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
20화
“뭣들 하는 건가! 황제를 보호하라! 너희들이 진정으로 모시는 황제 폐하가 아니냐!”
마현의 고함에 머뭇거리던 진유림 검사들이 달려들어 황제의 주위를 겹겹이 에워쌌다.
“무, 무슨 일이냐!”
황제의 외침을 들으며 마현은 송겸의 머리 위로 몸을 띄웠다.
내상으로 신형이 휘청거렸지만 마현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마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그로 인해 겨우 잠잠해진 내상이 다시 도져 그의 입가로 피가 다시 흘러내렸다.
“황제 폐하를 보호하라, 어서!”
마현은 마인들에게도 그리 명하며 마력을 송겸이 앉아 있는 땅으로 집중시켰다.
송겸이 앉아 있는 주변으로 마법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워프 네비게이션 마법진이었다.
정확한 좌표는 없지만 일단 송겸을 멀리 떨어진 곳 어느 허공으로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아니면 모두 죽는다!’
이미 몸이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송겸을 내려다보며 마법진에 집중했다.
“주, 주군!”
흑풍대주 왕귀진의 소리가 들렸지만 마현은 무시하며 마법진에만 집중했다.
어렵게 간신히 마법진을 완성시킨 바로 그때였다.
쿠오오오오오!
마법진에 마현, 자신의 마력뿐만 아니라 송겸 주위로 휘몰아치는 내력까지 스며들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광!
마침내 송겸의 몸이 터졌다.
그의 피와 살점, 그리고 조각난 뼛조각들이 엄청난 내력과 함께 사방으로 휘몰아치다가 마법진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마법진 중앙으로 붉은 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으아아아악!”
마현은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었다.
“주, 주군!”
콰과과과과과과광!
마법진이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폭발했다.
그 폭발 속으로 십여 명의 흑풍대가 뛰어들었다.
* * *
“끄허어억!”
마현은 힘겹게 숨을 터트렸다.
마치 심해에 빠져 오랜 시간 숨이 막혔다가 힘겹게 트인 것처럼 숨이 터졌다. 동시에 온몸이 난도질당하는 것처럼 지독한 고통이 수반되었다.
“끄으으으.”
살점이 하나하나 뜯겨나가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칠 때 누군가가 부축하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정신이 혼미한 탓인지, 아니면 오랜 시간 혼절한 탓인지, 누구인지 알아보기는커녕 사방이 온통 뿌옇게 보였다.
“이보게, 정신이 드는가?”
그는 약간 벌어진 마현의 입 속으로 물을 흘려 넣었다.
분명 입 안에서는 시원한 물이건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펄펄 끊는 듯한 쓰라림이 느껴졌다.
그 고통에 몸부림을 치자 한껏 머금었던 대부분의 물은 입 밖으로 흘러내렸다.
“마시게, 마셔야 산다네!”
그러자 그는 마현의 머리를 팔과 손으로 강하게 고정시키며 물주머니를 입 안으로 억지로 우겨넣었다.
“밀러. 그렇게까지 할 것 있소? 우리 목숨도 장담하기 힘든 지경인데…….”
또 다른 낯선 목소리가 마현의 귀로 들려왔다.
살기 위해서는 물을 마셔야 한다는 생각에 어렵게 물을 들이켜던 마현의 목울대가 움직임을 딱 멈췄다. 그로 인해 물이 입 밖으로 철철 넘쳐 흘렸다.
마현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낯선 사내의 목소리, 아니 정확히는 그가 말하는 언어가 그의 흐려지려는 의식을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제이든, 너무 그러지 말게나. 어디 소속인지는 몰라도 아군이지 않은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어떻게 압니까? 어디 소속인지 표식도 없는데.”
고통에 몸부림치던 마현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이 뻣뻣해졌다. 초점조차 잡히지 않던 흐릿한 눈동자가 중심을 잡으며 눈앞의 사물들이 희미하게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보게, 이보게!”
그런 몸의 변화를 느낀 것인지 밀러는 황급히 마현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밀러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그저 흔하지 않은 새카만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눈동자까지 검은 색이었던 것이다. 마현처럼 새카만 눈동자는 밀러도 오늘 처음 본 것이다.
그렇게 밀러가 잠시 놀란 사이, 마현은 그의 손길을 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한눈에도 마현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는 현재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런 마현이 자신의 의지대로 멀쩡히 서 있을 수는 없는 법.
몸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무릎 한쪽이 꺾이며 무너지려는 것을 밀러가 달려와 가까스로 마현을 부축했다.
마현의 눈길은 그가 서 있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모닥불로 향했다. 그 모닥불 주위로 세 명의 사내와 한 명의 여인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갑작스러운 마현의 행동 때문이었을까. 그들도 마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사람들과 눈을 마주친 마현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밀러라는 사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곱실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에 진녹색 눈동자를 가진 밀러는 분명 중원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역의 색목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밀러가 입고 있던 로브가 너무 크게 다가왔다.
