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95화 (195/351)

# 195

20화

“북해의 씨를 말리려고 독하게 작심을 한 모양이구나!”

곤오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설영대를 둘러보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가씨만은 살려야 한다. 북해의 혼만은 살려야 한다. 알겠느냐?”

곤오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참으며 명령을 내렸다.

“명!”

“기꺼운 마음으로 죽겠습니다.”

사실 지금 곤오의 말은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설영대원들은 다부지고 씩씩한 목소리로 기꺼이 대답했다.

“그리만 된다면 아가씨가 북해의 냉풍을 다시 살릴 것이고……, 저 가증스러운 남해의 태양을 얼려버릴 것이다.”

울컥해진 곤오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어렵게, 어렵게 다시 말을 이었다.

“저희가 일차적으로 먼저 막겠습니다.”

설영대의 제2조에 속한 여덟 명이 앞으로 나섰다.

원래 설영대는 열 명씩 총 5개조로 편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재 곤오를 따르는 설영대는 스물아홉 명. 이미 4조는 북해에서 설린을 탈출시키며 몰살당했고, 그나마 다른 조들 역시 군데군데 인원이 비어 있었다.

“내세에서 뵙겠습니다.”

곤오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4조장이 먼저 포권을 취하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평생 얼음 땅이 지겨웠는데, 따뜻한 곳에서 죽는군.”

그리고 몇몇 조원들이 슬픈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래도, 살아서 보자.”

곤오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몸을 돌렸다.

눈가가 찌릿한 것이 아마도 눈시울이 붉어졌으리라. 그리고 혹여나 목소리가 떨릴까 봐 더 이상 입을 열지도 않았다.

“가자!”

그저 짧게 명을 내렸을 뿐이다.

남은 4조가 떠나는 동료들을 향해 다시 허리를 깊게 숙일 때 반대편에서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우렁찬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흑풍대!”

곤오는 자욱한 먼지 속에서 펄럭이는 검은 바람이 새겨진 깃발을 보았다.

암담해진 그의 눈동자가 번쩍 빛을 발했다.

“흑풍대는 곧…… 흑풍마군. 모두! 모두 달려라!”

곤오는 우렁찬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그는 설린을 업은 채 설영대를 이끌고 마현을 상징하는 깃발이 펄럭이는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 * *

마현은 흑풍대를 이끌고 지치지 않는 다크스티드, 풍을 타고 마교를 빠져나와 북쪽으로 질주했다.

충분하다 못해 넘치도록 빠른 속도를 내고 있는 풍이었지만 급한 마음에 마현은 더욱 강하게 고삐를 잡아당겼다. 왜 이렇게 마음이 초조한지 마현은 몰랐다.

아니 그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마현은 애써 외면했다.

일단 마음이 이끄는 대로 최대한 빨리 말을 몰 뿐이었다.

달려도, 달려도 풍경이 변하지 않는 모래와 돌로만 만들어진 황량한 사막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꼬박 한 시진을 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 지평선 부근에 희미한 그림자가 언뜻 보였다. 마현은 재빨리 천리안 마법을 이용해 그들이 누구인지 살폈다.

마현의 눈이 부릅떠졌다.

눈가에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설영대주 곤오의 등에 피투성이가 된 채 업혀 있는 설린이 보인 까닭이었다.

가슴이 철렁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주군. 저 멀리 한 무리의 인마 떼가 달려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철용이 자신들이 달려가고 있는 반대편에서 자욱하게 일어나는 먼지를 발견하고는 마현에게 보고했다.

설린에게 온통 시선을 빼앗겨 있던 마현은 철용의 말에 지평선 끝으로 시선을 올렸다. 철용의 말대로 자욱한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연적으로 바람이 불어 일으킨 먼지는 분명 아니었다.

마현은 역시나 천리안 마법을 이용해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를 살폈다.

‘남해태양궁!’

그것이 남해태양궁임을 확인했을 때 북해빙궁 역시 남해태양궁을 발견하고, 또 자신들도 본 모양이었다. 곧 북해빙궁의 설영대가 이쪽으로 신형을 날렸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자신들과 설영대가 만나기 전에 남해태양궁에게 따라잡힐 것이 분명했다.

