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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28화 (228/351)

# 228

3화

참으로 유치한 생각이다.

저건 동네 꼬마가 가진 한 냥의 돈을 탐내는 이웃 어른의 탐욕스런 모습이 아닌가?

솔직히 아니길 바랐지만 예상대로 이 모든 일의 뒤에는 황사 송겸이 있었던 것이다.

“짐 또한 황사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송겸을 내려다보는 황제의 눈에 측은함이 생겨났다. 오랜 시간 그를 의지하며 함께 정사를 논의한 세월의 정 때문이었을까. 황제는 미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약해졌던 황제의 눈빛이 다시 굳건해졌다.

“황사, 짐이 너무 오래 그대를 곁에 두고 있었나 보오. 욕심은 총기를 가린다고 하더니…….”

“폐, 폐하!”

“지금부터 하는 말은 황명이니 잘 새겨들으시오.”

강건해진 황제의 말에 송겸의 몸이 번개라도 맞은 듯 부르르 떨렸다.

“당분간 짐이 별도의 명을 내리기 전까지 자택연금(自宅軟禁)을 명하오. 홀로 근신하며 죄를 뉘우친 후 예전의 순수했던 때로 돌아오기를 짐은 진심으로 빌겠소.”

“폐, 폐하! 이러실 수는 없사옵니다. 어찌 소신의 충정을 이리도 무참히 꺾어버리시나이까! 폐하!”

쾅!

결국 황제가 노기 어린 눈빛으로 어상을 거칠게 내리쳤다.

“황사! 정녕 그대에 대한 짐의 마음마저 지우게 하려는 겐가?”

“다시 한 번 재고하여 주시옵소서. 무림은, 무림은…….”

“게 아무도 없느냐!”

결국 황제의 목소리도 발악하는 송겸의 목소리로 인해 덩달아 커졌다.

진노한 황제의 목소리에 몇몇 환관들이 사색이 된 얼굴로 허겁지겁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당장 황사를 대림학당으로 데리고 가서 자택연금을 시키라!”

환관들은 황제의 명에 따라 송겸의 팔다리를 잡고 강제로 밖으로 끌어냈다.

“폐하! 폐하!”

방에서 완전히 끌려 나갈 때까지 송겸은 목 놓아 황제를 불렀다. 그 목소리에 황제는 눈을 질끈 감고 침묵했다.

* * *

‘이거 참!’

대전을 나서며 마현은 고급 비단으로 만들어진 두루마리를 내려다보며 쓰게 입맛을 다셨다.

그 두루마리는 다름 아닌 임명장이었다.

다시 펼치지 않았지만 그 안에 적힌 큼지막한 글자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했다.

대명호국대마장군(大明護國大魔將軍).

실로 거창한 직위를 받은 것이다.

“네놈 만나 말년에 팔자 한 번 더럽게 꼬였구나.”

걸왕의 손에도 마현이 들고 있는 것과 똑같은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 걸왕이 받은 직책은 대명호국대정장군(大明護國大正將軍).

걸왕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마현은 두루마리를 일단 품에 넣었다. 황제가 직접 내린 것이니 아무 곳에나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설마 황제가 그렇게 일을 저지를 줄은……, 끄응!’

좋게 생각하면 황제의 총애를 듬뿍 받은 것이고, 나쁘게 생각하면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황사가 환관들에게 끌려 나가고 바로 이어진 대전회의.

그 자리에서 마현과 걸왕은 원하던 것을 얻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과거처럼 관과 무림이 완전히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 상호 보완하는 관계로 바뀌었으며, 관에서 큰 일이 있을 때에는 무림에서도 적극 협조하고, 무림에서도 큰 변고가 있으면 관에서도 적극 협조한다는 것이다.

즉, 상부상조(相扶相助)의 길을 연 것이다.

그리고 아울러 무림이라는 세상을 인정하는 대신 언제나 이 제국의 신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주어졌다.

아울러 황사의 주도로 이루어진 무림에 관한 사안들은 모조리 폐기되었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다.

