙인 후 국충을 불렀다.

“본교로 돌아가는 즉시 교주님은 신변을 감춘 후…….”

혹여나 사공소의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다른 이의 눈에 띄는 것을 막고자 마현이 국충에게 말할 때, 사공소가 마현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쓸데없는 짓이다. 본좌는 본교의 지존이다. 내 두 다리로 본교로 들어설 것이다.”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피폐해진 사공소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그의 몸에서는 절대자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알겠습니다, 교주님.”

마현은 어쩔 수 없이 국충에게 내린 명을 거두고는 동굴에 있던 모든 이들을 워프 게이트진 안으로 모이게 했다. 그리고 마력을 끌어올려 마교로 순간이동했다.

* * *

“교주님이시다!”

누군가가 마교 내원으로 향하는 외원의 대로 위를 가로지르는 무리의 가장 앞에서 과묵하고 위엄 있게 발걸음을 내딛는 사공소를 보자 크게 외쳤다.

그 소리에 순식간에 마인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전처럼 위엄 가득한 모습으로 내원으로 향하는 사공소를 보자 마인들은 일제히 그 자리에 부복했다.

“천하제일마교!”

“마교, 천세 천세 천천세!”

그들은 한목소리로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비록 절제된 구호였지만, 그들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흥분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허진과 마현이 귀림을 몰아내고 마교의 안정을 꾀했지만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사공소의 부재에 있었다.

그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수많은 억측이 나돌았고, 그로 인해 수만의 마인들이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다들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런 불안감이 사공소의 등장으로 인해 말끔히 해소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마현은 그런 사공소를 보며 존경심과 더불어 두려움을 느꼈다.

그만큼 사공소라는 인물이 가진 힘을 새삼 느낀 탓이었다.

그렇게 홍해가 갈라지듯 군중이 갈라지며 만든 그 사이의 길을 사공소는 거침없이 걸어 나갔다.

하지만 그 뒤를 걷고 있는 가릉과 마현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떨어진 곳에서, 그리고 감히 사공소와 얼굴을 마주할 수 없어 부복한 마인들은 모르겠지만 현재 사공소의 뒷목과 등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국 대주, 교주님을 최대한 에워싸라.』

혹여나 누군가 그 모습을 볼까 싶어 명을 내렸다. 그 즉시 귀갑철마대가 좀 더 가까이 호위를 서는 것을 사공소도 말리지 않았다. 그만큼 그 역시 힘겨워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사공소는 곧장 내원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거침없이 걷던 걸음이 불에 타 전소된 마주전 앞에서 뚝 멈췄다.

사공소는 한동안 말없이 주춧돌과 기둥잔해만 남은 마주전을 쳐다보았다. 번뜩이던 기광이 마주전을 보는 내내 서서히 사그라졌다.

“교주님.”

사공소가 마교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까닭인지 허진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사공소는 허진이 온 것을 모르는 것인지 여전히 무너진 마주전을 보고 있었고, 그런 모습에 허진은 쉽사리 말을 붙이지 못하고 그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렇게 반 각쯤 시간이 흘렀을까. 사공소는 고개를 돌려 허진을 쳐다보았다.

“오랜만이군, 부교주.”

“……교주님.”

“마휴당은 괜찮나?”

“……아무런 피해도 ……없습니다.”

대답하는 허진의 목소리는 좋지 않았다.

항상 태산보다 더 커보이던 사공소였다. 그런 그가 남루한 촌로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는 허허로운 얼굴을 하고 있자 허진은 마음이 아팠다.

“그런가? 마휴당으로 가지.”

“속하가 뫼시겠습니다.”

“가 당주.”

마휴당으로 가기 전 사공소가 가릉을 불렀다.

“반 시진 후에 본교의 모든 수뇌들을 마휴당으로 집결시키라.”

“명을 받드옵니다.”

사공소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허진과 함께 단둘이 마휴당으로 향했다.

마휴당에 들어선 사공소는 쓰러지듯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네도 앉게.”

사공소는 힘없이 손을 들어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허진이 자리한 후에도 사공소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본좌가 없는 동안 힘들었겠군.”

“아닙니다, 교주님.”

“부교주, 자네 얼굴이 피곤에 찌들어 있구먼, 숨기지도 못할 거짓말을 왜 하는가?”

사공소의 편안한 웃음에 허진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간 교주님의 부재로 인해 교의 안정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교주님이 오셨으니 단숨에 안정을 되찾을 것입니다.”

“본좌의 부재가 아니라 이 교주 자리의 부재이겠지.”

사공소는 의자팔걸이를 쓰다듬으며 씁쓸히 말했다.

콰당!

막 담소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마휴당 문이 벌컥 열리며 호원주(護圓主) 엄필과 함께 유령대 1부대주 도완이 함께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교, 교주님. 큰일 났습니다.”

엄필과 도완은 사공소와 허진을 향해 부복하며 다급히 소리쳤다.