“단숨에 순간이동을 할 것이다. 각자의 거리를 좁히라!”

서른 명의 흑풍대와 서른 기의 다크스티드.

그리고 마현 자신과 풍.

그들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달리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워프 네비게이션 마법을 시전하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다급하고 불안한 마음에 마현은 강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흑풍대는 속도를 조금 떨어뜨리며 빽빽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오밀조밀하게 뭉쳤다. 마현은 마기를 뒤로 흘리듯 뿌려 흑풍대를 에워쌌다.

순간, 번쩍이는 검은빛과 함께 서른한 기의 인마 떼가 그 자리에서 환영처럼 사라져 버렸다.

“대주님, 이러다가 따라잡힐 것 같습니다.”

죽으라고 흑풍대가 보이는 곳으로 뛰고 있었지만 이미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황폐해진 그들의 발걸음은 범인이 그저 뛰는 속도보다 조금 빠를 정도였다.

“있는 힘을 모두 짜내라. 쓰러져도 흑풍대를 만난 후에 쓰러져라!”

오랜 도피로 힘에 부쳐 고통이 얼굴에까지 번졌지만 아무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뒤에서 서서히 가까워지는 말발굽 소리에도 설영대는 오로지 앞만 보며 모든 힘을 쥐어짜 달려 나갔다.

파밧!

그때 곤오는 후미에서 급격한 기의 파장을 느끼자 급히 고개를 돌렸다. 시커먼 빛이 사라지며 한 무리의 인마 떼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검은 망토를 휘날리는 흑풍대와 묵색 곤룡포를 입은 마현이었다.

“대, 대공자!”

봉문으로 인해 마현이 소교주 자리에 오른 것을 모르는 곤오는 격정에 찬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오로지 설린 하나를 살리기 위해 이곳까지 도망쳐온 곤오였다.

당연히 마현을 보자 안도의 감정이 밀물처럼 몰려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현은 급히 풍에게서 내려 곧바로 곤오에게로 뛰어갔다.

“어찌된 것인가?”

쿠히이잉!

마현이 쓰러진 설린을 살피기도 전에 거친 말울음소리와 함께 자욱한 모래먼지가 바람을 타고 흑풍대와 설영대를 덮쳤다. 황량한 바람은 모래먼지만 몰고 온 것이 아니었다. 피부를 따끔거리게 만들 정도로 차가운 살기도 함께 데리고 왔다.

마현은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고개를 돌렸다. 언뜻 백여 기의 인마 떼가 흑풍대와 설영대를 반쯤 에워싸고 있었다.

“살고 싶다면 비켜라.”

남해태양궁 무리에서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장년인, 양위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마치 명령을 내리듯 말했다.

캉!

마현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철용이 양위도 앞으로 다가가 흑풍대를 상징하는 깃발이 달려 있는 거대한 철봉으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그 충격에 철봉이 부르르 떨렸다.

설영대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감싸고 있던 흑풍대가 남해태양궁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런 흑풍대에게서는 은은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양위도의 안색이 굳어졌다.

마현이 몸을 일으키고 터벅터벅 양위도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한 인물이 양위도 옆으로 다가와 뭐라고 속삭였다.

“그대가 마교 대공자 흑풍마군인가?”

양위도는 자신을 따라온 태양대와 광양대를 뒤로 살짝 물렸다. 그런 그의 눈동자에서는 당황하는 빛이 살짝 드러났다.

신강이 마교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현재 마교가 봉문 중이라고 들었다. 그 때문에 마교와 거리가 한참이나 떨어진 황량한 이 사막에서 흑풍마군을 만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또한 마교의 봉문으로 인해 외부에 소문이 전혀 알려지지 않아 양위도는 아직 마현이 소교주 자리에 오른 것을 모르고 있었다.

“본인은 남해태양궁의 궁주일세. 본궁에 필요한 이들이니 길을 터주게나.”

양위도는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강력한 의지를 목소리에 담아 보냈다.

쓸데없는 충돌은 피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다 잡은 것이나 매한가지인 설린을 비롯해 설영대를 절대로 눈앞에서 놓치지 않겠다는 뜻을 은근히 피력했다.

“나가라! 본교의 땅에서!”

마현은 양위도의 권유를 차갑게 외면했다.

