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36화 (236/351)

# 236

11화

“유, 율 선생님!”

누군가의 입에서 율기를 올려다보며 경악성을 내뱉었다.

“항복하라! 항복하면 살려줄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마현의 손을 타고 마력이 율기의 시신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율기의 몸이 꿈틀거렸다. 얼굴은 급속도로 창백해졌고, 몸은 해골처럼 말라갔다.

그러더니 목이 꺾여 아래로 축 늘어져 있던 율기의 고개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감겼던 눈도 부릅떠졌다. 그런 율기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캬아악! 캬하아!

율기는 짐승처럼 울음을 토해냈다.

그리고는 날카로워진 손톱을 드러내며 허공을 마구 할퀴었다.

“반항하는 자들은 모조리 귀물로 만들어버리겠다!”

마현은 모든 이가 똑똑히 볼 수 있도록 근처에 떠 있는 라이트구를 끌어당겼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밝은 빛 아래 흉측한 모습으로 발광하는 율기의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렇게 공포심이 서서히 밀려올라갈 때 그저 흐느끼던 귀곡성이 은밀한 속삭임으로 바뀌었다.

―살고 싶어.

―살려줘.

―난 저렇게 되고 싶지 않아…….

귀곡성에 홀린 진유림 검사들은 그게 망자들의 목소리인지 자신들의 목소리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검을 든 자 죽을 것이요, 검을 버린 자 살 것이다!”

―꺄아아아아!

―캬하아아아!

그때 다크 스켈레톤과 좀비, 구울이 귀성을 터트리며 더욱 짙은 사기를 흩날렸다. 그들 중심에 좀비가 된 율기가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대주, 검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려라!』

『명!』

왕귀진은 자신의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챙그랑.

그러자 검사들 사이에서 검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전염병처럼 진유림 검사들은 앞 다퉈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하, 항복하겠소. 그러니 나를 저런…… 휴, 흉측한 귀물로 만들지 말아주시오!”

“으허억!”

“사, 살려주십시오!”

최대한 담담하게 항복을 하는 자, 그저 바닥에 엎드려 벌벌 떠는 자, 울부짖으며 살려달라는 자.

어느 전장이든 다 그렇겠지만, 기세가 꺾이자 한순간에 싸움이 끝났다.

‘휴우, 그래도 절반 정도는 살린 것인가?’

저들은 모조리 포박되어 북경으로 보내질 것이다.

그들을 살릴지 아니면 죽일지는 황제가 판단할 것이다.

“걸왕 선배님, 그리고 청명진인님. 뒤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마현은 망자들을 불러들였다.

흑사신과 암사령은 좀비와 구울이 된 강시들을 다시 주검으로 돌려보내며 깊은 어둠으로 돌아갔다. 흑풍대 역시 다크 스켈레톤들을 불러들였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어둠에 휩싸인 무당파는 다시 은은한 도력으로 채워져 갔다.

* * *

여명이 밝았다.

어둠에 가려져 있던 처참한 무당파 내 전경이 드러났다.

휘이잉―

시원해야 할 한 줄기 아침 바람이 역겨운 피비린내를 잔뜩 머금고 돌아다녔다. 누래야 할 흙바닥은 검붉었다.

“하아.”

청명진인은 그런 광경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인가?’

그 물음에 고소가 머금어졌다.

무엇이 다행이고, 무엇이 다행이 아닌 것인지 솔직히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싸움에 무당파 제자 무려 삼백여 명이 명을 달리했다. 그 중 이백여 명이 실질적으로 무당파의 무력을 뒤받쳐주는 태극제자들이었다. 그 점을 따진다면 절반 이상이 타격을 받은 것이고, 무당파의 전 전력으로 따지면 삼분지 일에 가까운 타격을 받은 것이다.

“스승님.”

망연히 서 있는 청명진인 뒤로 학방이 다가왔다.

“일은 마무리가 되어 가느냐?”

“마무리가 되어가옵니다만……, 금의군 출신의 주검들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본파 제자들과 개방도는 절차에 맞게 화장하거라.”

“그리하겠습니다, 스승님.”

예를 갖추고 돌아서는 학성을 청명진인이 다시 불러 세웠다.

