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1화
“죽음을 관장하는 카칸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이제부터 너희들의 죽음을 이 카칸이 관장하노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마현의 요상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도종극의 얼굴은 한순간 딱딱해졌다.
저 소리다.
분명 저 알아들을 수 없는 요상한 목소리가 흘러나온 후 일이 틀어졌다.
‘막아야 한다! 먼저 선수를 쳐야 한다!’
도종극은 고개를 살짝 틀어 마현의 뒤로 시선을 돌리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당장 저놈의 명줄을 끊어버려라!”
푸핫!
마현의 뒤쪽, 어두컴컴한 바위 틈 사이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바로 도종극이 미리 대기시켜 놓았던, 이성은 살아 있으나 자의가 사라지며 이제는 하나의 귀물이 된 능자필이었다.
“차핫!”
능자필은 천강시가 되었지만 이성은 살아 있다.
그런 그였기에 생전의 습관처럼 일갈을 터트리며 매섭게 마현을 덮쳐 들어갔다.
그런 능자필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눈썹이 휘날리도록 신형을 띄웠다. 한 번의 도약으로 마현의 등 뒤로 날아갈 수 있는 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마치 돌풍(突風)이라도 불어온 것처럼 속도가 갑작스럽게 느려졌다.
누군가가 다리를 잡고, 허리를 뒤로 잡아당기고, 또 앞에서 밀어내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능자필이 다시 한 번 마현에게로 몸을 띄우려 할 때였다.
수아아아―
주위를 빼곡히 채우고 있던 짙은 회색빛 안개가 마현에게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능자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이유는 바로 회색 안개가 단순한 안개가 아니라 수만 수천의 주검으로 만들어진 시독, 그 자체인 까닭이었다.
천강시가 되기 전, 귀공(鬼功)의 독공을 익힌 생전에도 시독은 그에게 참으로 거북한 존재였다. 그런 시독을 마현이 온몸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문제는 그 양이었다.
마현의 단전은 끝없는 하늘이라도 되는 것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처럼 넓고 깊은 모양인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풍성하던 호수의 물이 빠르게 메말라가는 것처럼 짙은 안개가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고,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갈!”
도종극은 격한 음성을 토해내며 마현에게로 몸을 날렸다. 또 도종극과 눈치를 주고받던 능자필 역시 함께 마현의 등을 덮쳐갔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마현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그리고 몸을 반쯤 틀며 양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팡 팡!
마현의 양팔에서 가벼운 폭음과 함께 희뿌연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어림없다!”
도종극은 마현의 양팔에서 쏟아져 나온 희뿌연 기운이 장풍이라 여기며 표홀히 피하며 다시 한 번 땅을 박찼다.
하지만…….
도종극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희뿌연 장풍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허공에서 몸을 비틀더니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닌가.
급히 내려다보니 희뿌연 기운이 자신의 발목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힘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마치 항거할 수 없는 올가미 같은 것에라도 걸린 듯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던 도종극의 고개가 뒤로 콱 젖혀졌다.
“컥!”
도종극은 뒷목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다. 발목처럼 고개를 어떻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 손을 들어 목을 만져봤지만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이제는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기에 숨이 막히지는 않았지만 목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도종극에게 있어 상당히 기분이 나쁜 치욕이었다.
다시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도종극의 몸이 차츰차츰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렇게 한 척(尺) 가량 떠오른 후에야 멈췄다.
도종극은 겨우 눈동자만 굴려 마현의 뒤에 있는 능자필을 쳐다보았다.
그때 자신의 맞은편에 서 있는 능자필 역시 자신처럼 무엇에 옭아매져 발버둥을 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역시 그의 몸 주위 곳곳에도 희뿌연 무언가가 능자필의 몸을 칭칭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허공섭물이 아님을 직감한 도종극은 내력을 눈에 집중시켜 안력을 높였다.
“헉!”
