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
15화
“도, 동영반님.”
수세에 몰렸던 천호장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또한 금대치를 비롯한 구금상단 무사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영반…… 맹달?”
마현은 황실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동영반 맹달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황실 십대고수 중 일인이었다.
마현의 얼굴이 더욱 딱딱해진 이유는 황실 십대고수의 등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맹달의 신분이 마현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의 신분은 금의군 네 영반 중 동영반.
더욱이 금의군은 황제의 수족.
동영반 맹달과 그 아래 천호장 넷이 움직였다는 것은 적어도 금의군의 사분지 일과 맞서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일의 배후에 황실이 있다는 것인가? 설마 황제가?’
더욱이 직접 부딪혀보니 맹달의 무력은 가히 상상 이상이었다. 현 무림의 십대고수와 부딪혀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은 마현 자신과 비교했을 때 적어도 동수, 아니면 반수 정도 앞선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것보다 마현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는 것은 쉽게 그와 싸울 수도 없다는 것이다. 맹달에게 검을 내민다는 것은 결국 황제에게 검을 내민다는 뜻.
결국 역모로 귀결된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와아아아!”
그때 군부를 상징하는 깃발과 함께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마현은 골검을 잡고 있던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답지 않게 입술을 지긋하게 깨물었다.
더 이상 율기를 잡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다가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진다.
단 한 명의 등장으로 인해서.
마현은 맹달을 쳐다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철군하라!”
푹 푹 푹!
언제 수백의 병력이 있었냐는 듯 전장에서 날뛰던 다크 스켈레톤들과 흑사신이 땅속 어둠으로 사라졌다.
“잊지 않겠소. 오늘의 일은!”
맹달을 노려보던 마현의 신형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동이 트기도 전 새벽.
황군이 구조루 8, 9층을 덮쳤지만 그곳에는 홀로 고군분투한 기녀들만이 잠에 곯아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 * *
계명성이 어둠을 몰아버린 이른 새벽.
캄캄한 밤에는 몰랐지만 어제까지 웅장함을 자랑하던 구금상단 총단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마현의 사술로 만들어진 불길은 마치 석칠을 먹고 자란 놈처럼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전각 등을 무너트리고서야 어렵사리 불길을 잡았다.
총단 내 전각들의 절반 이상이 무너지고, 불에 탔다. 그나마 온전한 전각은 십분지 일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완전히 무너진 흉측한 폐가의 모습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 총단 곳곳에는 무사와 일꾼들이 하나같이 지친 모습으로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있었다. 하지만 홀로 서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금대치였다.
그 역시 땀에 절어 있었고, 얼굴과 옷에 시커먼 그을음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런 금대치의 입술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분노로 가득 찬 그의 눈동자에서는 은은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유감입니다, 금 대인.”
구조루를 급습했던 동영반 맹달이 아무런 소득도 없이 맨손으로 돌아왔다.
금대치는 짧은 그 말 한 마디로 마현을 놓쳤음을 알아차렸다. 그렇다고 그를 타박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용의주도하게 총단을 침입한 자다.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는 바였다.
“맹 장군, 부탁이 있소.”
“말씀하십시오.”
금대치는 몸을 돌려 맹달의 눈을 직시했다.
“금의군을 동원하지 말아주시오.”
맹달의 눈이 살짝 커졌다.
분명 금의군을 이용해 마현을 붙잡아오라고 부탁할 줄 알았다. 그런데 금대치는 그의 예상과 정반대의 부탁을 해온 것이다.
“하오나 대영반께서…….”
맹달은 금의군의 수장인 대영반 조범을 떠올렸다.
“조 사제에게는 내가 잘 말해두겠소.”
“그렇다면……?”
“복수는 이 손으로 직접 할 것이외다.”
금대치의 의지가 확고했다.
“휴우, 알겠습니다. 금 대인.”
맹달은 금대치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모시는 상관의 사형이었으니까.
찌릇!
그때 맹달의 피부를 살짝 찌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맹달은 그 감각이 느껴지는 허공으로 급히 고개를 올렸다. 허공에는 파랗게 변하는 하늘과 머리를 내민 태양뿐이었다.
‘쓸데없이 예민해져 있군.’
“무슨 일이오?”
돌연 맹달이 허공을 쳐다보자 금대치도 그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맹달이 쳐다본 허공에는 마현이 떠 있었다.
마력을 갈무리하는 것도 모자라 하이드 마나 포스 마법, 즉 마나 은폐 마법까지 이용해 기의 흐름을 완벽히 지운 상태에서 투명화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흑풍대는 낙양에서 모습을 감췄지만 마현은 오히려 구금상단 총단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은신처로 가장 어두운 등잔불 바로 아래를 택한 것이다.
금의군 대영반의 이름이 나오자 마현은 잠시 평정심을 잃을 뻔했다. 그로 인해 만들어진 미약한 틈을 맹달은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하마터면 자신의 존재를 들킨 뻔했다.
마현은 최대한 마음을 다스리며 침음성을 속으로 삼켰다.
‘구금상단, 검림, 율기……, 그리고 금의군 대영반까지.’
이쯤 되면 배후가 황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였다.
더욱 무거워진 마음에 마현의 고심이 한층 깊어졌다.
또 하나의 갈등이 생긴 것이다.
