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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17화 (217/351)

# 217

17화

“아무리 그렇다 한들 폐하의 안위가 달린 문제일세. 북진무사에게도 알리게.”

“하오나 섣불리 움직였다가…….”

윤심배는 말을 잇다가 조자경이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오랜 생활 조정에서 수많은 알력 다툼을 겪은 그다.

그만큼 눈치가 빨라졌고, 모든 행동에 신중해졌다. 다른 이라면 그저 조자경이 다른 곳을 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거라 여기겠지만 윤심배는 달랐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기에 윤심배는 말문을 닫으며 조자경이 내려다보고 있는 정원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원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이곳은 조자경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발을 들어놓을 수 없는 곳. 그런 곳에 느닷없이 사내가 나타난 것이다. 그 어떤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었다.

게다가 이 장원에는 윤심배를 따라온 금의위 또한 포진하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대화를 엿듣게 되어 죄송합니다.”

그 사내는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차 한 잔 하시겠는가?”

‘응?’

윤심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조자경의 평소 성정이라면 호통을 치고 치도곤을 내야 정상이다. 그런데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정자 위로 초대하는 것이 아닌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 사내도 당연하다는 듯 여유로운 걸음으로 정자 위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조 대인, 혹 아시는 분입니까?”

안면이 있는 자라면 납득이 간다.

거기에 각별한 인연이 있다면 아무런 소란도 없이 이 정원에 들어올 수 있었을 것이고, 당연히 조자경이 정자 위로 초대했을 것이다.

윤심배는 그렇게 추측했다.

아니 그것 외에 달리 이유가 없어 보인 것이다.

그런데…….

“처음 뵙겠습니다.”

그 사내는 조자경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정중히 인사를 건네는 게 아닌가.

“마현이라고 합니다.”

“조자경이라고 하네. 앉으시게.”

윤심배는 둘의 인사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조금 식었지만 아직까지 마실 만 할 걸세.”

조자경이 직접 여유분의 찻잔에 차를 따라 마현에게 건넸다.

“좋은 차이군요.”

“차에 대해 잘 아시는가?”

“그저 맛이 있고, 없음 정도만 어렴풋하게 느낄 정도입니다.”

“하하하, 그 말이 맞네. 맛있으면 그게 좋은 차이지.”

둘의 대화를 듣는 내내 윤심배는 답답해졌다.

도대체 누구기에 조정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실세 중의 실세인 조자경을 저리 태연하게 대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윤심배는 예의가 아닌 것을 알지만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소협은 누구시오?”

“정식으로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마교의 소교주로 있는 마현이라고 합니다, 조 대인.”

마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 번 포권을 취하며 신분을 밝혔다.

“크흠!”

윤심배는 마현이 무림인임을 밝히자 불편한 음성을 삼켰다. 하지만 조자경이 있어 그저 입을 꾹 닫을 뿐이었다.

조자경은 마현의 소개를 듣자 황군이 곧 천무왕과 함께 마교를 정벌하러 간다는 내용을 떠올렸다. 그리고 몇 가지 기억을 더 떠올렸고, 자연스레 그 기억들이 조합되어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다.

급히 돌아가는 머릿속과는 달리 조자경은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혹 소협이신가?”

“그렇습니다, 대인.”

“그렇게 대놓고 밝힐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무림인들은 확실히 다르군.”

조자경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

분명 조자경도, 마현이라고 소개한 이도 서로 오늘 처음 보는 사이다. 그런데 둘은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도 공통된 주제로…….

윤심배가 조자경의 측근으로 그를 보필해온 지 수십 년이었다. 그런 윤심배가 알기에 조자경은 그 어떤 무림인과도 친분을 쌓지 않았다.

“배포가 크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겁을 모른다고 해야 하나…… 모르겠군.”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라……. 흠…….”

조자경은 마현을 쳐다보며 나직하게 침음했다.

“하긴 턱밑까지 칼이 들어왔으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가 싶었지만 이내 조자경의 눈빛은 싸늘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행동만으로도 역모일세.”

매서운 조자경의 눈빛을 마현은 피하지 않았다.

“만약 대인이 지금의 제 입장이라면 그냥 순응하며 적에게 순순히 목을 내놓으시겠습니까?”

오히려 마현이 조자경에게 반문했다.

“…….”

마협의 대답에 조자경은 입을 열지 않고 여전히 마현을 싸늘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마현도 조자경의 눈을 직시했다.

‘무, 무슨 소리야? 역모라니?’

윤심배는 머리를 부여잡다가 스치는 그 무엇이 있었다.

“……?”

윤심배는 크게 떠진 눈으로 마현을 쳐다보았다.

“그, 그렇다면 어제 황제 폐하께……!”

윤심배의 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결코 무서워서가 아니다.

분노다.

분노가 극에 치달아서 표출되는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이었다.

“네놈이었더냐? 감히 황제 폐하를…….”

호통을 치는 윤심배의 한 음 한 음마다 짙은 분노와 살기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윤심배의 목소리는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잠시의 정막을 끝으로 조자경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흘러나온 목소리는 눈빛만큼 싸늘했다.

“소협의 집을 멸하려 하는 분이 만약 황제 폐하라면 어찌할 생각인가?”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싸늘한 조자경과 달리 마현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렇다면?”

“그리도 대답이 듣고 싶은 것입니까, 대인?”

“…….”

조자경은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썹을 꿈틀거리는 것으로 속마음을 내비칠 뿐이었다.

“칼자루를 든 자가 대인이시니 대답을 해드려야겠군요.”

마현의 몸에서 형용할 수 없는 진득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컥컥, 컥!”

그 살기에 휘말린 윤심배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서서히 얼굴이 창백해져갔다.