도종극은 헛바람을 너무 들이마셔 쉽사리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능자필의 몸을 에워싸고 있는 것은 분명 혼귀(魂鬼), 망자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염라(閻羅)의 힘, 망자술(亡者術)이라고 해야 하나?”
굳게 닫혀 있던 마현의 입이 열렸다.
그때가 바로 귀곡이 귀곡 같지 않은 평범한 계곡으로 바뀌었을 때였다.
그 말은 곧, 마현이 이 귀곡을 지배하고 있던 원한이 사무친 망자와 그들이 내뿜은 죽음의 숨결인 시독을 모두 흡수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망자들이여 깨어나라!”
―으흐흐흐흐!
―이히히히히!
을씨년스런 계곡,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소름이 돋는 음산한 귀곡성이 흘러나왔다.
마현은 사신 키디악의 흑마법의 주종인 망자술(Conjury of ghost)을 펼치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현의 눈동자에서 회색빛 귀기가 더욱 진해졌고, 그럴수록 귀성은 점차 낮지만 더욱 또렷하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망자의 모습도 서서히 유형화되어 굳이 안력을 쓰지 않고도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형체가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마현의 눈동자가 회색으로 잠시 덮였다가 사라졌다.
“쯧쯧.”
마현은 허공에서 망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는 도종극을 쳐다보며 혀를 나직하게 찼다.
“스스로 인간을 포기하면서까지 힘을 얻으려 하다니…… 불쌍한 리치가 따로 없군.”
마현은 도종극의 몸에서 생기가 사라졌음을 한눈에 간파했다. 그런 도종극의 모습은 마현의 눈에 리치나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마현이 소매를 휘젓자 희뿌연 색을 가진 망자들이 소매로 빨려 들어갔다. 그로 인해 도종극 역시 마현 앞으로 딸려왔다.
파밧!
마현의 몸이 팽이처럼 돌며 팔꿈치로 날아오는 도종극의 복부를 가격했다.
쾅!
그 충격에 도종극은 비명 한 번 지를 사이도 없이 계곡을 이룬 돌로 이루어진 벽으로 날아가 한 척(尺) 가량 깊숙이 처박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나 재벌린, 리터레이트!”
마현은 한순간 십여 발의 순수 마력으로 만든 창을 만들어 도종극을 향해 사정없이 날렸다.
쾅쾅쾅!
마나 재벌린은 마치 망치처럼 도종극의 몸을 때리고 또 때렸다.
그럴 때마다 도종극의 몸은 반 척 가량씩 바위 속으로 파묻혀 들어갔다.
“크아아!”
능자필은 그런 도종극 때문인지 본능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망자들을 떨쳐내고 마현의 등을 향해 살수를 펼쳤다.
마현은 보지 않아도 능자필이 어떻게 자신을 공격해 들어오는지 머릿속으로 비교적 명확하게 그림으로 그릴 수 있었다. 기의 수발(收發)이 그만큼 한층 민감해지고 발달한 까닭이었다.
마현은 능자필의 움직임에 맞춰 블링크를 시전했다.
후우웅!
곧이어 마현이 서 있던 허공으로 능자필의 섬뜩한 조수가 할퀴고 지나갔다. 그런 능자필의 등 뒤로 마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 무조건 거리를 벌리던 때와는 확연이 다른 움직임이었다.
마현은 손날을 예리하게 세워 능자필의 목을 후려쳤다.
빠각!
목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선명하게 터졌다. 그 충격에 능자필의 신형이 잠시 휘청거리는 것을 마현은 놓치지 않고 오른발로 그의 다리를 쓸었다.
마현은 바닥에 쓰러진 능자필의 배를 발로 밟으며 다시 마나 재벌린을 만들었다.
푹!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능자필의 왼쪽 가슴을 마나 재벌린으로 내려찍었다. 능자필은 이미 죽은 자였기에 그의 가슴에서는 피조차 나오지 않았다.
다만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다가 풀썩 가라앉을 뿐이었다.