그 뒤로 황제가 마현과 걸왕에게 대명호국대마장군과 대명호국대정장군의 호칭을 내린 것이다.

실로 거창한 직위였지만 그에 따르는 권한은 전무했다. 그러나 의무는 있었다. 그 의무는 황실에 변고가 생겼을 때 마현과 걸왕은 그 어떤 일보다 우선해서 황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는 상당한 권한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대소신료가 일제히 반대했고, 결국 황제도 한 발 물러나면서 결국 권한은 없고 의무만 남게 된 것이다.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의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섭섭하신가?”

건청궁에서 나와 막 건청문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조자경이 다가왔다.

“오히려 짐을 덜어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듯하군.”

조자경은 마현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그의 눈빛에서 알아차렸다. 조자경은 마현이 섭섭해 할 것이라 여겨 조금은 마음이 불편했었다.

“자네는 나와는 다른 종자임이 확실하군. 나 같으면 매우 섭섭했을 텐데 말이야.”

대명호국대마장군의 직위 자체에 권한까지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이대로는 실상 허울뿐인 직책이었다. 결국 그 직위는 황제가 자신과 이어놓은 미약한 한 줄기 끈임 셈이다.

“시간이 되면 차나 한 잔 들겠는가?”

“죄송합니다, 대인.”

“섭섭해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화마가 집안 주춧돌까지 잡아먹기 전에 꺼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내 생각만 했군.”

조자경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일이 끝나면 그때 한 번 들리시게.”

“그리하겠습니다.”

조자경이 먼저 서둘러 건청문을 나서고 이어 마현과 걸왕이 발을 뗐다.

“바로 마교로 돌아갈 생각이냐?”

“아닙니다. 그 전에 황사를 개인적으로 만나볼 생각입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그러지.”

마현과 걸왕은 빠른 걸음으로 자금성을 빠져나갔다.

* * *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어긋났더란 말이냐!’

송겸의 얼굴에서는 치욕을 이기지 못해 부들부들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분노에 휩싸인 눈동자 속에 원통함이 어렸다.

하지만 송겸은 이내 원통함을 털어냈다.

불충이었다.

감히 모시는 주인에게 원통함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한 불충이었다.

‘내 충정은 변하지 않는다. 폐하의 마음이 나에게서 떠난다 해도.’

그리고 알아줄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충정을 알아줄 때까지 충성하는 것이 참된 신하의 참된 자세가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는 스승님이, 그리고 또 그 위 스승님이 시작하신 이 대계를 완성시키는 것만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송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지로 가려진 창문 너머로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금의군 병사들의 그림자가 내비쳤다.

“총관, 게 있는가?”

“부르셨습니까, 대인.”

병사들로 인해 총관이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대답했다.

“피곤해서 그러니 아무도 안으로 들이지 마시게.”

“그리하겠습니다, 대인.”

총관의 대답을 들은 송겸은 등 뒤에 걸려 있는 족자를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는 벽 한 군데를 슬며시 밀었다.

그르르륵!

그다지 크지 않는 소리와 함께 송겸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자그만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아래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송겸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 계단 끝에는 하나의 석문이 있었고, 그 석문 너머에는 생각보다 큰 석실이 있었다.

그리고 석실 안에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놀랍게도 송겸과 똑같이 생긴 인물이었다.

“이대로 생을 달리할 줄 알았는데 죽기 전에 제가 나서야 할 일이 생긴 모양이구려.”

그는 기쁘면서도 왠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겸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이는 전대 황실의 어의(御醫)이자 전시대에 화타재림(華陀再臨)이라는 별호를 얻을 만큼 의술이 뛰어난 고유였다.

십여 년 전 어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 수명이 다해 별세했다고 알려진 그가 지금 송겸의 서실 아래 만들어진 석실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양 어르신의 은혜를 못 갚고 가나 싶었는데…….”

머리 위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는 야광주를 올려다보는 그의 눈가에 눈물을 살짝 맺혔다.

고유는 몰락한 의원의 후손이었다.