물론 조자경도 윤심배의 얼굴과 별로 차이가 없었지만 행동에서는 너무나도 큰 차이를 보였다.

윤심배는 목을 잡고 괴로워하며 몸부림을 쳤지만 조자경은 여전히 처음 그대로 찻잔을 가벼이 잡고 있었다. 숨을 쉬지 못해 얼굴이 창백해지고 심장이 멎으려고 하는데도 말이다.

“제 대답이 흡족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마현의 다시 입을 열자 살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크헉!”

윤심배가 크게 숨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컥컥컥.”

그와 반대로 조자경은 큰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미처 숨이 트이기도 전에 웃음을 터트린 터라 오히려 다시 숨이 막혀 순간 사레가 들렸다.

마현은 그 모습에 싱긋 웃으며 흰 이를 드러냈다.

조자경을 찾아온 이후 처음 짓는 웃음이었다.

“내 모습을 비웃는 겐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다만?”

“최악의 상황은 면하게 되어 기뻐서 그렇습니다.”

“최악의 상황은 면하게 되어서 기쁘다?”

조자경의 반문에 마현은 웃음을 다시 거뒀다.

“적어도 황제 폐하는 아니니까요.”

마현의 말에 조자경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조자경은 마현을 대하며 처음으로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리고 대인께서는 이 일을 벌인 자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확신이 지나치군.”

마현은 조자경의 말에 그저 웃었다. 하지만 대답으로 충분한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치세. 그럼 소협은 내게 어떤 패를 줄 수 있는가?”

“대인, 지금 저자와 무슨 말씀을 나누고 계신 겁니까?

윤심배가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그만 노기를 거두게.”

조자경이 그런 윤심배를 다독였다.

“하오나 대인!”

“어허.”

조자경이 나직하게 윤심배를 질책했다.

“소협이 이해하시게. 저 사람은 조정에 있으면서도 때가 묻지 않은 몇 안 되는 이들 중에 하나이니.”

조자경은 윤심배에게서 완전히 관심을 거두며 마현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 말했던 패를 보여 보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제가 가진 패가 과연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조범 대영반, 구금상단의 금대치, 본교의 총사였던, 아니 세작인 율기. 그 셋이 사형제지간입니다.”

“금대치와 조범이라…….”

조자경은 조용히 읊조리다가 윤심배를 쳐다보았다.

“자네, 조금 전 낙양이라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박 환관에게 기별을 넣어주게.”

“바, 박 환관 말씀이십니까?”

윤심배가 놀란 이유가 있었다.

박 환관, 이름은 인태.

그는 평범한 환관이 아니었다.

조정의 실세 중 실세.

바로 동창의 도독인 까닭이다.

단순이 조자경이 동창 도독을 보자고 해서 윤심배가 놀란 것은 아니다. 바로 박 환관과 조자경은 조정에서도 사이가 좋지 않기로 소문이 자자한 사이인 까닭이었다.

“적의 적은 바로 동지가 아닌가?”

오월동주(吳越同舟)를 하겠다는 뜻이다.

윤심배는 고개를 숙여 그 뜻을 받아들였다. 정치판이란 다 그런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인께서 패를 뒤집어야 할 듯합니다.”

“그렇군. 뭐를 뒤집어야 하나?”

조자경은 마현을 주시하며 찻잔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아무래도 읽힌 패를 내는 게 상책이니 섭섭하게 생각지는 마시게나.”

“짚이시는 이가 있군요.”

조자경은 여유로운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무슨 패가 나올지 몹시 궁금해지는군.”

“진필성.”

“진필성?”

“천무왕이자 무림맹주인 진필성은 온전히 무림맹을 흡수하지 못했습니다. 내부에서 반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호오.”

조자경은 나직하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만큼 조자경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는 뜻이다.

“흠…….”

고심하던 조자경이 무거운 음색으로 말했다.

“패가 몇 개 남았는가?”

“고만고만한 것들을 제외하면 하나 남았습니다.”

“그런가? 그렇군.”

다시 고심에 감긴 조자경이 한참 후 조용히 입을 뗐다.

“시일은 조금 걸리겠지만 황제 폐하를 만나게 해주지.”

마현의 표정이 환해졌다.

“자네의 마지막 패를 보고 싶네.”

“별다른 것은 아닙니다.”

“그게 무엇인지 어디 한번 펴 보이게.”

“황제 폐하의 목숨. 이게 제 마지막 패입니다.”

담담하면서도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

소소한 담소를 나누는 듯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엄청난 것이었다.

“확률은?”

“제 목숨을 버린다면 십 할!”

마현의 부드러웠던 목소리에 강한 자신감이 담기며 어조가 조금 딱딱해졌다.

“황실 십대고수가 넷이나 붙어 있는데도?”

조자경은 기밀 중에 기밀을 서슴없이 밝혔다.

“그래서 십 할입니다.”

“끄응!”

조자경은 앓는 소리를 삼켰다.

“……”

윤심배는 기가 하도 막혀서 ‘어디서 망발을 늘어놓는 것이냐!’는 말을 내뱉지도 못하고 그저 머릿속으로만 떠올릴 뿐이었다.

“들었는가? 황제 폐하의 신변을 더욱 강화해야겠어.”

윤심배에게 충고를 한 후 조자경의 표정이 약간 변했다. 한껏 무겁게 꾹 닫혔던 입술이 살짝 말려 올라간 것이다.

“내게도 마지막 패가 하나 남았는데 말일세.”

마현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마지막 패가 아니었습니까?”

“마지막 패를 보여줬다고 말하지 않았네만.”

조자경의 입술 끝에 달린 웃음은 승자의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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