“무슨 일인데 이리도 경망스러운 것이냐?”

허진이 도완을 향해 나직하게 질책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교주님.”

정작 떨리는 목소리로 죄를 청한 것은 호원주 엄필이었다.

“무슨 일이냐?”

사공소의 목소리는 다시금 위엄을 가득 담으며 무겁게 내리깔렸다.

“광풍적월대주 갈승도가 교주님의 등장으로 본교가 어수선한 틈을 타 지하사옥에 감금되어 있던 귀림주 능자필을…… 탈주시켜…… 달아났습니다.

“뭣이라?”

허진은 엄필의 보고에 분노에 찬 목소리를 터트렸다.

“호원주, 그대는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군사도 못 찾고, 삼공자도 찾지 못한 주제에, 이번에는 귀림주까지 도주를 시킨 것인가?”

허진은 사공소가 있어 소리를 버럭 지르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에는 격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도 부대주. 도대체 지하사옥을 어떻게 관리한 것이기에 갈승도가 능자필을 데리고 도주를 할 수 있었던 거란 말이냐?”

도완은 부복한 채 머리만 바싹 더 숙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엄필은 몸을 한껏 웅크리며 바르르 떨고 있었다.

“차후에 별도의 상벌이 있을 것이다, 나가보라.”

사공소가 손을 휘저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엄필은 도살장에 끌려갔다가 살아서 도망가는 소처럼 안도감을 애써 감추며 황급히 마휴당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도완이 무거운 표정으로 뒤따랐다.

“율기도 그렇고, 갈승도도 그렇고…….”

안 그래도 율기의 배신에 적잖게 충격을 받았던 사공소였다. 그런 그가 총애하던 갈승도의 반역행위에 다시금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갈승도 역시 그의 무력과 충성심을 높이 사 주위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광풍적월대주의 자리에 앉혔다.

그 후 갈승도는 능력과 공적을 떠나 다분히 주관적이고 편파적으로 자기 사람들을 광풍적월대원으로 뽑아 수많은 반발과 간소(簡疏)가 올라왔지만 사공소가 교주의 직권으로 무마시켜 버렸었다.

엄필과 도완이 나가고 사공소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부교주.”

오랜 침묵이 있은 후에야 사공소가 허진을 불렀다.

“인생이 무상(無常)하다는 말이 본좌에게까지 적용될 줄은 몰랐군. 후후후.”

사공소의 웃음은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이 사공소의 울음이라는 것을 허진은 가슴으로 느꼈다.

그 순간 허무하리만큼 사공소의 눈동자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무심(無心), 그 자체였다.

“교, 교주님.”

사공소의 말에 허진은 적잖게 놀랐다.

“어떻게 교주님께서 그리 나약하신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허진은 사공소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모습에 사공소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람은 떠나야 할 때를 알아야 하는 법이야.”

“안 됩니다, 교주님. 교주님은 본교의 상징이자 기둥이십니다.”

“후후. 이래서 본좌가 부교주를 좋아하는 게야.”

사공소는 활짝 열린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창문 너머로는 파란 하늘이 활짝 펼쳐져 있었다.

가슴이 탁 트이는 풍경이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 창문 밖으로는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웅장한 마주전이 보이지 않았던가.

“마주전을 다시 세워야겠어.”

“그 마주전 안에 놓일 태사의에도 다시 앉으셔야 하지요.”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아야지.”

사공소가 창에서 고개를 돌려 허진을 쳐다보았다.

“부교주.”

“교, 교주님.”

“자네가 그 태사의에 앉게.”

허진은 사공소의 말에 쇠망치로 머리라도 맞은 것처럼 놀라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허진은 사공소에게 난생처음으로 격한 반응을 보였다.

“부교주의 염원이 아니었는가? 그 자리 말일세.”

사공소는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속하가 바란 그 염원의 주체는 제자 현이지 속하가 아닙니다.”

허진은 거침없이 속내를 드러냈다.

사실 허진도 알고 있었고, 사공소도 알고 있었다. 다만 둘 다 알면서 서로 모른 척했을 뿐이었다.

“더불어 대공자를 소교주 자리에 앉히게.”

“이공자는요? 교주님의 유일한 혈육인 사공찬이는요?”

담담하던 사공소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하지만 다시 담담하게 바뀌었다.

“그 녀석의 그릇보다 대공자의 그릇이 더 크지 않은가? 말을 해놓고도 가슴이 미어지듯 아프군.”

사공소의 목소리는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래도 부정이 있어 한 가지는 약조를 해주어야겠네.”

“…….”

“후에 교주 자리는 누가 되었든지 공정하게 물려주게.”

사공소는 허진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자신이 할 말을 내뱉었다.

“누가 아는가? 이 일로 그 녀석의 그릇이 커질 줄 말이야. 하하하하!”

사공소는 어울리지 않게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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