리치라면 당연히 라이프 리셉터클(Life receptacle)이 따로 있어 그것을 파괴해야 하겠지만 능자필은 리치가 아니라 강시였다.
그렇기에 일단 인체를 구성하는 가장 주요 부위인 목과 심장을 파괴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 능자필의 움직임이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죽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었다. 이미 생기가 없는 몸이지만 죽지 않은 귀물이었기에 마현은 능자필의 몸에서 혼의 소멸 유무로 판가름하려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내 들려온 굉음에 잠시 미뤄야 했다.
콰과광!
도종극이 파묻혔던 바위가 터진 것이다.
“으아아아!”
사방으로 비산하는 바위 파편들과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 속에서 도종극의 분노에 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계곡 위로 한 줄기 선이 높이 치솟아 올랐다가 다시 가파르게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그곳에는 먼지를 한껏 뒤집어쓴 도종극이 서 있었다.
“가히 나쁘지 않아. 크크크.”
도종극은 손으로 목을 잠시 주물렀다.
“불사지체(不死之體)! 이 몸은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이 되었다. 크하하하하하!”
도종극은 목을 젖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네놈이 귀곡에 무슨 요망한 술수를 부려 시독을 없애고, 망자를 다스리는지 몰라도…… 오늘 네놈이 여기서 죽는 것은 변함이 없다.”
마현이 장황한 도종극의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말이 많군.”
마현의 지적대로 도종극은 말이 많았다.
또한 불안해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자신감으로 넘쳐흘렀다. 조금 전 마현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았지만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아 그런 모양이었다.
“너도 곧 이렇게 만들어 주지.”
마현은 발로 밟고 있는 능자필을 눈동자로 가리키며 싸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종극은 목이 부러지고 심장이 있던 왼쪽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채 널브러져 있는 능자필을 보며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하지만 그와 상반되게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귀가 막힌 것인가? 다시 말하지, 너는 오늘 여기서 죽는다.”
도종극은 다리를 들어 올려 바닥을 쿵 찍었다.
그러자 죽은 듯이 누워 있던 능자필이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허리를 튕기며 마현의 목을 향해 날카롭고 긴 손톱을 오므린 조수를 내밀었다.
능자필의 귀곡귀조도 무서운 무공임에는 틀림없지만 마현이 익힌 마라독혈수공은 그보다 더 무섭고 악랄한 무공이었다.
마현의 손은 흡사 나뭇가지를 거침없이 타고 흘러내려가는 한 마리 독사처럼 능자필의 팔을 휘감았다.
빠각!
그런 마현의 손이 환영을 만들며 사방으로 비산하자 능자필의 팔이 바깥쪽으로 꺾이며,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팔을 부러뜨리며 홀연히 사라졌던 마현의 손이 능자필의 가슴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리고 마현의 장심에서 마력이 분출되었다.
그것은 장풍이었다.
콰과광!
그 격력(擊力)에 능자필의 상의가 갈가리 찢기며 이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능자필의 몸은 바닥에 내리꽂혔다.
“이렇게 말인가?”
마현은 다시 능자필의 가슴을 발로 찍어 누르며 도종극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조금 질이 떨어지는 약재를 사용해서 그런가? 내가 봐도 형편없군.”
도종극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맴돌았지만 그렇다고 무서움이나 공포가 깃들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야릇한 미소가 언뜻 그려지는 듯 보였다.
“그래도 천강시는 천강시. 그 정도로 죽지 않아!”
“크아아아!”
도종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능자필이 온전한 왼팔로 마현의 다리를 끌어내리며 용수철이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마현은 도종극을 여전히 쳐다보며 손을 뻗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능자필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콰득!
마현의 다섯 손가락이 능자필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칸플러그레이션 오브 헬(Conflagration of hell)!”
마현의 손에서 검은 불길이 치솟았다. 그 기이한 불은 금세 능자필을 집어삼켰다.
“크아아아!”
마현의 흑마법, 지옥의 겁화 마법으로 인해 섬뜩한 불에 휩싸인 능자필은 처음으로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