“……마법사?”
목소리가 갈라져 쉭쉭거리는 음색으로 마현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물음에 밀러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어디요?”
“어디기는 어딘가? 몬테팔코 왕국과 브루넬로 왕국의 전선이 아닌가?”
밀러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현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던 마현의 흑안이 파르르 떨렸다.
“크허억!”
몸이 좋지 않은데다가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고 심력을 소비한 탓인지 마현은 족히 한 바가지는 될 법한 피를 쏟아냈다.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 크허억!”
그리고는 힘없이 밀러의 품으로 쓰러지며 혼절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거 내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딱 봐도 정신 나간 놈인데……, 가뜩이나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전쟁 중에 혹 달 일 있습니까?”
제이든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툭 내쏘았다.
“제이든.”
그때 반대편에 앉아 있는 케이슨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는 제이든을 조용한 목소리로 불렀다.
“왜요, 대장.”
“일단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나? 아군이면 좋고, 적이면 그때 포로로 잡아들여도 상관없지 않을까?”
케이슨은 용병대 대장답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타일렀다. 그래도 자신이 몸담은 용병대 대장의 말 때문이었을까? 제이든은 더 이상 불만을 토해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불만 가득한 표정을 하고선 불쏘시개를 신경질적으로 휘저으며 모닥불에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밀러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마현을 등에 업으려 했다.
“밀러, 제가 하죠.”
모닥불에 앉아 있던 자브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이 용병대의 유일한 여인이었다.
“결국 나보고 하라는 소리구만.”
그러자 덩치가 큰 그레오가 자브라의 어깨를 짚어 자리에 앉히며 일어났다.
“부탁해요, 그레오.”
자브라는 그런 그레오에게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그레오는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밀러에게로 다가갔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 주겠는가? 고맙네.”
밀러의 웃음에 그레오는 다시 한 번 머리를 긁적인 후 마현을 받아들었다.
“읏차!”
큰 덩치에 어울리게 그레오는 가볍게 마현을 어깨에 들쳐 업었다.
“일단 내 야전침상으로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밀러.”
그레오가 막 마현을 업고 군막으로 들어가려던 때였다.
“그레오 형.”
대략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어깨에 한 무더기의 짐을 메고 뒤뚱뒤뚱 걸어오며 그레오를 불렀다.
청년은 이 용병대의 막내이자 그레오의 친동생인 야솝이었다.
“그게 다 뭐냐?”
“필요할 것 같아서 야전침상 하나를 얻어왔어. 그리고 자브라 누나, 여기 이것 좀 받아줘요.”
야솝은 들고 있던 나무로 만든 두 개의 양동이를 자브라에게 넘겼다. 그 양동이 안에는 딱딱한 빵들과 묽은 스프가 담겨 있었다.
밀러는 마치 가족과도 같은 용병대원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용병대, 대부분 용병대가 다 그렇지만 지금의 용병대를 이끄는 케이슨의 이름을 따 만든 케이슨 용병대는 소규모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전체 인원이라고 해봐야 그 자신까지 합해 겨우 여섯 명뿐이었다.
하지만 용병들 세계에서는 나름 꽤나 이름이 알려진 용병대였다.
용병대장 케이슨과 밀러는 용병 중에서도 흔하지 않은 A급 용병이었으며, 그 외 용병 일을 배우고 있는 야솝을 제외한 제이든과 그레오, 자브라는 모두 B급으로 상당한 실력자들이었다.
그리고 실력이 없다고 해서 야솝이 애물단지는 아니었다. 비록 용병대에서 막내이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용병 일을 배우고 있긴 하지만 얼마 전에는 C급으로 승격할 만큼 이제는 제법 노련한 용병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즉 막내인 야솝의 실력도 규모가 큰 용병대에 들어가면 십부장 자리쯤은 너끈히 차고앉을 정도였다.
소규모였지만 내실만큼은 어느 용병대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상당한 전력을 가진 케이슨 용병대였다.
* * *
“큭!”
다음 날, 이른 아침.
마현이 미약한 신음을 흘리며 눈을 다시 떴다.
어제보다는 그나마 한결 낫지만 그래도 상당한 고통을 느끼며 마현은 야전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꿈이 아니었군.’
마현은 주위를 둘러본 후 입가에 쓰디쓴 웃음을 지으며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르센 대륙이다.
복수를 위해 그토록 다시 오고 싶어 했던, 바로 그 땅이었건만…….
이건 아니었다.
정말로 아니었다.
마현은 허리를 숙이며 얼굴을 손에 파묻었다.
무림에서의 일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흘러지나갔다.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그 정점에는 아버지나 다름없는 스승 허진이 있었고, 가슴을 시리게 만들 정도로 사랑하는 설린이 있었다.
비록 5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중원에서 보낸 기억들은 하르센 대륙의 몇 십 년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세계가 바뀐 것이다.
이 빌어먹을 인생을 저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분노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