“아직까지 현이를 친구로 생각하느냐?”

청명진인은 어젯밤 마현이 보여준 사술을 떠올렸다. 몸서리칠 정도로 끔찍한 마공인 것이다. 특히나 아무런 의식과 술법도 없이 죽은 자를 강시로 깨우는 광경은 다시는 상상하기조차 싫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다.

“스승님이 무얼 걱정하시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나……, 후에 일은 그때 결정할 생각입니다.”

“그래.”

청명진인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자 학성은 다시 한 번 예를 갖추고 자리를 떴다.

“하아.”

청명진인은 한 번 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장문인실로 들어갔다. 이미 걸왕과 마현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제의 승리로 분위기가 밝아야 하건만 오히려 무겁기 그지 없었다. 그 이유는 개방 역시 생각보다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개방도는 다른 문파에 비해 사실상 무력이 떨어진다.

그렇기에 이곳으로 온 일천의 개방도 중 살아남은 자는 오백이 채 되지 않는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어르신.”

“은혜는 무슨……, 대신 장례나 잘 치러주게.”

걸왕에게서 질퍽한 술 냄새가 풍겼다.

“성의를 다해 진혼제를 올리겠습니다.”

청명진인의 대답을 들은 걸왕은 손에 쥐고 있던 호로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마 독한 술로 속내를 달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왜 저자의 시신을 가지고 온 것이냐?”

걸왕이 애써 감정을 죽인 채 퉁명스럽게 물었다.

“율기라는 자를 죽여 이 싸움을 쟁취한 것은 좋으나 아쉽군. 사로잡았다면 더 큰 것을 얻어낼 수 있었을 텐데.”

청명진인의 목소리에는 많은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그가 죽어 한 명이라도 더 산 것이 고마웠지만, 율기가 죽어 더 이상 얻어낼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어지럽게 섞여 있었던 것이다.

“이자는 죽었지만 혼마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

걸왕이 호로병을 입에서 떼며 마현을 쳐다보았다. 물론 청명진인도 약간 커진 눈동자를 만들었다.

“……초혼술?”

청명진인은 마현이 만들어낸 강시를 떠올리며 물었다.

마현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율기의 시신 앞으로 걸어갔다. 마현의 몸에서 피어나는 마기가 자연스레 율기의 시신으로 스며들었다.

우우우웅!

마기와 율기의 시신이 공명하자 옅은 파동이 만들어졌다.

“어둠의 기운의 주인, 나 카칸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주검 곁에 맴도는 혼백이여, 일어나 어둠 앞에 경배하라! 소울 서먼즈!”

무형의 파장은 곧 유형으로 바뀌었다.

율기의 시신 위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는 마기를 흡수하며 점차 사람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헛!’

청명진인과 걸왕은 동시에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초혼술이라고 해서 도교 문헌에 남아 있는 구절처럼 접신이나 강신술 같은 것을 떠올렸는데, 설마 중천에 떠도는 혼백을 유형화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마치 사람에게서 색을 빼앗으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채색 연기는 시신과 똑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체로 내려가면서 형체가 흐트러지는 것만 빼고는 시신과 완전히 똑같았다.

‘도대체 듣도 보도 못한 이 능력은 뭐란 말인가?’

더 놀랄 것이 없다고 자부하던 걸왕이 이럴 정도인데 청명진인은 오죽 하겠는가? 그는 너무 놀라 자신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것마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나는 죽었는데? 어떻게…….

율기의 혼백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현을 보고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내 그의 얼굴에 공포라는 감정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율기의 혼백은 결국 공포심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기 위해 벽으로 몸을 날렸다.

“죽었다고 내 손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나, 율기?”

마현은 냉소를 터트리며 소맷자락을 펄럭였다.

그러자 율기의 혼백과 같은 회색 유형의 연기 몇 줄기가 마현의 소맷자락에서 뿜어져나갔다. 바로 망자의 혼령들이었다. 마현의 수족이 된 망자들의 혼령은 그의 뜻에 따라 도망치는 율기의 몸을 붙들었다.

―이히히히!

―키키키키!

망자의 혼령들은 율기의 양 팔과 목, 그리고 허리를 끈질기게 잡고 늘어졌다.

―놔! 놔! 놓으란 말이다!