바로 전처럼 율기의 행적으로 뒤쫓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인물인 대영반의 뒤를 쫓을 것인지 말이다.
분위기로 보아 동영반이 이끄는 금의군이 율기와 구금상단을 더욱 철저하게 보호할 것이 분명했다. 사실상 그건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다. 강수를 둔다면 분명 율기를 생포할 자신이 있었다.
단지 문제는 시간이다.
어느새 칠 일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벌써부터 천하는 정마대전에 대한 소문으로 파다하다. 거기에 황군까지 가세한다는 소문도 일파만파 퍼지고 있었다. 얼마 후면 출병한다는 소식까지 있었다.
그것은 단지 마교만의 문제도 아니다.
북해빙궁과 남만야수궁도 있다.
마현은 고심 끝에 결정했다.
‘범을 잡으려면 범굴에 들어가라 했다.’
마현은 고개를 틀어 북동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에 자금성이 있었다.
* * *
거대한 광장에 비하여 오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광장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붉은 건물이 있어서였다. 그 붉은 건물은 이 나라 주인의 거처인 동시에 모든 권력과 재화가 흘러나온다는 자금성이었다.
그 광장 끝에 마현이 서 있었다.
“흠…….”
마현의 목에서 침중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생각 이상이었다.
마현은 건물 자체에서 이런 위엄이 흘러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 하르센 대륙의 그 어떤 제국의 황실도 이 정도는 아니리라.
더욱이 광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피부를 찌르는 기세와 위엄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현이 이렇게 느낄 정도인데 범인들은 오죽하겠는가?
어쩔 수 없이 광장을 지나는 범인들을 보면 하나같이 주눅이 든 표정으로 재빨리 지나가려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금의군의 수가 대략 3만 이상으로 추정. 거기에 황궁 십대고수 중 무려 아홉 명이 포진.’
마현은 북경으로 오면서 마교로부터 받은 정보를 되새겼다.
금의군은 금군도독 아래로 두 명의 남·북 진무사(鎭撫司)가 존재한다.
진무사는 하나의 기관이면서 수장을 가리킨다.
남진무사는 의장 및 경호 등 황제의 실질적인 신변보호를 담당하며 북진무사는 궁정의 수호 및 수도의 순찰, 죄인의 체포 나 신문과 같은 형옥(刑獄)과 군장(軍匠)을 장악하고 있었다.
즉,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칼에 찔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죄인들을 가차 없이 잡아가는 금의군이 바로 북진무사 아래의 금의위였던 것이다. 또한 금의군의 실질적인 힘을 가진 곳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황제를 제외하곤 누구의 명도 받지 않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칼을 휘두르는 곳이다.
‘동영반 맹달과 대영반 조달은 북진무사의 휘하.’
즉 마현이 상대해야 할 이는 적어도 북진무사 휘하 금의위들이었다. 결국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은 금의군 전체를 상대한다는 것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마현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그때 순찰을 돌고 있던 금의군 일 개조 십여 명이 마현 앞으로 다가왔다.
“뭐하는 놈이냐?”
그들을 이끄는 백호장이 마현을 수상하게 여기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엄포를 놓았다.
“과거를 준비하는 서생입니다.”
백호장이 가늘어진 눈매로 마현의 위아래를 훑었다.
검은 비단으로 지어진 학사의를 입고 있으니 마현의 말도 그리 틀려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더 이상 위협적인 태도는 취하지 않았다.
“경을 치르고 싶지 않거든 썩 물러가라!”
하지만 백호장은 살벌한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마현이 뒤로 물러나 광장을 벗어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백호장은 위사들을 데리고 다시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일단 부딪혀봐야겠다.’
광장을 막 벗어난 마현의 모습이 모퉁이를 돌자 그대로 사라졌다.
휘이이잉!
마현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한 줄기 바람이 매섭게 스쳐지나가는 허공이었다.
전처럼 마력을 단전으로 갈무리하고, 하이드 마나 포스 마법으로 더욱 완벽히 기척을 지워버렸다. 거기에 투명화 마법까지 더했다.
‘이곳이 오문(午門)이니…….’
오문은 자금성으로 통하는 네 방위의 문 중 남쪽에 위치한 문인 동시에 정문이었다. 마현은 오문 위에서 북쪽으로 시선을 훑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전각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마현의 시선이 몇 개의 전각을 넘어 그중 가장 웅장한 전각에 멈췄다.
자금성 내 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보아 크고 작은 황실 행사는 없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십중팔구 황제는 건청궁에 있을 확률이 컸다.
하지만 마현은 자금성 내 남쪽, 외조라고 불리는 정전(正殿)인 태화전(太和殿)과 건청궁과 태화전 중앙에 위치한 중화전(中和殿)을 살피며 북쪽 구역인 내정(內廷)으로 들어섰다.
마현이 바라던 것처럼 태화전과 중화전에 황제는 없었다.
건청궁 위에 모습을 드러낸 마현은 마력을 암중에 끌어올려 눈에 집중시켰다. 안력을 돋운 다음 투시 마법으로 건청궁 안을 샅샅이 살폈다.
‘있다!’
마현의 눈빛이 반짝였다.
건청궁 중앙, 금으로 조각된 용조각 병풍 앞 보좌(寶座)에 황금빛 구룡포를 입은 중년 사내가 앉아 있었다. 자금성에서 황금빛 구룡포를 입을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
바로 작금의 황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