아니 그저 몰락한 것이 아니라 역모로 무너진 의원의 후손이었다. 그런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천운이었다. 그렇게 고아가 되어 떠돌다가 송겸의 대스승이었던 양호의 손에 거둬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유는 세상에 대한, 그리고 황제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가문은 역모 사건에 끼어들지 않았었다. 그저 조정의 권력다툼에 타의로 끼어들게 되어 몰락했기 때문이었다.

양호는 그런 고유에게 복수를 약속했다.

고유 역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양호는 고유에게 한 권의 책을 주었다.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화타의 의서였다. 물론 완벽한 의서는 아니었고, 반은 소실되고 겨우 반만 남은 의서였다.

양호가 황사의 직위를 이용해 황궁보고를 드나들 때 천운이 닿아 황궁보고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표지에 제목도 없는 채로 바닥에 뒹구는 화타의 의서를 발견한 양호는 황궁보고 밖으로 몰래 밀반출시켰다.

고유는 그 의서를 이용해 훗날 당대 최고의 의원이 되었고, 어의가 되었다. 그리고 가문을 몰락시킨 원수들에게 복수도 했다.

물론 대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대가가 바로 지금의 현실이었다.

어릴 적에는 살기 위해, 복수를 위해 받아들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도 기꺼이 거사에 동참했다.

어릴 적.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릴 적, 뚜렷이 기억나는 아버지의 입에서 들은 충정심. 세월이 지날수록 그 말이 가슴 속에서 자란 것이다. 어찌 보면 그것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유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수년이나 되는 시간 동안 해도 보지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고 몇 평 되지 않는 좁은 석실에 갇혀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죽지도 않은 자신의 장사를 치룬 후, 그는 석실에 들어와 송겸의 얼굴로 수술했다. 그 이유는 족히 일이 년은 지나야 완벽하게 송겸의 얼굴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할까요?”

고유의 말에 송겸은 고개를 끄덕인 후 옷을 벗었다.

전라가 된 송겸은 석실 한구석에 놓인 석탁 위로 올라가 누웠다. 옷을 입고 있을 때는 몰랐지만 그의 몸에서 수백 개의 금침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고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송겸의 머리를 풀어헤쳤다. 그러자 그의 머리에도 금침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겠군요. 황사의 몸에 숨어 있는 악마(惡魔)가…….”

“악마가 아니라 불멸(不滅)의 충정(忠情)입니다.”

고유가 웃었고, 송겸도 웃었다.

잠시 후 웃음이 걷히자 송겸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시작하겠습니다.”

고유는 침을 하나 들어 송겸의 수혈 자리에 꽂았다. 그러자 송겸의 몸은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그리고 완전히 깊은 잠에 빠질 때까지 잠시 기다린 고유는 손을 뻗어 금침을 하나씩 뽑기 시작했다.

스윽.

고유가 송겸의 몸에서 무려 한 척에 가까운 금침이 뽑았다.

분명 깊은 잠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송겸의 얼굴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일그러졌다. 그리고 미약한 신음도 흘러나왔다.

퉁!

그러자 마치 막혔던 물길이 뚫린 것처럼 송겸의 몸이 들썩였다.

고유는 장장 반시진에 걸쳐 금침을 하나씩 뽑아갔다.

그럴수록 송겸의 얼굴은 안쓰러울 정도로 일그러졌고, 그의 몸은 더욱 격렬한 경련이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고유는 송겸의 백회혈에 꽂혀 있는 금침을 뽑았다.

“휴우.”

고유는 깊은 숨을 몰아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엄청난 심력의 소모로 서 있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까닭이다.

후우우우웅!

수백 근의 무게가 나가는 단단한 석단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렸다. 고유는 앓는 소리를 삼키며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고유는 그 사이 황금빛 서기로 온몸을 두른 송겸을 잠시 내려다본 후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었다. 그리고는 송겸이 벗어놓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러자 고유는 영락없는 송겸으로 변해 있었다.

“햇빛이라……, 그립군.”

고유는 송겸이 들어왔던 문을 열고 그의 서실로 이어진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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