율기가 발악했지만 망자의 혼령들을 온전히 뿌리치지 못했다. 결국 율기의 혼령은 흉한 몰골로 마현 앞으로 질질 끌려왔다.

너무나도 괴기스러운 장면에 청명진인과 걸왕은 그저 마른침을 꿀컥 삼키며 바라보고 있었다.

망자의 혼령들은 마현의 의지대로 율기를 마현의 발아래 강제로 무릎을 꿇렸다. 도망치기 위해 발악하던 율기도 결국 체념했는지 더 이상 몸부림치지는 않았지만 격노한 감정을 얼굴에서 숨기지는 않았다.

시퍼런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율기의 시선에 마현은 더욱 차가워진 냉소를 머금을 뿐이었다.

“선택은 두 가지.”

마현은 율기의 혼백 앞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스스로 본인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거나, 아니면 혼백이 지워지며 강제로 입을 열던가…….”

마현은 율기의 혼백에게서 떨어지며 의자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깍지를 꼈다.

―차라리 내 혼백을 지워라!

“지워져도 네놈의 입은 열린다!”

마현의 눈에 마력이 차오르며 검게 물들었다.

흰자위도 없어진 검은 눈에 율기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으으으! 으아아아아!

율기는 비명을 지르다가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다시 도망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다시 망자들의 혼령에 끌려 내려왔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군.”

마현의 의지를 느낀 망자 하나가 율기의 머리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강제로 마현의 눈이 있는 곳으로 율기의 얼굴을 돌렸다.

―뭐, 뭐하는 짓이……, 컥!

마현의 눈과 마주치자 율기의 혼백은 벼락에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그를 강제로 잡고 있던 망자들의 혼령이 주위로 흩어졌다.

마현의 눈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른 검디검은 마기가 율기의 눈으로 스며들었다.

―아, 안 돼! …….

발악하던 혼백의 신형이 물먹은 솜처럼 아래로 축 쳐졌다.

“고개를 들라!”

마현의 입에서 중원인들에겐 낯선 언어가 다시 흘러나왔다. 그의 목소리도 달라졌다.

율기는 마치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 인형처럼 고개를 들어올렸다.

“너희들이 원하는 것이 무어냐?”

―영원한 제국, 절대적인 황권 성립!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들으니 마현은 절로 침음성을 삼켰다.

“그런데 왜 무림이지?”

―무림은 품에 안고 있는 양날의 검, 그렇기에 위험한 칼날은 버리고, 황제를 위한 칼날만 남기려는 것.

룬어인 마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율기의 대답으로 어떤 질문을 했는지 청명진인과 걸왕은 대충 이해했다.

“최종적으로 너희들이 원하는 것은?”

―끌어안을 수 있는 무림은 황제의 영원한 충성스런 군사로, 끌어안을 수 없는 무림은 말살!

‘설마 했는데…….’

마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동시에 청명진인과 걸왕의 얼굴도 굳어졌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것을 말하라!”

―본조직의 이름은 진유림. 본조직은 백여 년 전 양호 태스승께서 황사 자리에 오르면서 시작된 대계. 그분의 유지가 사환 대스승을 거쳐 현재 송겸 스승님께 이어졌음.

마현과 청명진인, 그리고 걸왕은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다.

이런 일이 자그마치 백여 년에 걸쳐 내려왔다고 하니 등골이 서늘해지고 소름이 쫙 돋은 것이다.

―현재 송겸 스승님께서 머무시는 곳은 중경, 진유림 소속으로 키워진 검사가 일천으로, 하나같이 최소 절정급 이상, 이들의 기반은 황궁보고의 영약과 황궁절대무공서로 키워짐. 그 외 오천의 금의군이 낙향을 이유로 사직, 중경으로 합류, 동시에 오군도독부 휘하 오천의 위사급 이상의 군사들도 곧 합류할 예정. 그에 필요한 자금은 대사형인 구금상단 금대치의 손에서 흘러나옴. 아울러…….

율기의 혼백은 장장 반각에 걸쳐 진유림에 대한 것을 줄줄 읊었다. 그 말이 계속될수록 마현을 비롯해 청명진인과 걸왕은 서늘한 오한에 몸부림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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