겉으로는 싸늘할 정도로 차갑게 보였지만 속에는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북해빙궁을 쫓아온 남해태양궁을 몰살시키고 싶었지만 혼절한 설린 때문에 가까스로 참고 있었던 것이다.

“오만방자한 놈이로구나! 마교 교주도 본인에게 그리 막대하지 않거늘!”

양위도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마지막 경고다. 비키라!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돌아서던 마현이 몸을 멈추며 차갑게 반문했다.

“마교의 위명을 생각해 좋게 넘어가려 했다만, 본궁의 행사를 방해한다면 그대가 마교의 대공자라고 해도 죽일 것이다.”

“마교의 땅 신강에서?”

“마교 대공자라고 해서 말귀가 통할 줄 알았거늘, 알고 보니 말조차 제대로 섞지 못할 위인이로구나.”

양위도는 분기에 찬 목소리를 터트리면서 주위를 살폈다. 혹시나 마교의 다른 마인들이 주변에 있는지를 살핀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황량한 사막에는 개미새끼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은신할 만한 얕은 둔덕 또한 없었다.

결국 서른 명의 흑풍대만이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양위도의 입술이 살짝 말려 올라갔다.

“남해의 제자들은 들으라. 가로막는 자들은 모두 가차 없이 베라!”

결국 양위도가 칼을 뽑고야 말았다.

『다크 스켈레톤들을 공간적 여유를 두고 깨우라.』

마현이 매직마우스로 명을 내렸다.

푹! 푹!

거친 모래사막 바닥에서 검은 뼈들이 삐죽 솟아났다. 마현의 명대로 다크 스켈레톤들은 빽빽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듬성듬성 공간적 여유를 두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때 은은하게 마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사방으로 짙게 깔렸다.

“마나의 왜곡으로 사람의 시선을 현옥시키리라, 뉴머러스 미러 이미지(Numerous mirror image)!”

모습을 드러내는 다크 스켈레톤의 모습이 찰나 흐릿해지더니 마치 분신술을 펼친 것처럼 삼중 사중으로 퍼져나가며 그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사운드 엠플러피케이션(Sound amplification)!”

마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소리증폭 마법까지 시전했다.

―캬아아아!

―꺄아아아!

오랜 잠에서 깨어난 다크 스켈레톤들은 흉흉한 귀성을 터트렸다. 그 소리는 소리증폭 마법을 거치며 더욱 강해졌다.

푸히이이잉!

그러한 귀성은 이성을 가진 인간의 혼도 빼놓을 정도인데 미물인 말은 오죽하겠는가? 제아무리 군마로 키워졌다고는 하지만 미물은 미물.

사기를 뿜어대는 다크 스켈레톤의 등장에 말들이 미쳐서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뿐만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심장이 약한 몇몇 말들은 입에 피거품을 물더니 풀썩 쓰러지기 시작했다.

양위도는 결국 날뛰는 말을 어찌할 수 없어 내려와야 했다. 하지만 미쳐서 날뛰는 말을 방치했다가는 더 큰 사단이 일어날 수 있었다.

결국 양위도는 말머리에 일장을 내리쳐 단숨에 말을 때려죽였다.

“마지막 경고다! 이 땅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마현이 목소리에 짙은 살기를 담으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 이!”

양위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현이 살짝 손을 들어올리자 천 구가 훨씬 웃도는 다크 스켈레톤들이 다시 귀성을 터트리며 남해태양궁의 무인들을 더욱 압박했다.

“이 치욕은…… 빠드득, 절대로 잊지 않겠다!”

양위도는 결국 이를 갈며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양위도를 비롯한 남해태양궁 제자들은 올 때와는 달리 터벅터벅 걸어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들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마현은 마기를 거뒀다.

퍽 퍽 퍽!

그러자 삼백 구를 제외한 다크 스켈레톤들이 검은 연기로 화하며 사라졌다.

“대공자.”

곤오가 설린을 업은 채 다가왔다.

“최대한 빨리 본교로 돌아간다!”

마현은 곤오에게서 설린을 받아들며 풍에 올라탔다.

흑풍대는 저마다 설영대원 한 명씩을 자신들의 다크스티드에 태운 후 마교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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